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도모圖謀 (7)
의군!
어떤 의군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악불비도 그냥 대충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나서 둬야 뒤탈이 없을 테니까요. 곧 출정할 것이니 지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태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해야지. 상부에서 명령까지 하달되었는데. 모쪼록 선전해서 체면을 좀 세워 주게. 솔직히 요즘 휘주 위상이 말이 아니야. 몇 문 되지 않지만 화포도 있고, 필요한 게 있으면 다 말하게.”
“전부터 신세를 져 왔지만 늘 감사드립니다.”
상부에서 명령! 지원! 묘하게 대화는 앞뒤가 맞고 있지만 어딘지 동상이몽同床異夢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 형, 장 형, 곽 형, 윤 형! 문 형! 한 형!”
“핫핫하! 결국 다시 만났군! 정말 반가워, 임 형!”
악불비가 태수부에 모습을 나타냈듯 악충보에도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삼 년이나 황산 속에 웅크리고 있던 무사들이 늠름하게 다시 돌아온 것이다.
곳곳에 거미줄이 치고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지만 보 내에 변한 것은 없었다. 먹다 말고 두고 간 식기까지 그대로 있었는데 우습지도 않게 그사이 악충보를 지킨 것은 휘주 포청의 포사들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악불비는 보루의 문을 걸어 잠그고 수하들과 함께 산속으로 피신했고, 혹시라도 그들이 올까 하여 포사들은 내내 감시했던 것인데, 덕분에 좀도둑조차 들어오지 못했던 것이다.
더 반가운 일은 친구들에게 있었다.
난이 시작되면서 황석으로 돌아갔던 임백호가 다시 등장한 것이었다.
그것도 혼자 등장한 게 아니라 무려 사천에 달하는 홍묘의 무사들을 이끌고 나타났던 것!
십왕봉을 떠났던 또 하나의 전서구의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월명보, 명성부, 덕주부! 내전에 휘말리지 않고 비슷하게 피신해 있던 도처의 향용들과 웅주들도 모여들었다.
까닭은 악불비였다. 추룡의 전서구와 함께 악불비가 또한 급전을 보 내 도처의 맹방들을 끌어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악충보는 갑자기 보 안은 물론 바깥까지 완전히 인마人馬로 메워지고 말았다.
피신했던 사람들과 더불어 돌아온 악충보의 인원이 삼천이 넘었고, 황석 등 도처에서 달려온 인원으로 만이 넘는 수효가 운집했던 것이다.
“못 본 사이 무지하게 세진 것 같은데? 어마어마하게 노력한 모양이군.”
헤어진 지 삼 년이 되어 다시 만난 친구들! 다들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젓해져 있었다.
그을린 피부에 정광이 흐르는 눈빛들. 유감이지만 체격이 작은 전소만 빼고 다들 넉 자 반의 대장검까지 둘렀다.
하지만 그래도 죽고 못 사는 친구들, 무게는 커졌지만 웃음은 그대로였다.
“자네들도 그래. 죽어라 수련만 한 것 같은데, 여전히 만만한 느낌이 아니군.”
“크크…… 제법 했지, 제법 했어. 역근 공양에 뭐에! 나름 열심히 했네!”
싱글벙글, 노린내 나는 신입 문인들의 숙사를 둘러보는 등 입이 귀에 걸린 채 특과의 별원으로 들어갔다.
“요즘도 줘 터지나?”
“어, 자네가 없어서 전보다는 덜하지만 수시로 그래.”
임백호의 표정이 시금털털해졌다.
“거 별로 좋은 이야기 같지는 않은걸. 꼭 내가 고문관이었다는 소리 같은데?”
“사실이지 뭐. 우리가 만난 것부터가 자네가 사고를 쳤기 때문이 아닌가?”
어느새 사 년 전의 이야기다.
“육화탑 탑돌이를 하면 우정이 평생 간다고 하더니 그곳에서는 싸워도 친구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네! 사이 나쁜 놈들에게 거기 가서 치고받고 하라고 해야겠어.”
“하하!”
“막 형은? 막 형도 더 세어졌나? 이번에 난 막 형에게 도전을 한번 해 볼 참인데!”
임백호는 잔뜩 눈에 힘을 주고 어깨를 으쓱거렸지만 친구들은 그냥 웃었다.
