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18화 (118/150)

# 118

세상을 보는 눈 (3)

그 외에도 문제는 또 있다. 수장인 두 사람이 자그마치 전광창 혁상과 태안농부 맹광이라는 것이다. 무경록에 기재된 대단한 고수! 두 사람이 상대라면 추룡 역시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다쳐서는 안 되네! 피하는 방법으로!”

“하아아압!”

쉭! 쉭! 쉭!

하지만 친구들 또한 어제의 그들이 아니었다. 거용관에서도 무관급들을 연거푸 격파해 내었던 실력에 산채로 들어가 집중 수련을 함으로 실력은 훨씬 더 상승된 상태였고, 악불비가 붕거창법의 정수를 푸는 등 무왕검에 방패 기술까지 수련케 함으로 거의 군사적인 술수까지 수련하고 있었던 터였다.

이에 압박이 시작되자 친구들은 실로 뜻밖이라 할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 진의 이십여 병사들이 장창을 번쩍이며 찔러 오는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선 자세에서 휙, 앞으로 몸을 굴렸다.

망신스럽다 하여 강호 무림인 대다수가 꺼려하는 수법으로 뇌려타곤이라고 하는 피신 수법이었다.

그러나 갑옷을 입은 군병들은 이 구르는 수법을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었는데, 상대의 공격을 피함과 더불어 선기를 잡는 데 아주 유용한 방법 중 하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타압-!”

촤ㄱ! 촤ㄱ! 촤ㄱ!

“흡? 이놈들 보통이 아니다!”

새로 배우기 시작한 기술들은 바로 효과를 나타냈다.

무찌르기를 해 온 병사들의 창은 앞구르기를 함으로 간단히 무위로 돌아갔고, 친구들은 장창의 밑으로 들어간 상태가 되었는데, 몸을 굴린 후 즉각 한 무릎을 세워 앉은 자세를 취하며 일제히 아래에서 위로 강하게 장검을 쳐올린 것이다.

병사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오름과 함께 맥없이 창대들이 잘려 나가는 정경이 보였다.

“하-!”

쾅! 퍽퍽!

“와앗!”

하지만 친구들의 반격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창날을 베어 날리는 즉시 앉은 자세에서 훅, 몸을 튕겨 올리며 또한 일제히 휘돌려 차기, 혹은 옆차기를 날려 당황해하는 병사들의 가슴 및 복부를 찬 것이었다.

와당탕!

가격당한 병사들은 철퇴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나뒹굴었고, 친구들은 찰나 땅 끝을 차고 다시 뒤쪽의 이 차 원진으로 육박해 갔다.

“이놈들?”

“하아아압!”

찰나 이 차 진을 구축하고 있던 병사들 역시 일제히 기합을 토하며 벼락같이 장창을 날려 친구들을 찔러 왔다.

그러나 친구들은 또한 대단한 몸놀림을 보였다.

“주마회走馬回!”

“흐아아압!”

촤ㄱ촤ㄱ촤ㄱ!

“앗!”

바람같이 병사들에게로 쏘아 가다 말고 그들이 장창을 찔러 오자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직으로 쏘아 가던 형태에서 휙휙휙, 팽이처럼 몸을 회전시켜 창날을 피함과 함께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 또한 일제히 번개같이 창대를 향해 장검을 올려치거나 내리친 것이었다.

툭툭, 찔러 왔던 창대들이 또 맥없이 끊어져 날아갔다.

“저 수법은……?”

순간 혁상의 안색이 싹 변했다. 이것은 분명히 그가 알고 있는 수법이었다. 이야말로 영웅전에서 추룡과 맞섰던 그가 패하게 된 수법으로 회전으로 창대를 휘감고 파고들어 상대를 제압하는 바로 그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일취월장이라고 했듯 십왕봉의 산채로 들어가 땀을 흘린 친구들의 무위가 완전히 상승되었음을 보여 주는 한편 추룡이 계속 지도를 했음이 여실히 보이는 정경!

“쳐!”

“타아앗-!”

