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20화 (120/150)

# 120

세상을 보는 눈 (5)

더욱이 북평에는 그들이 가장 껄끄러워하는 도연이 있었다.

십오만 병력이라면 수효도 많지 않고, 뒤쫓다 계책에 빠질 염려도 없었으며 도연을 잡게 되면 주체의 힘을 반 이상 깎아 내는 것이니 좋은 계획 같기도 했다.

하지만 부장들은 이 계획에 반대했다.

“우리도 군을 둘로 나누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진정성에 경 장군과 십오만이 있으니 십만을 더 보내 이십오만으로 북평을 압박해 지원을 끊고, 사십만으로 연왕을 격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느 쪽 생각이 더 나은 것일까.

그러나 이경륭은 고개를 저었다.

“구차스러울 뿐이다. 진정성의 병력과 합치면 육십만이 넘으니 단숨에 북평성을 장악할 수 있다! 북평부터 장악하고 추적해도 늦지 않는 것이다. 속셈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자칫하면 여우 같은 도연에게 배후를 찔릴 수도 있을 것이니!”

북평 공략을 쉽게 생각했고, 결국 작전은 그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다.

도착하기까지 경병문에게 움직이지 않기를 명령한 후 계속 북진을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체가 본거지를 두고 쉽게 영평으로 이동했듯 북평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원의 대도였던 만큼 첫째는 방벽이 견고하다는 점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주체에 대한 지역민들의 믿음이 강해 유사시 모두가 수성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연은 서둘러 십오만을 이끌고 북평으로 돌아가 주둔하고 있던 이만과 함께 방벽 경계를 강화시키고 구문을 굳게 걸어 잠갔다.

이도�都.

벤야시리의 눈에도 분노가 떠올랐다.

“어처구니없군! 많지도 않은 팔만이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다니! 아무리 고지에 진을 치고 있다 해도 이십만 병력이 반년이 넘도록 팔만을 뚫지 못한다는 소리냐!”

수장들의 얼굴에도 당혹스러운 빛이 떠올라 있었다.

“예사의 녀석들이 아닙니다. 강군이기도 하거니와 전술에 특히 강합니다. 다섯 개의 고지를 점령해 길을 틀어막고 있사온데, 봉화로 신호하고 기계처럼 철저히 공조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고지는 탈환하기 어렵고, 대규모 병력이 불가피하온데, 하나라도 치고자 하면 위에서 막고 뒤에서 쳐 오곤 합니다. 그렇다고 다섯 개 봉우리를 모두 포위할 수도 없사옵고. 정말 난공불락입니다.”

군도산 등 거친 봉우리 다섯을 점거하고 계곡을 차단해 진로進路를 막고 있다는 뜻이었다.

치려고 하면 산악전의 특성인 유격전으로 다른 봉우리의 병력이 배후를 찌르는 등으로 철저히 서로를 지키고 있고.

“수장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더군요. 표면상으로는 석천중이라는 자가 군을 이끌지만 그는 연안에 있고 실제 지휘하는 자가 막여사라 하는! 사실이라면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전날 금의위의 대천호로서 도위부의 전력을 이끌었던 자입니다. 치밀한 책략으로 홍무제의 정적들을 무너뜨리는 등 군위 제일의 무인으로 불리고 있어 부하들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그의 지휘 아래서는 무조건 승리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막여사라니……?”

벤야시리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그에 대해서는 나도 들었다! 하지만 오래전에 하야했다고 들었는데?”

“소장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한데 석천중과 친구라더군요. 출사할 때부터 호흡을 맞추었던 자들로서 우연히 연안에 들렀었나 봅니다. 하필 그때 문제가 생겨 석천중이 도움을 청했고, 응하여 나섰다는 이야기 같습니다.”

“여러 가지 하는군.”

벤야시리는 짜증스럽다는 듯 더욱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한들 어림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가 중원의 별이고, 군위 제일에 천하제일이라 해도 수십만 대군 속에서는 반딧불도 되지 않아! 석년 대칸(칭기즈칸)께서는 동서양의 산맥과 포화들을 모두 뚫고 천하 패업을 이루셨다! 중원이나 장성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지! 곧 이경륭과 주체가 맞붙는다!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어떻게든 돌파하라! 둘이 싸우는 사이 장성을 넘어 북평을 친 후 단숨에 금릉으로 진격한다! 정히 안 되면 동부 전선의 병력이라도 끌어들여야 한다!”

“명!”

연산의 진격로를 뚫지 못한 벤야시리는 급기야 동부군까지 거론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와랄족과 내전을 치러 온 자들로서 동부의 와랄을 거의 붕괴시킨 상태, 수효가 오십만이 넘었다.

주체와 이경륭이 싸우는 사이 이 병력이 장성을 넘으면 중원이 어찌 될지는 눈에 보이는 듯한 상황이었다.

북평에서 온 사신 (1)

하지만 이런 일들과는 관계없이 추룡과 친구들은 다시 십왕봉으로 돌아왔다.

