소설리스트

견습무사-137화 (137/150)

# 137

무림이 존재하는 이유 (5)

더욱이 그의 치를 떨게 한 사실 중 하나는 금릉에 와서야 밝혀졌는데, 홍무제의 장례식에 대한 부분이었다.

“무엇이 어째? 부황 폐하의 장례가 미혼장未婚葬? 나가는 행렬은 보았지만 진가를 확인할 수 없어?”

상상을 넘어선 사실이었다.

미혼장이란 문자 그대로 비밀리에 치러지는 장례식이었다.

어디에 묻히는지 알 수 없도록 장례 행렬을 여럿으로 나눠 주위의 눈을 속이고 암암리에 세인들이 모르는 곳에 매장하는 것을 일컫는 것이었는데, 주원장이 바로 이런 미혼장을 치렀다는 것.

“분명히 그러하여이다. 영결식을 한 것은 전하께서 회안에서 되돌아가신 다음 날이었사온데, 백성들을 모두 집 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장례 행렬을 열셋으로 나눠 열세 대문으로 일제히 나가게 하였나이다. 어느 행렬에 존체가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고, 효릉에 안치되신 것 역시 아니기 쉽나이다. 정확한 사실을 아는 것은 황자징과 제태, 건문 폐하뿐이온데, 조천궁의 마룻장을 뜯고 그 아래에 안장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나이다.”

완전히 황당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상식 밖인 일이 벌어진 것으로 정상으로 치러진 장례였다면 홍무제는 분명히 금릉 종산의 기슭인 효릉에 안장되어야 하는 게 옳았다.

역대로부터 황제들은 누구나 자신이 영안할 자리를 미리 마련했고, 홍무제 역시 사후에 대비해 금릉 종산의 자금봉 기슭에 일찍부터 묘소를 마련했으며, 끔찍이 사랑했던 아내 마 황후가 죽자 한발 앞서 안장시키기까지 한 바 있었다.

따라서 그는 분명히 생전에 자신이 만든 묘소, 사랑하던 아내의 옆에 누워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효릉에 묻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했는데, 효릉이 홍무제가 눕기 위해 마련해 둔 묘소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한데 모두가 아는 사실에, 효릉에 그를 안치했을 것 같으면 왜 터무니없는 미혼장을 치렀을까?

거기에 묻힐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아는데, 이를 비밀로 하기 위해 백성들의 출입을 금하는 등 행렬을 열셋으로 만드는 미혼장을 치러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들들조차 모르는 시신의 실종이라 봐야 했다.

미루어 홍무제의 장례를 서둘러 치른 것은 주체가 달려오는 등 번왕들이 건문제에게 접근하는 것을 우려한 황자징 등의 장난으로서, 혹여 제위에 오르는 것을 방해할까 보아 번개치기로 시체를 매장한 후 주윤문을 황제로 즉위시킨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무례한 자들이니 죽자 바로 시체부터 묻어 버리고 거짓 장례를 치렀다는 추측도 나올 수 있었던 것.

“너희들은 무엇을 했느냐! 황상을 옆에서 보필하는 환관들이 존체가 어디에 묻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소신들도 가까이 갈 수 없었나이다. 제 상서 등이 병력으로 궁을 둘러싸고 있었사옵기에. 법도고 뭐고가 없었나이다.”

주체는 코에서 불이 뿜어 나오는 것 같았다.

“때려죽일! 당장 조천궁과 효릉을……!”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밀어 핏물이 흐를 만치 눈이 충혈되어 즉각 조천궁의 마룻장을 뜯고 효릉을 파헤쳐 홍무제의 시체를 확인하라 했지만, 그러나 끝내 이 명령은 이행되지 않았다.

어디에 묻혀 있든 유택幽宅을 건드리는 것은 고인, 특히 황제에 대한 도리가 아니었기에 주위에서 말린 것이다.

고사하고 미혼장이 치러진 상황, 두 곳을 모두 파헤쳐도 홍무제의 시체는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그 상실감은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아들들조차 모르는 황제의 무덤.

그대로 기도 안 찰 노릇이 벌어진 것으로서 돌이키면 건문제의 실종도 크게 수상쩍은 바가 있었다.

거병할 때부터 주체는 골육상잔을 일으키는 역신들을 처단하기 위해서라고 천명했고, 상소 역시 그렇게 올렸으며, 양주로 경성 군주가 찾아왔을 때도 역신들을 처단하고 홍무제의 묘소에 참배한 후 건문제를 알현하면 바로 북평으로 돌아갈 것임을 분명히 했었다.

