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105화 (105/150)

# 105

비적匪賊 (5)

현 무림에서 칠천마를 능가하는 명성을 지닌 인물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밀리지 않고 팽팽히 맞서 접전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칼날이 턱밑을 스치고 돌아가도 가슴을 뚫을 듯 쏘아져 와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꼿꼿이 허리를 편 채 변함없이 마주 소나기 검세를 퍼부어 쏟아져 내리는 도영을 차단하는 등 똑같이 시시각각 장검을 날려 그의 머리, 목, 가슴 등에 섬광 같은 검을 퍼부었다. 장이 날아오면 장으로, 차기가 날아오면 차기로 맞서며 어마어마한 맹공을 퍼붓고 있었던 것!

그야말로 용감무쌍! 얼마나 위험한 접전을 치르고 있는지 보는 사람이 더 끔찍하게 여겨질 지경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승부의 이치로서 어차피 둘 다 완벽하다면 물러서는 자가 패한다는 것이다. 물러선다는 것은 실력이 달린다는 증거로서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는 것!

이 법칙에 의해 두 사람은 모두 물러서지 않고 불꽃을 튀기며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인데, 삽시간에 두 사람 모두가 피투성이로 화해 가고 있었다.

칼끝이 머리를 스쳐 머리카락이 봉두난발이 되어 흩어지는가 하면 뺨, 혹은 가슴, 목을 스치며 피차 핏물이 튀고 있었던 것이다.

검과 도가 뒤엉키고, 격렬히 서로를 밀어붙이면서 무릎치기와 각법이 전개되고, 그래도 득을 얻지 못하면 쩡 하는 외침과 함께 한순간 떨어졌다가 또 벼락같이 마주쳐 가며 격렬히 공방을 주고받았다.

완전히 용호상박의 불꽃 튀는 격돌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흐아아아아-!”

창-!

촤ㄱ촤ㄱ촤ㄱ촤ㄱ!

“으아아악!”

그런 사이 원기와 냉안인, 군장들을 도와 나선 백의인과 십여 명의 습격인, 오십여의 봉을 든 인물들과 면사인들 간의 접전도 극에 달하고 있었다.

수효는 부족했지만 천만다행히 출현한 그들은 모두 무위 면에서 면사인들보다 위인 듯했다.

삼백 대 백의 고투였지만 강력한 무예를 바탕 삼아 질풍처럼 면사인들을 위협하고 있었던 것!

가장 맹위를 보이고 있는 것은 흑의인과 함께 대한을 상대했던 백의인이었는데 그의 무위 역시 상상을 넘어섰다.

길다 할 수 없는 석 자의 장검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면사인들과 부딪칠 때마다 검광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또한 권각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하-!”

쾅!

“우와아악!”

진검이 번쩍이는 상황에서 권각을 뻗는다는 것은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것임에도 무지한 검세를 일으켜 상대를 압박했고, 멈칫한다 싶으면 여지없이 대룡파미, 벼락 옆차기로 날려 버리는가 하면 그 즉시 훌쩍 신형을 솟구쳐 다음 상대를 찾아 맹공을 퍼부어 가곤 했다.

더러는 비스듬히 몸을 날려 섬광 같은 검세로 덮쳐 갔고, 더러는 머리 위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며 철퇴 같은 연환각을 날려 상대를 북처럼 두드려 쓰러뜨리곤 하는 모습이 빈틈이 전혀 없다.

함께 나타난 십여 명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결같이 신랄하기 그지없는 검으로서 일거수일투족으로 맞선 면사인들을 거꾸러뜨릴 만큼 가공스러웠다.

흑, 청, 황, 백, 회, 입고 있는 옷차림은 모두 제각각! 특이한 점은 처음 기습할 때만 흩어져 공격을 감행했을 뿐, 혼전이 시작되자 곧 한 방향에 모여 면사인들을 상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철저히 서로를 보호하며 접전을 치르고 있음이 눈에 띄었다.

마주친 상대에게 맹공을 퍼붓다가도 일행 중 누군가가 면사인들에게 둘러싸인다 싶으면 지체 없이 몸을 날려 가세하는 모습으로 창칼이 빗발처럼 나는 살벌한 혼전 속에서도 대단히 좋은 동료애를 보이고 있었다.

“흐아아아!”

퍽퍽퍽퍽!

