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31화 (131/150)

# 131

도모圖謀 (6)

“이미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어찌 감사 올려야 하올지.”

논무를 통해 무엇을 배울지는 각자의 오성에 달린 것이나 노걸인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부족한 것은 공功뿐일세. 늙은 거지도 그 나이에 그만한 술수를 지니지는 못했었지. 막 장군의 위명이 결코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닌 듯하군. 얻은 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자광이 형형한 눈을 돌려 벽허 등을 보며 일렀다.

“한 걸음을 들여놓으나 열 걸음을 들여놓으나 다를 게 무엇이냐. 처음부터 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지금에 와서 앞을 우려한다는 것은 돼지의 꼬리는 돼지가 아니라 하는 것과 같다. 불과 얼음에 따르거라. 결코 후회할 일이 없으리라.”

“무령수불.”

그러자 벽허 등은 바로 읍을 하며 허리를 숙였고, 노걸인은 다시 추룡을 향했다.

“무엇이거나 믿어도 좋을 걸세. 소림의 것을 가졌다면 처음부터 남이 아닌 것이니.”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휙, 등을 돌렸다.

멈칫, 추룡은 가려는 그를 향해 급히 허리를 숙이며 포권을 취했다.

“마음으로는 뵙고 있으나 어르신이 그분이심에 틀림없으신지요?”

노도인은 돌아보지 않고 운무에 싸인 봉우리 아래로 훨훨 날듯이 걸어갔다.

“마음으로 보았으면 되었지 물을 게 무엇일까. 늙은 거지가 장랍탑張??일세.”

쿵!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추룡은 또 가슴이 주저앉았다.

장랍탑!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실 무림인은 물론, 일반인 중에서도 이 이름을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천 외 천이라고 했듯, 까닭은 그가 바로 전대와 이 시대를 거쳐 중원을 대표하는 제일 이인, 기이위�K而偉, 귀형학배龜形鶴背, 대이하목大耳賀目! 조유북해모창오(朝有北海暮蒼梧-아침은 북해, 저녁에는 창오산에)라 불리는 태극 장삼풍張三豊이었던 것이다.

요동遼東의 의주懿州 사람, 어려 중원으로 들어와 소림에서 수업을 했고, 뜻을 얻어 하산하여 무당산에서 가시덤불을 자르고 초옥을 지어 수행했으며, 덕명을 듣고 모인 벽덕, 현정, 선징, 고천, 추운 등 천하의 기재들이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고 또 간청해 마침내 무당산에 불멸의 선종도가가 일어섰으니, 그가 곧 무당파의 조사인 셈이었다.

명사明史 기록을 보면 백팔십 세까지 살았으며, 춥거나 덥거나 늘 낡은 옷 하나에 도롱이를 걸치고 다녔고, 스스로를 늙은 거지, 랍탑(지저분하다)이라고 칭했다.

의발을 일찍 물려주고 구름처럼 떠다니되 구름 속의 용과 같아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 무당의 장문인이자 제자인 벽덕 도장이 팔십 세였으니 그의 앞에서는 도연조차도 코흘리개인 셈이다.

한데 그런 그가 여기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더 위는 있을 수 없다고 했듯 무경록에도 첫 번째에 기록되어 있었으니, 추룡은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진인眞人과 손 속을 나누며 가르침을 받은 것이었다.

추룡은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지 포권을 취한 채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정명을 비롯한 벽허 등 모두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친구들이 웃으며 이야기했던 저 유명한 무당의 ‘후다닥 권법!’ 태극의 이치를 깨쳤는지 알 수 없지만 이날 견식한 것이 바로 그 십단금인 셈이었다.

하지만 추룡의 얼굴에는 기뻐하거나 하는 기색이 없었다.

앞두고 있는 일이 너무 엄중했기 때문이다.

“고맙네! 어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부왕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일세.”

초조하게 날을 보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주고치.

그의 얼굴에 마침내 커다란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연화봉에서 돌아온 추룡이 마침내 답을 준 것이었다.

변함없이 맑은 정광이 흐르는 눈.

“제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결의로 하는 것이오니 헤아리시어 좋은 날이 오면 백성들에게 되돌려주는 선정을 베푸소서. 바라는 바는 그뿐이옵니다.”

주고치는 볼살이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리하겠네! 새도 날아들기 어려운 산속으로 쫓겨 와 고생하는 백성들을 본 바, 나의 시대가 오면 무조건 그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네. 다시는 백성들이 이런 골짜기로 피신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며 모든 싸움을 멈추게 하고 가악嘉樂과 평화가 흐르는 땅으로 만들 것이야. 첨기에게도 그렇게 가르칠 것일세.”