그런데 그는 어째서 행방을 감췄을까. 자결을 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불필요하다 할 만치 서둘러 그가 자결을 해야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래야만 할 무엇이 있었던 것인지?

상당수의 사람들이 홍무제의 장례와 관련된 일로 추측하고 있는 상태로서, 홍무제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되는 속에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뭐가 되었건 법통이고 뭐고 다 무시된 일이었다.

줄줄이 엮여 투옥되거나 참수를 당하는 일파들을 보면서도 백성들은 무심했다.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끌어내어 인질로 삼았던 그들에게 보낼 동정심이란 아무에게도 없었던 것이다.

“하-!”

콰두두두두두두!

하지만 궁실 속에서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건! 주체의 입성과 함께 더 바빠진 인물들도 있었다.

북평군에게 장강을 넘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 한 방에 진압군을 실신 상태에 이르게 한 기병들이었다.

악불비, 임대백 등 악충보와 홍묘의 영웅들이었다.

선두에는 그대로 검은 갑주를 입은 추룡이 눈을 번쩍이며 장강 전투에서 어마어마한 맹위를 보인 대월도를 움켜쥐고 철갑을 두른 적낭자를 탄 채 계속 벼락같이 질주하고 있었다.

악벽강과 친구들 역시 무시무시하게 안광을 뿜으며 빈틈없이 그를 호위한 채 질주하고 있었고.

뒤따라 순욱, 오동주 등 특과의 무사들이 일진이 되어 치달리는 모습도 보였다.

북평군 쪽에서만도 사만여가 죽은 엄청난 접전이었지만 다행히 이쪽은 무위들이 높고 기병이라 희생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목적지는 군도산이었다.

출발하기 앞서 이야기 나왔듯 내란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지만 벤야시리가 동부의 대군을 집결시키는 등, 달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첩보를 입수한 상태다.

금천문이 뚫렸다는 소식과 함께 진강 방벽에서 바로 장강을 건너 북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성은 가깝지 않고 변함없이 북로는 견고했다.

“서라! 어디로 가는 어느 소속이냐! 지나갈 수 없다!”

내란은 끝났지만 곳곳의 관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고, 방벽마다에서 금군들이 막았다.

“성문을 열어라! 내전은 끝났다. 연왕께서 금릉으로 입성하셨다. 하지만 장성이 위험하다. 달단이 육십만을 이끌고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금릉이 함락되었다고?”

“북원이 남하?”

“그러하다. 서두르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 그대들도 서둘러 장성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적과 아군이 따로 없다. 우리는 휘주와 황석의 의용군이다!”

“어떻게 그런……!”

“성문을 열어라! 어서!”

“하-!”

콰두두두두두.

망설였지만 심각성을 안 수비대들은 하나씩 관문을 열었다. 더러는 수하의 기병들을 이끌고 보조를 맞추는 장수도 있었다.

나라를 걱정하는 인물도 있었고, 주체가 입성했다 하니 후과를 걱정해 나서는 인물들도 있었다.

적으로 마주 선 입장에 세상이 바뀌었으니 자칫하면 목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상태가 좋은 예였다.

“네 이 역적의 주구 놈들아! 너희가 조정군의 배후를 쳐 전세를 뒤집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히 반란으로 나라를 뒤집고도 무사할 성싶더냐!”

“공격하라!”

“와아아아!”

개중에는 특유의 복지부동의 배짱으로 눈을 부릅뜬 채 으르대며 관문을 열지 않는 자들도 상당했고, 심한 경우에는 패전의 울분으로 공격을 명령하는 장수들도 있었다.

“우회한다!”

콰두두두두두!

이럴 때는 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백 리 이상을 돌아 다른 관문으로 향해야만 했다.

“추적하라!”

두두두!

더 심한 경우로 기마대가 많은 방벽의 경우 추적을 명령하는 자들까지 있었다.

하지만 한번 칼을 뽑은바, 악불비는 강한 소신을 보였다.

“어리석은 놈들이, 나라가 위험하다 하는데도! 그러면, 흑백이 드러난 싸움에 연왕을 죽게 하고 달단이 넘어오도록 방치하는 게 옳단 소리냐! 쓸어버리고 간다!”

“앞으로!”

“와아아아아-!”

콰두두두두!

콰차차창!

“크아아아악-!”