“크아!”

나중에 나타난 봉을 든 인물들 역시 유사한 형태의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흩어져 면사인들을 몰아치다가도 누군가가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신형을 날려 돕곤 했는데, 뛰어넘는 거리라거나 선풍처럼 봉을 휘둘러 공격을 퍼붓는 기세가 웅혼해 보일 정도로 엄청나다.

든 것이 진검이 아니라는 것뿐 한결같이 백의인에 못지않을 정도의 실력들을 보이고 있었다.

“놈들!”

촤ㄱ-!

“크아아아악!”

여기에 힘입은 군장들의 공격은 완전히 살벌하다 할 정도였다. 원래도 북평군부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원의 침입에 맞서고 있으므로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의 창검은 살인 병기라 할 수 있었지만, 처음부터 표적이 되었던 상태에 화살 세례에 동료까지 잃은 터라 하나같이 분기탱천해 있었던 터!

원진의 압박이 풀리자 마음 놓고 창검을 휩쓸며 면사인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태였는데, 공격력과 위용이 완전히 무지막지하다.

우양과 주탁의 창검의 위력이 어떻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는 터이고, 압박이 풀리자 그들은 바로 방패를 놓고 말안장에 채우고 있던 여섯 자 길이의 대장검과 월도를 뽑아 들었다.

어마어마한 거병들로서 이것들이 회오리를 일으키기 시작하자 일반의 도검으로는 아예 막지도 못할 정도였다.

부딪치면 바로 손아귀가 터져 버리는 등 면사인들의 장검 정도는 그냥 허공으로 튀어 오르고 격중되면 허리까지 동강 나 버릴 정도다. 마차의 방어는 다른 동료들에게 맡기고 무조건 면사인들이 밀집한 곳으로 치고 들어가 월도와 대장검을 회오리같이 휘돌리며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면사인들은 지리멸렬, 피하지 못하면 그냥 사지가 튀어 올랐다.

장수들이 괜히 장수이겠는가.

승부의 축은 결국 군장들과 지원을 시작한 인물들의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속에 육칠백 합!

“하아아아!”

차차창! 펑! 펑! 펑!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다시피 치열히 맞서 공방을 주고받던 흑의인과 도마 한상필의 우열도 가려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어느 쪽도 실수가 없다 할 만치 무서운 집중력과 실력으로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흑의인의 공세가 점점 더 신랄해짐과 함께 한상필의 공격 빈도가 줄어들며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흑의인의 집중력과 속도 등이 약간이라도 그를 능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나, 이런 백중지세의 접전에서 그 약간의 차이라는 것은 엄청난 것이다.

일백 수, 혹은 일천 수가 될 수도 있는 게 겨룸임에도 ‘한 수 위’라는 표현을 쓰고 있듯 한 번이라도 더 칼을 날릴 수 있다는 것은 상대에게 실로 엄청난 위협이 되는 것이다.

막거나 되받아치지 못하면 물러서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우열의 축은 바로 기울어진다. 거론되었듯 백중지세로 맞선 싸움에서 한번 밀리기 시작한 사람은 끝까지 밀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밀리면서 허가 드러나고 이것이 패인이 되어 피를 뿌리게 되는 것이다.

단숨에 허를 찾아 상대를 벤다거나 하는 것은 실력의 차이가 월등히 날 때일 뿐이라는 것! 그것은 한 수가 아니라 서너 수 이상의 차이가 나는 경우였다.

아니나 다를까.

“흐아아아!”

카카카캉-!

“놈……!”

처음에는 막상막하로 격돌하며 맹위를 보였지만 밀리기 시작한 한상필의 눈에 엄청난 노기와 당황함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천하에 악명 높은 칠천마, 그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자신이 정체조차 알 수 없는 상대에게 밀리고 있는 것이다.

나이조차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 느낌임에도!

엄청난 분노가 이글거렸지만 그러나 명성이고 뭐고 실력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영리한 선택을 했다.

“하아아압!”

차차창-!

“다시 보자!”

안 되겠다 싶자 한순간 혼신지력을 다해 수십 검을 퍼부어 낸 후 훌쩍 신형을 물리는가 싶더니 동료들이고 뭐고 신경조차 쓰지 않고 쉬익, 공력을 일으켜 땅 끝을 차며 섬광처럼 도주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는 달아나지 못했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쉬쉬쉬쉬쉭!

