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17화 (117/150)

# 117

세상을 보는 눈 (2)

예하의 부하들도 거의 북부 출신들, 이래저래 진압군이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본때를 보여 줘야 해! 난변은 싫지만 기왕 벌어진 것 같으면 반드시 금릉까지 밀고 가서 썩은 녀석들을 처단하고 세상을 바로 해 주셨으면 싶네.”

내심 다들 북평군이 선전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공격하라!”

“와아아아!”

콰콰쾅!

펑! 펑!

첫 전투가 벌어진 곳은 예상되었던 대로 덕주 일원이었다.

소오대산에서 청주군을 물리친 주체는 소문대로 북평군을 이끌고 덕주 위까지 남하해 진을 치고 있었고, 패주한 청주군은 덕주 아래의 산성을 거점으로 봉쇄진을 친 채 대치하고 있었는데, 경병문이 대군을 이끌고 오자 여기에서부터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것이었다.

“있는 대로 화살, 포탄을 퍼부어라!”

“흐아아아!”

콰차차창! 창창창!

“아아아악!”

빗발치듯 포탄과 화살의 소나기를 뚫고 삼십오만에 달하는 기마騎馬와 병력이 물밀듯 북평군의 진영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던 것.

“사두 진형! 중앙을 돌파한다!”

“와아-!”

콰두두두두!

그러나 북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북평군은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는 기색을 보였다.

물밀듯 밀려오는 진압군을 맞아 북평군의 주력인 포대를 앞세워 어마어마한 포격과 화살의 소나기를 퍼붓고, 기마대를 앞세워 진압군의 중앙을 돌파하는 등 강력한 공격과 방어를 펼쳤지만 승기를 잡지 못했다.

병사들의 수효와 자질 때문인 것 같았다.

소문대로 용병을 모집하는 등으로 북평군의 수효는 북평을 떠날 때보다 훨씬 더 늘어 십칠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릉을 출발한 경병문의 군력이 삼십만, 대치하고 있던 병력까지 삼십오만을 헤아리는 터라 수적으로 완전히 밀리고 있었고, 급시 조달된 병력이라 무력 역시 미비했다.

강력한 화력으로 진을 구축하고 있었지만 계속 북으로 밀려나고 있었던 것.

“진격!”

“와아아아!”

콰콰콰쾅!

펑펑펑!

반면 승기를 잡은 경병문과 진압군은 크게 사기가 치솟아 끊임없이 북평군을 밀어붙였다.

북평군이 밀리기 시작하자 진을 칠 틈도 주지 않고 북상하며 계속 무지한 공격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안색이 크게 흐려졌다.

“화력은 강한 것 같지만 역부족인 것 같아……! 수적으로 우선 너무 부족해. 조련도 덜 된 것 같고. 용진이나 무위, 기백 등 모든 면에서 진압군이 위 같아.”

엉뚱한 일이긴 하지만 그런 속에 예정대로 친구들은 덕주까지 와 있었다.

안휘성을 가로질러 복양까지 간 후 전략 지도를 살펴 미꾸라지처럼 샛길로 봉쇄선을 피해 장하의 강기슭을 따라 몰래 접전 지역까지 숨어들어 갔던 것.

대부분 멀리 떨어진 산봉우리나 높은 언덕의 나무 위 같은 곳에서 몸을 숨기고 양군의 용진법 등 치열하게 벌어지는 접전을 살피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속으로는 북평군이 선전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진압군의 기세는 크게 북평군을 능가하고 있어 전세가 역전될 것 같지 않았다.

“경병문 장군이 워낙 맹장이기도 해. 고 황제 당시부터 용명을 떨친 백전노장인데, 한 번도 패배가 없었던 것으로 알아. 장성까지 넘어 원을 물리친 전쟁 영웅이야.”

“도연 총사님도 보통 분이 아니신데……!”

