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11화 (111/150)

# 111

운명의 주사위 (3)

어느 쪽이 더 영리하고 빠른 길일까?

친구들과 전소도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게 임 형에게 주어진 길일세! 도연 대사님이 확실히 기인은 기인이시군. 임 형의 신분을 전혀 모르면서도 우리와 길이 다르다 하셨는데 그대로 되고 있으니. 방황하지 말고 돌아가게! 솔직히 우리도 혼자 애쓰는 임 형을 보기보다는 묘족의 대토사로서 위엄을 떨치는 임 형이 더 보고 싶네. 흑·청·홍, 삼족을 통합한 대토사라면 더욱 좋지. 분명히 자랑스러울 거야.”

묘족을 통합한 대토사.

분명히 멋진 것이었다. 장성에서 번을 서며 임백호는 귀주 청묘족의 인구가 오십만, 운남의 흑묘가 삼십만, 호북, 하남의 홍묘족이 사만이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합한 대토사라면 정말 왕王이었다.

백만의 일족을 거느리는 우두머리 늑대가 되는 것이다.

노력하기에 따라 도연은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임백호! 과연 그는 묘의 지존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임백호의 표정은 우울했다.

“하지만 난 정말 자네들과……!”

뭔가 이야기를 하려는 눈치였지만 전소가 딱 잘랐다.

“우리에게 이별은 없네! 서로가 어디에 있든 무조건 우린 친구야! 막 형이 남평으로 간다고 했을 때 임 형도 그것으로 끝이다 생각하지는 않았지? 똑같은 걸세! 분명히 말하지만 시간 나는 대로 우린 임 형을 보러 갈 걸세. 가면 바빠지겠지만 임 형도 그렇게 해!”

“……!”

우울한 표정으로 한참 무엇인가를 생각했지만 여기에 용기를 얻은 듯 결국 임백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추룡이 남평으로 가겠다고 하였을 때 분명히 그 역시 그것을 끝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작별.

“우와……! 감추고 있어 몰랐더니만 이제 보니 임 형, 진짜 절색의 제수씨를 알게 되었던 것이군. 지금까지 소저보다 빼어난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막하일세!”

마음이 하나인 친구들이 어찌 석별주가 없겠는가.

“카카카……! 어쩐지 사귀는 사람이 누가 더 아름다운지 비교해 보자 큰소리친다 했더니만 이유가 있었군?”

임백호가 마음을 정함과 함께 친구들은 산채에서 빠져나와 각자의 애인들과 함께 객잔을 빌려 잔치(?)를 벌였다.

임백호는 곱게 단장한 능설운을 데리고 왔고, 전소 역시 늠름하다 싶을 정도로 후덕해 보이는 완욱형을 대동했다.

질세라 장청, 송민, 곽영, 문대위, 허원소, 정백하, 조태형도 멋지게 차려입은 애인들을 앞세웠고, 악벽강 역시 기품 있게 궁장 차림을 하고 참석했다.

능설운을 본 악벽강은 뜻밖이라는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나 미소만 지었고, 뒤늦게 합류한 한자방 등은 코가 빠진 모습으로 입맛을 다셨다.

“다들 운도 좋고 여간 눈이 높지 않군. 한결같이 미인일세.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는데, 우리만 외기러기 신세라니.”

허원소, 조태형 등은 좀 더 일찍 친구들을 만남으로 인해 소개를 받아 열심히 사귀는 처녀들이 생겼지만 한자방, 신학철은 그대로 외기러기!

“하하……! 둔촌에 미인은 많네! 원하면 자네들도 소개해 주겠네! 아쉬운 대로 일단 홍이를 애인 삼게나!”

홍이!

이 자리에서 가장 불청객이었다. 오이 향수와 더불어 임백호, 추룡에게 연鳶의 인연을 가져다준 귀여운 소녀!

언니가 단장하고 나서니 죽어도 따라오겠다고 해서 함께 와 있었는데, 그러나 뭐, 한자방, 신학철은 바로 퇴짜를 맞았다.

“흥! 나 눈 높거든. 크면 누구보다 더 미인이 될 거고! 난 나중에 추룡 오빠에게 시집갈 거야! 재취도 좋고 뭣도 좋고, 무조건 이유 없어! 그러니까 꿈도 꾸지 마!”

도끼눈을 하고 추룡에게 으르댔다.

“추룡 오빠! 놀러 오기로 해 놓고 안 왔지! 거짓말했지?”

능소홍, 드디어 열 살!

“카카카……! 막 형은 둘째 제수씨 후보까지 확보하고 있었던 거야?”

웃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능설운을 봐도 그렇고, 장차 누구보다 더 아름다운 미인이 될 법한 그녀(?)였다.

타는 듯 붉게 물드는 단풍, 푸른 하늘 새털구름.

“가겠네, 막 형.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행복했네. 자네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천하에 가장 여유로운 부자였어. 절대 잊지 않을 걸세.”

“반드시 최고의 대토사가 되게! 자네라면 되고도 남아! 시간 나는 대로 황석으로 놀러 가겠네. 만인의 오빠를 봐야지.”

