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24화 (124/150)

# 124

북평에서 온 사신 (5)

만년晩年의 어려움을 걱정하며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잘 부탁한다고 했던 그.

인명은 재천이라고 천문 지리를 헤아린 도연 역시 그의 죽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한 듯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북평군은 기세가 꺾여 다시 철수했고, 격전은 장옥의 장례를 치르는 이월까지 다시 중지되었다.

의기소침함이 흘렀지만 그러나 장례가 끝난 직후, 주체는 엄청난 분노를 보이기 시작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이지만 전장에서 죽음은 일상사다. 삶을 버리고 싸우는 자만이 승리하는 것이니 명심하고 분투하라! 출격!”

콰두두두두두!

대군을 이끌고 주체는 다시 남하했다.

그리고 덕주 인근의 호타하??河에서 양군은 다시 격돌했으며, 이 싸움에서 주체는 결국 또 진압군을 대패시켰다.

위기를 겪고도 변함없이 대장검을 휘두르며 전군에 앞장서 치달렸는데, 포격이 빗발치고 화살이 하늘을 가리듯 퍼부어졌으나 죽음을 두려워 않는 용맹 때문인지 화살까지 피해 가는 듯했다.

다음 달인 윤삼월에는 성용군의 최고 맹장으로 불리는 오걸, 평안이 거느린 대군과 고성에서 정면으로 부딪쳐 육만의 피해를 입히고 대승을 거두었다.

사월에는 결국 다시 덕주를 탈환했고 진압군을 밀어붙여 산동성의 대명까지 진격했을 정도였다.

또다시 연속되는 패보.

“귀신이군……!”

전선의 소식이 들어올 때마다 황자징과 제태는 이젠 절로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가 되었다.

도무지 전투마다 앞장서 치달리며 싸우는 주체가 화살 하나 맞지 않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갈 정도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소. 연패로 병력이 계속 희생되고 있고, 징병 역시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꾀를 냅시다. 그가 노리는 것이 필경 우리일 테니 실각한 척하는 것으로. 기회를 노리는 것이오.”

황자징은 다시 쓸 만한(?) 계책을 고안해 냈다.

주체의 기세가 워낙 강한 만큼 쫓겨난 척 화친을 청한 후 후사를 도모하자는 것.

이야기를 들은 건문제의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이기고 있다고 염려 말라고 하더니……. 지금 와서 태상시경이 물러나면 어쩌라는 말이오!”

이젠 그도 어린 황제가 아니었다. 가을이 세 번 지났듯 열아홉 살이 된 상태. 어느 정도 사태를 알게 된 것이다.

‘태상시경을 믿었는데 그가 나를 속이면서 나라를 망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겁이 났다.

그러나 황자징은 여전히 마음 약한 황제에게 눈을 번쩍이며 큰소리를 쳤다.

“심려 마소서! 진짜 물러서려는 게 아니라 계책일 뿐이오니. 실각된 척하며 북평군을 해산시키고 연왕을 사로잡자는 뜻이옵니다. 뒤에서 보필할 것이오니 임시로 병부상서에 철현, 이 자리에는 방효유方孝�M, 방 시강을 들이소서.”

방효유.

황자징의 일파 중 한 사람으로서 천하에 유명한 인물이었다.

자字는 희직, 홍무제 당시에 등용된 후 황족들의 스승으로 학문을 가르친 당대의 대학자였다. 조정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번왕들을 견제해야 한다고 황자징 등과 함께 주장해 온 인물이기도 했다.

주례변정, 손지재집, 방정학문집 등 많은 유학의 저서를 남기기도 한 인물이었지만, 그러나 한림원의 시강학사로서 역시 전쟁과는 관계없는 문사인 셈이었다.

그러나 건문제는 또 황자징의 말을 들었다.

이쯤 되면 이젠 군과 전쟁을 잘 아는 도위부의 인물이나 무신들을 찾을 때가 되었음에도 황자징의 계책에 따라 방효유를 측근으로 불러들인 후 주체에게 칙지를 내렸던 것이다.

황자징과 제태가 죄를 범해 실각시키는바 연왕과 부하들은 병력을 해산하라. 죄를 용서하고,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

그러나 주체는 섣불리 그럴 수 없었다.

성용, 오걸, 평안 등 대군을 앞에 두고 먼저 병력을 해산할 수는 없나이다. 그들을 먼저 돌려보내 주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전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나이다.