마음 같아서는 진압군이 실수라도 해서 북평군이 전세를 뒤집어 줬으면 싶었지만 계속 밀리기만 할 뿐, 경병문 같은 노장이 실수할 것 같은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그러나 웅현雄縣!

여기에서 전세는 완전히 엇갈렸다.

웅현은 북평에서 불과 삼백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는데, 수차례의 패배로 주체는 계속 군을 뒤로 물려 여기까지 밀리게 된 것이었다.

경병문은 아래쪽 진정성眞定城에 진영을 두고 선봉군을 앞세워 노도같이 웅현으로 진격해 갔다.

그러나 진압군이 웅현평에 이르렀을 때였다.

“좌·우군 돌격!”

“와아!”

콰두두두두-!

“흡! 저놈들은 누구냐?”

돌연 상상치도 못할 변수가 일어났다.

주체가 이끌고 있는 북평군은 분명 웅현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느닷없이 진격하는 진압군의 좌우에서 지축이 진동하는 함성이 일어나며 기병을 앞세운 십오만에 달하는 대군이 옆구리를 찔러 온 것이었다.

싸우고 밀려나고 한 주체의 본군보다 더 많은 수효가 급습해 온 것으로서 진압군은 그야말로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도연의 계책이었다.

주체가 덕주로 남하하고 진압군이 오는 사이 그는 원기를 보내 섬서, 산서 등 도처의 지주들을 설득하고 병력을 모집해 웅현의 좌우에 매복시켰고, 승승장구로 안심하고 진격해 오던 적의 양쪽 옆구리를 찔렀던 것이다.

입증이라도 하듯 나타난 양군의 앞에는 도연과 원기가 눈을 번쩍이며 치달려 오고 있었다.

“모조리 섬멸시켜라!”

“와아아아!”

“계략이었구나!”

더불어 주체 역시 군사를 돌려 힘을 합쳐 삼면에서 진압군을 들이쳤다.

콰다당-!

“으아아악!”

웅현평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새카맣게 벌판을 메운 육십만 병사들이 창칼을 번쩍이며 피투성이로 공방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나 있었다. 방심하고 진격하던 진압군은 워낙 불시에 나타난 복병들에 당황했고, 양 허리를 찔려 삽시간에 중군中軍이 무너지면서 힘도 쓰지 못한 채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새로 나타난 병력의 무위가 장난이 아니었다. 알려져 있듯 서전 당시만 해도 북평군은 본군 삼만 외에는 이렇다 할 강군이 아니었는데, 불시 조달한 민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새로 나타난 병력 역시 그래야 했다.

한데 뜻밖에도 이들의 전술적 조직력이나 무위가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물렀거라! 이놈들!”

쾅!

“으아아아악!”

특히 선두의 병력은 대부분 기마대로 이뤄져 있었고, 무예에 조직력까지 뛰어나다 보니 평원전에서 기병의 급습을 받은 보병이 감당할 방도가 없다.

“퇴각하라! 진정성으로 물러선다!”

반나절의 치열한 접전 끝에 진압군은 결국 대파당해 과반수가 항복을 하는 등 경병문은 당황하여 남은 병력을 거느리고 가까스로 진영을 둔 진정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나 수성에 지나지 않을 뿐, 더 이상 힘을 쓸 수는 없었다.

“성벽을 무너뜨려라!”

쾅! 쾅!

성을 포위한 북평군은 쉴 새 없이 화포를 쏘아 댔고, 항복한 진압군까지 흡수해 수효는 십만이 더 늘어났다.

단숨에 전세를 뒤집어 버린 것이었다. 거듭된 후퇴는 패배가 아니라 긴 안목으로 적을 방심시켜 단숨에 섬멸시키자는 책략이었던 셈이다.

“대단하군! 노림수였던 건가?”

“그런 것 같네. 덕주까지 남하해 시간을 번 후 배후에서 새 병력을 결성시켜 매복시켰어! 승승장구로 진격해 가는 쪽이야 이를 계산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지원군이 있으면 보충해 맞설 것이라 믿지 여기까지 후퇴하리라 생각하지는 못할 테니까. 완전히 의표를 찌른 거야!”