황산은 다시 불이 붙는 듯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먼저 북평으로 갔을 때만 해도 석 달에 달하는 기간이 걸렸듯이 워낙 넓은 곳이 중원이라 건문제가 즉위하고 번왕들이 삭번당하고 진압군이 뜨는 등 오가는 것만으로도 시일이 소요되어 어느새 홍무제가 죽은 시점에서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덕주에서 싸움이 벌어질 것을 예상해 보름 휴가를 얻어 떠났던 친구들이지만 본의 아니게 웅현의 전투까지 살피므로 또 석 달이 걸렸다.

늘 그렇지만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다니는 친구들이라 또 곡괭이 자루 소리가 나오고 역근공양을 하는가 했는데 뜻밖에 돌아온 그들을 보고도 이번에는 힐끗 노려보기만 할 뿐 순욱 등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묘한 일이었지만 친구들이 어디에 다녀오는지를 아는 듯한 눈치 같았다.

“무사히 다녀오셨군요. 걱정했습니다.”

악벽강 역시 특별히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추룡이 십왕봉을 떠난 명목은 친구들이 바깥에 볼일이 있다고 하여 안심이 안 되어 함께 다녀오겠다 한 것이었는데, 보름이 석 달이 되었음에도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맞이했던 것이다.

대가大家의 대부인과 같은 모습으로서 전보다 한결 깊이가 있고 기품이 더 커진 것 같았다.

아니다 싶으면 꾸짖고 딱딱 부러지기로 소문난 그녀인데 그런 면모가 차츰 줄어들면서 점차 더 여성적인 우아함이 보태어지는 것이다.

열정적이고 강한 개성이 안으로 갈무리되기 시작한 것.

장완옥을 섬기면서부터 그녀의 본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남자들이 다 그렇지만 악벽강이 이렇게 나오면 추룡은 더 미안해진다.

하지만 추룡도 변하고 있었다. 남평을 떠나올 때만 해도 싱글벙글 잘 웃고 싱거워 보일 정도의 그였지만 북평에 다녀오면서부터 웃음이 줄어들었다는 점을 우선 알 수 있었다.

싱글거리고 다닐 상황도 아니었지만 철이 들어 가고 있는 것인지, 변함없는 것 같아도 나이 역시 이젠 스물셋인 것이다. 이런 추룡의 모습 또한 무게가 보태어져 함부로 싫은 소리를 하거나 할 정도가 아니었다.

전에도 그랬지만 진중할 때의 그의 모습은 산만 한 무게가 있었는데, 가짜 애인이 되어 금릉으로 향할 때 악벽강이 원하던 딱 그 모습이었다.

마찬가지로 석 달이나 떠났다가 왔으면서도 어제 나갔던 사람처럼 진중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대답했다.

“늘 걱정만 끼쳐 드려 미안합니다. 나간 김에 견문도 넓힐 겸 웅현에 들렀다 왔습니다. 싸움이 있다기에 궁금하더군요.”

악벽강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어떻던가요?”

“대단하더군요. 지금까지의 저는 전투라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진을 치고 용병술로 격파하고 매복하여 기습하고 하는 것 정도로요. 하지만 아주 초보적인 것일 뿐, 천하를 다투는 사람들의 전술은 그 정도가 아니더군요. 도 총사께서는 덕주로 전진해 진을 치고, 병력을 보강하며 밀리는 척 몇 번이나 진을 물러 북평의 턱 아래인 웅현까지 퇴각하여 적을 방심시킨 후 단숨에 허를 찔러 삼십만을 붕괴시켰는데, 실로 대단하더군요. 천하라는 자체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며 포석을 깔고 한꺼번에 많은 일들을 진행하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비교해 저는 근시안을 가진 어린애에 지나지 않더군요.”

천하를 다투는 사람들이 오죽하겠는가.

“오면서 듣자니 오십만 대군이 더 출정해 가고 있고, 도 총사님은 웅현에서도 군을 물러 북평으로 들어가시는 등 연왕 전하께서는 영평으로 향하셨다 들었는데, 역시 대단히 넓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같으면 당도하기 전에 진정성을 무너뜨리고 더 아래로 전진해 맞붙을 생각을 했을 것인데, 확실히 달라요. 무엇을 꾀하는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분명히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싸움을 하는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눈에 맑은 정광이 번졌고, 어조는 차분했다.

“아버지께서도 그러신 것 같습니다. 전에 몰랐던 일인데, 역시 중원의 구도를 모두 헤아리고 계시는 것 같아요. 연안에 포석을 깔고 북평과 조정, 대동, 하물며 북원까지 계산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만 생각해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분들임을 알았습니다.”

악벽강의 눈은 별처럼 반짝였다.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사랑하는 사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기뻤다.

“아무렴 천하를 겨루는 분들이니까요. 일반의 무사들이나 일개 향용을 이끄는 사람들이 범접할 정도가 아닌 것이지요. 머지않아 가가께서도 천하를 헤아리며 싸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큰 것을 배워 오셨군요.”

