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22화 (122/150)

# 122

북평에서 온 사신 (3)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다! 퇴각해라!”

아닌 일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으므로 적당히 부딪치다가는 물러서곤 했던 것으로, 그들 역시 가족들이 한 향리에 살고 있기도 하다. 방해자가 없다면 몰라도 나타난 바에야 못 이기는 척 빠져 주는 것이 좋은 것이다.

“산속에 저항 세력?”

더 좋은 점은 악충보의 입지이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한발 앞서 산으로 들어간 녀석들이 도망치는 자들을 잡는 것을 방해하고 있사온데, 악충보의 무사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악불비가 방파를 해산한 후 대거 황산으로 피신해 들어갔다는 정보이오니.”

일은 곧 현감들 및 태수에게 보고되었는데, 이조차 흐지부지되고 있었다.

“아닌가 싶습니다라니? 맞으면 맞고 아니면 아닌 거지, 아닌가 싶은 건 무어냐?”

“심증은 가지만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입니다. 징집에 적잖게 차질이 생기고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네 생각에는 어찌하면 좋겠느냐?”

“글쎄…… 관병들을 보내 소탕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럴 병력이 어디 있고? 반수 이상의 병력이 차출되어 치안조차 불안한데 저 거친 산 속에 있는 자들을 무슨 수로?”

현감이나 태수는 다들 같은 소리를 했다.

“어느 성이나 마찬가지니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고 조용히 덮어 두는 거다! 아니면 네가 소탕하러 가라.”

“아, 예, 그건 별로……. 그럼 분부하시는 대로!”

현명한 처세인 것이었다.

말 그대로 일 차에 삼십만, 이 차에 오십만이 차출되어 출정한 관계로 성마다 치안에는 큰 공백이 생겨나 있었다.

이런 상황에 토벌군을 어떻게 보내는가.

공연히 되지도 않는 일을 들쑤실 필요도 없고, 더 전에 모두가 악불비와 좋은 친분이 있었다.

평소 내왕이 있었던 관계고, 더 좋은 점으로서 눈치를 보니 도위부에도 끈이 닿아 있는 듯하다.

확실히 이순문이 버티고 있기도 하지만 이즈음 도위부에서는 북평왕부와 관련된 도처의 사람들을 다 잡아들이고 있었는데, 악불비 일가를 어찌하라는 명령은 하달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북평왕부가 연승을 거두고 있다는 둥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에 그렇다면야 뭐, 고생을 자초할 필요도 없고, 모르는 척하는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삼십만!

“출정하라!”

둥! 둥! 둥!

각처에서 강제징병을 하는 등으로 또 삼십만 병력이 집결되었다.

삼 차 출정이 시작된 것이었다. 정토대장군은 여전히 이경륭으로서 덕주에 있는 그를 지원하고자 출정한 것!

“포격!”

콰콰콰콰쾅!

“와아아아-!”

전투가 벌어진 것은 두 달 후로서 어느새 사월. 백구하白溝河에서 접전이 시작되었는데 그러나 주체와 북평군은 여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일이 차의 패배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계속해서 원군을 보내므로 진압군은 여전히 육칠십만의 병력이 형성되어 있었다. 금릉을 지키는 황성 수비대에서까지 삼만을 차출해 보냈을 정도.

그래도 주체는 패색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까닭은 접전을 치를 때마다 진압군은 줄어드는 반면 주체의 병력은 점점 더 불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하여 사로잡히거나 항복한 병사들이 병합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겨울 사이 산서와 섬서, 감숙으로 진출해 계속 병력을 모집했고, 북부의 향용들이 대거 가세함으로 북평군의 병력도 만만치 않게 사십만에 달하고 있었다.

특히 화력이 막강했다. 수많은 화포와 투석기로 무장한 북평군은 진압군이 밀려올 때마다 도처의 방벽들을 은폐물 삼아 공세를 퍼부어 상대의 기를 꺾음과 함께 조금씩 물러서며 최대한 전면전을 피했다.

결과 백구하 부근에서 삼 차 대회전이 붙었던 것인데, 이곳은 경병문이 대패한 바 있던 웅현평 아래의 큰 내[川]였다.

“녀석들이 또 뒤로 물러서고 있습니다! 쫓다가 두 번이나 당했는데 또 간계가 있는 것 아닐까요?”

멀지 않은 곳이 또 북평!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경륭도 단단히 이를 악물고 추적을 강행했다.

“그런 따윈 없다! 먼저는 추위로 인해 당했지만 겨울이 지난 마당에 또 추위가 닥칠 리도 없고, 매복시킬 타 병력도 없다. 필경 방벽과 화력을 믿고 공성전을 벌이자는 수작 같은데, 이번만큼은 기필코 함락시킨다. 밀어붙여라!”

“와아아아아!”

콰콰콰콰쾅-!

펑! 펑! 펑!

“으아아악!”

백이십만 대병력의 어마어마한 격돌! 함성에 산이 뒤흔들릴 정도고, 포성과 말굽 소리에 지축이 울렸다.

하지만 이경륭의 예상은 또 틀린 것 같았다.

휘이이이이-!

