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28화 (128/150)

# 128

도모圖謀 (3)

‘역시!’

추룡은 다시 적잖게 긴장된 심정이 되었다.

무당巫當!

바로 그러했다. 문삼 같은 남색 도복에 남색 도건을 쓰는 도인들. 그들은 바로 무당파의 도인들이었다.

이들은 창파 이래로 도포나 도복에 특별한 문양을 넣지 않고 짙은 남색으로 된 도복을 착용하고 다녔는데, 이로 인해 얼핏 보기에는 문사와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것은 모자였다. 문사들의 문건은 뒤로 접히지만 이들의 도건은 네모로 각진 것이라 그것으로 무당 도인들임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한데 이들이 여기에……!

역시 의외성이 큰일이었다.

소림사도 그렇지만 무당 역시 도道에 매진하는 도가이므로 제자들이 거의 움직이지 않아 찾아가기 전에는 무당의 진산도인眞山道人을 보기가 어려운데 그들이 대거 한자리에 나타난 것이었으니.

칠성진인이 맞다면 배분 역시 이만저만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정명 등이 소림 나한들의 으뜸이라면 이들 역시 무당의 최고수들로서 무예를 수련하는 모든 수련도와 칠성검진을 이끄는 관주 이하 최강의 인물들이었다.

장문인의 직속에 관주들이 있고, 그 아래가 이들인 셈이다.

어찌 된 일인가 싶을 정도로 무당과 소림의 최강자들이 연화봉에서 조우한 것!

하지만 처음부터 정명이 청한 벗이 있다고 한 만큼, 소림이 청한 것이라면 나타난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불과 도로써 길은 달리하고 있지만 소림과 무당이 결코 무관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림에서도 태산북두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뿐더러 더 전에 선불교와 선도교로서 선종의 맥락을 같이하는 이들은 언제나 행보를 같이해 왔다. 길은 달리하고 있었으나 거의 형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따질 필요는 없었지만 소림이 형인 셈!

보다 놀라운 것은 앞서 한 정업의 이야기였다. 그는 이들이 회안에서 사라졌던 주체를 호위했다는 어감을 풍겼었는데, 사실이라면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어떤 일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었다.

무당파가 주체를 도왔다는 것! 그야말로 완전히 상상을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쯤에서 환기해야 할 점이 있었다. 한상필 등에게 마차가 공격당할 당시 두건을 쓰고 두 번째로 나타나 그들을 도왔던 인물들! 누구였던지 그들의 정체는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다. 유곡과 대화할 때 추룡이 소림을 물었듯 정명 등이 그들이었다.

까닭은 구태여 생각하지 않아도 알 법한 것이다. 확실한 속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수시로 도연을 거론하며 미심쩍은 태도를 보였던 원혜 대사!

일찍이 장옥은 홍무제의 종교 탄압을 이야기했고, 천하의 도불道佛이 침체되어 있는 상태에, 북평왕부를 지원하고 있는 서, 북부의 사람들 대다수가 도·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임을 생각해 보면…… 표면에 나서지 않고 있었지만 소림은 일찌감치 움직이고 있었다.

추룡은 심호흡을 하며 일단 정중히 포권을 취해 보였다.

“말학 후배, 진인들을 뵙습니다. 추룡이라 합니다.”

그러자 응안의 도인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모두가 그렇듯 그 또한 크게 굳어진 표정이었다.

마주 읍을 취했다.

“역시 그랬었군. 속례 거두시게. 하잘것없는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진인 칭호를 듣는단 말인가. 벽허라 하니 그냥 편하게 벽허자, 혹은 벽허라 불러 주게나.”

“말학이 어찌 감히.”

추룡은 한 번 더 포권을 취해 보였다.

벽허 도장은 꼼꼼히 추룡의 아래 위를 살피며 거두절미,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이야기 들었네. 막 장군님의 자제라 하더군. 큰일을 할 결심을 하셨다는 것 같던데, 과연 그러한가?”

막여사, 큰일을 할 결심.

멈칫, 추룡은 다시 정명을 향했다.

그러나 정명은 고개를 저었다.