친구들은 탄복을 금치 못했다.

덕주의 싸움을 보러 왔지만 북평군이 연패를 당하며 물러서자 엉뚱하게도 여기까지 따라와 회목산檜木山의 산등성이에서 접전을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의문.

“어디서 저런 병력을 꾸렸는지! 굉장한 강군이군. 엄청나게 단련된 기세인데 선두의 칠팔천은 기병騎兵이기까지 해! 숨겨 둔 전력일까? 저만한 기병을 숨기기는 쉽지 않을 건데……!”

새로 나타난 막강한 이 병력의 정체를 알 수 없었고 여기에 대해 다들 의문을 품었다.

한데 이때였다.

“거기 있는 녀석들! 뭐라는 놈들이냐? 정체를 밝히고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헛……?”

탄복하고 있던 모두에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돌연 올라 있던 언덕배기 사방, 숲 속에서 쩡, 하는 외침과 함께 사오십 명가량의 병사들이 창칼을 앞세운 채 나타나 친구들을 포위한 것이었다.

북평군의 차림으로서 잔병들을 소탕하러 나온 수색대인 것 같았다.

한데 그들을 이끌고 있는 수장인 듯한 인물의 모습이 대단했다. 한결같이 불줄기가 이는 듯한 눈빛이 예사가 아닌 병사들로 보였지만 이끌고 있는 인물은 중랑장급이 입는 표범 견장의 갑주를 입고 있었는데, 어질어 보이는 용안龍眼에 매우 성품이 좋아 보이는 마흔 살가량의 남자였다.

허리춤에는 넉 자의 장검, 손에는 섬뜩한 날이 번쩍이는 긴 화극畵戟을 움켜쥐고 있었고.

또한 옆에는 부관인 듯 서른 중반의 나이에 길쭉하게 찢어진 눈에 섬전 같은 신광이 번쩍이는 인물이 함께 서서 친구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한데 그 모습들이!

‘맙소사!’

보는 순간 추룡은 자신도 모르게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두 사람은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전광창 혁상과 태안농부 맹광!

바로 그러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신양 춘추대회에서 격돌했던 바로 그들이었다.

무경록의 고수들인 그들!

너무 뜻밖의 일이라 추룡은 말문이 막혀 그들을 쳐다봤고, 이런 모두를 보며 혁상이 거듭 칼날 같은 안광을 번쩍이며 위협적으로 말해 왔다.

“순순히 정체를 밝히고 무릎을 꿇어라 했다! 경병문이 보낸 간세簡細냐?”

상대의 동태를 살피는 첩자를 뜻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기세도 그렇고 오십여 병사들의 모습이 만만찮다는 느낌이 들어 등을 맞대는 등 친구들이 서둘러 경계 자세를 취하는 속에 추룡이 급히 포권을 취해 보였다.

“아닙니다. 우리는 휘주 사람인데, 전세戰勢가 궁금하여 온 것입니다. 삼십만 대군이 진격하고 있다 하여 우려되어 온 셈입니다.”

틀리지 않았지만 이 말을 곧이 믿을 사람은 없다.

혁상은 흘려들으며 계속 추룡과 친구들을 노려봤다.

“헛소리를 하는군! 사실이라면 북평군을 우려해서 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북평군이 되어 함께 싸워야지 한가히 상황을 살피고 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사실 좀 맞지가 않는다.

어쨌건 영웅전에 출전했을 때 죽립으로 얼굴을 가려 두 사람은 추룡을 알아보지 못하는 눈치였고, 밝혀 봐야 의심받을 것은 같아 추룡은 거듭 해명했다.

“물론 의심스러울 것입니다. 하나 그러지 못할 사정이 있어 그런 것이니 해량해 주셨으면 합니다. 도연 총사님을 알고 있고 장옥 대장군님과 우양, 주탁 장군님과도 친분이 있습니다. 믿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이름 정도야 누구나 알겠지! 한데 주, 우, 두 장군까지 알고 있다고? 어떻게 아는 사이냐?”

