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15화 (115/150)

# 115

그여야 하는 이유 (3)

“황자징, 제태 등 상잔을 부추기는 자들을 치기 위해 일어났다고 하더군. 황상께 상소문도 올렸다던데 어쩔 수 없었던 일인지도 모르지.”

“어쩔 수 없으나 마나 대란이 일어난 걸세! 북평군과 연왕이 보통의 위세가 아니라던데 우리는 어찌해야 하나? 피란할 준비라도 해야 하나?”

“설마. 아무리 북평군이 강하다 해도 하북성 선에서 끝난다고 보네. 금군이 백만이 넘는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보다 걱정은 북원일세. 황자징이 벤야시리에게 응원을 청했다 하니 이건 미친 일이야. 장성 너머에서 섬서군과 충돌했다던데 정작 문제는 연왕이 아니라 그들이야. 장성을 넘으면 어마어마한 학살이 일어나게 되어 있어.”

“황자징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작정한 것이군! 어떻게든 그들부터 틀어막아야 해! 부디 섬서군이 선전해 줬으면 좋겠는데……!”

산동 쪽에서는 벌써부터 피란 보퉁이를 챙겨 남하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기까지 했다.

그런 속에 중부에는 더 빨리 대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둘러 산속으로!”

휘주의 사람들로서 우선 피신한 사람들은 악충보의 식솔들이었다.

대단히 신속한 일로서 난이 벌어질 것이라는 소식은 막여사가 출정 명령을 받은 것보다 더 일찍 악불비에게 전해졌는데, 은근히 뒤를 살펴 주고 있던 이순문이 북평왕부를 칠 것이라는 첩보를 접수하자 바로 기별해 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악불비는 즉각 폐문을 선언한 뒤 수하들과 가족들을 황산 속으로 피신케 했다.

연왕이 순순히 손을 들면 모르겠지만 아닐 경우라면 바로 화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만이라도 버티면서 대피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막여사의 덕분인 셈이다.

증명이라도 하듯 연왕이 도위부를 치고 반군을 일으키자 북평왕부에 예속된 모든 중신들의 집안에는 대변大變이 일어났다. 관병들이 들이닥쳐 사돈에 팔촌까지 다 잡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악불비는 한발 앞서 폐문령을 내리고 피신함으로 화를 면했다. 뒤따라 지주, 청국 분파의 수하들도 가족들을 대동하고 하나둘 소리 없이 황산으로 들어갔고.

겉으로 보기에는 본의 아니게 역신의 집안으로 몰리기 싫어 보를 해산하고 도주한 것으로 보였다.

사실이기도 했지만 수하들 역시 휘말리기 싫어 피한 것으로 보였고.

겉보기에는 폐문, 악충보의 힘은 고스란히 십왕봉 속으로 옮겨진 것이었다.

체포 대상이었지만 관사에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워낙 악충보가 한 일이 많은 데다 피차 친분이 있는 것이다. 황산 속으로 피신했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황산이 작지 않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고 수하들에게는 더욱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추포해 봐야 악불비가 어디로 갔냐고 문초할 정도인데, ‘황산!’ 하면 끝나는 것이었다. 그들이 장신과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한 일을 보면 오히려 상을 줘야만 한다.

그러면 수하들이 가족들까지 동반하고 악불비를 따라 피신한 까닭은 무엇일까?

일 차에 악불비가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과 대란이 일어날 것을 주지시킴으로 미리 대피한 것이었다. 향용의 밥을 먹는 만큼 심각성을 모르지 않았던 것으로 아직은 아니라지만 일이 커지면 강제징병이 시작된다.

향용으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일순위로 징병되어 가는 것이었다. 도피하면 반역이 되어 가족들이 고초를 겪는데 이래저래 문제가 작지 않아 미리 들어가 버렸던 것.

징병이 시작되기 전인 만큼 지금은 상관없었다.

그냥 세상이 싫어서 산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징병 영장을 들고 산속으로 쫓아오기라도 한다면 모르겠지만 아닌 이상 상황을 봐서 나중에 슬그머니 나오면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십왕봉의 계곡은 갑자기 사람들이 북적이고 큰 마을처럼 되어 버렸다.

악충보의 무사들이 천千인데, 가족들까지 들어오니 천 가구, 사오천 명 단위의 마을이 된 것이었다.

미리 거처할 곳과 양식을 준비해 크게 불편한 점도 없었고, 들어오자 사람들은 곧 소일거리를 찾아 쓸 만한 터를 찾아 밭을 가꾸는 등 일을 시작했고, 무사들은 철통같이 계곡을 지켰다.

수십만 대군이 십왕봉을 둘러싸고 압박해 오기라도 하면 모르겠지만 그러기 전에는 문제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천, 운남 등지에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심산 속에도 마을이 있다더니 까닭이 뭔지 이제 알겠군.”

그러면서도 외부와 전서구를 주고받음으로 빠르게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파악했다.