펑! 퍽! 쾅!

“와아앗!”

더불어 친구들의 권각이 다시 터지기 시작했다.

창대를 쳐 쏘아지던 창날을 쳐 낸 친구들은 회전의 여력에 힘입어 다시 장, 권, 각 등, 저마다 지닌 권각법을 날려 또 한 호흡에 맞춘 듯 당황하는 병사들을 일제히 후려치거나 걷어찼고, 여기에 이 진으로 있던 병사들 역시 맥없이 비명과 함께 나뒹굴었다.

일치된 동작들이 화려해 보이기까지 했다.

“가세!”

하지만 머뭇거릴 수 없었다. 싸움이 목적이 아닌 만큼 포위망이 무너지자 친구들은 바로 신형을 날려 일제히 언덕 우측에 있는 숲 쪽으로 쏘아 갔다.

그러나 이때였다.

“헛헛헛! 보아하니 실로 예사의 실력들이 아니로구나! 하나 수만 대군이 봉쇄를 한 지역을 발각되고도 너희가 빠져나갈 수 있겠느냐?”

“흡!”

숲 앞까지 도달한 추룡과 친구들에게 다시 상상 밖의 일이 일어났다.

딴에는 숲을 이용해 피신할 생각으로 쏘아 간 것이었지만 느닷없이 쩌렁한 대소가 터지는가 싶더니 숲 안쪽에서 불쑥불쑥, 또 백여 명의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궁대弓隊가 있어 삼십여 명이 활까지 겨냥한 모습!

예삿일이 아닌 것이었다. 삽시간에 포위망을 벗어났다 하지만 살수殺手를 전개하지 않아 뒤의 병사들도 멀쩡한 상태, 그대로 오십여 명이 건재해 있었는데, 궁수까지 포함한 백여 명이 더 나타난 것이니 이쯤 되면 곱게 빠져나갈 생각을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열두 명이 백오십을 당해 내기도 어렵고, 말 그대로 수색군이 이들만이 아닌 만큼 소동이 일어나면 병력은 계속 몰려오게 마련이었다.

한데 여기에서 또 천만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혁상, 맹광이 병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만 해도 적잖게 놀랄 만한 일이었는데, 눈앞에 더 놀랄 만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칠 척이 넘는 어마어마한 체구에 화등 같은 정광이 번지는 무시무시한 호안虎眼! 이마에 깊숙이 왕王 자 주름이 파인 호랑이 같은 무시무시한 인상을 가진 삼십 대 후반의 인물.

누굴까?

당연히 추룡은 그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친구들 역시 그를 알았다. 북 무림에서 활동하는 무인들치고 그를 모른다면 사실 이상할 지경이었는데, 그는 바로 호면도황虎面刀皇 유곡劉鵠이었다.

춘추 영웅 대회에서 또한 추룡과 격돌한 바 있었던 그. 더 일찍 삼십팔 회 춘추대회의 우승자이기도 한 거물로서 무경록에서도 상위권에 올라 있는 고수인 것이다.

긴가민가하긴 하지만 추룡은 춘추대회 후에도 한 번 더 그와 부딪친 적까지 있었다.

보는 순간 친구들은 맥이 탁 풀렸고, 추룡조차 그만 고소를 금치 못했다. 뒤에 태안농부 맹광과 혁상이 오십여 병사들을 대동하고 있는 터에 이번에는 몇 배나 더한 유곡이 두 배의 병사들을 대동하고 나타난 것이니 빠져나간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이었다.

하지만 뭐, 맹광이나 혁상은 그렇다 쳐도 유곡이라면……! 추룡은 일단 빠져나갈 생각을 버리고 포권을 취해 보였다.

“정말 상상 초월이군요. 맹 대협과 혁 대협께서 북평군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만 해도 기절할 정도인데 유 대협까지라니. 대체 어찌 된 노릇입니까?”

“뭐?”

순간 유곡의 부리부리한 눈이 왕방울만 하게 휘둥그레졌다.

