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34화 (134/150)

# 134

무림이 존재하는 이유 (2)

열흘 전부터 북평군이 진열을 늘어뜨리기 시작해 진압군 역시 맞진을 쳐 십 리까지 늘어서서 마주 선 형세! 언제 일이 터질지 모르는 만큼 다들 긴장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호우가 퍼부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약간은 긴장이 풀리고 있는 상태였다.

십 장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빗속에 급격히 불어나 거칠게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강물! 이런 시기에 도강하여 전투를 치르는 경우는 십중팔구 없기 때문이었다.

도강한다는 자체부터가 위험하기 그지없는 일로서, 특히 북평군 쪽의 경우는 더욱 그러했다.

장강수군은 하나같이 범선 규모의 큰 전함들로서 끊임없이 수상전을 수련하고 있으므로 장강의 물결에 익숙했고, 물살이 세어져도 전함 좌우에 많은 노대가 있어 그것을 저어 강폭을 선회할 수 있지만 북평군이 지닌 배들은 대부분이 돛과 한두 개의 노로 지탱하는 일반의 작은 선박이었다.

이런 배로 거친 물살을 뚫고 전함에 맞선다는 것은 정말 위험천만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긴장된 중에서도 진압군 쪽은 다소 마음을 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삼 년, 도연과 북평군이 치러 온 큰 싸움들을 헤아려 보면 모두가 유사한 특성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추위와 거친 바람 등, 대부분의 전투가 ‘설마 이런 날씨에’ 하는 최악의 기상 조건 속에서 이루어졌고, 이를 통해 압도적인 수효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었다는 점이었다.

입증이라도 하듯 건문 사 년 유월 초(음력), 주체는 또 한 번 대단한 모험을 감행했다.

우르릉 꽝!

쏴아아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번갯불이 사방에 번쩍이는 속에 억수 같은 장맛비가 쏟아지는 밤.

열흘이나 계속 퍼부어진 비로 장강의 물은 크게 불어나 진영까지 상당수 뒤로 물린 상태로서, 급격한 물 흐름이 굉음을 토할 정도였다.

한데 문득, 양군兩軍이 대치하고 있는 지점에서 더 위쪽인 장강의 상류에서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억수같이 퍼부어지는 폭우 속의 거친 물살을 타고 하나, 둘, 열, 스물……. 짚 덤불과 같은 수백 개의 커다란 부유물들이 강 중심을 따라 떠내려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평범한 일이기도 했다. 장마로 넘친 거친 물결은 언제나 강 저변 도처의 농지와 벌판을 휩쓸어 냄으로, 풀 무더기, 나무, 짚더미 같은 부유물이 계속 떠밀려 내려오곤 했으니까.

하지만 이상하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경우 휩쓸린 부유물들은 강 저변으로 떠밀려오는 게 통상적이었다.

무게와 부피로 인해 물의 흐름보다 속도가 느리므로 급물살인 강 중간 폭보다 비교적 잔잔한 저변의 물살을 따라 흘러오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이 부유물들은 강 중심 폭에서 떠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드문드문하기는 했지만 길게 나열해 떠내려오는 형상까지 보였고, 크기들 역시 작지가 않았다.

강 중심에는 변함없이 진압군의 전함들이 거친 물결을 가르면서 북평군의 진영들을 감시하며 선회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심히 보고 깊이 생각해야 알 정도일 뿐, 이 부유물들을 수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열거한 대로 장마에 부유물들이 밀려오는 것은 일상사나 같았고, 칠흑 같은 밤, 앞을 헤아리기 어려운 폭우까지 퍼부어지고 있어 발견해 내기조차 쉽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한데 이렇게 떠내려온 부유물들이 전함들이 있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렬로 내려오나 했던 것들이 홀연 살아 있기라도 한 듯 시커멓게 전함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홀연 방향을 틀어 그들 쪽으로 접근해 가기 시작했던 것!

그리고 마침내 둘씩, 셋씩 선회하는 전함들의 옆구리 쪽으로 붙는다 싶은 순간!

“올라라!”

“흐아아아!”

“왓!”

“뭐냐?”