“한데 섬서군이 이도군과 맞섰다니 정말 뜻밖일세. 딱 북평왕부를 치러 나선 것인 줄 알았는데 말일세.”

“아무렴 같은 싸움이면 북원 녀석들과 싸워야지! 이 경우는 섬서군을 칭찬해 줘야 하네.”

“북평왕부와의 싸움은 어찌 되는 것인가? 경병문이 삼십만 대군으로 출정했다던데.”

“모르지. 북평을 완전히 장악하고 하북 전역으로 세를 늘렸다 하니 만만하지는 않을 거야. 징용을 하거든. 상대적으로 경병문은 적지로 가서 싸워야 하고. 누가 이기든 빨리 끝나야 해. 더 확산되면 전쟁이 되니까.”

이미 전쟁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주체를 욕하지는 않았고, 그저 빨리 일이 수습되기만을 바랐다.

추룡에게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북평으로 가 봐야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설마 장성까지 넘어가 원군과 맞서고 계신다니!”

대동왕부를 밀어냈다는 소식을 듣고 내내 심란했던 그.

북평군과의 싸움을 피했다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막여사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래도 저래도 장완옥은 미소만 지었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보아하니 마침내 추가 기울어진 것 같구나.”

“그 말씀은……?”

장완옥은 차분히 추룡을 주시하며 일러 줬다.

“경험이 없어 너는 권력의 싸움을 모르고 인정에 끌려 북평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 같더라만 아버지야말로 명확히 중립에 선 것이다. 여간 냉정하지 않고서는 그렇기 어렵지. 연안군부에 몸담으심으로 우선 양날의 칼을 잡았던 것이다. 의지에 따라 조정과 연왕, 어느 쪽에 서도 되는 것이지. 대동왕부를 누른 것은 작은 것을 버림으로 보다 큰 것을 쥐고자 한 것이다. 섬서군의 전력이 삼만에 지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리함으로 십만을 만들어 확고한 위치를 굳히셨던 거다. 성격으로 미루어 왕부에 무례를 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보호하는 상황이기 쉬울 게다.”

추룡은 멈칫하는 심정이 되었다.

“적으로 돌린 게 아니라 왕부 편에 서셨던 것인가요?”

장완옥은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중립이라 하지 않았더냐. 아버지께서는 예부터 법에 의거해서만 일을 하셨는데, 나라의 법은 조정에 있다. 따라서 명령에 따라야 하고, 아버지가 아니라도 대동왕부는 어차피 공격받게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쳤다면 대왕은 폐서인되어 압송당했을 것이고, 상태가 훨씬 비참해졌을 것이다. 하나 다른 이들과 달리 왕부 속에 유폐만 되어 있지. 그냥 왕부 속에서 지낸다는 뜻이다. 법에 따르면서도 조정, 대왕, 섬서, 삼 자가 모두 흡족해진 것이다. 북평왕부에만 큰 압박을 준 것이지.”

분명히 그랬다.

“여기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면 아버지께서는 틀림없이 조정의 명령에 따랐을 것이다. 황상께서 북평왕부를 꺼려하고 계시고, 연왕의 속을 모르는 만큼 안정을 위해서라도 북평왕부를 도모해야 하는 것이지. 황상께서는 연왕의 직위를 회수할 권한을 지니고 계시고 연왕은 신하이므로 따라야 하는 것이다. 결백은 황상 앞에 가서 증명해야 한다. 조정 쪽인 것 같지만 정확히 법에 의거하고 계셨던 것이지.”

법法.

“하지만 조정이 법을 넘어서는 행동을 했다. 그대로 삭번만 단행했으면 되었을 텐데 쓸데없는 머리를 굴려 달단을 끌어들인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주적을 끌어들여 나라와 백성을 위태롭게 만드는 이적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야심을 가졌건 뭐건 북평왕부는 마지막까지 공근했고. 이렇게 지각없는 인물들이 권력을 잡는다면 언제든 나라는 위험해지게 마련이니 여기에서 무게추가 기울어진 것이다. 정확히 죄를 가려 움직인 것으로 명분 싸움에서 연왕이 이긴 것이다. 그러면서도 섬서군은 여전히 중립에 있다.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북침을 막고 있을 뿐이니까. 어느 누구도 아버지를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 대단했다.

이처럼 일에 냉정한 사람은 찾기 어려운 것이다.

“만약 양쪽이 똑같이 법을 넘어설 경우였다면요?”

장완옥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달리 바른길을 찾거나 떠나야지. 전날 고 황제는 백련교를 치며 무수히 사람들을 학살했는데, 이것은 아버지로서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권력을 휘어잡기 위해서든 뭐든 황상의 뜻이 나라의 초석을 닦는다는 데에 있어 틀리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백성들을 그렇게나 잡아 죽이는 것은 바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옷을 벗고 물러서셨던 것이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늘 바르다. 그래서 패배가 없으신 것이다.”

