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14화 (114/150)

# 114

그여야 하는 이유 (2)

“와아아아아!”

하늘이 무너져 내릴 듯한 함성!

기어코 공개로 반란의 격문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여기에서 주체는 분명히 주적을 건문제가 아닌 ‘간신’들이라 지적했다. 어린 황제를 현혹해 혼란을 가중시키는 황자징과 제태 등 역신들을 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런 후 건문제를 보위해 부국을 이루겠다는 뜻을 공표한 것이다. 사실대로라면 반역이라고 볼 수만은 없었다.

건문제에게도 거병의 동기와 목적을 쓴 상소문을 지급으로 날려 보냈다.

고 황제께서는 퍼부어지는 원의 시석을 뚫고 이 나라를 이루셨나이다! 하나 제태, 황자징 등 역신들은 폐하를 바르게 보필하지 않고 간계를 부려 혈육을 갈라놓고 친지들을 치는 등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나이다! 어찌 이를 보고만 계시나이까. 북평에 머문 지 이십 년, 신臣은 고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들어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하며 국경을 지키는 일에만 몰두하였사온데, 오늘 장병, 사귀 등을 체포해 문초해 보니 역신들이 주적까지 끌어들이려 한 흉계가 드러났나이다! 지하에 계신 폐하께서 아시면 피를 토하실 일로서, 유훈에 따라 역신들을 토벌하고자 하오니 헤아리소서!

주체는 도연에게 민병民兵을 모집케 해 삽시간에 북평의 군력은 십만으로 늘어났다.

성을 완전히 장악하느냐, 명령에 따르느냐의 차이인 것으로 복종할 때와는 천양지차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북평왕부에는 곧 초유의 위험이 닥쳐왔다.

“이도군이 물밀듯 몰려오고 있다 하옵니다! 병력이 이십만에 달한다 합니다!”

바로 그러했다.

북원의 벤야시리가 이십만의 대군을 몰아 장성으로 진군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도성의 전력이 십만이라 한 것을 생각해 보면 타 지역의 병력까지 이동시킨 것을 알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섬서군과 청주군까지 진격해 오고 있습니다! 도합 십삼만, 거의 사십만입니다!”

급기야 대동에 진을 쳤던 섬서군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산동 청주에 주둔했던 금군 역시 진군해 오고 있었던 것!

주체 등 도연의 안색이 완전히 흑색이 되고 말았다.

시작하자마자 바로 최악의 위기가 닥친 것이었다.

십만까지 병력을 늘였다 해도 이 많은 수효를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원군은 어디에 있느냐?”

“이도를 출발해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보름 내에 대대적인 공격이 시작될 것입니다!”

십오 일.

도연은 이를 악물었다.

“승수를 헤아리자면 남하해 청주군을 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 그럴 수가 없는데, 출정하면 섬서군이 배후를 칠 것이고, 벤야시리가 북평을 장악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도군을 상대할 수도 없습니다. 섬서군을 치고 대동을 점령해 추이를 살피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합니다.”

마땅한 작전이 없었다.

오고 있는 섬서군이 팔만! 병력으로는 북평군이 위다. 그러나 섬서군은 제대로 전투력을 갖춘 정예군이고, 십만으로 불어났다 해도 북평의 정예군은 삼만뿐으로서 민병들은 조련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충돌해 이길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청주군이 가장 약세다. 그러나 남하하면 섬서군이 지원할 것이니 완패完敗당할 것은 불을 보듯 정해진 일이었다.

이긴다 해도 완파되다시피 할 것인데, 이십만 이도군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도 없는 일.

“출정한다! 최대한 신속히 진군하라!”

둥! 둥! 둥!

두두두두두-!

어쩔 수 없이 주체는 도연의 권고에 따라 전군을 이끌고 대동 방면으로 향했다.

청주군은 멀리 있어 상대하기 어렵고 급한 불로서 섬서군을 상대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무덤을 파는군!”

그러나 사면초가. 북평군의 출정은 곧 북상하던 청주군에 알려졌다.