“흡! 이게 무어냐? 웬 바람이……?”

“때가 왔다! 밀어붙여라!”

“와아아아아-!”

콰두두두두두!

콰차창! 캉!

“으아아악!”

“아아아악!”

접전이 시작된 지 스무날! 일 차에 이어 이 차, 삼 차까지 북평의 턱 아래까지 진격했던 진압군은 또다시 혼비백산하여 쫓기기 시작했다.

이야기했던 대로 추위나 복병은 없었지만 더 무서운 재앙이 그들에게 닥쳤던 것이다.

북부의 바람!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급격히 바뀌는 기압 차에 의해 폭풍을 방불케 하는 강력한 남풍이 불면서 몽골의 대고비사막에서 시작된 황사가 몰아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벌판마다 돌개바람을 형성하는 엄청난 광풍이었다.

북부의 이 바람은 불기 시작하면 석 자 앞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서 천지가 황사로 뒤덮여 눈을 뜰 수 없다.

황진만장黃塵萬丈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서 하늘과 땅이 한순간에 샛노래졌다.

이에 진압군은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였는데, 남으로 부는 바람이라 등에 업은 북평군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없었다.

진압군에게는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치명적인 바람이었지만 때마다 고비사막, 타클라마칸 등지에서 밀어닥치는 황사 바람을 겪고 살아온 하북, 산서, 섬서, 감숙 등 북부의 병력에는 또한 익숙한 것이기도 한 것.

불어닥치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등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천지를 뒤덮은 황사 바람 속에서 또 아수라같이 진압군을 밀어붙이며 날뛰기 시작했다.

“물러서라! 진영으로 물러나 바람이 멎기를 기다린다!”

“으아아!”

대책 없이 이경륭은 또 쫓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영으로 물러가 사수한다는 것조차 소용없었다.

“화공-!”

콰콰콰쾅!

“으아아악!”

진압군은 가까스로 진정성을 되찾아 진영을 꾸리고 있었던 터인데, 피하자 바람을 등진 도연은 즉각 화포와 불화살로 화공을 시도했다.

“흐……!”

“퇴각! 덕주로 간다!”

바람을 탄 진정성의 진영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고, 이경륭과 진압군들은 눈도 뜨지 못한 채 계속 밀려 덕주는커녕 이번에는 산동의 제남성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세 번이나 북평의 턱 아래까지 갔지만 득을 보기는커녕 그때마다 대패하여 점점 더 남쪽으로 밀려 마침내 전선이 하북에서 산동성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또…… 또 대패했다고?”

패배 소식에 가장 놀란 것은 역시 황자징, 제태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경병문과 삼십만이 패배당해 다시 보낸 이경륭과 오십만, 도저히 패할 수 없는 병력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러나 북부의 추위라는 복병으로 인해 고배를 마셨던 터인데, 그래도 ‘겨울이니까’ 했고, 여기에 강제징병까지 해 삼십만을 더 보충시켜 보냈다.

거의 칠십만 대군!

절대 패배란 있을 수 없다 여겼고 주체가 다시 북평 쪽으로 쫓긴다는 소식을 듣고는 쾌재까지 부르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전면전에서 또 패배라니?

하지만 사실이었고, 패보는 정확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사실이라 합니다! 웅현까지 다시 올라갔지만 이번에는 황사 돌풍이 말썽이 되어서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합니다. 반면 북부군은 익숙해 있고, 이쪽은 맞바람을 안은 반면 그들은 뒤바람을 받은 상태이오라……. 광풍과 함께 급공을 퍼부어 괴멸되었다는 기별입니다!”

이래저래 도연이 계속 지리의 특성과 천기를 헤아려 승전을 취하고 있다는 뜻! 그대로 천문 지리를 헤아리는 인물임에 확실한 것이었다.

“그, 그 땡추 놈이……! 그래서? 이 장군은 어쩌고 있다는 것이냐? 피해는 얼마나 되고?”

“거의 괴멸 수준으로 반 동강이 났다고 합니다. 진정성으로 물러나 수습하려 했다 들었사온데 고삐를 늦추지 않고 화공을 가하는 통에 제남까지 쫓겼다고……! 삼십만이 죽거나 실종된 상태이옵니다!”

“삼…… 삼십만?”

황자징과 제태는 완전히 가슴이 벌렁거렸다.

말이 쉬워 삼십만이지 그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 놓으면 줄이 어디까지 이를지 알 수도 없다. 평원 하나를 메울 정도의 병력이 괴멸되었다는 뜻이었다.

“연왕은?”

“송구하옵지만 그리 큰 피해가 없다 하는……. 오륙만 정도의 피해로 제남성에서 맞진을 치고 공격 중이라 합니다.”

하나같이 허파가 뒤집어질 소식이다.

그래도 좋은 소식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이 장군이 밀리자 산동참정 철현鐵鉉이 성용盛庸, 진휘陳暉 등 부장들과 제남군을 거느리고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하더군요. 성벽 도처에 고 황상의 존함을 써 붙이고 신패를 내다 걸어 포격을 하지 못하게 하고, 흩어진 군을 재집결시키는 등 맹활약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의 이름과 신패를 건다고 놈들이 포격을 하지 않는단 말이냐?”