의혹이 피어올랐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추룡이 하고자 하는 일은 결코 외부로 흘러 나가서는 안 될 일이었고, 여기에 대해 정명은 사전에 알리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의 내력을 알고 있고, 하고자 하는 일까지 알고 온 듯이 이야기하는 것인데, 역시 적잖은 의혹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추룡도 어제의 추룡이 아니었다. 십왕봉에서 긴 숙고의 시간을 보내며 더 한층 생각이 깊어졌고, 사물을 헤아리는 눈이 넓어졌다.

이들이 일찍이 북평과 관계가 있다면, 찾아온 주고치와 도연을 환기하며 진중히 포권과 함께 말을 꺼냈다.

“미거한 말학이 무슨 큰일을 하겠습니까. 설마 진인들께서 오실 줄은 몰랐사온데 함께 움직여 주실 의향이 있으신지요?”

하지만 벽허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소식 받고 왔으나 섣불리 결정할 일이 못 되네.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나 소림과 같은 고충이 있어 잠깐 나섰지만 이 일에는 선도가의 존망이 걸려 있네. 계획부터 들어 보세나.”

무당의 안위.

이해했지만 추룡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 대답하기보다 정명 등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미리 아뢰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일이 중하여 무엇이거나 섣불리 이 자리에서 함부로 말을 꺼낼 수도 없고, 내용은 가셔서 들으셔야 하되 언급된 후에는 함께하셔야 하고, 최소한 일이 끝나기까지 돌아가시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헤아려 주실 수 있을는지요?”

실제로 벽허에게 한 말이었다.

정명 등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감안해야 할 일이지. 우린 각오하고 왔다.”

믿고 못 믿고를 떠나 그만큼 사안이 엄중한 것.

정명이 대신해서 벽허에게 이야기했다.

“서운해할 일이 아닌 것 같소이다. 막 제弟 역시 혼자의 몸이 아니고 일조차 실로 작지 않으니 감안해야 할 일이 아니겠소이까? 듣고 나면 동참하거나 남아야 할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믿고 있소이다.”

벽허 등도 이해는 했다.

“그렇긴 하지만 우리들만 온 게 아니라서……. 아래 숲에 이백여 사제들이 있소이다.”

문인들을 대동하고 왔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때였다.

추룡 등 모두에게 깜짝 놀랄 일이 발생했다.

“이백이 왔으면 이백의 입을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거늘 실수를 하고 있는 듯하구나.”

그들 외에는 아무도 있을 수 없을 듯한 연화봉의 꼭대기에 홀연 묵직한 음성이 울리며 모두가 선 지척인 측면, 아래쪽에서 느릿한 걸음으로 또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한데 나타난 그의 모습! 미루어 보면 그는 오래전에 이곳에 도착해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던 듯했는데, 백팔나한의 수좌인 정명이나 벽허 등 쟁쟁한 고수들의 이목을 피했다는 것조차 놀라운 일이었지만 하고 있는 행색이 아주 기괴했다.

육 척가량의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방울처럼 동그란 눈을 지니고 있었는데, 수염이 고슴도치와 같았고, 두꺼운 귓불의 귀가 턱 아래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널찍한 얼굴에 좁은 이마, 목 또한 가늘고 길었다.

손발이 매우 컸으며 머리는 희끗한 반백, 다 해져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에 우기라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비가 오지 않고 있음에도 대나무로 엮은 도롱이까지 걸치고 있는 그런 행색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흡사 나이 많은 거지와 같은 그런 모습이다.

그러나 모습에서는 정말 산이 느껴지고 있었다. 정명이나 벽허에게도 산이 느껴질 정도의 큰 기도가 있었는데, 정명이나 벽허조차 그에게서 산을 느낄 정도였던 것이다.

기괴한 모습 이면에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현기와 위엄이 뿜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귀하께서는……?”

놀란 것은 벽허, 정명 들, 추룡 순이었다.

가장 크게 놀란 기색을 보인 것은 벽허 등 일곱 도인들로서, 소스라치는 모습을 보이고는 바로 아무 말 없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던 것이다.

정명 등 다섯 나한들 역시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놀라움에 찬 표정으로 벽허 등이 꿇어 엎드리는 것을 보고는 즉각 입을 다물고 또한 한쪽 옆으로 물러나 허리를 숙이고 나란히 부복하고 섰다.

추룡 역시 놀라기는 같았다. 눈치를 보면 벽허나 정명 등은 이 걸인의 신분을 알고 경악한 듯했지만 추룡은 신분에 앞서 노걸인의 기도에 압도되어 주춤할 정도였다.

