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08화 (108/150)

# 108

권력의 횡포 (3)

“황명이 내렸으니 시작하기로 합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역시 연왕이오. 적을 잡으려면 괴수부터 잡으라는 말이 있으니 비밀리에 친군親軍을 파견시켜 왕부를 포위한 후 급습으로 그를 제거한 다음 대대적인 삭번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소?”

제태는 먼저 연왕을 거론했다. 가장 세가 강성한 인물이니 그부터 치고 시작하자는 것.

그러나 황자징은 다른 의견을 내었다.

“바르지 않은 것 같소이다. 연왕은 실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올시다. 오랫동안 병력을 키워 혼자만도 수월한 상대가 아닐뿐더러 많은 번왕들이 그를 옹호하고 있소이다. 잘못 들이쳐 실패라도 하면 위기감을 느낀 타 번왕들이 동조할 것이니 먼저 그를 옹호하는 번왕들을 제거해 수족을 자른 후 마지막으로 처리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오이다.”

“병법에 맞지 않는 일이올시다. 그리하면 연왕 역시 경계할 것이오. 위기감을 느껴 똑같이 들고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오.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으니 한 번 더 고려해 보심이 어떻소?”

그러나 황자징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에 이미 나눈 이야기가 있지 않소이까. 원교근공遠交近攻 말이올시다. 그것을 시행하는 것이오. 그것으로 발을 묶어 두고, 함부로 반발하지 못하도록 타 번왕들의 죄를 들추면 될 것이올시다. 죄가 있어 잡는다는 데야 어찌 반발하겠소?”

원교근공.

언젠가도 한 번 나왔던 이야기.

진나라의 승상 범저가 생각해 낸 삼십육계의 하나로서 먼 곳에 있는 상대와 사귀어 가까이 있는 상대를 공략한다는 술수였다.

제태의 눈이 차가운 빛을 발했다.

“가능성이 있겠소?”

“분명히 그들은 따를 것이올시다. 일단 사신을 보내 보지요. 북평포정사를 좀 더 강력한 인물로 교체시키고, 장병張昺, 장 공부시랑과 사귀, 송충, 경현을 함께 보내 연왕의 군력을 억제시키면 될 것 같소이다.”

건문제가 일을 일임시켰으므로 제태는 승복했다.

“그러면 누구부터 치는 게 좋겠소이까?”

황자징은 부러지게 대답했다.

“멀리 있는 번왕들이 군력은 강하지만 실제로 그들보다 더 위험한 것이 내륙의 번왕들이올시다. 유사시 연왕을 도와 일어날 수도 있으며 황궁과 가까이 있어 다른 마음을 품으면 더 크게 위험하다는 것이올시다. 개봉에 있는 주왕周王을 먼저 도모하지요. 연왕의 친동생이올시다. 같은 고려 공비의 소생이오. 그를 치면 항의해 올 것이니 트집 삼아 그를 쳐도 좋고! 주왕, 제왕, 민왕, 대왕 순으로 해치웁시다.”

“윤허를 받아 봅시다.”

기어코 변고의 조짐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한 울타리 안에서도 이 잿밥 놀이가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궁중십이감宮中十二監이라 불리는 태감들이었다. 측근에서 황제를 보필하고 옥새玉璽까지 관리하는 환관들.

황자징, 제태 들이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그들도 둘러앉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들을 하고 있었다.

“상황이 더 좋지 않구려. 대신이란 자들이 궁실 안을 아예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으니. 절대 바람직한 일이 아니올시다. 궁실을 어려워하지 않는 대신들은 기고만장하여 역대로부터 나라를 망쳐 왔는데, 고 황제께서 몸져누우신 후로 계속이더니 이젠 더 심해졌소.”

“더 좋지 않은 것은 황상께서 그들을 너무 믿고 계신다는 것이오. 물론 태위에 오르실 때 결정적인 보탬이 된 사람들이니 그러실 수도 있지만, 그것이 폐하만을 위해 한 일이 아님을 아셔야 할 것인데 그런 줄로만 알고 계시니. 궁실의 예법을 엄격히 하여 출입을 자제시키고 보다 가까이 있는 우리에게 뭐라도 물어 일을 도모하셔야 할 것인데, 또 황 수찬부터 부르셨소이다. 아기님이실 때부터 충성을 다했건만 무슨 꼴인지.”

“……!”

상좌에는 두꺼비상의 육순 환관이 하나 앉아 있었는데 내내 눈 감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말씀 좀 해 보십시오, 상선尙膳! 국상이 칠 일 만에 치러졌다는 것도 완전히 상식 밖이거니와 이대로 방치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옵니까?”

궁중십이감의 으뜸으로서 황제를 직접 섬기며 옥새를 관리하는 사례감 태감을 뜻한다. 내시부의 수장으로서 궁실의 총관과 같은 셈이었다.

