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19화 (119/150)

# 119

세상을 보는 눈 (4)

불구가 되었으나마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반드시 두 분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가슴이 시려 오는 속에 전소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함부로 질문할 일이 아니지만 나타난 지원군들이 대단한 강병이더군요. 무위, 조직력 등이 예사롭지 않던데 어찌 된 일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그러자 유곡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실로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아직은 우리도 어디 어디에서 온 병력인지 다 모르네. 하지만 일반의 민병은 아니야. 민병이 기마대를 이루고 있다는 자체도 말이 안 될뿐더러 상당수가 향용일세.”

향용!

추룡 등 모두의 가슴이 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사 무림의 분들이라고요?”

“그런 것으로 알아. 까닭은 도 총사님과 원 참모님에게 있네. 알겠지만 두 분은 예사의 분들이 아닐세. 지금은 북평왕부에 몸담고 계시지만 칠대문파 등 천하의 도문과 승방을 다 섭렵하셨고, 도처의 방파들과도 막역한 친분을 지니고 있지. 여간 발이 넓지 않은 분들로서, 각처에 도움을 요청하신 것 같아. 예를 들자면 연왕 전하께서 무사히 북평으로 돌아가셨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네. 향용에 엄호를 요청해 그들이 지원했던 것일세.”

실로 뜻밖의 일이었다.

추룡은 비로소 한상필 등의 습격이 있었을 당시 마지막에 나타났던 오십여 인물들을 생각해 냈다.

“숭산에도 힘이 미치시는 것입니까?”

숭산!

유곡은 계속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도 총사님의 친분이 미치고 있을 걸세. 승록사에 몸담고 계셨고 같은 선종禪宗의 분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엄호 정도의 요청이셨어. 그때는 대대적인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지. 했다 하면 반군을 일으키겠다는 뜻밖에 아니니. 그러나 일이 터진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지. 조정에서 칼을 뽑아 들었으니 죽기 아니면 살기가 된 것일세.”

거병 직후.

“하지만 북평에 갇힌 채 움직일 수 없었지. 와중에 섬서군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네. 서성에서 조우해 격돌하는가 했는데, 뜻밖에도 우회해 북원과 맞서 준 것일세. 덕분에 산서, 섬서의 길이 열렸고, 원 참모님께서 행동하셨어. 산서, 섬서, 감숙 등지에 있는 지주들과 향용에 도움을 청하셨고, 한발 앞서 당한 민주왕부의 장수들과 병력까지 몰고 오신 걸세. 당연히 강군일 수밖에.”

실로 예삿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막여사와 부딪친 후 원기는 원군을 모집하라는 특명을 받고 떠났었는데, 그가 북서의 향용들 및 지주들의 무사들, 삭번으로 무너진 감숙 민주왕부의 장수들까지 이끌고 나타났다는 것이다.

곽자흥이 홍건군을 일으킨 이후 다시 향용이 전선에 나섰던 것! 중원 북서의 인물들이 대거 주체를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숭산이 북평을 지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다 하면 까닭은 분명한 걸세. 알겠지만 도·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조정의 편이 아닐세. 서부와 북부가 모두 그렇지. 그들이 싸움에 나선 것이니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일세. 당장 당신들만 해도 이천이 넘었던 승려들이 반쪽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니까. 싸움은 거의 남부와 북부의 대결로 갈 거야.”

중원이 반으로 갈라진 싸움.

여기에서 숭산이란 소림사를 뜻하는 게 분명한 것이다.

사실이라면, 싸움은 북평과 조정의 대결 국면을 훨씬 넘어섰다. 지역감정에 종교까지 개입돼 그대로 남북의 대결 구도로 번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쯤 되면 결코 쉽게 끝날 싸움이 아니다.

승패와 관계없이 감정의 골이 계속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뜻.

“그렇게까지……!”

맹광이 또한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조심스럽게 추룡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어려움이 많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처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인 만큼 다시 끼울 수밖에. 보다 대단한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유 제의 이야기를 들어 일단 자네가 서주에 나타났음을 알았었어. 이후 북평으로 가서 참모님을 만나 물으니 뜻밖에 자네는 또 악보와 관계가 있다 하더군. 뿐만 아니라 섬서군을 끌고 계시는 막 장군님과도 남이 아니라 하던데 사실인가?”

“-!”

친구들의 얼굴에 크게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막여사가 섬서군을 끌고 있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는 일이라 추룡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부친이십니다. 못난 자식을 둠으로 휘말리신 것이지요.”

혁상이 빙그레 웃음 지었다.

“어쩐지 엄청난 실력이다 싶긴 했네만 듣고는 정말 놀랐어. 말씀하시더군. 도 총사님께서 자네에게 조화를 두었다고. 향후 천하의 풍운은 자네로부터 갈라지고, 세상을 안정시킬 사람도 자네가 될 것이라고.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섬서군을 보니 그렇다 싶더군.”