“저하를 믿사옵니다.”

포권과 함께 유곡을 향했다.

“전하께 계획을 전해 주십시오. 어떻게든 한 달만 더 견뎌 주십사고. 이미 하고 계실 것이지만 도 총사님께 기별을 보내 진압군이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어 달라고 전해 주시고. 평안이 사만 기병을 끌고 추적해 왔었다니 기병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속도전으로 괴롭히시면 될 것입니다. 기일은 사람들이 모두 도착하면 맹 대협께서 가지고 가실 것입니다.”

“알겠네.”

유곡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발 앞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확히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긍정적인 답이 돌아온 지금, 서둘러 양주에 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주고치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한 달?”

소식을 받은 주체의 눈이 칼날같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그렇사옵니다. 소장이 출발한 게 열흘 전이니 이젠 이십 일입니다. 지금쯤 그들이 도착했을 것입니다.”

“뜻밖이로군. 다른 이들은 모르되 설마하니 천하에 가장 쓸모없다 생각했던 자들이 어려운 시기에 일어나 주다니.”

누구를 일컫는 것일까.

원기의 눈도 번뜩였다.

“쓸모없는 자들이 아니옵니다. 오십 개가 넘는 민족이 모여 이뤄진 게 중원이지만 유사 이래로 가장 용맹하고 지혜로운 일족이옵니다. 다만 주위와 적대감을 가져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을 뿐이옵니다. 나섰다는 것은 천만뜻밖이지만 우호를 보인 이상 무조건 거두어야 합니다. 삼 개 성에 백만에 달하는 일복이 있고, 무사들은 강인합니다. 향후로도 변방과 중앙을 장악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옵니다.”

주체는 이마를 끄덕이면서도 갸웃했다.

“마땅히 그리해야 할 것이지만 정말 뜻밖이군! 도연이 그를 귀히 생각하는 것은 알지만 설마 힘이 그들에게까지 닿고 있었더냐? 어찌 된 조화인지 알 수가 없다.”

원기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소신 역시 사실 이해가 좀 가지 않사옵니다. 악충보와의 관계는 알고 있었사옵지만…… 비로소 알고 보니 숭산과도 친분이 큰 듯하온데 막 장군은 숭산과 관계가 없는 인물입니다. 적잖은 수수께끼입니다. 출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난이 일어난 후에는 줄곧 황산 속으로 피신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사온데……. 흡사 고래 같은 젊은이입니다.”

중원의 사람들은 새끼를 낳는 포유동물로서 대양을 누비는 고래를 신비하게 여겨 다재다능한 사람을 여기에 비유했다.

주체의 눈이 더욱 강하게 번뜩였다.

“숭산의 승려들은 전날 크게 어리석은 짓을 했다. 원元을 도왔다 하기는 무엇하나 홍건군에 맞서 싸웠으니. 부황께서 한때 선종에 의지하셨다는 점에서 용서받았지만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명이 들어서면서 크게 위축된 것이지. 그 승려의 이름이 뭐였지?”

“긴나라緊那羅이옵니다. 주방의 화덕을 관리한 나한 중 하나이온데 주걱 하나로 수백 홍건군을 쓰러뜨렸사옵지요. 하오나 소림의 잘못이었다 할 수만도 없사옵니다. 홍건군이 모두 의로웠던 것도 아니고, 태조께서 가장 싫어하신 적賊 자까지 붙었었던 만큼 의군을 빙자해 약탈과 행악을 일삼는 자들도 많았으니까요. 헤아려 주셔야 하옵니다.”

창건 후 유일한 오점이라고 할까.

분명히 그런 일이 있었다. 원 말기에 있었던 공공연한 비사秘事 중 하나로서 원과 싸우던 홍건군이 정주로 들이닥치자 소림의 나한들은 홍건군과 부딪쳐 싸웠던 바 있었다.

나한들은 변함없이 맹위를 떨쳤는데, 그중 가장 큰 무위를 보인 인물은 주방의 화덕을 관리하던 나한 긴나라였다.

밥주걱을 들고 뛰어나간 그는 혼자서 수백에 달하는 홍건군을 때려눕혔다.

뭔가 멋지긴 했지만 결과로 명 초기에 들어 소림사는 크게 위축되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던 것이다.