사람을 보고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까지 그가 봐 온 사람들 중 가장 큰 기도를 지닌 것은 역시 부친인 막여사였다.

젊어 일찍이 군위제일검의 명성을 얻은, 천하제일로 일컬어지는 그! 이런 부친을 둔 그가 다른 누군가를 보고 주춤거릴 일까지는 없다.

도연이나 주체를 보고도 주춤거리기까지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느낌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 노걸인의 웅자는 분명히 막여사를 능가하고 있었다.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인지도 몰랐다.

막여사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것을 무인의 정기라 하면 이 노걸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현기라 할 것이었으니까.

대체 누굴까.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막여사보다 기도가 크고 나타난 것만으로도 무당의 진인들이 무릎을 꿇고 소림 나한의 수좌들이 허리를 숙이고 부복할 정도의 인물은.

정확히 정명 등이 허리를 숙이고 부복할 신분의 사람이 있다면 장문인인 원혜 대사와 중원 불문의 대종정인 백마사의 길례선사 정도뿐이었는데, 그럼에도 이들이 이런 예의를 취한 것이다.

무한한 의문이 있었으나 어쨌건 마주 선 것은 추룡 한 사람뿐, 일단 허리를 숙이며 깊숙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말학 후인 추룡이 고인을 뵙습니다.”

노걸인은 엎드린 벽허 등 일곱 도인과 다섯 나한을 한 번 쓸어 본 후 조용히 추룡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복연이 있어 늙은 거지가 귀인을 만나는군. 중한 이야기 중에 끼어든 것 이해하게.”

눈에서 은은한 자광이 뻗어 나왔다.

“원래는 조용히 듣고만 가려 했는데 다소 답답한 점이 있는 것 같아 나선 것일세. 온 것은 벽덕이 기별을 하였기 때문인데, 기왕 나섰으니 저들이 놓친 점 한 가지를 묻고 싶네. 자네는 승산을 점치고 있는가?”

벽덕碧德!

추룡은 허리를 숙인 채 자신도 모르게 다시 크게 눈을 치켜뜨고 말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벽덕이라 하면, 노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이 호칭은 실로 아무나 그렇게 부를 수 없는 것이었는데, 정확히 무당의 장문인 벽덕 도장을 일컫는 것이었다.

벽허 등의 태도도 그렇고, 그렇다면 이 걸인은 최소한 벽덕 도장보다 배분이 더 위라는 뜻이다.

비로소 추룡은 전설처럼 소문이 떠돌고 있는 한 사람을 기억해 냈다.

다시 환기해도 세인들은 막여사를 천하제일이라 일컫는다.

그러나 딱 한 사람, 막여사보다 더 위의 명성을 지닌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천하일, 이를 떠나 진선眞仙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그가 만약 이 걸인이라면!

추룡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쿵쿵거림을 느끼며 계속 포권을 취한 채 대답했다.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성사는 하늘에 달렸으니 함부로 장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늘이 중립에 있어 주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힘만이라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알아들은 듯 노걸인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을 잘 세운 것 같군. 그러면 한 가지만 더 묻기로 하세. 들은 바가 틀리지 않다면 자네가 하고자 하는 일은 분명 중원의 화복禍福이 걸린 일일 걸세. 함부로 건드려서 될 일이 아니지. 실패를 하면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큰 화가 미칠 것이고, 성공해도 길흉을 장담할 수 없네. 후자後字로 천하에 화가 미치면 어쩔 것인가?”

성공한 후의 화禍!

가장 우려되는 일로서 그러나 여기에 대해 추룡은 이미 악불비에게 언급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악불비와 그가 달라서일까?

추룡은 다른 대답을 했다.

“보완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엄격하고, 더 전에 세워져 말학이 하고자 하는 일과 관계없이 진행될 계획입니다. 다만 말학은 마음으로 본 것이 있어 시작되기 전, 한발 앞서 행동하려는 것이온데 비교해 크게 어리석은 우愚를 범하려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간단히 말해 노걸인이 물은 것은 주체를 도와 판을 뒤집더라도 차후 그가 세상을 혼란하게 하면 어찌할 것이냐는 것을 물은 것으로 이는 악불비가 한 질문과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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