도연.

다시 돌이켜도 대단한 기인이었다.

그는 추룡의 가치가 무력이 아닌 다른 것에 있다 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향후의 일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악벽강과의 인연이 북평의 운명을 결정짓는 등 그대로 천하 풍운의 단초가 되었던 것이니.

추룡은 자신도 모르게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워낙 상상을 넘어서시는 분이라서……! 섬서군은 어떤 상황인가요? 혹시 아시는지?”

맹광이 웃으며 대답했다.

“서전에서 북원군을 대파했네. 방심하고 오던 이도군을 팔달령에서 괴멸시켰지. 이후 도처의 고지에 진을 구축하고 철통 봉쇄를 하고 있다 하네. 특별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연안군부에서 계속 지원하고 있고, 비밀리에 이쪽에서도 지원하고 있으니까. 벤야시리가 이십만을 운집시켰다는 말이 있지만 첫 싸움에서 삼만이 거덜 나는 등 고지인 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야.”

추룡은 비로소 다소 안심이 되었다. 사실이라면 확실히 섬서군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처음 출정한 병력이 팔만, 지속적으로 연안에서 지원하는 등 고지를 선점先占한 전투라면 아무리 이십만이라도 결코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었다.

고지를 탈환하는 데는 몇 배의 희생이 따른다는 것이 전투의 상식이니까.

요는 조정과 북평왕부와의 전투가 빨리 끝나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벤야시리가 얼마나 더 병력을 끌어들일지 모르는 만큼 밀리기 전에 내란이 수습되고 본격적으로 외적에 맞서야 할 것이니까.

“걱정되면 가 보도록 하지? 우리가 길을 열어 줄 테니까.”

막여사에게로.

그러나 추룡은 고개를 저었다.

“오기까지 사실 걱정했었습니다. 하지만 가서는 안 될 것 같군요. 가도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비로소 생각하니 불초가 할 일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이만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그가 할 일.

“이대로 가겠다고?”

멈칫, 유곡 등 모두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나 마음을 굳힌 듯 추룡은 지체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렇습니다. 혹시라도 도 총사님이나 원 참모님, 마 태감님을 뵙게 되면 안부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너무 이상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여기까지 와서……! 지척에 계신데 직접 인사드리고 가는 게 낫지 않나?”

확실히 도연이나 원기 등은 지척에 있고, 북평이나 장성조차 여기서는 멀지가 않다.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마음먹기에 따라 모두를 만날 수도 있고 군도산으로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던 것이다.

“하찮은 주제에 그럴 처지가 못 되는군요.”

하지만 추룡은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으며 한 번 더 포권을 취한 후 친구들과 함께 발길을 돌렸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에 유곡 등은 거듭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행이 사라질 때까지 어리둥절하여 바라보았는데, 뜻밖이라 여긴 것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래, 막 형? 설마 아버님께서 섬서군과 함께 계신 줄은 몰랐지만 기왕 왔으니 뵙고 가는 게 좋지 않나?”

그러나 추룡은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표정이 크게 굳어 있었다.

“이것으로 충분하네. 이제야 간신히 아버지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 본 사람만이 세상을 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는데, 과연 그런 것 같아. 이번 일로 크게 배웠네. 나는 휘주를 떠나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어.”

세상이란 본 사람만이 안다!

“무슨 뜻이지?”

다들 어리둥절했지만 그러나 태도도 그렇고, 추룡은 확실히 지금과 다른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실제로 그의 뇌리에는 막여사와 섬서군, 북평군, 진압군 등 지금까지 없었던 많은 지도들이 그려지고 있었으니까.

전소의 입가에만 보일 듯 말 듯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경 대장군과 진압군이 대패를 당했다고?”

그런 반면 일만 벌여 놓고 전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다.

반왕부의 주축 세력인 황자징과 제태 등이 그들이었는데, 진압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에 다시 눈이 찢어질 정도로 치켜뜨여졌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냐? 삼십만 대군이 출정했는데! 어제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했던 진압군이 하루아침에 대패를 당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냐?”

“계략이라 합니다! 북평군이 물러난 것은 작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밀리는 척 후방에서 원군을 끌어들여 웅현에서 허를 찔러 기습 공격을 했다는 연락입니다! 섬서군이 달단과 대치함으로 경계가 무너진 틈을 타 북서의 향용들과 지주들, 민주왕부의 병력까지 끌어들였다고 하더군요! 항복한 자들을 흡수해 병력이 삼십만을 넘었다는 전갈입니다!”

“터무니없는……!”

상상치도 못한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북평을 압박하고자 끌어들였던 벤야시리가 야심을 품었다는 데에서부터 섬서군이 우회해 맞선 일, 틈을 타 주체가 북서의 향용들과 감숙군을 끌어들이는 등,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충격일 수밖에 없었던 것.

