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16화 (116/150)

# 116

그여야 하는 이유 (4)

“예……!”

추룡은 또 본전도 못 건지고 장완옥의 앞에서 물러 나올 수밖에 없었다.

듣고 보니 역시 그런 것이다. 평소 때도 북평까지 가기 어려웠는데 지금 같은 시국에 북평으로 가려면 군의 봉쇄망을 뚫어야 했다. 반란에 전시 상태이고 보면 극히 위험한 것이다.

가는 데 얼마나 시일이 걸릴지도 모르고 가서도 장성까지 넘어야 했다. 가능하기나 할 일인 것인지.

무예 역시 막여사를 넘어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뭐, 가도 결과는 뻔하다. 산악전이 벌어지는 양상이고, 막여사 쪽만 해도 십만 대군인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자칫하면 가서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었다.

이래도 저래도 자신이 작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코가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악벽강이 따라나서며 이런 추룡을 보며 웃음 지었다.

섬서군이 대동을 눌렀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와 달리 악벽강도 완전히 밝아져 있었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 가가. 어머니 말씀이 틀리지 않으니. 가가께서는 아버님을 걱정하지만 가셔도 그다지 힘이 되거나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오히려 어머니께 걱정만 끼쳐 드릴 뿐이지요.”

추룡은 그냥 무겁게 대답했다.

“이렇게 제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입니다. 딴에는 제법 능력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덩치만 큰 바보라는 느낌이 들어요.”

“하하!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도 딴에는 남 못지않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어머니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작아집니다. 아버님이나 어머니께서는 아직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범주의 분들이 아니세요. 한참 더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오늘 들은 말씀만 해도 놀라운데, 설마 아버님께서 그 정도로 꼼꼼한 분이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천하제일이라 하면 하늘을 누르는 듯한 기백을 지닌 호걸이 떠오르는데 그런 실력을 지니시고도 어머니께서 실망하셨을 정도로 소극적이셨다니.”

막여사의 행동을 보면 사실 호탕과는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순문이 찾아왔을 때도 잔뜩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였고, 그만한 무예를 지녔음에도 시비가 생기면 무조건 피하고 봐야 한다고 가르치는 등 소심함까지 엿보이는 성품임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소극적인 사람이 어떻게 천하제일의 대명을 얻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하하! 그런데 분명히 기묘한 점은 있습니다! 그렇게 팍팍 잘나가는 호걸들의 특징은 실수가 잦고 적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세심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훨씬 안정적인 삶을 살고 성공하는 예가 많아요. 매력은 없지만 천성으로 매사에 신중하고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런 면이 많으세요. 휘주 향용의 태두시지만 굉장히 조용하시지요. 늘 계신 듯 만 듯하니까요.”

악불비의 성격.

또한 틀리지 않는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그 역시 소극적이다 싶은 부분이 자주 보이는데, 매사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속이 상해도 늘 안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였다.

호방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화촌이 화를 당했을 때도 추적해 들어갈 생각을 않았을 정도였다.

매사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 그래도 그는 휘주 향용의 태두다. 매력은 없는 성격이지만 수하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신임과 존경도 받았고.

소극적인 만큼 그만치 실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비교해 무엇이거나 팍팍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실수가 많았으며, 이로 인해 적을 많이 만들었고, 일이 발생해도 주위 사람들이 그다지 걱정해 주지도 않았다.

실력이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 하고 신경을 끊는 것이었다.

그러다 무너지면 비로소 호탕했던 성격은 흠이 된다.

너무 잘나가더니 그렇게 되었군, 하는 식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실력이 있어도 안으로 갈무리하고 한 발 한 발 조심해서 나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

비교하자면 추룡은 냉정하지 못한 편이었다.

나름대로 적잖은 조심성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도 한 번씩 사고를 치는 것이었다.

몽마를 추적한 것이라거나 왕평 일당을 쫓아 빙산 속으로 들어가고 원기를 도와 싸운 등이 다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던 셈이다. 다행히 몽마나 왕평, 도마 등이 그보다 약했기 망정이지 강했다면 그는 살아 있지 못할 테니까.

협의심 하나로 무조건 덤벼들었다는 것! 주의해야 할 점으로서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악 매도 만만치는 않습니다. 뵙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어머니 쪽을 닮으신 거예요.”

악벽강도 인정했다.

“분명히 저도 어머니 쪽 성격입니다. 하지만 그다지 좋은 것 같지는 않아요. 예를 들어 몽마를 추적할 때만 해도 그런 것인데, 가가께서 와 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냉정하지 못하고 무조건 추적했던 것입니다. 그랬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이지요. 여자답지 않게 설치더니 그러다 죽었다고요.”