“핫핫핫……! 갑자기 겁이 나는군. 천만인의 오빠인 자네가 오면 인기가 싹 가실 것이니 말일세. 중히 의견 받들어 반드시 큰일을 이루는 토사가 되겠네. 다시 만나세나. 시간 나는 대로 찾아오겠네.”

추룡과 임백호는 ‘꾹!’ 손을 맞잡았다.

항주의 악묘에서 엉뚱하게 만나 이 년여를 같이 지내며 친형제보다 더 깊은 우정과 의리를 쌓은 그들.

두 사람이 모두 코끝이 싸해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아무도 작별을 말하지는 않았다.

손으로 전해지는 서로의 정을 느끼며 못내 이별을 아쉬워했지만 그러나 이젠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보기보다 마음이 약한 임백호의 눈에 눈물이 핑 고였지만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결국 손을 놓고 말고삐를 돌렸다.

“하-!”

콰두두두두!

치달려 가는 그의 말안장 앞에는 능설운이 앉아 있었다.

방황하던 중 추룡을 만남으로 인해 많은 것을 배워 떠나는 그였다. 가장 큰 것은 늘 밝게 웃으며 주위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떠나가는 친구를 보는 추룡의 가슴에도 아픔이 남았다.

엉뚱하고도 유쾌했던 친구. 마침내 그가 일족에게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천하에 대명을 떨치는 묘의 대토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서운하시겠군요. 이 년이 넘도록 형제 이상으로 정들어 오신 임 대협인데.”

악벽강도 함께 나와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뭐, 추룡은 곧 마음을 추슬렀다.

“사실 마음 한구석이 빈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참 좋군요. 잘돼서 돌아가는 것이니. 서운하지만 괜찮습니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가면 될 테니까요.”

악벽강은 미소 지었다.

“엉뚱하셨지요. 신고식 때 들어와서 느닷없이 색왕녀라 소릴 질러서 놀라기도 했고. 다들 비슷하지만 가장 유쾌한 분이셨어요. 틀림없이 훌륭한 토사가 될 것입니다.”

피식, 추룡은 고소 지었다.

“저도 그때 엄청나게 당황했는데……! 실은 모두를 만나게 된 것도 임 형 덕분이었습니다. 만나자마자 악묘에서 사고를 쳐서. 아니었다면 계획대로 저는 대리사의 무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이었겠지요. 덧없이 지내다가 아버님에 의해 남평으로 돌아갔을 것이니.”

분명히 그랬을 수 있었다.

나란히 말고삐를 돌려 돌아가며 두 사람은 변함없이 다정함을 과시했다.

“함께 있는 능 소저를 보았을 때 정말 당황했습니다. 능 소저도 당황했겠지만 어찌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는지. 그 일 아직 기억하세요?”

“그 일이라면?”

눈을 반짝이며 악벽강은 추룡을 응시했다.

“금릉에서 돌아와 절색의 소저를 소개해 주겠다 했던 일. 가가께서 바람맞힌 소저가 바로 능 소저였어요. 모른 척했지만 우린 아는 사이였습니다.”

‘헉!’ 소리가 나올 지경.

자신도 모르게 추룡은 입을 쩍 벌렸다.

“그 소저가 능 소저였다고요?”

킥킥, 드물게 악벽강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설마 임 대협과……!”

하지만 그녀도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바로 그날 추룡이 임백호와 능설운을 엮어 주려고 지원사격에 나섰었다는 사실. 이로 인해 결정적으로 두 사람이 가까워지고 연인이 되었던 것인데, 소개해 주려 하고 바람맞히고, 숨바꼭질하듯 숨겨진 사연이 더 재미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날 소개하겠다 한 자리에 추룡이 나갔으면 지금쯤 일이 어찌 되었을까?

황당하다 싶어 추룡은 눈을 끔벅이며 악벽강을 쳐다보았는데, 사건을 모르는 악벽강은 이런 추룡을 마주 보며 거듭 미소 지었다.

“막상 보니 아쉽다 싶으시지요? 나이도 그렇고 능 소저만 한 미인이 없는데. 임 대협을 만나기 전일 텐데 그때 제의를 받아들이셨으면 저 같은 못생긴 사람을 만나 힘드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뭐, 추룡 역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아쉽지 않습니다. 악 매가 능 소저보다 못하지도 않지만 그렇다 해도 저에게는 천하제일의 미인이니까요. 다시 생각하니 그날 안 나갔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임백호와 꽤 난처한 입장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날 드린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마음에 드는 처녀가 있으시면 얼마든지 취하세요. 진심입니다.”

“하하……! 안 될 것 같거든요. 친구들만 생각한다고 서운해하는 악 매인데,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겠죠?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말씀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북평에서 서운함을 표시했던 그녀.

악벽강은 자신도 모르게 홍시처럼 얼굴을 붉혔다.

“바보같이 속을 보이고 말아서……!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두근두근, 추룡은 슬그머니 그녀의 볼에 입맞춤을 했다.

북평에서의 입맞춤 후로 한층 더 자연스럽고 정이 깊어져 가는 두 사람이었다.

금릉.

한동안 머뭇했던 회오리가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왕이 계속 그대로 온건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고?”