혹자는 이 답장으로 주체가 항명과 함께 권욕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방했다.

하지만 눈앞에 자신을 치려고 대군이 눈을 번쩍이고 있는데 과연 먼저 병력을 해산시키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칙지를 가지고 온 인물은 개봉부의 대리소경(부검찰총장)으로 있는 설암이라는 인물이었는데, 연왕을 본 그는 답서를 가지고 돌아가 보고했다.

“청을 들어주심이 옳을 듯하나이다. 많은 죄인들을 다루어 온바 상을 보니 연왕은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었나이다. 먼저 군을 물리시면 필경 병력을 해산시키고 폐하를 알현하러 올 것이나이다.”

건문제는 설암의 권고를 들으려 했다.

수년에 걸친 전쟁도 싫었고, 황자징 등도 의심하기 시작한바 부질없는 골육상잔을 끝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방효유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설암의 말은 연왕을 변론하는 것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군을 물리면 기회를 노리고 연왕은 황도로 진격할 것이니 현혹되면 안 되실 것이나이다! 장수들을 격려하여 연왕을 물리치셔야만 하나이다!”

어느 쪽의 말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황도 진격이라는 말에 건문제는 또 겁이 났고, 이것으로 다시 화친의 분위기는 흐지부지되었다.

더불어 황자징은 북평군을 기습하라 일렀는데, 명령에 따라 성용의 부장 오걸과 평안, 두 사람이 주체가 멈추어 있는 사이 배후로 돌아가 보급로를 끊고 앞뒤를 포위했다.

칙지와는 다른 행동이라 주체는 바로 항의문을 썼다.

폐하께서는 신에게 죄를 용서하고 부하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셨사온데, 분부 기다리는 사이 군사작전이 어인 일이나이까. 칙서와 다르지 않사옵니까.

건문제는 또 마음이 흔들렸다.

“연왕은 부친의 형제이며 숙부인 사람이오. 숙부가 화친을 받아들일 뜻을 보이고 있는데 끝내 싸운다면 훗날 무슨 낯으로 조상님들을 뵙겠소?”

하지만 방효유는 계속 강경론으로 나갔다.

“격멸하셔야 하나이다! 성 대장군은 반드시 연왕을 치고 나라를 안정시켜 낼 것이오니 심려 마소서.”

건문제는 더 싸우기 싫다는 뜻을 확실히 했지만 그는 끝까지 주체를 칠 것을 간하면서 상소문을 가지고 온 사신까지 사로잡아 투옥시켜 버렸다.

이것으로 황자징의 속셈이 드러났지만 때맞춰 금릉에서 또 누군가가 황자징의 계책을 알리는 전서를 보내 그것이 주체의 손에 전해졌다.

황자징은 실각된 게 아님.

이도로 간 사신의 일이 전해지는 등, 궁실 속도 완전히 복마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간교한 놈들이 감히!”

결국 또 일이 벌어졌다.

황자징이 계책을 꾸민 것이라는 사실을 안 주체는 관자놀이에 툭툭, 시퍼렇게 심줄이 불거질 정도로 분노했고, 즉시 행동을 개시했다.

“역신 놈들이 설치는 한 죽어도 물러설 수 없다! 전군, 따르라!”

콰두두두!

순식간에 앞뒤를 차단한 진압군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며 자신 또한 기병을 급파하여 진압군의 보급선 수백 척을 수장시켜 버렸다.

여기에 대응해 또 성용은 평안을 선봉장으로 삼아 기병을 우회시켜 북평을 들이치게 했고, 도연이 이를 사수하는 등 일진일퇴, 우열을 가리지 못할 치열한 접전을 벌여 인명 피해가 계속 늘어났다.

화북華北을 놓고 양군이 시산혈해를 이룰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계속 벌인 것이다.

그러나 누가 생각해 봐도 이런 싸움은 북평군이 불리한 것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었다.

까닭은 주체의 입지 때문이었는데, 민심을 얻고는 있지만 그가 가진 확실한 영역은 북평 하나였고, 북부의 지주들 등 많은 사람들이 지원한다 해도, 천하라고 봐야 할 조정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이다.

삼모작이 가능한 남부에서는 끊임없이 보급품이 올라왔고, 강제징병을 통해 조정은 계속 전력을 보강하고 있었지만 북부는 보급도 달렸고, 강제징병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승부가 없는 접전은 소모전은 무조건 북평군이 불리한 것이었다.