한참 만에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면 우리가 어쩌겠나. 황상께서 묻지 않으시는데 먼저 입을 놀릴 수도 없는 것이고. 화만 당할 일이야. 지금의 우리는 폐하를 보필하는 내관이 아니라 허드렛일을 하는 머슴일 뿐이라네. 모두가 고 황제께서 자초하신 일이지.”

그대로였다.

역대의 황제들 중 홍무제만큼 환관들을 멀리한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을 풍운 속에서 살았던 그는 이들을 남자답지 못하다 여겨 멀리하고 측근에 금의위를 뒀던 것이다.

권문의 출신이 아니었던 만큼 내관의 중요성을 몰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 궁실 속까지 대신들의 무대가 되었고, 병석에 눕자 그들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십이감들은 끈기 있게 계속 간했다.

“머슴이라니요? 아무렴 우리가 어찌 머슴에 비유될 수 있단 말씀입니까. 어떻게든 대신들의 독주를 막아야 합니다. 분명히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황상을 둘러싼 인물들은 십중팔구가 왕부를 적대시하는 인물들이온데, 이대로라면 필경 나라에 대변大變이 일어나고 맙니다. 황 수찬은 더욱 그런 인물입니다. 태사부로서 번왕들에 대한 경계심만 심어 준 터에 태상시경이 되었으니 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뻔하지 않습니까? 정말 피바람이 일어나야 하는 것인지요?”

“어떻게든 간하여 회오리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만 예법이고 법통이지 저들은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왕부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지만 우리보다도 왕야들을 모르는 자들입니다. 충돌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니 없이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중에서는 유일하게 상선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옆에서 보필하므로 왕자들의 자질이나 성격을 가장 잘 아는 게 사실 이들일 수도 있었다.

“……!”

두꺼비상의 상선감은 계속 입을 다문 채 무엇인가를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이윽고 무거운 개탄과 함께 다시 말문을 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인가?”

태감들은 일제히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고 황제 폐하께서도 우려하셨던 일로 알지만 상잔만큼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상선감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네. 황상께서 태위에 오르시고 그들이 태손태사로 낙점될 때부터 떠났다고 봐야지. 홍무 폐하께서 집정하실 때부터 측근에서 섬겼으되 그들은 폐하께 늘 반대의 것만 간했어. 법통에 따라 표 전하께서 태자가 되셨으나 홍무 폐하께서는 더 전부터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계셨었네.”

누구라고 잘라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표 전하께서도 생전에 많이 고심을 하셨네. 황상께서는 그러하신 전하를 보며 자라셨으므로 번왕들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이 아닐세. 태자 전하께서 훙(죽다)하신 후 태손에 오르기까지 크게 불안해하기까지 했던 터이지. 이 우려를 덜어 준 것이 유삼오, 유 독학사 등 저들이었고, 이후로도 저들은 번왕들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만 심어 줬네. 가장 강경한 인물이 황 수찬이기도 하지. 한데 그에게 왕부 일을 일임하셨으니 간하여 될 일이 아닌 걸세.”

깜짝, 모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벌써 일임하셨단 말씀입니까!”

상선감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최소한 문밖에서 지키는 사람이 상선감이니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안다.

“늦은 거야. 특히 더 우려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말하려다 말고 삼간 후 육 척가량의 키에 별나게 눈에 정광이 도는 인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도지감都知監, 북평에 삼보가 가 있지?”

“그렇습니다.”

“……!”

상선감은 무거운 표정으로 또 한참 동안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이윽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은밀히…… 전하게.”

“명!”

그들만의 이야기. 무엇을 전하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궁실 내부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곳은 도위부!

“뭐가 어쨌어? 장병이 북평포정사?”

이순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위에는 변함없이 검은 장삼의 각료들이 싸늘히 눈을 번쩍이며 둘러서 있었다.

“지금 내가 뭔가 잘못 들은 것 아닌가?”

“아니, 틀림없습니다. 분명히 황 수찬이 태상시경이 되었고, 장 시랑을 북평포정사로 임명했다 합니다. 사귀가 북평도휘사사가 되었고, 송충, 경현이 북평도독으로 임명되어 군을 제압한다고 하더군요.”

이순문은 너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는 표정이 되었다.

“무슨 어이없는 짓이야! 황 수찬이 태상시경이 되었다는 것도 문제가 큰데……! 수찬이라 해야 한림학사가 아닌가? 얕볼 수는 없다지만 문관에게 왕부의 처리를 일임시키면 어쩌라고? 더욱이 장병은 공부시랑이 아닌가? 죄다 군부와 관계없는 사람들이야! 문인들에게 병권을 맡겼다는 소린가? 그것도 북평 같은 호랑이 굴의?”