추룡은 고개를 저었다.

“갈수록 제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만 들고 있습니다. 그간 모두 편안히 지내신 것입니까?”

악벽강은 계속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산속에서 특별한 일이 있을 리 없지요. 가가께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푸른 꼬리 깃털을 지닌 잘생긴 매가 든 초롱 하나를 가지고 옴과 함께 서찰 한 통을 건넸다.

“읽어 보세요. 임 대협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임백호가 보낸 매와 서찰!

“임 형?”

추룡은 멈칫하는 기색과 함께 급히 서찰 봉투를 뜯었다.

속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막 형, 어찌 지내고 있는가.

나는 무사히 황석으로 돌아왔네.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어. 올 때까지만 해도 삭막한 곳에서 어떻게 지내나 싶었는데, 와 보니 의외로 전과 달리 괜찮군.

가족들도 반겨 주고 아버지께서도 다른 말씀을 않으셔.

늘 냉정하고 화를 내시던 분이었는데 능 매도 많이 귀여워해 주시고, 이상하다 싶을 정도일세.

돌이켜 생각하니 전의 일은 내가 부족해서였던 것 같아. 철없이 행동하니 꾸짖고 하셨던 것 같네.

부끄러운 일이지. 깨달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네. 자네에게 부족한 친구가 되지 않도록.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당주님 등 모두가 정말 그리워. 악묘에서 처음 만나 말 도둑을 잡은 일에서부터 함께했던 하루하루가 흡사 오늘 있었던 일처럼 떠오르곤 하는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네.

전 형과 모두에게 안부 전해 주게.

추신 : 연락 주고받고 싶어 매를 보내내. 청금靑錦이라고 하는데 매우 영특하네. 적응되면 답장 보내 주게나.

짧지만 정이 듬뿍 담긴 편지.

추룡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잘 지내고 있답니다.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군요. 다시 만날 때는 틀림없이 누구보다 훌륭해져 있을 것입니다.”

악벽강도 흐뭇이 미소 지었다.

“원래도 특출한 분이니까요. 어린애 같은 면이 있으셨는데, 전 대협 들과 함께 가가와는 정말 한 콩깍지 속의 완두콩 같은 분들이세요. 이렇게 서로를 위하고 의리 있는 분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늘이 복을 내리신 게지요. 아, 그러고 보니 돌아와 아직 마음 표현도 하지 못했습니다.”

추룡은 고개를 주억여 보인 후 악벽강을 포옹하고 살며시 입맞춤을 했다.

“그사이 더 아름다워지셨어요.”

악벽강은 얼굴을 붉히며 추룡의 품에 기댔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행복한 것이었다.

대체적으로 남자들은 사랑을 하면서도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데 실상 여자들은 작은 말 한 마디, 작은 표현 하나로 지상의 행복을 얻는다.

평생을 함께 지내면서도 멀지 않은 봉황산의 차 밭에 다녀와 입맞춤을 하며 장완옥을 헤아렸던 막여사.

어릴 때부터 이를 보며 나도 저런 사랑을 할 것이라 했던 것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수신제가가 치국평천하의 앞에 있듯 이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습관과 결심이 필요한 일로서 사랑받는 아내는 언제나 아름답다. 그 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늘 자신을 가꾸기 때문이었다.

반면 방치되는 아내는 흐트러진다. 가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므로 아무러케나 흐트러진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한 달.

“무너뜨려라!”

콰콰콰콰쾅-!

“와아아아!”

펑! 펑-!

“으아아아악!”

다시 경천동지할 접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경륭과 진압군이 급기야 북평에 당도한 것이었다.

진정성의 병력까지 육십오만! 말이 쉽지 벌판이 완전히 새카맣게 병사들로 뒤덮인 꼴이었다.

그러나 예상대로 북평은 쉬운 곳이 아니었다.

견고한 방벽과 단결력으로 뭉친 십칠만의 병력이 필사적으로 수성을 시작했고, 민중들 역시 저마다 활과 창을 들고 나섰다. 막강한 화력까지 존재했다.

거위들의 똥과 깃털로 왕부를 더럽혀 가며 만들어 낸 화포가 방벽에만도 오백여 문! 천둥 치듯 불을 뿜어 댔고, 하늘을 뒤덮은 화살이 질주하는 진압군의 머리 위로 폭우처럼 퍼부어져 내렸다.

연노(連弩-살촉 같은 쇠노를 한꺼번에 수십 발씩 쏟아 대는 기구)와 회회포(回回砲-투석기)까지 등장했다.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벌하면서 몽고를 통해 전해진 무기로, 지식이 많은 마삼보가 민병들과 함께 수백 문을 만들어 바위를 날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다 보니 비루(飛樓-성벽을 뛰어넘기 위해 만든 탑)도 충차(衝車-성문을 파괴하기 위해 만든 마차)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빗발치듯 한 투석과 포격, 화살을 뚫고 방벽 가까이 접근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접근하면 또 한꺼번에 장창이 밀려들어 곶감 꼴이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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