언제나 조용했던 인물이지만 이럴 때마다 단호히 격파할 것을 명령했다.

한시가 급한 마당에 추적까지 해 오는 만큼 깨트리고 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추룡 역시 머뭇대지 않았다.

“수장이 누구냐! 썩 나오너라!”

콰차차차창!

“으아아아악!”

“크아아아!”

철갑 기병을 이끌고 폭풍같이 앞장서 중앙을 돌파하며 선봉장으로서 어마어마한 맹위를 보였다.

열이건 스물이건, 광풍같이 휘돌아 가는 대월도 앞에 마주친 자들은 항거할 겨를도 없이 그냥 동강이 나고 있었다.

“괴물이다!”

“어디서 저런 녀석이……!”

오랜 인내와 숙고의 시간. 권력 다툼이나 관부와 상관없던 약관의 촌 청년으로서, 북평에 다녀오며 치정治政에서는 그들 쪽으로 기울어졌지만 떠나서 이젠 그도 성인으로서 확고한 의지를 가졌다.

그것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택한 것이었다.

내란이란 나라 안에서의 힘겨루기로서 징병까지는 할지언정 이유 없이 백성들을 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가 간의 전쟁은 사정이 달랐다. 종족이 다른 만큼 승리를 위해서는 거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점령지마다 약탈과 학살로 피가 바다를 이룬다. 승자의 술 한 잔에 수급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고, 이념까지 다르다면 아예 말살 정책으로 가는 경우까지 있었다.

침략이라면 무조건 막아야 했다.

친구들 또한 같았다.

“물러서라!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 조정이고 군부인 것인데, 헤아리지 않는 것은 한갓 적당에 불과한 것이다!”

“흐아아아아!”

콰차창!

“크아아악!”

임백호도, 장청도, 한자방도, 문대위도, 곽영, 허원소, 장백하, 조태형, 신학철도, 하물며 권문세족이 싫어 관부를 피했다던 송민조차도 북행에 있어서는 손 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싸구려 협객질에 패권 다툼이나 하자고 있는 게 무림이 아니었다.

무사는 용감해야 하며, 권력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신의와 예의를 지키며, 약자를 보호하되 나라와 민족이 위험할 때 우선적으로 이를 지켜야 하는 존재였다.

파죽지세로 덮쳐 오는 자들을 격파해 가며 사력을 다해 북으로 치달리는 기병들!

무림이 존재하는 이유 같았다.

어떤 충신의 최후 (1)

군도산.

“공격하라!”

“와아아아아-!”

콰콰콰콰쾅!

펑! 펑! 펑!

“으아아아아악!”

그런 속에 여기에도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말았다.

“최고의 기회다! 주체와 북평군은 장강까지 내려가 있고, 금군도 무력화되었다. 장성을 넘으면 중원은 거저로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다! 점령하라!”

오랫동안 이를 갈며 환도를 노리던 벤야시리가 결국 육십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해일처럼 장성을 향해 밀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상상을 넘어서는 대군.

“병력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만으로는 버텨 낼 수 없습니다. 자칫하면 고립당할 수 있습니다.”

막여사와 장정희 등 섬서군들은 사력을 다해 시위를 당기고 포화를 퍼부으며 맞섰지만 역시 대책은 없었다.

핏물로 산을 칠하다시피 한 상태임에도 북원군의 병력은 계속 증가되고 있었던 것이다.

계곡 역시 시체로 메워졌다.

진격을 막기 위해 사방에 방책을 세우고 함정을 파고 철질려를 뿌리는 등 온갖 안배를 해 두었지만 시체가 계곡을 메웠으니 모든 게 무용지물이었다.

일진, 이진, 삼진, 계속 밀려드는 북원군의 수효는 해일이 되어 고지의 섬서군을 상대하면서 진격까지 해 나갈 정도로 늘어났다.

길도 내어 주고 고립당할 위기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전면 두 개 봉우리를 내어 준다. 후퇴하라!”

피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막여사는 어쩔 수 없이 북쪽의 두 개 고지를 내어 주고 다음 고지로 물러섰다.

하지만 달리는 병력에 다음 고지로 간들.

“결국 놈들이 물러섰습니다. 점령입니다!”

“제아무리 천하제일이라 해도 역시 병력에는 어쩔 수 없구나. 계속 밀어붙여라! 어디로 간들 허튼짓밖에 되지 않는다.”

“진격하라!”

“와아!”

쒸이이익!

콰콰콰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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