완전히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포정사는 도위부에서도 매우 높은 직위였다. 명은 금릉을 중심으로 해 중원을 서, 남, 북, 셋으로 나눈 후 육상삼군陸上三軍과 수상양군[長江水軍, 海上水軍]을 두었고, 이들을 다스리는 게 오군도독이었으며, 산하에 안찰사, 포정사, 도지휘사를 둬 각 성省의 업무를 장악, 감시하도록 파견했는데, 포정사는 행정을 맡았고, 도지휘사는 군병을, 안찰사가 감찰과 총지휘를 맡았다.

따라서 뒤의 셋은 오군도독의 바로 아래 직위였다.

황제의 직속이므로 최고 통수권자는 홍무제였으나 이젠 건문제가 된 것인데, 이런 직위를 도위부에 상의 하나 없이 황자징이 결정해 문신文臣들에게 준 것이다.

황자징에게 국정을 맡겨 금의위까지 그가 좌우하게 된 것인데, 시작하자 바로 군부와 관계없는 문인들에게 한 개 성의 생살권을 준 셈이다.

물론 제태가 함께 일을 도모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금의위 위에는 황제만 있었을 뿐, 지금까지의 병부상서(국방장관)는 오군도독의 위 직위가 아니었다.

승상을 처단하고 첨도어사까지 간단히 삭탈관직시킨 금의위가 졸지에 대신들의 아래로 떨어진 것!

당연히 모두의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황상께서 워낙 신임하는 자들이니. 황위에 올리기까지 한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팍! 이순문의 손이 서탁 위로 떨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권력 다툼을 하자는 게 아니라 이건 보통 사안이 아니야! 다시 말해도 북평은 호랑이 굴이나 같고, 연왕은 식인 호랑이나 같은데 문신들을 보내 그들을 어떻게 도모하자고? 이게 말이나 되나?”

누가 생각해도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환관 정치를 멀리했지만 그래도 홍무제는 금의위를 둬 감시 정치를 했는데, 태평성대도 아닌 터에 건문제는 환관도 멀리하고 금의위도 중히 여기지 않은 채 대신들을 직속으로 하여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것.

군부와 궁실 등 안팎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실력자들을 가까이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황제가 그렇게 하겠다는데 어쩔 것인가.

이들이라고 안 됩니다, 할 수가 없다.

황자징 등 일파에 대한 건문제의 신임도가 워낙 높아 자칫하면 화나 당하기 십상이었다.

‘끝났군!’

이순문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인들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석천중이 우려했듯 지금까지 대신들의 목을 잡고 흔들었던 게 금의위였으니 왕부 다음으로 이들이 조심해야 했다. 언제 보복 조치가 단행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금의위의 시대도 막을 내린 것이다.

좌천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공부시랑 등의 인물을 포정사로 임명했지만 현재 북평에 있는 직위의 사람들을 공부시랑으로 임명하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권력층에는 어떤 바람이 불고 있거나.

“하아압!”

쾅! 쾅! 쾅!

이런 꼴이 싫어 향용이 되었다 했듯 추룡이나 친구들은 변함없이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하는 일은 같았다. 홍무제가 죽은 직후 비상까지 걸렸던 터이지만 주위는 잠잠했고, 이로 인한 것인지 악불비는 다시 봉문령을 해제했다.

악충보의 내·외당은 다시 영역을 순회하며 지역민들을 살폈고, 추룡과 친구들은 황산성의 양곡상과 산채를 오가며 계속 양곡을 확보하고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굴러!”

“하아아압!”

달라진 게 있다면 비밀리에 십왕봉의 산채 속으로 들어간 특과의 사람들과 선별된 인물들의 수련 현황이었다.

그들은 친구들이 북평에서 돌아오기 더 전에 선별되어 양곡상을 차리는 등 산채의 건물들을 보강하고 있었던 터인데, 처음의 수효는 백오십 명이었다.

악충보에서 가장 신임하는 인물들을 차출해 비밀리에 일을 일임시켰던 것! 지주, 청국 분파를 포함, 내·외단을 털어 가장 충성심이 강한 수하들이 선별된 셈이었다.

이후 오십 명이 더 들어와 총 이백 명이 된 상태로서 또한 삼 내단과 함께 특과로 묶였는데, 산채의 보강이 끝난 상태임에도 이들은 악충보로 돌아가지 않았다.

새로운 분파라도 된 듯 십왕봉에 남아 수련을 쌓고 있던 것이다.

한데 그 내용이 대단했다.

알려져 있듯 특과가 생긴 것은 추룡 때문이었다. 사윗감이지만 말단에 머물고자 함으로 무예를 상향 조정한다는 명목하에 만든 게 특과였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 특과의 사람들은 칠우창법을 수련하고 있었을 뿐인데, 뜻밖에도 악불비가 산채로 들어온 모두에게 정말 정수精髓를 푼 것이었다.

단주급 이상이 배우는 무왕검법과 붕거창법의 정수를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에 이백 명은 상승 수법을 수련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방패 기술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 분명히 이것은 심상찮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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