“경로를 형대邢台 방면으로 바꿔라! 필경 산서와의 접경에서 충돌할 것이니 최대한 신속하게 이동해 배후를 친다!”

첩보를 접한 청주군은 직으로 올라가던 행로를 곧바로 대동 쪽으로 바꿨다.

한데 닷새! 황자징의 계책에 쐐기를 박는 상상치도 못할 변수가 일어났다!

첫 번째 대사건이 생긴 것은 서성西城 나원의 웅이산熊耳山 앞에 펼쳐진 평원이었다. 하북에 속한 산서와의 접경 지역으로서 예상대로 여기서 북평으로 진격하던 섬서군과 주체, 도연이 이끄는 대군이 마주쳤다.

한발 앞서 도착한 것은 북평군이었고, 주체, 도연, 장옥, 병사들 등 모두가 비장해 극한 심정이었다.

필사의 각오로 나오긴 했지만 역시 승산이 희박했던 것이다.

청주군까지 올라오게 되면 끝이 나기 쉬웠다.

산을 등지고 벌판에 화포를 깔아 놓듯 앞세운 채 섬서군이 도달하기를 기다렸는데, 그들이 나타난 것은 반나절 후였다.

“왔다!”

“사정거리에 들어오면 사정없이 포를 퍼부어라!”

모두의 이마에 땀이 흐르는 그런 순간이었다.

“잠시 기다려라.”

한데 북평군 진영의 비장함과는 달리 나타난 섬서군은 천만뜻밖에도 산보라도 나온 듯 한가한 모습이었다.

당도하자 곧 두두두, 한 명의 장수가 별장 몇을 거느리고 북평군의 진 앞으로 치달려 왔다.

육 척의 키에 검은 갑주! 넉 자 반의 장검을 찬 웅혼한 기도를 지닌 오십 대 장수로서 섬서와 하북이 다르므로 알아볼 사람이 드물지만, 안다고 해도 생소한 그런 인물이었다.

무언가 하여 주체와 도연 등은 진 앞으로 나갔고, 도착하자 그는 번쩍이는 눈으로 먼저 도연을 봤고, 다음으로 주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연안도위부의 막여사다! 귀관들은 어디 소속인가? 벤야시리가 대군大軍을 이끌고 남하하고 있다는데 여기서 무얼 하는가!”

“막여사?”

쿵! 모두의 가슴이 떨어졌다.

그러했다. 섬서군의 이동이 수상쩍다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막여사의 존재를 몰랐다. 그랬던 그가 급기야 전면에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놀라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막여사는 계속 형형한 정광이 일어나는 눈으로 부러지게 말했다.

“훈련이라도 하는가 본데 어디 소속이 되었건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다! 시간이 길어지면 북지北地가 위험하고, 혼란만 커질 것이니 명심하여 최대한 신중을 기하라!”

모른 척하고 두두두, 말을 뒤돌려 진영으로 돌아간 후 소리쳤다.

“우회!”

“하-!”

그러자 팔만의 장병들은 일제히 구령을 맞춰 창칼을 허공으로 치켜올려 보인 후 북평군을 옆에 두고 유유히 돌아서 계속 이동하기 시작했다.

“막 장군……!”

꼼짝없이 죽나 보다 비장한 심정으로 나섰던 북평군에게 그야말로 상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도연의 눈가에 얼핏 이슬이 맺혔다.

‘역시 독수리로군! 녀석의 조화가 시작된 게야.’

추룡을 만남으로 시작된 기연! 언제 어디서 어떤 조화가 일어날지는 그 역시 몰랐었다. 한데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조화가 시작된 것이었다.

어쨌건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원 참모는 일대一隊와 함께 산서, 섬서로 가 응원군을 모집하라! 장옥! 군을 돌려 남하한다!”

“명!”

반전!

기가 막힌 조우遭遇였다.

“따르라!”

이를 악문 채 주체 역시 진을 거두게 한 후 명령을 내려 대하남 쪽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작된 개전開戰!