뭔가 확실하지 않은가.

추룡은 코가 빠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더 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사소한 하나라도 놓치지 말고 깊이 생각해서 해야 할 것 같고요. 소심하다고 악 매가 싫어하지 않을지 모르겠군요.”

그러나 뭐, 악벽강은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그리하신다 해도 저는 이미 가가를 알고 있으니까요. 속에 지금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 계시겠지요. 모르긴 해도 아버님들께서 신중해지신 것 역시 어떤 계기가 있으셨을 것입니다. 가가께서 그렇게 되신다면 분명히 저에게는 지금보다 더 크게 보일 것 같습니다.”

살며시 어깨를 기댔고, 추룡 역시 악벽강의 허리를 감쌌다.

사랑이 커져 가는 만큼 무럭무럭 마음도 함께 커져 가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뭐, 젊음이라는 것은, 의외로 마음먹은 만큼 그렇게 신중한 것이 못 되는 것 같았다.

일장 설교를 듣고 부친을 닮아야겠다고 생각한 추룡이었지만 금방 또 헤매게 되었는데 계기는 친구들이었다.

악벽강과 헤어지고 친구들을 만나자 그들이 아주 쓸데없는 소리들을 한 것이었다.

흥분된 표정으로 말을 꺼낸 것은 장청이었다.

“막 형! 이대로 그냥 있을 텐가? 진압군이 떴다니 곧 어마어마한 싸움이 벌어질 텐데! 자그마치 삼십만일세! 북평군 역시 계속 병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문이고! 최소한 오십만 대군의 충돌이 일어날 텐데 어찌 될지 궁금하지 않아?”

오십만 병력의 격돌!

분명히 엄청난 전투가 될 것이었다.

“궁금하지만 어쩌겠나. 소식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평소 신중한 전소까지 눈을 반짝이며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우린 보러 가기로 했네. 이런 접전을 보는 것은 크게 배움이 되거든.”

“뭐?”

기도 안 찰 이야기여서 추룡은 저도 모르게 눈을 끔벅거렸다.

“오십만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사투를 벌이는데 그걸 구경하러 간다는 소린가?”

한자방도 한 다리 곁들였다.

“잘하는 짓은 아니지만 어차피 그들은 싸우는 걸세. 전술을 배운다는 점에서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지. 나도 갑자기 대군을 지휘할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겠나. 모르면 못하는 걸세.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한 번이라도 봐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듣고 보니 또한 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은 느낌이 들어 추룡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안 될 것 같아. 어머니께서도 신중하라 하셨고, 악 매에게도 삼가겠다고 약속했네.”

하지만 친구들은 기어코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전소가 눈을 반짝이며 묘한 소리와 함께 웃었다.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막 형이야말로 머지않아 천군만마를 부릴 것이라 봐 둬야 할 사람 같은데 말이지. 아무튼 그렇다 하니 그럼 우리끼리 가겠네.”

머지않아 추룡이 천군만마를 부릴 것이다!

무관이 되려 하는 것을 예를 들어 하는 말인지, 이상한 이야기를 하며 평소의 그 같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뜻밖의 일이라 추룡은 어리둥절하여 친구들을 봤다.

“어째 전 형답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다 수상하게 여겨져 체포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가면 기간도 상당히 걸릴 거고, 또 무단이탈이 될 것인데 그래도 되나?”

그러나 뭐, 친구들은 웃으며 여유를 보였다.

“보름 휴가를 받았네. 수련 외에 별로 할 일도 없거든.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었던 만큼 바깥에 처리할 일이 있다 하고 허락받은 걸세.”

사실 산채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지역을 살필 때는 늘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일이 없는 것이었다.

이에 추룡은 할 말이 없어져 눈을 끔벅거렸는데, 친구들은 망설이지조차 않고 손을 흔들어 보이며 냉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부님! 그럼 다녀올게!”

정말 겁이 없어 보이는 모습들!

“같이 가세!”

어쩔 수 없어 추룡도 결국 따라붙고 말았다.

친구들이 위험한 곳으로 간다 싶자 안심이 되지 않아서라도 같이 가야겠다 결정한 것이었다.

“하하하! 역시 그렇지?”

그러자 친구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지도를 펼쳐 놓고 달려갈 경로까지 설명했다.

“북평군이 진을 친 게 덕주라고 들었네! 하북과 산동의 접경인 곳일세. 진압군은 금릉에서 여기 서주 경로로 올라갈 거니 우린 하남 경로를 통해 복양 쪽으로 가는 거야. 거기에서 장하�河 강줄기를 따라 따라붙기로 하세. 살펴보니 은밀한 숲길이 있어.”

