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07화 (107/150)

# 107

권력의 횡포 (2)

“남이라도 이러지는 못할 것인데 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오랫동안 맞서 온 것도 좋고 부자간의 혈연의 정을 막은 것도 좋다. 습격도 좋고 무엇도 좋다! 한데 국장이 칠 일? 이것이 정녕 예의범절에 반듯한 영혜한 손자의 짓이란 말인가?”

찢어진 민심에 영걸이라 하나 천출 소리를 듣고 있는 홍무제를 그대로 천출로 인정한 것과 비슷하다.

눈에 핏줄이 일었다.

“누구의 뜻이든 있을 수 없다! 말로만 남부의 빼어난 유교 예법에 황실의 법통을 운운하며 저희만 잘난 듯 하는 자들이 삼강오륜을 무시하고 법통까지 차 버리다니! 이것이 그들의 예법이란 말인가?”

장옥으로부터 잠깐 이야기가 나왔던 적이 있었다.

명이 출범하며 도·불교를 탄압하므로 유교가 승해져 현 조정의 중신들이 대부분 유학을 한 남부의 관료들이라는.

주체가 후계자로 떠올랐음에도 밀려난 까닭이 이들이 주장한 황실의 법통과 예법에 따라서인데, 중립에서 봐도 이쯤 되면 흑백이 뭔지 알 만한 것이다.

말한 그대로 유학의 기본이 삼강오륜이고, 첫 항렬이 군위신강, 둘째가 부위자강인데 모두 무시되었고, 칠일장이라는 초유의 영결로 황실의 법통도 뒤집혔다.

황당해하고 있을 것은 도처의 지방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역마를 타고 달렸기에 주체는 일찍이 갔다지만 그렇지 못한 관속들은 국상 소식을 듣고 출발해 오다 말고 뒤돌아갔거나 지금도 가고 있을 테니.

그러나 아무리 분노해도 소용이 없다.

‘짐에게 뜻이 있는데 누가 막을 수 있는가.’라는 말이 있듯이 황제는 나라의 주인이라 무엇이건 명할 수 있고, 윤문은 황제가 되었으니 휘하의 관료들은 이제 천하의 실세인 것이다.

하인이라 하기는 뭣하지만 주인이 하겠다는 일을 아랫사람이 무어라 할 수는 없었다.

쏘는 듯한 눈으로 군장들을 보며 도연이 입을 열었다.

“계속 습격을 받았다고?”

“그렇습니다. 오던 길 내내.”

가까스로 돌아온 원기의 얼굴에도 노기가 서려 있었다.

“소관만 해도 세 번이고, 다들 비슷했다 합니다. 비적 행세를 하고 있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 소리고, 첫 번째 습격은 크게 위험했었습니다. 그들이 사 무림의 악적까지 동원했더군요. 도마 한상필이라는 자가 모습을 보였습니다.”

“허허허!”

좀처럼 웃지 않는 도연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몽마 이상의 혈명을 지닌 마두가 동원되었다고 하니.

“용케 빠져나왔군!”

원기의 눈에 기묘한 빛이 떠올랐다.

“그가 와 줬습니다. 주먹으로 통나무를 꺾었다 하더니 확실히 도마의 목을 잘라 내더군요.”

번쩍! 도연의 눈이 벼락 치듯 한 정광을 쏟아 냈다.

“그?”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분명한 것 같습니다. 뒤늦게 청한 사람들이 왔으나 그가 아니었다면 크게 위험했을 것입니다.”

“정확히 그가 맞나?”

“음성을 바꾸고 있었지만 체격과 넉 자 반의 장검, 태도 등, 그밖에 없습니다. 덕분에 모두가 살아난 셈입니다.”

“고마운 일이군. 설마 나서 줄 줄은 몰랐는데……. 첫 습격은 크게 위험한 바 있다. 거기에서 주군의 실종이 알려졌다면 문제가 커졌을 테니. 부하들을 치하하고 돌아가 쉬게.”

“타 왕부들과 주위의 사정들은……?”