괜히 천하제일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중립에서 법을 지키며 마지막까지 주시하고 흑黑도 백白도 아닐 경우에는 의義에 따라 거취를 결정한다!

“소자가 많이 부족했던 것이군요.”

추룡은 비로소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았다.

지금껏 그는 스스로를 중립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북평에 다녀오면서부터 사실은 중립을 넘어 있었던 것이다.

은근히 왕부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으로 입증하듯 원기 등을 도왔고, 막여사가 대동왕부를 해체시켰다 하자 북평을 칠 것으로 알고 심란해하기까지 했으니까.

사사로운 감정이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위험한 감정이었다. 아무리 협의심의 발로라 해도 주체는 황제의 신하였다.

신하가 주군에게 어려움을 주면서 자신을 바르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특별한 까닭 없이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를 도와 조정과 맞선다는 것은 큰 실수다. 더욱이 주체의 마음속에 역심이 없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지금도 똑같이 그런 상태였다. 누구라도 자신을 버리기는 어렵겠지만 정말 결백을 주장한다면 왕부를 넘기고 떠나면 될 것이었으니까.

분명히 욕심이 없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뿐, 그는 무리하지는 않았고, 비교해 황자징 등은 너무 심한 무리수를 뒀다. 홍무제가 건재할 당시부터 주체를 압박했고, 아버지의 장례조차 지키지 못하게 했으며, 어린 황제를 부추겨 골육상잔을 벌이게 했다. 일단 사적인 추는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그다지 큰 일이 아니었다. 금밥그릇 다툼일 뿐으로서, 국가라는 대大와 억億에 달하는 백성들의 안정을 보면 사소한 일이었다.

그들 간의 권력 다툼이니 어느 쪽이 깨지든 상관이 없었다.

따라서 결정적인 악재는 역시 북원을 끌어들인 것이 된다. 나라와 백성들을 크게 해치는 행동을 한 것.

고의로 한 것이 아니라 해도 이것은 무조건 치명적이다.

한 자들은 마땅히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고, 건문제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건문제에게까지 큰 소리를 치며 버티고 있고, 이에 주체는 그들을 치기 위해 거병했다고 했다.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

이렇게 지각이 없는 자들이 권력을 휘두르며 나라를 좌우하는 것은 온당치 않았고, 대죄를 범했음에도 그들을 제재할 수 없으니, 이것이 그가 중앙으로 가야 하는 까닭이었다.

이제 시비는 양자가 해결해야 했고, 여기에서 막여사는 북원을 막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조우해 북평군을 치지 않은 것이 그들을 도운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충돌했다면 피차 공멸에 이르렀을 것이고, 그사이 북원은 장성을 넘는 것이다. 진압군도 이제야 출정했는데, 벤야시리가 대군으로 남하했을 경우 무엇으로 감당했을 것인가.

지극히 바르게 계산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추룡이 원기(주체)를 도운 것은 대大와 관계없는 부질없는 인정이었음을 알 수 있고, 생각 역시 짧았음도 알 수 있었다.

북평에서 돌아오며 그는 화를 피하기 위해 악불비가 보를 해산하고 가족들과 피하는 것을 최선책이라 생각했다. 그중에는 막여사와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었다. 어려움에 당면해 너무 쉽게 포기하려 했었던 것.

그랬다면 지금의 상황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섬서군은 뭉쳐지지 않았을 것이고, 황자징은 또 이경륭을 보내 북평왕부를 제압하려 했을 것인데, 양자가 싸우는 사이 벤야시리가 장성을 넘어 대란이 일어났을 것이었다.

북평은 물론 하북성이 이미 도륙당했을 수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할 바를 찾았던 막여사가 옳았던 것!

코가 빠진 추룡을 보며 장완옥은 빙그레 계속 미소 지었다.

“아직 어리니까 배우면 된다. 무슨 일이건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깊이 생각해라. 큰일을 할 때는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올만 한 하나가 승패의 가름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처녀 때는 나도 아버지가 너무 이상하다 했었다. 좀 더 호탕하게 나가 주기를 기대했지만 의외로 소극적이라 실망까지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필승의 비결이더구나. 하하……!”

사실이라면 추룡의 성격은 장완옥 쪽인 것 같았다.

악벽강도 함께 있었는데 조심조심 듣고만 있었다.

시어머니가 될 사람의 앞인 만큼 입도 벙긋하기 어렵긴 했지만 들으며 열심히 배우고 있는 눈치였다.

어쨌건 북평왕부와 조정 간의 일이었고, 추룡의 걱정은 막여사에게 있었다.

“지켜보며 배우겠습니다. 아버지께 갈 것을 허락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장완옥은 허락하지 않았다.

“걱정하는 것 같다만 부질없는 일이다. 연왕이 거병한 이상 모든 관문들이 다 봉쇄되고 비상이 걸렸을 것인데, 이런 시국에 거기까지 갈 수도 없고 간다 해도 도움 역시 되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대군에 둘러싸여 계시니 걱정하지 말거라. 네가 아버지를 능가한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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