추룡이 그를 알고 있듯이 그 역시 추룡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음성을 알고 있다고 하는 게 더 옳았다.

빠르게 시선이 육 척의 체격, 둘러진 장검을 훑었고, 다시 얼굴로 옮겨지는가 싶더니 그 역시 픽, 쓴웃음을 머금었다.

“나 참! 천하가 좁지 않은데 자주도 보는군!”

화등 같은 시선을 돌려 대동하고 온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적이 아니다! 병기들을 거두고 이십 장 밖으로 물러나 경계해라! 맹 형님, 혁 아우는 이리 오시고.”

“명!”

병사들은 명령에 따라 즉시 물러나 경계를 시작했고, 맹광과 혁상이 모두에게로 다가왔다.

“뭔가? 아는 사람들인가?”

힐끗, 유곡은 물러선 병사들을 살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알다마다요. 형님과 혁제赫弟도 아는 친구인걸요. 신양에서 만나지 않았습니까?”

“신양?”

순간 맹광, 혁상의 얼굴에 한꺼번에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고, 추룡은 두 사람을 향해 다시 포권을 취했다.

“불초 흑무사黑武士입니다.”

“뭐라고……?”

깜짝! 맹광, 혁상의 만면에 순간 더욱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네가…… 아니, 자네가 흑무사라고?”

“미리 밝히지 못해 송구합니다. 추룡이라 합니다.”

또 유곡을 만난바, 구태여 이름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대체 어찌 된 일인가?”

맹광, 혁상은 크게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추룡을 살폈고, 유곡이 피식, 다시 쓴웃음을 머금었다.

“확실합니다. 소제도 본모습을 보긴 처음이지만 분명히 흑 아우입니다. 앞서 말씀 올린 바 있지만 적敵도 아니지요.”

앞서 이야기를 했다!

맹광은 더욱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추룡을 향했다.

“원 참모님을 도와 한상필을 제거했다는 이야기 들었네! 그런데 흑무사였다면, 왜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나?”

원래도 점잖은 인물이었고, 춘추대회에서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편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추룡은 다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말씀드려도 소용없었을 것이니까요. 흑무사라 한들 적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지 않습니까.”

사실 그랬다. 춘추대회에서 만나 좋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런들 다시 부딪친 곳이 전장인 만큼 적이 된 게 아니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었다.

다만 유곡만큼은 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춘추대회 외에 부딪쳤던 장소! 원기와 한상필 이야기가 나왔듯 서주에서 쫓기던 주체의 마차를 한상필과 함께 포위했던 대한이 확실히 그였던 것이다.

악벽강과의 연합 공격을 받은 후 어영부영 죽은 척하고 뻗어 있었던 바로 그.

미루어 유곡이 두 사람에게 이야기한 것 같았지만 추룡으로서는 알 도리도 없고, 오해가 풀리고 나니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이 치솟는다.

“보다 유 대협이야말로 어찌 된 일이십니까? 서주에서도 희한하다 싶었지만 이번에는 북평군의 갑주를 입으시고?”

“별것 아닐세. 일단 이리 좀 앉으세.”

유곡은 거듭 실소를 머금은 채 일단 추룡과 친구들을 옆의 풀밭 쪽에 앉기를 권했다.

일행은 권하는 대로 앉았고, 맹광과 혁상 역시 앉자 유곡은 계속 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면 서주 사건 전부터 열거해야겠지만, 그날 탑산에서 일이 벌어진 후 돌아가며 많은 생각을 했었네. 알다시피 우린 북 무림의 무사 아닌가. 더 정확히 강북 출신이라는 이야길세. 자넨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어렸을 때부터 갑옷을 입고 싶었던 사람일세. 그러나 주저앉고 말았지. 북부의 출신들은 출사를 해도 대접받기 어려운 세상이고, 실력을 지니고도 홀대나 받을 것 같으면 아예 시작도 말자는 뜻이었던 거지. 와중에 느닷없이 금의위 녀석들이 무도관에 들이닥치더군. 나라에 충성 소리를 하며 자신들을 도우라고 으르대는 거야. 기가 찼지만 거절할 수 없어 서주로 가게 되었던 걸세.”