“짐작한 대로지. 다들 눈치만 살피는 상황! 보다 섬서군부 쪽에 미심쩍은 이상 동향이 있다! 봉쇄령이 내렸음에도 유독 그들만 운집했는데, 봉쇄령보다 더 일찍 움직인 듯하다. 안찰사가 석천중이지?”

“경계할 만한 인물은 아닙니다.”

“나도 그리 안다만 사전에 감찰까지 했다고 하니 주시해야 할 것 같다! 섬서가 멀지 않은 터에 큰 이변이 생길 수 있으니! 공교롭게 진왕 전하까지 타계하심으로 태원 쪽에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데, 감시가 심해져 어찌할 방도가 없다! 무슨 일인지 최대한 알아보도록!”

“명!”

도연 역시 만만치 않게 정세를 살피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래도 저래도 불리한 것은 역시 그들인 것 같았다.

“고생들 했다. 귀대하도록. 전하께서 상을 내리실 것이다.”

“참모님도 고생하셨습니다!”

내전에서 나온 원기는 곧 대기하고 우양, 주탁 등 고생한 부하들을 치하하고 자대自隊로 돌아가기를 명했는데, 여기에서 또 최악의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우양, 주탁 등 군장들이 막 왕부를 나섰을 때였다.

“거기 다들 섰거라! 귀관들! 거용관의 주, 우를 비롯한 무장들이지?”

“그렇……습니다만.”

말에 오르려던 주탁, 우양 등 모두는 멈칫하여 행동을 멈췄다.

나오자 왕부 측면의 담 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검은 장삼에 얼음장 같은 표정을 한 이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나서며 그들을 제지한 것이었다.

앞선 자는 칼날 같은 안광을 가진 쉰 안쪽의 남자였다.

다가오자 은빛 패찰을 꺼내 보이며 물었다.

“지금 어디에 다녀오는 길이냐?”

금의위! 우양, 주탁은 한 번 더 멈칫하는 기색이 되었다.

“전하를 호위하여 금릉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만.”

사내는 두말 않고 대동하고 온 흑의인들에게 명령했다.

“모두 체포해라!”

“옛……?”

그야말로 날벼락 같은 소리! 우양, 주탁 등 군장들에게는 이런 홍두깨가 있을 수 없다.

“무슨 말씀이신지? 소관들을 왜 체포한다는 것입니까?”

사내는 싸늘히 냉소를 머금었다.

“몰라서 묻는 것이냐. 현재 전군에는 이동 금지령과 비상이 걸려 있다! 국가 비상시국인 것이다! 이런 엄중한 때에 국경을 지켜야 할 자들이 멋대로 자리를 비우고 이탈했으니 불복종에 군무를 태만히 한 죄다!”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치켜뜨여졌다.

“하나 소장들은 전하의 분부를 받잡고……!”

그러나 소용없었다.

사내는 코웃음부터 쳤다.

“명령은 병부에서 내려졌다! 장수에게 병부의 령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을 잊었더냐? 모두 포박해라!”

완전히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주체를 호위코자 출발해 천신만고 끝에 돌아온 그들. 그랬던 그들이 다른 곳도 아닌 북평왕부의 문전에서 체포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우양, 주탁 등 군장들은 너무 어이가 없는 심정이 되어 경계 태세를 취했다.

“말이 되지 않지 않습니까! 물론 병부의 령이 엄중한 것은 알지만 다시 말씀드려도 소장들은 북평군부에 속한 사람들로서 전하의 명에 따라……!”

그러나 이런 말은 역시 소용없었다.

“북평군부는 나라의 군이 아니라 사병이란 말이더냐? 불복할 텐가?”

불복.

할 수 없었다. 하면 죄가 더 추가될 뿐만 아니라 북평군부 전체가 내사를 받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반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자칫하면 장옥 등 수뇌부까지 휘말려 드는 것이다.

주체가 손을 써 주기를 기다리며 자신들이 죄를 뒤집어쓰는 게 낫다는 것.

‘쳐 죽일……!’