“그냥 꿈을 접게. 막 형은 이젠 괴물도 넘었어. 반박귀진이라던가? 힘이 정점에 달하면 도로 약해 보인다더니 딱 그런 꼴일세. 겉으로는 전보다 박력도 없어 보이고 그래. 그러면서도 월도月刀라도 들었다 하면 꼭 무슨 광풍이 일어나는 것 같은 게 가까이 접근하지도 못할 정도로 무시무시해.”
장랍탑과 논무를 했을 정도로 커진 추룡.
임백호는 떠난 후에 있었던 일들을 모른다.
“월도라니? 월도는 또 무언가?”
“탕음악가의 진수 말일세. 전날 악비 장군께서 천군만마를 휩쓸었던 붕거창법! 보주님께서 전수하셨지. 덕분에 우리도 좀 배웠고. 맞서려면 거병술巨兵術부터 좀 배워야 할 걸세.”
“컹!”
아무래도 도전을 더 보류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충전.
“반갑소이다, 토사!”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시각 태수부에서 돌아온 악불비는 무림에서 가장 만나기 힘든 인물을 대면하고 있었다.
홍묘의 임대백!
임백호와 함께 그가 와 있었던 것이다.
“정말 큰 결심을 하셨소이다. 설마 대토사께서 와 주실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구려!”
악충보를 원수에까지 비교했었던 임대백.
추룡도 한자리에 있었는데 그를 보는 임대백의 귀밑머리가 전에 비해 많이 희어져 있었다.
“부족한 사람의 뜻이었겠습니까. 아들놈의 성화로 인한 것입니다. 한족이라 하면 질색이지만 바른 일을 한다 생각하니 나쁘지는 않군요.”
“떠난 후에야 자제께서 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이다. 사돈이 될 상황이지만 막 장군의 아들에…… 그야말로 기가 막힐 노릇인데, 덕분에 이렇게 토사와 또 친분을 맺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구려.”
임대백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기연인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악충보가 천하의 협의방파라는 사실은 알지만 좋은 감정이 아니었지요. 한데 녀석이…… 돌아와 많은 것을 바꾸려 하더군요. 수하들에게 거친 행동을 자제시키고 삼가여 소소한 일까지 살피라 하는 등, 크게 배워서 온 것 같았습니다. 보주께 감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악불비는 빙긋이 웃으며 포권을 취해 보였다.
“감정이라면 금나라 때의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지만 대수로운 것이겠소이까. 시대별로 의지가 다른데 몇 대가 지난 일을 유감 삼을 필요야. 조만간 홍묘의 기개가 만방에 알려질 것 같소이다.”
월명, 덕주, 명성부 등, 주위에는 청을 받고 달려온 맹방주들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크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솔직히 놀랐소이다. 우리도 토사께서 와 주실 줄은 몰랐소이다. 묘라고 하면 워낙 주위와 담을 쌓고 지내서 대단한 성격이실 줄 알았는데 막상 뵙고 보니 소탈하시구려. 묘를 무림 방파라 할 수는 없겠지만 계기 삼아 더불어 잘 지냈으면 싶소이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도 발 벗고 나서겠소이다.”
“말씀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오시는 데 힘들지는 않으셨소이까?”
“편히 왔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역시 도위부가 대단하더군요. 워낙 담을 쌓고 있어서인지 징병도 나오지 않는 것이 우리 쪽인데, 의병으로 나서겠다 하자 의심조차 않고 병기창까지 열어 주더군요. 일사천리로 온 셈입니다.”
모종의 감춰진 비밀!
그렇다면 추룡이 응원을 요청한 곳이 또 어디였던지 간단히 답이 나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연락을 보낸 곳이 이순문에게라는 뜻이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해 태수부들을 누름으로 모두가 움직일 수 있었다는 뜻!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뒤에 있는 것은……!
씁쓸히 고개를 저어 보인 후 추룡을 향했다.
“아버님의 근황은 어떤가? 군도산에 계시다고?”
추룡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섬서군과 함께 달단을 막고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식 받고야 알았지만 설마 막 장군께서 섬서군을 이끌고 계신 줄은 몰랐네. 전날 많은 신세를 졌으니 갚아야 도리겠지. 세부 계획은?”
추룡은 지도를 펼쳤다.
“수군과 지상군을 한꺼번에 잡아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 후 바로 장성으로 치고 올라갈 생각입니다. 뭣하시면 토사님께서는 거기까지 관여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우리 성격을 모르는 것 같은데, 그럴 생각이라면 나서지도 않았을 걸세. 하나 북행은 둘째 치고 첫 번째 언덕조차 넘기 어렵겠다 여겨지는군. 오긴 했지만 만에 지나지 않는 힘으로 이십오만에 달하는 병력을 잡을 수 있겠나?”