장성 쪽도 우려되었다. 섬서군은 여전히 필사 항전으로 벤야시리의 남침을 차단하고 있었지만 몽골이라는 거대한 땅을 생각해 보면 모든 면에서 불리했고, 벤야시리는 봄부터 끈질기게 와랄족을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화친이 이뤄지면 동부 전선의 전력을 모두 끌고 와 침공에 나설 것으로 지극히 불안한 상태인 셈이었다.

오랜 싸움으로 인해 조정군도 북평군도 이젠 거의 힘을 잃고 있는데 더 피해가 생긴 상태에서 북원이 범람해 오면 막아 낼 여력이 없었다.

‘목숨을 걸고라도 단숨에 결판을 내야 한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북부를 내어 주더라도 장강을 건너 금릉을 제압하자!’

개전한 지 삼 년, 홍무제의 사후 네 번째 돌아온 가을!

쌍방 간에 어마어마한 전사자가 난 상태에서 주체는 결국 최후의 결전을 치를 각오를 했다.

도연 역시 계획에 동의했다.

우리가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용맹한 장졸들과 북부의 기후, 지리, 민심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소모전으로 기일이 길어질수록 전세가 불리해질 것인 반면, 조정군은 수차의 대패로 사기가 죽어 쉽사리 전면전을 걸어오지 못합니다. 때가 되었습니다. 다수의 병력을 남겨 눈을 속이고 주력군을 우회시켜 중앙을 치면 반드시 승전을 거두실 것입니다.

“금릉으로!”

그해 가을! 결심을 실행으로 옮겨 전력을 재정비한 주체는 급기야 전군을 거느리고 정면충돌을 피해 산동을 버리고 하남성으로 우회, 개봉로를 통해 무조건 금릉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내내 화북을 두고 싸웠던 진압군에게는 크게 뜻밖의 행동으로 주체가 후방을 돌아 우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조차 열흘이나 지난 후였다.

도연의 계책에 따라 떠나며 주체는 진영에 수천을 남겨 분주히 오가게 하는 것으로 진압군의 눈을 속이며 밤을 타 감쪽같이 부하들을 분산시켜 진영 뒤로 빼낸 뒤 남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쫓아라!”

두두두두두!

평안이 급히 사만 기병을 이끌고 추적하기 시작했지만 그들만으로 대군을 막아 낼 수는 없었고, 주체 역시 접근하는 적만 퇴치했을 뿐 주위의 성城들은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남하를 강행했다.

포대까지 거느린 대군을 이끌고 일주야에 무려 삼백 리씩 이동했다 했고, 걷던 병사가 지쳐 쓰러지면 자신이 타고 가던 말에 태우고 걸었다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듬해 삼월!

“공격하라!”

투콰콰콰쾅-!

“와아아!”

주체는 추적해 온 평안의 사만 기병을 물리치고 기필코 숙주를 지나 회하淮河를 건너 양주를 함락시켰다.

전날 홍무제가 죽었을 때 달려왔다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간 바로 그곳이었다.

금릉이 바로 지척인 곳!

눈앞에 바다같이 창창한 장강이 펼쳐져 있고, 넘어서면 바로 금릉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맙소사! 설마 연왕이 이렇게 빨리 여기까지!”

눈앞에 사신死神이 닥쳐온 꼴이라 황자징을 비롯한 제태 등 조정 대신은 낯빛이 시커멓게 죽었고, 건문제의 안색도 노랗게 떴다.

“어이하면 좋소? 내 그토록 종전을 이야기했음에도 승리할 것이라 하더니 북평군이 코앞까지 닥쳐왔잖소?”

난리가 난 것이었다.

“피하셔야 합니다! 장강을 넘으면 곧 금릉이오니 안전하게 남방南方으로 피신하시고 장수들에게 금릉 사수를 맡기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당황한 대신들은 무조건 피신을 상책이라 간했다.

그러나 방효유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심려 마옵소서. 연왕은 절대 장강을 넘지 못하옵니다. 이겨서 온 것이 아니라 피해서 우회해 왔고, 성 대장군과 막강한 군력이 장강을 사수하고 있사옵니다. 충돌하면 양자가 공멸할 것인즉 일단 영토를 분할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화의를 제의하소서. 머뭇거리는 사이 반격할 채비를 하는 게 합당할 줄 아옵니다!”

할지론割地論.

중원을 둘로 나눠 반을 연왕에게 주겠다는 것으로, 뒤의 이야기를 보면 역시 잔꾀에 불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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