되지도 않은 잿밥 놀이를 한 것이 화근이었지만 어쨌건 상황이 급했다.

“어찌하면 좋겠소? 설마 경 장군이 패할 줄이야! 포위되었다니 서두르지 않으면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인데…… 항복이라도 하면 더 큰 문제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지오!”

“서둘러 원군援軍을 보냅시다! 군력을 총동원해야 하오!”

황자징과 제태는 다급히 다시 건문제를 찾았다.

“연왕이 간계를 써 계속 반란군을 늘리고 있다고 합니다! 휘말려 경 장군이 크게 손해를 본 것 같사온데, 늦기 전에 원군을 출격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경륭 장군을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이경륭.

왕부 삭번에 앞장서 주왕, 민왕, 상왕, 제왕 등을 연거푸 삭번해 낸 장수!

건문제의 안색 역시 다시 하얗게 질렸다.

“부르시오, 어서! 경 장군이 무너지면 산동까지 위태로워질 것이니!”

허락이 떨어지자 황자징과 제태는 패전의 책임을 물어 경병문을 대장군에서 경질시키는 한편 급히 이경륭을 불러들여 그 자리에 앉혔고, 중·남부의 군력을 끌어올려 오십만 대군을 편성했다.

경병문이 손을 들기 전에 총력전을 펼쳐 진압에 나서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경륭을 정토대장군으로 올린 것은 또한 큰 실수인 것 같았다.

“이 장군만 믿겠습니다!”

급보를 받고 달려온 이경륭을 본 건문제는 크게 안심하는 표정이 되었으나, 실제 이경륭은 경병문을 대체할 정도의 인물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나타난 그는 육 척이 넘는 훤칠한 키에 칼날 같은 검미 등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당당해 보이는 위풍이 누가 봐도 굉장한 장수같이 느껴졌다. 도처의 왕부까지 제압한 만큼 실력도 있는 듯 느껴졌고.

하지만 왕부를 무너뜨린 것은 번왕들이 싸울 생각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습을 했기 때문일 뿐, 그 외에 그는 이렇다 할 전공을 세우거나 대군을 거느려 본 적이 없었던 인물이다.

이문충이라는 장수의 아들로서 부친은 홍무제를 도와 대공을 세운 공신이었지만 후광으로 중직을 맡은 허우대만 그럴싸한 인물이었던 것.

그런 그에게 정토대장군의 직위와 함께 오십만의 병력이 주어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경륭은 허우대만 멀쩡할 뿐, 제대로 전투도 치러 본 적이 없는 자다! 그런 자에게 오십만 대군을 맡겼으니 스스로 목을 조인 것이나 다름없다!”

소식을 접한 주체 등 북평 진영의 사람들은 오십만 대군이 온다 하는데도 오히려 기뻐했다.

“고사하고 경병문 같은 용장을 경질시켰다니 그것이 더 큰 행운입니다! 그들에게는 다섯 가지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대신들은 미더운지 모르겠지만, 장수들은 이경륭이 무능하다는 것을 알므로 통제력이 약할 것이고, 곧 겨울이 닥쳐올 것인데 남부의 병력은 추위에 약합니다. 지리地理 역시 밝지 못하고, 전투 경험도 부족한 등 인화가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니 충분히 격파해 낼 수 있습니다. 병력을 영평永平, 대녕大寧으로 돌리시지요!”

도연은 즉시 진정성을 공격하고 있던 포위를 풀고 이동할 것을 간했다.

경병문은 명성 그대로 천하의 용장인 인물로서 계책에 휘말려 패하긴 했지만, 십오만 병력으로 진정성을 사수하며 북평군과 맞서고 있었는데 삼십만이 내내 밀어붙였어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

“이른 대로 하라!”

도연의 청에 따라 주체는 즉시 공격을 중단하고, 이경륭이 산동으로 진입함과 함께 군을 나눠 도연과 십오만을 북평으로 보내고 남은 십오만과 자신은 영평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십만 대군이 진군하고 있다 하니 정면 대결을 피해 영평, 대녕 등에 진지를 구축하고자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경륭은 주체를 쫓지 않았다.

“경 장군을 상대할 때와 같은 수법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피하는 척 유인하여 기습으로 허를 찌르자는 잔머리! 적이 원하는 것에 따라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영평은 작고 그다지 중요한 곳이 못 된다! 뿌리가 북평에 있으니 넘겨주고 본거지인 북평부터 함락시킨다!”

그럴듯한 계산이긴 했다.

말 그대로 영평은 하북 북부의 성으로 대녕과 합쳐도 북평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장악한다 해도 북평만 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초석을 닦은 곳이 북평인 만큼 잃고 나면 주체로서는 큰 손해를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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