“발사!”

콰콰콰콰쾅-!

펑! 펑! 펑!

“으아아아악!”

“헉! 뭔가! 어디서 이런 포격이?”

결과로 벼락을 맞은 것은 청주군이었다. 섬서군과 북평군의 충돌을 예상하고 배후를 찌르겠노라 올라오고 있던 청주군이 오히려 역공을 당한 것이었다. 신속히 이동한 북평군이 나원 아래 소오대산小五台山 주위에 매복을 한 후 마음 놓고 오고 있던 청주군을 향해 급습을 가했던 것.

“북평군이다! 연왕이 매복을 했다!”

“괴멸시켜라!”

“와아아아-!”

콰두두두두두!

“으아아아악!”

“아악!”

청주군은 삽시간에 지리멸렬하여 흩어졌다.

섬서군을 믿고 방심하고 오던 차에 오백여 문의 화포가 한꺼번에 불을 뿜기 시작하자 완전히 혼이 빠져 버렸고, 찰나 주체가 거느린 기마군이 질풍같이 중앙을 쪼개고 나가는 등 우왕좌왕하는 사이 보병들이 좌우를 들이쳐 손도 쓰지 못한 채 오만의 병력이 바로 거덜 나 버렸던 것이었다.

신 나게 오고 있던 이도군�都軍도 마찬가지였다.

알려진 대로 황자징의 청을 받은 벤야시리는 중원을 칠 절호의 기회라 여겨 이십만 대군을 집결시켰고, 속을 눈치채지 못하게 병력을 나눠 십만씩 거용관 방면으로 이동시켰는데 연산산맥 북쪽에서 봉변을 당했다.

북평군을 비켜 좌회한 막여사는 장성을 넘어 팔달령의 험준한 군도산에 매복했고, 여기에서 오고 있던 이도군과 격돌한 것이었다.

“집중 포격! 궁수, 있는 대로 화살을 퍼부어라!”

콰콰콰콰쾅-!

“와아아아아!”

상태는 소오대산의 싸움과 별다름이 없었다.

이도군 역시 섬서, 청주군이 북평군을 치기 위해 진격하고 있다고 해 방심하고 오고 있었던 터였다.

황자징은 한발 앞서 후방을 교란시켜 주길 원했으나, 꾀를 내어 오히려 느리게 이동, 섬서, 청주군과 북평군이 격돌하는 사이 비어 있다시피 한 장성을 장악한 후 북평으로 들어갈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도중에 연산산맥 중 가장 험하다는 군도산에서 복병을 맞아 불시의 기습 공격을 당했던 것이니 당연히 버텨 낼 재간이 있을 리 없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분명히 주체는 주력군을 끌고 대동으로 향했다 들었다는데!”

“흉계인 것 같습니다! 황자징이란 놈이 우리를 끌어들여 섬멸시키기 위해 간계를 쓴 것 같은 느낌입니다!”

“퇴각하라!”

벼락 치듯 한 포화에 집채만 한 바위가 굴러떨어지는 등 폭우 같은 화살이 퍼부어지는 속에 일진 십만十萬이 힘도 못 쓰고 대파되어 버렸다.

상상치도 못한 변수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응천부.

“그게 무슨 소리냐! 섬서군이 명에 따르지 않다니? 연왕을 비켜 이도군을 치는 통에 청주군이 대패大敗해?”

예기치 못한 소식은 닿는 곳마다 사방을 벌컥 뒤집고 있었지만 누구보다 입에 거품을 물 것은 역시 황자징 등 금릉 쪽일 수밖에 없다.

“석천중이 연왕과 손을 잡고 반역을 도모했다는 뜻이냐?”

그러나 섬서군에 대해서는 보고가 좀 묘했다.

“그게 아니옵니다! 급보가 당도했는데, 배신은 벤야시리가 했다 합니다! 청을 듣는 척, 야심을 품은 그가 대군을 집결시켰다 합니다! 이십만이 밀고 오는 통에 그를 먼저 막을 수밖에 없었다 합니다! 북평을 점령한 후 중원을 침공할 속셈이 보인다는 내용입니다!”