우양, 주탁 등은 눈에서 불이 튀는 느낌이었지만 입술을 깨문 채 포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참혹히 떨어트려진 고개.

“……!”

소식을 들은 주체의 주먹이 으스러지게 움켜쥐어졌다.

왕부의 앞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곧 소식을 받았지만 그러나 사실은…… 그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보복이었다.

작정을 하고 시작한 일인데 어떻게 손을 쓴단 말인가.

이렇게 잡혀간 우양, 주탁 등 장수들은 안타깝게도 같은 날 단근질을 당해 불구가 되었는데 이 사건은 사록史錄에 기록되었을 만큼 유명하다.

비통함이 극한에 이를 정도였다.

응천부.

“이건……?”

그런 속에 주윤문은 마침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열여섯 살에 황제가 된 그! 기록에는 그가 영혜온화英慧溫和한 성품에 예절이 바르고 효성 또한 지극하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일까.

정말 건문제가 영혜라 할 정도로 지혜가 있고 예절이 바르며 효성이 지극한 인물이었을까?

뚜껑을 연 눈이 한순간 찢어지게 치켜뜨여졌다.

상자는 홍무제가 전날 남긴 것이었다.

신경쇠약에 나날이 악몽을 꾸던 그가 네 가지의 물건을 넣어 침대의 머리맡에 두었던 그 상자.

-시련이 닥쳐올지 모른다! 차후 마음을 정하기 어려울 때가 오면 열어 보아라. 이 뜻을 헤아리고 마음을 굳게 먹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데 그 물건들이 매우 기괴했다.

이해하기 어렵게도 머리카락을 미는 삭도削刀와, 승의僧衣, 몇 푼의 은자銀子 그리고 유사시에 대비해 몸을 피신할 수 있도록 궁궐을 축조할 때 만든 비밀 통로의 지도였다.

‘무슨 뜻인가?’

만약에 대비해 만든 통로니 지도는 건네줄 만하다. 하지만 설마 황제인 자신에게 변란이 생기면 삭도로 머리를 밀고 승복을 입은 채 푼돈을 가지고 달아나라는 뜻일까?

이치에 맞지 않았다.

이것은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인 사태에서나 있을 법한 일인데 황궁이 위태로울 정도로 큰 변고가 생기면 그때까지 황제는 궁실에 남지 않는다.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밀 통로도 사실은 필요 없었다. 승복을 입고 군사들에게 둘러싸여 피신할 일 역시 있을 수 없고.

결국 혼자 승복을 입고 신분을 감추고 피신하라는 것인데, 그런 일이 발생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밀 통로를 만든 것은 워낙 정변을 겪어 의심이 많아진 홍무제의 성격 때문이겠지만 어쨌건 필요해질 때가 있다면 궁실 내에서 반란이 일어날 경우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역대를 털어도 없다.

궁실이란 곧 황제의 집으로, 목숨을 맡겨도 안심할 만큼 충성심이 강한 환관들로 둘러싸여 있고, 황제를 위해 분골쇄신도 마다않을 최강의 고수들인 대도시위와 황궁 금위군에 호위되고 있었다.

따라서 궁실 반란이란 것은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고, 일어난다고 해도 통로로 빠져나가 진압군을 청하면 될 것인데, 황제가 머리까지 밀고 승려 복장을 한다?

그게 무슨 우스꽝스러운 꼴인가? 위신도 아닌 일이거니와 이건 그냥 궁실이고 뭐고 세상이 당장 모두 적으로 변할 경우에나 할 법한 일이라 봐야 했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봐야 했는데, 더 이상한 것은 ‘이 뜻을 헤아리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한 말과 몇 푼의 은자였다.

당장 하고 있는 장신구만 해도 수천 금이 가는 것들을 지닌 황제에게 몇 푼의 은자를 가져가라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만큼 필경 다른 의미라 봐야 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이해하기 어려웠다. 워낙 신경쇠약에 시달리던 홍무제였으므로 악몽에 기인해 남긴 것이라 볼 수밖에는.