지도는 주탁이 선사한 군 작전지도였다. 극히 정교한 것으로 그것이 또 이렇게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햐……!”

추룡은 기가 막힌다 싶었지만 사실은 그 역시 대군의 격돌을 보고 싶지 않은 게 아니었다.

세상을 보는 눈 (1)

그러나 전투라는 것은 역시 구경이나 다닐 만큼 한가한 것이 아니었다.

“올라가!”

“모조리 쓸어버려라!”

쒜애애액!

콰콰콰콰쾅-!

“으아아악!”

추룡 등 친구들이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도 팔달령의 군도산에서는 어마어마한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백 문의 화포가 연신 불을 뿜고 폭우 같은 신화비아가 퍼부어지는 속에 수십만 대군의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알려져 있듯 군도산의 전투가 시작된 것은 장성으로 접근하던 원군이 기습받은 후부터였다.

막여사는 장수들과 함께 병력을 군도산의 다섯 고지高地에 분포시켜 진을 쳤고, 일 차에 기습 공격으로 오고 있던 이도군을 격파했다.

그러나 흩어진 이도군은 곧 전열을 가다듬어 재공격을 감행해 왔다. 이로 인해 팔달령 속의 군도산에는 한발 앞서 연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장성으로 가기 위해 길을 틀어막고 있는 섬서군을 괴멸시키려 하는 북원군과 지키려는 섬서군의 사투였다.

포성이 끊이는 것은 하루에 한두 시진뿐, 원군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폭우 같은 불화살을 퍼부으며 개미 떼처럼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었고, 섬서군 또한 곳곳의 고지에서 진을 구축한 채 하늘을 가릴 듯한 화살과 포격을 퍼부으며 맞섰다.

피가 산 전체를 타고 흘러내리고 시체가 계곡을 메울 지경이었다. 끔찍한 정경으로서 결코 한가히 구경할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힘을 내라! 절대 뚫리면 안 된다! 나라의 안위가 우리에게 걸려 있다.”

막여사도 병사들도 다 함께 목숨을 건 채 고지 싸움에 임하고 있는 것이다.

“밀어붙여라! 환도할 절호의 기회다! 놈들을 처치하고 장성을 넘으면 중원은 우리 것이나 다름없다!”

“와아아아-!”

콰콰콰콰쾅!

“으아아악!”

북원군도 필사적이었다. 시체로 계곡을 메우면서도 끝도 없이 계속 고지로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수효로는 부족한 섬서군이었지만 고지라는 이점을 업고 철통 봉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연방 주자총통이 불을 토하고 하늘을 메우며 쏟아져 내리는 빗발치듯 한 화살들, 끊임없이 억수 같은 피가 뿌려지는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지만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경병문을 위시한 삼십만 대군도 덕주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군!”

“북평군도 십만이 넘었다고는 하던데 견딜 수 있을까?”

지나는 곳마다 이동하는 대군을 보며 지역민들은 불안한 기색을 금치 못했다.

“군도산 쪽에서는 섬서군과 원군이 맞붙고 있다던데……!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것인지.”

행군을 보는 지역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황자징이 죽일 놈이지! 아니야, 조정의 구조 자체가 잘못되었어! 태조께서 한 실수지만 오랫동안 왕부들을 키워 힘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좋게 받아들여 안정과 발전을 도모해야 할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적으로 돌려 대니 이런 꼴이 나는 거지! 이러다 덜컥 장성이 뚫려 북원 놈들이 다시 밀고 내려오기라도 하면?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

“책임이나 마나 들어오라 한 게 대신들이라며? 제정신이 있는 것들인가? 남부의 녀석들이 하는 짓이 늘 그렇지!”

북원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우선 황자징, 제태 등은 신임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지역감정 역시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 경병문 등 진압군이 이동하고 있는 곳은 장강長江 이북以北인 셈이다. 언급되었듯 중원의 장강 이북은 도·불교가 넓게 확산되어 있었고, 홍건군의 모체인 백련교 역시 장강 이북에서 성행했다. 홍무제가 명明을 세운 것이 바로 이 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쟁 속에 강북 출신의 무수한 공신들을 죽이고 팔십만을 참형하는 등 백련교도 및 도·불교를 탄압함으로 강북의 민심은 조정과 등을 돌리다시피 한 상태였고, 이후 남부의 중신들에 의지함으로 상태는 더 악화되어 있었다.

홍무제의 아들이면서도 북부에서 성공을 이룬 주체가 오히려 신기한 경우일 수도 있었다. 북평으로 간 후 그는 어떻게든 지역의 민심을 살펴 안정을 꾀하고자 북부의 지주들과 친분을 쌓고 인재들을 등용시키려 애썼는데, 이것이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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