“거용관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인사 나눴습니다. 함께 장성을 지킨 적도 있사옵고. 의심스러우시면 휘주에서 온 청년들이라 잠깐 기별해 주시면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더 큰 의심을 불렀다.

듣자 바로 혁상의 눈빛이 기묘해졌다.

“두 분에게 기별해 달라? 어떻게? 두 분이 어찌 되었는지나 아느냐?”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알려져 있듯 우양과 주탁은 주체를 호위해 갔다가 금의위에 체포되어 손발의 심줄이 잘려 불구가 되었다.

추룡 등 친구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으레 전투에 참가하고 있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데 혁상의 태도도 그렇고, 추룡은 의아하여 질문했다.

“어찌 되었냐니 설마 전사하셨다는 말씀입니까?”

혁상의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떠올랐다.

“정신 나간 녀석 같으니! 그럴싸하게 말을 하는 것 같다만 둘러대려면 제대로 둘러대야지! 주, 우, 두 분은 전투에 참가도 하지 못하셨다! 연왕 전하를 호위해 가셨다가 보복으로 단근질을 당해 불구가 되신 지 오랜데 어찌 전투에 참가한다는 말이냐! 친분이 있단 놈이 그것도 몰라?”

쿵! 추룡과 친구들은 일제히 가슴이 주저앉았다.

“주, 우, 두 분이 불구가 되셨다고?”

실로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다. 거용관에서 만나 무예를 나누며 친분을 맺었던 그들. 서주에서 돕기까지 한 바 있었다.

그렇듯 빼어났던 호걸들이 설마 불구가 되다니?

그러나 사실은 사실, 혁상은 거듭 눈에서 냉광을 뿜으며 싸늘히 말했다.

“분명하다! 이런 사실도 모르는 네 녀석이 두 분과 친분이 있다고 믿기지 않는다! 사실을 증명하려거든 일단 병기를 내놓고 포박을 받아라! 될지 모르겠다만 장 대장군님께 연락을 취해 볼 테니!”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 차에 진압군을 퇴치했다 해도 진정성의 공격이 이뤄지고 있는 터에 장옥쯤 되는 인물이 사소한 보고나 받고 있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만난다 해도 역시 입장이 난감하다.

자신으로 인해 또 막여사가 휘말릴 수 있으므로 더욱 그런 것이었다.

당황스러운 심정으로 추룡은 다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원칙대로라면 그래야 할 것이지만 정말 사정이 어렵습니다. 맹세코 화를 피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니 헤아려 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어림없었다.

“역시 수상쩍다! 잡아 꿇려라! 항거하면 처단하도록!”

전쟁 중인 상태의 이들에게 그런 말이 통할 리 없고, 머뭇거리자 혁상은 바로 둘러싼 수하들에게 체포 명령을 내렸다.

“일제히 들이쳐라!”

“하아아압!”

순간 장내에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다. 포위하고 있던 오십여 병사들이 쉭, 일제히 발끝으로 땅으로 차며 추룡과 친구들을 휩쓸어 온 것이었다.

잡혀갈 수도 없고 싸울 수도 없고!

피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한결같이 번쩍이는 눈빛하며, 나타날 때부터 하나같이 예사가 아닌 눈치가 보였지만 짐작했던 대로 병사들은 보통 실력자들이 아니었다.

갑주를 입고도 압박해 오는 기세가 여간이 아니었는데, 몸을 놀리는 동작들이 바람처럼 가벼웠고, 창진槍陣까지 이루고 공격을 감행했다. 일 진으로 절반이 포위해 덮쳐 오고 나머지 절반이 뒤쪽에서 한 겹 더 포위망을 구축, 이중 원진形陣을 치고 덮쳐 온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뛰어넘기조차 어려웠는데, 뛰어넘어도 뒤의 원진 속이므로 앞뒤에서 협공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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