퍼부어지는 폭우, 어둠 속에 실로 대단한 광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전함에 접근한 부유물 속에서 휙휙, 밧줄이 달린 갈고리가 날아가 전함들의 뱃전에 걸렸고, 더불어 부유물의 위쪽을 덮었던 덤불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속에 시커먼 인영들이 벼락같이 신형을 날리는 등 밧줄을 타고 선상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장강수군들로서는 상상치도 못했던 사태! 다시 보니 떠내려온 부유물은 짚 더미 등으로 위장된 오륙인승의 조각배들이었다. 속에 습격자들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불시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었다.

낮이기라도 했으면 발견이라도 했겠지만 칠흑 같은 밤, 퍼부어지는 비로 인해 미심쩍음조차 지니지 못했던 그런 상태였다. 이런 거친 물살에 조각배들을 타고 온다는 자체조차 목숨을 건 일이기도 했다.

“일제히 쳐라!”

“흐아아아-!”

펑펑! 창!

“으아앗!”

“악!”

특히 놀라운 것은 습격자들의 무위이기도 했다. 이런 거친 급물살을 타고 대담무쌍하게 습격을 감행했듯 삽시간에 전함 위로 뛰어오른 습격자들은 범이 날뛰듯 오르기 무섭게 경계를 서던 수군들을 후려치기 시작했는데, 반수가 양끝에 쇠를 댄 일곱 자 길이의 장봉을 사용하고 있었고, 반수는 장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휘두를 때마다 시커멓다 할 정도로 엄청난 검영, 봉영이 일어나 수군들을 쓰러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아아아-!”

쾅!

“으아아앗!”

콰다당!

수군들도 방패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그조차 별로 소용이 없었다. 뛰어오른 습격자들이 빗줄기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검영, 봉영을 쏟아 내기 시작하자 당황한 수군들은 정신없이 방패를 앞세워 공격을 막기 시작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습격자들의 기예는 검봉법만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벼락같은 각법이 날았다.

몸을 가린 방패 위를 그냥 철퇴 같은 발길로 후려 차 버리곤 하는 것으로, 얼마나 단련된 상태인지 그럴 때마다 병사들은 몸이 허공으로 떠 나동그라지곤 할 정도였다.

“대체 웬 놈들이냐! 습격이다! 습격자가 나타났다!”

“하아아아-!”

투투투투투!

“크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거의 정신조차 없을 지경! 그러나 특별히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자리하고 있는 곳이 강 중심이었고 설상가상, 북평군이 진영을 늘어뜨려 배들을 배치함으로 여기에 맞춰 수군들도 백여 장씩 띄엄띄엄 떨어져 선회하던 상태라 공조가 쉽지 않았고, 집중호우까지 쏟아지고 있어 강 저변에 진을 치고 있는 병사들은 바다 같은 강폭에서 무슨 소동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설혹 소동이 일어난 것을 안다고 해도 소용은 없었다.

저변으로 다가가 정박하기 전까지는 도움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유 없이 전함별로 승선하고 있던 칠십여 수군들이 막아야 했던 것인데, 그러나 그들만으로 막기에는 급습해 온 습격자들의 무위가 너무 강했다.

한결같이 시커먼 두건을 뒤집어쓰고, 가벼운 호구를 입고 있다는 것이 특징!

어찌 보면 또한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재 조정군은 북평군과 맞서 있고, 이런 상태에 그들을 공격해 온다면 필경 주체를 편드는 반군인 것인데, 일단 칠흑 같은 밤, 폭우 속의 거친 물살을 헤치고 소선을 타고 접근했으니 위험을 피해 쇠 갑주를 버리고 호구를 입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두건이란 것은 역시 상식 밖이다. 어차피 정체는 반군이고, 조정군과 싸울 생각을 했다면 두건을 써야 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두건을 쓴 채 습격해 왔다는 것!

“침입자다! 막아라!”

“어서 배를 기슭으로!”

“와아아!”

어쨌거나 전함마다에는 적잖게 난리가 났다.

뛰어오른 것은 대부분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의 습격자였지만 일률적으로 무위가 장난이 아니라서 부딪쳤다 하면 바닥에 나뒹굴 정도였고, 이렇다 보니 우왕좌왕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었다.

함선 내부에 노수들이 있었으나 급류에 함부로 나올 수도 없었고, 쉽게 뭍으로 배를 몰고 갈 수도 없었다.

쾅! 쾅! 쾅!

그런 속에 한 찰나 세 발의 거대한 포성이 울렸다.