이십오만!
“당연히 어림도 없습니다. 아무리 강병이라도 이십오만을 우리가 어쩔 수는 없을 테니까요. 이래도 저래도 북평군이 해야겠지만 우리가 할 일은 길을 터 주는 것입니다. 수효는 적지만 우리 쪽은 기병이라는 강점이 있습니다. 세부 계획은……!”
추룡은 맑은 정광이 번지는 눈으로 지도를 짚어 가며 소리 죽여 무언가를 설명했다.
“그들이……?”
한데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설명이 끝나자 임대백의 얼굴에 크게 놀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상당하군. 큰 가능성이 있어! 한데 이건 향용의 전략이 아닌 것 같은데? 누가 세운 계획인가?”
악불비가 빙긋이 웃었다.
“전소라고, 책사가 있소이다. 아드님의 친구 중 하나올시다. 몽마를 잡는 데 기여하는 등, 입문할 때부터 두각을 드러내더니 한동안 전술 공부를 한 모양이더구려.”
추룡이 보충했다.
“전날 북평에 갔을 때 도연 대사님께서 헌원 시대의 이인 자부 선인이 남긴 자부진경을 전 형에게 선사했는데, 거기에 천문을 이용한 전술에 대한 부분이 있어 토대를 잡았고, 응용하여 보주님 등 웅주님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세운 계획입니다.”
임대백의 얼굴에 해연히 더욱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승려이지만 공동파의 석응진, 석 진인의 의발을 잇는 등 천하의 사찰을 모두 섭렵한 기승이라 들었네만……. 그러면 자부 선인의 진전이 그를 거쳐 전소라는 친구에게 이어진 것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승낙하신 것으로 보고 준비하겠습니다.”
포권과 함께 추룡은 곧 밖으로 나갔고, 임대백은 거듭 기이하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죽으나 사나 친구들 타령을 하더니만……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막 장군의 아들도 그렇지만 도 대사의 눈에 든 친구가 있는가 하면, 북평의 세자까지 찾아왔다는 말이 있는 것 같던데, 녀석들이 대체 무슨 도깨비짓을 했던 것입니까?”
악불비 역시 실소 지었다.
“필부도 모르겠소이다. 어느 날 갑자기 신입 문인으로 들어오더니만 하나같이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어서. 자제분까지 포함해서 전부 열세 명인데, 그냥 십삼인방十三人幇이라 해도 될 정도올시다. 지금도 군소 방파 하나 정도는 어렵잖게 쓸어버릴 정도의 실력이 되는데, 향후 사 무림의 풍운이 이들의 손에서 좌우되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올시다. 맹 형 들의 자제분들까지 포함해 차세대로 밀어주면 장차 대맹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구려.”
대맹大盟.
강호 무림의 패주를 뜻한다.
“죽고 못 살 정도로 의리들이 큰 것 같으니…… 흠흠!”
임대백은 못 들은 척 헛기침을 했다.
가서도 임백호가 노상 친구들 타령을 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이유가 없었던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현실화되어 친구들이 정말 대맹을 이룰 정도로 커진다면 걱정할 일이 없었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상황에 시시때때로 사교입네 시비를 걸어오는 게 주위의 강호 방파들인데, 다들 일가를 이루고 눈을 부릅뜨면 감히 집적거릴 자들이 있기 어렵다.
더 좋은 것은 지금이 무인들에게 있어 가장 성공하기 좋은 절호의 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난세亂世였다.
실력만 있으면 그냥도 일어설 기회가 되는데 이번 일까지 성사된다면……! 한족을 믿지 못하는 습성으로 후과가 우려되긴 했지만 일단은 나서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임 형!”
“어이쿠, 겉으로는 약해 보인다 하더니만 순 거짓말! 자넨 대체 쉬지도 않나?”
추룡과 임백호도 다시 만났다.
본 것은 도착하면서였지만 윗사람들이 있고 일이 중해 눈빛만 나눴을 뿐, 대화를 못 했다고 해야 더 옳았다.
“고맙네. 와 주리라 믿었지만 설마 아버님까지 모시고 올 줄이야.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뭘, 자네가 오라고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인데. 잘 지냈나?”
“그럭저럭. 자넨?”
“잘 지냈네. 능 매도 잘 지내고 있고. 소저께서는?”
“어머니와 함께 산채에 있네. 곧 내려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