용서받은 것은 더 큰 비사로서 주원장 역시 선종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부모를 잃고 황각사에 들어가 승려가 되어 무예까지 배웠는데 이 황각사가 바로 소림의 계종이었던 것이다.

신세를 진 것을 생각해 아량을 베푼 것이지만, 가려지고 있었던 까닭은 주원장이 팔십만의 양민을 학살함과 함께 받게 된 비난과 그가 승려였음을 힐난하는 사람들, 소림이 황건군과 맞섰다는 점 등이 기묘하게 어우러져서였다.

주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헤아릴 것이다! 어제 실수가 있었다 할지언정 오늘 나라를 위해 일어서는 사람들을 어찌 허물하랴! 철저히 대비하라! 그가 움직이는 즉시 도강한다!”

“명!”

어려움 속에 정체되어 있던 북평군의 수뇌부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십오만 병력은 운집시킨 배들을 철저히 지키며 강을 건널 채비를 했다.

강의 중심 폭에는 칠십인 규모, 수십 문의 화포를 탑재한 장강수군의 전함 수백 척이 위용을 자랑하며 계속 물살을 가르면서 선회하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이십삼만, 사만, 오만, 계속 병력이 늘어 가는 성용의 진압군이 강 건너를 노려보며 진을 치고 있었고.

여전히 어려운 상태였다.

민간의 배가 수군의 함대를 뚫고 강을 건너기도 어려웠거니와, 보급도 끊기고 병력도 부족한 상태. 누가 봐도 승산이 희박한 상황인 것이었다.

방치하고 온 북부의 병력까지 남하해 온다면 꼼짝없이 괴멸당하고 마는 것이다.

시간은 분명히 북평군의 편이 아니었다.

군도산 쪽에도 최악의 위기가 닥치고 있었다.

한동안 포성과 함성이 그쳐 있었던 고지, 이즈음 도연은 예상대로 기병들을 이끌고 북쪽에 진을 친 진압군들이 남하하지 못하도록 기습에 기습을 감행하여 괴롭히고 있었는데, 이로 인해 북평성 자체는 비다시피 한 상태. 마침내 벤야시리의 눈이 섬뜩하게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와랄이 화친을 받아들였다고?”

대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확고히 받아들이겠다는 뜻은 아닌 듯합니다. 그냥 잠시 정전停戰을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환도還都의 중요성을 환기했거나, 중원을 치는 사이 이쪽을 점령하려는 계책이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벤야시리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다! 북평은 비어 있다시피 하고, 주체는 양주까지 내려가 있다! 오랜 싸움으로 전력 역시 크게 약화되어 있지! 중원을 공략하기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거니와 장성을 넘으면 바로 산동까지 얻게 된다! 동부를 다소 내어 주더라도 중원을 얻으면 비교할 수 없는 득이 되지! 십만만 남기고 전력을 모두 집결시켜라! 육십만으로 단숨에 장성을 넘는다!”

“명!”

육십만 대군.

말이 쉬울 뿐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아무리 고지전에 섬서군이 강군이라 해도 십오만으로 이 병력을 막을 수는 없다.

육십만이라면 그야말로 산 하나를 메울 병력이 되니까.

그런 속에 휘주 태수에게 크게 의외의 일이 발생했다.

“허허…… 반갑구먼. 대체 얼마 만인가? 난이 시작된 후 처음이니 이태 만이 되나?”

천만뜻밖에도 십왕봉 산채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악불비가 태수부에 모습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상상을 넘어선 일이었지만 어쨌건 까닭은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살펴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시달리지 않고 덕분에 다들 편히 지냈사오니.”

“뭐, 타박할 여지도 없었지. 황산에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치고 들어갈 병력도 없었고 어쩌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도 아니었으니. 그저 징병 일이 좀 유감일세. 나도 체면이 있는데 그렇게 방해를 해서야. 괘씸죄를 좀 물어야 할 것 같아.”

악불비는 딱 시침을 뗐다.

“모르는 일이오라! 뭔가 일이 있었던가 보군요.”

징집을 피해 달아난 사람을 도운 것을 이야기하는 듯했는데 누구의 짓인지 불을 보듯 뻔히 보이지만 증거는 없다.

태수 역시 그냥 모른 척했다.

“그래, 뭐, 수하들이 멋대로 한 짓일 수도 있지. 얼굴을 알 수 없으니 그냥 덮어 두세. 보다 의군義軍으로 나설 생각이라니 잘 생각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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