뻗은 척하고 있다가 차후 잠깐 했었던 이야기.

“이후 돌아가며 생각해 보니 더 기가 찼네. 주저앉아 있는 것만 해도 그런데, 당치도 않은 놈들이 찾아와 부려 먹으려고 하질 않나, 그냥 있다가는 계속 문제가 생길 것 같았어. 보나 마나 또 찾아올 것 같고 해서 무도관의 문을 닫고 북평으로 갔던 걸세. 도중에 맹 형님과 혁 아우에게 들러 함께 간 것이고. 다들 이런저런 꼴이 보기 싫어 백두로 남아 있었던 것인데 맹 형님 경우는 농사를 짓고 계시지만 전부터 많이 시달리셨네. 걸핏하면 산동군부의 놈들이 시비를 걸어왔는데, 까닭은 청주군부의 교두 녀석을 눕혔기 때문이네. 명성을 들은 녀석이 가르침 어쩌고 하고 찾아와 비무를 했는데 패하자 아랫것들이 계속 시비를 걸었던 것이지. 대충 그렇게 된 걸세.”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체격이나 인상도 그렇고 사실 유곡 정도의 인물이라면 군부의 장수가 제격이었다.

출사하지 않고 있었던 것은 지역에 따른 차별 때문이었다는 것이고, 맹광과 혁상 역시 그런 면이 있었다는 것.

와중에 금의위가 무도관에 들이닥침으로 서주 사건에 휘말리게 된 유곡이 두 사람을 찾아 함께 북평군부로 가게 되었다는 것. 어차피 혼란이 일어날 조짐에 휘말릴 것 같으면 같은 북부의 주체를 돕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추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던 것이군요. 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혁 대협께 듣자니 주, 우, 두 장군께서 불구가 되셨다는 말씀을 하시던 것 같은데 사실인지요?”

유곡의 얼굴에 안쓰러운 기색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하더군.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분은 서주에서 부딪쳤던 장수 같은데, 북평에 도착한 직후 문제가 생겼다고 해. 비상시국에 자리를 비웠다는 죄로 체포되어 단근질을 당했다고 하더군. 항거도 않고 순순히 따랐는데도 그랬다는 소문이었네. 함께 간 군장들이 다 당했다 하더군.”

“어떻게 그런 짓을……!”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우양, 주탁의 비극은 실제 명사明史, 영락본기永樂本紀에까지 기록되어 있지만 그만큼 명 조정이 북평왕부를 핍박했고, 군력을 약화시키려 했었다는 뜻.

아무리 왕부의 힘이 우려되어 한 일이었다 해도 잘못도 없는 장수들을 불구까지 만들었다는 것은 역시 심하다 싶은 일이었고, 확인한 추룡과 친구들은 침통하기 이를 데 없는 심정이 되었다.

잠깐이라지만 좋은 인연으로 만났던 두 사람. 북평을 떠나오는 날 경계까지 배웅하며 다시 만나자 한 터였는데 불구가 되었다 하니 여간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훌륭한 무장들이……!”

자신도 모르게 전소는 손을 품속으로 가지고 갔다. 우양이 건네준 지도가 들어 있었는데, 두 사람의 체온이 그대로 묻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쩔 수 없는 일, 침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두 분의 일은 가슴 아프지만 대승을 거두었으니. 함께 싸운 것으로 생각하고 크게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유곡은 크게 이마를 주억였다.

“분명히 함께 싸운 것일세. 이후 조정에서는 송충, 경현 등을 보내 군부를 쪼개 놓으려고 했는데, 두 분을 생각해 모두가 흔들리지 않고 버텼으니까. 북평에 밝은 내일이 온다면 분명히 거름이 되지 않았다 아니할 수 없을 걸세.”

북평의 출생으로 원의 침공을 막고 안정된 곳으로 만들겠노라 약관에 군인이 되었다며 웃었던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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