어쨌건 당장 심각한 일이 있었다.

홍무제가 생존할 당시부터 불안한 요소로 작용되어 왔던 일로서, 여기에 대해 또 상소문上疏文이 올라왔던 것이다.

상소를 올린 것은 호부시랑戶部侍郞 탁경卓敬으로서 상소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연왕은 지모가 높고 야심이 큰 인물입니다. 북평으로 돌아간바 우려가 크옵나이다. 북평에는 오랫동안 조련된 병마와 책사가 많아 유사시에 일을 일으키면 쉽게 제압할 수 없사오니 봉지를 남창南昌으로 옮기게 하소서.

건문제를 둘러싼 조정 대신들 중 가장 빼어났다 일컬어지는 준사俊士로서 홍무제조차 ‘국가가 인재를 키우기 삼십 년, 탁경 하나를 얻었다.’라고 칭찬했을 정도의 인물이었다.

가뜩이나 심란한 마당에! 상자를 닫고 그는 밖으로 나가 곧 병부상서 제태와 한림원의 수찬 황자징을 불렀다.

태손이었을 때부터 건문제를 둘러싸고 있던 실세 중의 실세인 인물들이었다.

홍무제가 주체를 태자로 낙점 찍었을 때 강력히 반대해 그를 태위에 올린 한림 독학사 유삼오와 보조를 같이한 세력의 인물들로서 태손이 된 후 주윤문에게 제왕학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도연 등이 우려했던 대로 역시 반反연왕부의 인물들이 건문제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던 것!

장신을 도사로 보내는 등 드문드문 거론된 바 있었지만 병부상서 제태는 회안에서 주체의 걸음을 돌리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건문제는 심란한 표정으로 곧 말문을 열었다.

“탁 시랑에게서 상소가 올라왔는데 북평의 군세를 우려하더군요. 봉지를 남창으로 옮기게 하라니 어이했으면 좋겠습니까? 하라 하면 명을 듣겠습니까?”

솔직히 이것은 좀 우스운 일이었다. 십육 세로서 소신껏 일을 하기는 어렵다 해도 숙부의 신변 처리를 타에 묻고 있었던 것이다. 물으나 마나 주체를 밀어낸 게 그들인데 좋은 소리가 나올 게 뭔가.

특히 기록에 남은 이야기로 건문제는 태손이 되었을 당시 황자징에게 이미 물었던 게 있었다.

자신은 어리고 번왕들의 힘이 커 우려되니 어찌하면 좋을까 했던 것으로서 당시 황자징은 ‘오호십육국의 난’을 예로 들며 힘으로 번왕들을 누르고 세를 꺾어야 한다고 가르친 바 있다.

고양이에게 쥐를 어찌할 것이냐 물은 것과 다름없었던 것!

당연히 황자징은 고개를 젓고 있었다.

“마땅치 않사옵니다! 번왕들의 세가 너무 커 우려되는 시국에 봉지를 옮기라 한다고 연왕이 키워 온 군력을 놓으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수를 달리하여 전체적으로 힘을 감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옵니다. 전날 동문각에서 올린 말씀을 잊지 말아 주소서!”

“가능하겠습니까?”

“심려치 마소서. 소신들이 말끔하게 황상의 우려를 없애 드릴 것이오니.”

배워 온 것도 그렇고 자신을 보이므로 건문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랫동안 짐을 가르쳤고 태손으로 세우는 데 힘을 다해 주신 황 선생을 태상시경太常寺卿으로 임명하겠습니다. 국정을 맡길 테니 최선을 다해 주세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친지인 숙부들을 치라고 적인 사람을 대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황제의 입장에서 번왕들의 힘이 우려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과연 마땅한 일인 것인지.

번왕들에게 군을 감축하라거나 하는 권언도 해 보지 않고 바로 진행된 일이었다.

마침내 상상을 초월할 잿밥 놀이가 시작되었다.

부처를 위한 것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러 나온 황자징, 제태 등은 곧 일파들과 한자리에 둘러앉아 주체 및 번왕들의 문제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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