시작은 역시 황자징과 제태였다.

“그렇습니다. 왕부 속에서 계속 두문불출하고 있고, 각료들과 북평군도 순순히 말을 따르고 있다 합니다.”

“각료들과 군도 순순히 말을 따른다라. 이쪽으로 마음이 움직였다는 말이던가?”

“아니, 그냥 지시하는 것에 따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둔전을 가꾸라면 가꾸고 훈련을 하라 하면 하고. 워낙 연왕을 깊이 신임하는 데다 도위부가 실수를 해 단시간에 마음을 바꾸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내용입니다.”

“도위부에서 실수라면?”

“회안에 왔던 연왕이 돌아갔을 당시인데, 호위하던 군장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연왕을 경호해 온 만큼 실력과 명망을 갖춘 자들입니다. 체포하여 손발의 심줄을 끊고 불구를 만들었다 하더군요. 연왕의 장수들을 줄이려 한 듯하지만 장병들의 원성이 크다 합니다.”

황자징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무식한 것들이 하는 짓들하고……!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격이로군.”

“수십 년 내내 해 온 짓이 그뿐이니 어쩌겠소. 그나마 전에 있던 자들을 해임시킨 게 다행 같구려.”

“어이없는 일이라서. 조만간 그자들도 물갈이해야 할 것 같소이다. 워낙 기세가 등등해서 그냥 뒀다가는 화가 될 것이니.”

제태도 동의했다.

“따지고 보면 제일 먼저 정리해야 할 자들이지. 어쨌건 연왕이 생각보다 더 독하구려. 동모제인 아우가 폐서인되어 유배당했음에도 침착함을 지키고 있다니. 어찌 도모해야 할지 모르겠소. 온건함을 보이는데 무작정 들이칠 수도 없고. 하북의 민심도 그렇고 주위가 군부로 둘러싸여 함부로 병력이 갈 수도 없소.”

“그래도 해야 하오이다. 여기에서 중지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쉬우니. 하루속히 위협 요소들을 제거해야만 나라가 안정되지 않겠소이까. 달단의 움직임은 어떻소이까?”

“아직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하더구려. 하나,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니 곧 행동할 것으로 보이오. 그들이 장성을 공격하면 싸우느라 군부도 한눈팔 새가 없을 것이니 그 틈을 노려 급습을 가할 수밖에 없겠소.”

변함없이 달단을 허투루 보는 눈치.

황자징은 예리하게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다는 기별도 도착했고, 그사이 빌미를 만들어 보십시다. 아무리 독한 자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도록! 금군을 출격시키지요.”

잠시 뜸했던 회오리. 아마도 벤야시리에게로 간 사신이 기별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그럽시다! 달단이 협조해 준다 한 만큼 더 신경 쓸 게 없으니. 한꺼번에 쓸어 내도록 하지요.”

왕부들에 새로운 조서詔書가 떨어졌다.

나라의 위계질서가 혼란하니 대대적으로 거느린 문무관文武官의 부정을 단속하는 한편, 번왕들에게 왕부 안의 일이라도 함부로 관제官制를 개편하지 말라는 조서였다.

예속된 문무관들을 건드려 번왕들의 손발을 잘라 내는 한편 내부의 일까지 참견하겠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번왕들의 불만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처사가 어디 있는가! 다 좋다 치더라도 왕에게 왕부 안의 일까지 마음대로 하지 말라니? 이야말로 남의 집에 가장家長 행세까지 대신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이에 각 왕부들은 터무니없는 조서에 반발했는데, 그러나 황자징이나 제태가 노린 바가 그것이었다.

“죄인 민왕岷王 주편은 오라를 받아라!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황상께서 자숙을 명하셨으되 일국의 번왕으로서 약간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고 폐하를 성토하는 등 역신逆臣의 행동을 한 죄다! 순순히 오라를 받지 않으면 목을 벨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그리고 또 이경륭이 떴다.

해가 바뀌어 빙풍氷風이 일어나는 건문 원년 이월! 금군을 이끌고 감숙성의 민주로 급습해 간 그는 민주왕부를 들이쳐 민왕 주편을 잡아 또 금릉으로 압송했고, 황자징과 제태는 그를 폐서인시켜 옥에 가두었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사월, 회군하는 길에 이경륭은 호남, 형주로 내려와 이번에는 상왕湘王을 포위했다.

죄명은 정말 터무니없었다. 그가 위조지폐를 찍어 사용하는 등 마음에 내키는 대로 백성들을 죽인다는 것이었다.

일국의 왕이 위조지폐……! 말이 되는 것일까.

그러나 성격이 강직하고 불같다고 전해진 주백은 무릎을 꿇지 않았다.

금군이 왕부를 둘러싸자 격렬히 항의했다.

“나는 고故 황제의 아들이다! 세상이 거꾸로 돌아가도 일국의 번왕이 위조지폐를 만들 일은 없거니와, 법을 두고 백성을 멋대로 죽일 수는 없는 것이다! 간교한 것들이 모함을 하는 것일 뿐으로, 내 어찌 비천한 자들에게 욕을 당하면서 살기를 원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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