비가 퍼부어짐으로 화포를 쓸 수가 없어 대비책으로 포수들은 유사시 한 발만이라도 쏠 수 있도록 화약과 포탄을 미리 장전한 후 덮개로 덮어 두었는데, 전함으로 치고 올라간 인물들이 수군들을 밀어붙이며 거기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오직 세 발!

“헛!”

“뭔가, 이 우중에! 분명히 천둥소린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이 포성의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우선 강 저변에 진을 치고 섰던 육상군들이 수군들 쪽에 뭔가 변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비상! 모두 일어나라!”

뿌우웅! 뿌우우웅!

“와아!”

그것으로 육상군들 쪽에서도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 뿔고둥 나발이 퍼부어지는 빗속을 뚫고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등, 막사 속에서 눈을 붙이고 있던 장졸들이 일제히 강 저변으로 달려 나와 비와 어둠 속에 잘 보이지도 않는 전함들과 강 건너를 눈이 찢어지게 부릅뜨고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먼저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북평군의 진영 쪽이었다.

“신호다! 전군 도강하라-!”

“와아아아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세 발의 포성이 터짐과 함께 막사 속의 북평군들이 완전군장을 갖추고 쏟아져 나와 일제히 정박시킨 배 위로 뛰어오르며 거친 물살을 뚫고 퍼부어지는 비속에 새카맣게 강을 건너기 시작한 것이었다.

또한 목숨을 건 필사의 도강 작전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강수군들은 이를 막을 수 없었다. 미루어 북평군들은 사전에 계획한 작전이었던 것 같으나, 워낙 사방이 어둡고 비까지 퍼부어져 어쩔 수 없을 상황이었는데, 선상 위에서까지 대소동이 일어났으니 눈을 돌릴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북평군이다! 놈들이 도강해 오고 있다! 반격하라!”

“집중 포격!”

콰콰콰쾅-! 펑펑!

조정군의 진영에서 천둥치듯 한 포성이 터지기 시작한 것은 이각이나 지난 후였다.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노를 저어 도강하기 시작한 북평군들이 강 중심을 넘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던 것!

그러나 역시 그다지 유효하지 않았다. 육상군의 포대 역시 천막을 치는 등으로 비를 피해 화포를 가려 두었다가 포화를 퍼붓기 시작했는데, 유감스럽게도 쏟아지는 호우와 어둠으로 도강하는 북평군들을 너무 늦게 발견하여 사정거리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활을 쏴라! 화포보다 활이 유효하다! 창대 앞으로!”

“흐아아아아!”

콰아아앗-!

투투투투!

“아아아악!”

이에 포대는 곧 침묵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창대槍隊가 전면에 나서 밀집 방어를 하는 등 궁대가 활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또한 크게 유효하지 못했다. 대비해 북평군들은 거북이처럼 방패를 들어 몸을 가린 채 강을 건너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백만 대군에 맞먹는다는 장강의 방어 효과는 거의 무효화되었고, 이제 믿을 것은 이십오만에 달하는 병력의 우위뿐이었다. 기다렸다가 상륙하는 북평군을 섬멸시키는 방법뿐이었던 것!

북평군에게는 여전히 최악이라 할 위험 요소였다.

알려져 있듯 북평군은 진영을 늘어뜨린 채 산개해 있었고, 전함들까지 무력화된 이상 분명히 강을 건너기에는 이제 무리가 없었다. 하나, 산개하여 강을 건너는 만큼 상륙과 함께 압도적인 병력에 섬멸당하기 십상인 상태였던 것이다.

한데 사십 장, 삼십 장! 북평군의 배들이 퍼부어지는 화살의 소나기 속에, 눈을 번뜩이며 대기하고 있던 진압군들의 이십여 장 앞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쾅! 쾅! 쾅!

“공격하라!”

“와아아아아-!”

콰두두두두두.

포성이 멈췄던 시점, 인간 장벽을 친 채 건너오는 북평군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진압군들에게 또 한 번 날벼락이라 할 정도의 엄청난 재앙이 일어나고 말았다.

어찌 된 일인지 느닷없이 그들의 후미에서 또 한 번 벼락 치듯 한 세 발의 포성이 울려 퍼지며, 십 리에 걸쳐 늘어선 진영의 가운데, 중군中軍이라 봐야 할 중앙의 병력과 좌우 끝 양쪽, 삼면을 향해 폭우 속을 뚫고 상상조차 못 한 기병들이 배후에서 치달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날벼락이라 했듯 진압군들로서는 당연히 이런 대재앙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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