“그런……!”

황자징은 눈을 까뒤집었다. 비로소 열심히 세웠다는 원교근공이 엄청난 화근이 되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쯤 되면 섬서군을 탓할 수가 없었다. 아니, 칭찬을 해 줘야만 한다. 주체도 고민거리지만 벤야시리가 대군을 끌고 남하하면 초유의 난변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막으라 해라! 이십만이라니? 곧 연왕을 격파하고 지원군을 보낼 테니 어떻게든 막아 내라고 일러!”

그래서 섬서군은 교묘하게 이선二線으로 빠져 무죄.

“연왕은?”

“덕주德州 부근에 진을 쳤다고 합니다! 산동과의 경계인 지역입니다. 하북이 연왕의 수중에 들어간 것입니다!”

난리가 난 것이었다.

황자징과 제태는 부리나케 건문제를 찾아갔다.

건문제 역시 안색이 파랗게 변해 있었다.

“어이합니까, 태상시경! 결국 연왕이 반역을 했다 하니……!”

“토벌군을 일으키소서! 경병문耿炳文을 정토대장군征討大將軍으로 임명하고 대군을 편제하여 지체 없이 진압함이 상책이나이다!”

“이행하시오!”

다급해진 건문제는 윤허했고 황자징은 지체 없이 형주 및 남부에서 금군을 불러들이는 등 경병문을 중심으로 삼십만 북벌군을 결성시켰다.

한데 장수진에 문제가 좀 있었다.

수장인 경병문은 대단한 장수로 부친 때부터 홍무제와 함께 제업을 달성시킨 대단한 무장으로서, 홍무제가 원을 칠 때 장사성 등의 전투에 참가해 수십 차례나 되는 대소大小 전투를 치르며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맹장이었다.

쫓기는 원군을 쫓아 장성까지 넘어가 연승을 거두는 혁혁한 무훈을 세운 인물이기도 했다.

따라서 정토대장군이 된 것은 마땅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나이가 육십오 세나 된 노장老將이라는 점이었다.

건문제의 주위에 그만큼 유능한 장수들이 없었다는 것.

까닭은 또한 홍무제에게 있었다. 명을 일으킨 뒤 오랜 정쟁을 치르며 홍무제는 개국 당시 공을 세웠던 많은 장수들을 반대 세력이라 숙청했고, 이후 키운 것이 번왕들이라 중앙에는 인물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육십오 세의 그가 정토대장군이 되어 출정하게 된 것이었는데, 더욱 문제는 앞서 말이 나왔듯 현재의 조정은 대다수 남부 인물들이 축이 되어 있었고, 장수들 역시 남부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거의가 북부 장수들에 비해 실전 경험이 없다는 점이었다.

시작부터 암울함이 보이는 상황. 특히 출정 전에 건문제가 매우 괴이한 훈령을 내렸다.

민심을 생각해서였던지 이런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잊지 말고 명심할 것이거니와 연왕과 대치하더라도 그대들은 짐이 숙부를 죽였다는 불명예한 처사가 없게 하라!”

훈령을 들은 장졸들은 모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싸우라는 것인가, 말라는 것인가? 접전이 시작되면 연왕은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인데 우리는 연왕을 죽여서는 안 된다?’

정말 헛갈리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어려움을 지닌 채 출발했다.

민심이란 것도 그랬다.

“결국 연왕이 반란을 일으켰군!”

“역적이라 해야 하는 건지 뭔지 알 수가 없군. 반군을 일으켰으니 역적은 맞는데 사정을 보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으니……! 너무 심했던 것이 맞아.”

북부를 제외한 나머지 남부나 서부 쪽에 소문이 퍼진 것은 한참 후였다.

도처는 벌집을 쑤셔 놓은 듯 뒤집어지기 시작했고 민심은 크게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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