백만이 넘는 대군이 격돌했던 상태에 거의 어불성설이나 같았지만 그러나 대답이 기이했다.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신패를 내다 걸자 연왕이 포격을 중지했다고 하더군요.”

홍무제의 부고 소식에 위험을 무릅쓰고 회수까지 달려왔던 주체. 희한하다 싶었지만 효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허언이 아님이 증명되고 있었다.

어쨌건 수습이 되고 있다 하니 다소 안심이 되었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이경륭을 불러들여라! 성용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고 철 참정을 산동포정사로 승격시킬 것이니 분투하여 연왕을 무찌르라 하라! 계속 징병해 지원군을 보내도록 하고!”

여전히 뭔가가 제멋로인 것 같았다.

피식, 이순문의 입가에 다시 실소가 떠올랐다.

“산동포정사라……! 계속 멋대로군. 도무지 황상의 허락이나 받고 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도위부도 완전히 끝이군.”

워낙 황자징과 제태가 멋대로 천하를 주무르고 있어 그냥 쓴웃음만 나오는 것이었다.

“조만간 도독들도 옷을 벗어야 할 것 같지만, 그래도 뭐, 이번 인선은 제대로 된 것 같군. 문신文臣이라도 철현은 지모가 높고 성용 역시 특출한 무장이니. 아무렴 이경륭처럼 무능한 놈보다야 백배 났지.”

휘하의 부하들도 좌불안석하고 있었다.

“정말 불안합니다. 정국이 어찌 되어 돌아가는 것인지! 연왕은 이미 백십만을 대파하고 있는데 한다는 일들이 하나같이 엉망이니. 북평군이 연승을 거두고 있어서인지 왕부들도 이젠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매사 비협조적으로서 위상이 바닥에 떨어진 상태입니다.”

이순문은 계속 쓴웃음만 지었다.

“그런들 어쩌겠느냐? 돌아가는 꼴이 이 지경인데 족칠 수도 없고. 그랬다가는 보나 마나 연왕을 도울 것이니 반란만 더 커지지. 하려면 완전히 뿌리를 캐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손을 대지를 말거나. 치다 말고 지금에 와서 손을 벌리는데 누가 좋다고 돕겠느냐?”

자신이 생각해 봐도 웃기는 것이다.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불과 이 년 전만 해도 중원 최고의 통치기관이었던 도위부가 지금에 와서는 거의 허수아비가 된 것이었다.

건문제가 들어서고 난 다음부터는 아무나 포정사다. 도위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나 알고 있는 것인지?

지금까지 군·관·민을 통제해 온 것을 생각하면 기도 안 찰 이야기. 조정의 행사가 모두 황자징이 혀끝 굴리는 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는데, 홍무제가 살아 있을 당시만 해도 도위부에 있어 그는 안중에도 없는 인물이었고, 제태조차 기어 다닐 정도라 봐야 했다. 벼슬만 병부상서일 뿐 육상삼군 수상양군이 모두 오군도독의 예하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제태는 오군도독보다 군부의 상황을 몰랐고, 황자징의 경우는 태손을 끼고 한림원에서나 목소리를 높인 인물이었던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전권을 휘두르고 있으니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허우대 하나만 보고 이경륭 같은 인물을 대장군에 임명하는 등 헛짓을 하고 있으니 생전 가 보지도 않은 북부의 환경에서 버틸 수나 있으려고.

그래도 산동은 북부에 속하므로 철현이나 성용 등은 최소한 기후의 변화 정도는 안다.

입맛이 쓸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점에서 이번 인선은 제대로 된 것이라 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연이나 연왕에 비하자면 차이가……! 이대로 보고만 계실 것입니까?”

이순문은 코웃음 쳤다.

“아니면? 도위부라 하면 안색부터 바뀌는 자들이 권력을 잡았는데 나섰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대패했던 이경륭이 태자태사가 되었던 것도 모르느냐? 완전히 웃기는 일이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수밖에.”

“하오나 이러다가 덜컥 패하기라도 하면……?”

이순문은 휙, 고개를 저었다.

“그만인 거지. 우리끼리니 이야기한다만 차라리 연왕이 낫다. 황자징 따위는 처음부터 그릇도 아니야. 주적이 뭔지도 모르는 자가 나라를 어떻게 다스린다고! 이긴다 해도 나는 이후가 오히려 더 불안하다.”

냉정함을 되찾으며 물었다.

“장성 건너는 어찌 되어 있느냐? 섬서군은?”

“잘 버텨 내고 있다고 합니다. 석 안찰사와 대동왕부가 지속적으로 병력을 지원하고 있고, 막 장군과 병사들이 일치단결해 분전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도연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 듯하더군요. 여간해서 북평에서 나오지 않는 것만 봐도 그런 눈치가 보입니다. 행여 장성이 무너지면 모두가 끝나게 되니까요.”

“확실히 그 친구 머리는 알아줄 만하군. 대왕을 폐위시켰다더니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어. 그러면서도 북평과도 조정과도 멀어지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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