“흡……?”

내쏜다 싶은 순간 또 하나의 인영이 섬전처럼 측면에서 쏘아져 오며 산더미 같은 검세를 퍼부어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백의인이었다. 대한과의 접전에서 흑의인을 도왔던 그!

면사인들과 싸우면서도 흑의인에게서 눈길을 떼고 있지 않았던 듯 한상필이 도주하는 기색을 보이자 바로 백색 섬광이 되어 한상필을 따라붙으며 공격을 퍼부었던 것이다.

느닷없는 공격에 어쩔 수 없이 쏘아 가던 한상필은 발끝으로 땅을 차며 다시 우측면으로 훌쩍 몸을 도약시켜 물러서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의 냉정함은 그것으로 끝!

“크아아압!”

“앗!”

경계 자세와 함께 한상필은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듯한 경악의 외침을 토하고 말았다. 어느새 육박해 온 것인지 흑의인이 ‘훅!’ 벼락같이 신형을 날려 그를 덮쳐 온 것이었다.

콰창!

이에 한상필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기색이 되어 또다시 정신없이 박도를 휘저어 흑의인의 공격을 차단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나 이런 저항 역시 끝이었다.

“나쁜 놈아!”

“헉!”

찰나 측면에서 노리고 있던 백의인이 쨍하는 외침과 함께 쏘아 들며 다시 산더미 같은 검세를 퍼부어 왔던 것이다.

“하-!”

촤아악!

“아아아악!”

뒤따라 장내에 소나기 같은 핏물이 뿌려지며 기필코 그에게 최후가 닥쳤다.

백의인의 공격에 눈길을 돌리는 사이 흑의인의 장검이 번개같이 휘돌아 가며 ‘퍽!’ 그의 목을 허공으로 날려 버렸고, 동시에 백의인의 검이 또다시 폭우처럼 퍼부어져 그의 전신을 뒤덮었던 것이다.

목이 떨어져 나감과 함께 그대로 몸이 걸레쪽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하아아압!”

하지만 흑백 두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단숨에 칠천마씩이나 되는 거물을 박살 내어 놓고도 무슨 일이나 있냐는 듯 이번에는 어깨를 나란히 같이하여 면사인들이 밀집된 곳으로 덮쳐 간 것이었다.

그리고 또다시 시작된 활극!

“크아아압!”

콰차차차창!

촤ㄱ촤ㄱ촤ㄱ촤ㄱ!

“으아아악-!”

혼전 속으로 뛰어든 두 사람은 질풍처럼 면사인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는데, 호흡이 이렇게 기가 막히게 맞을 수가 없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일단 어깨를 나란히 하자, 흑의인은 폭풍 같은 기세로 무차별 대장검을 휘둘러 운집된 무리를 흩뜨려 놓았고, 기겁을 한 면사인들이 좌우로 피하면 기다렸다는 듯 백의인의 검이 빗발치듯 허공을 갈랐다.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비명이 터지며 허둥대던 면사인들은 거꾸러졌고.

흑의인이 앞서 치고 나가 무리를 헤쳐 놓으면 백의인이 뒤처리를 하는 식이다. 둘이 합치니 아예 무적이다.

감히 마주 설 사람이 없을 정도로서 치고 나가는 대로 면사인들은 비명을 토하며 쓰러지는 등 피하기조차 급급했다.

“물러서라! 일단 퇴각한다!”

엄청난 광경에 결국 냉안인도 손을 드는 것 같았다.

그 역시 보통 고수가 아니라 그때까지도 원기와 백중지세의 접전을 치르고 있었던 터인데 기울어지기 시작한 전세에 한상필까지 피를 토하는 등, 흑·백 두 사람이 다시 접전장으로 뛰어들자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한 찰나 원기에게 폭우 같은 검망을 쏟아 낸 후 훌쩍 신형을 솟구쳐 물러서며 퇴각 명령을 내린 후 섬광같이 땅을 차고 숲 속으로 도주해 사라졌다.

“하아아압!”

창!

그러자 나머지 면사인들도 일제히 사력을 다한 공격을 퍼부어 맞선 상대를 주춤하게 한 후 여기저기서 몸을 솟구쳐 도주하기 시작했다.

“놈들……!”

하지만 군장들 등, 흑·백, 그들의 동료, 봉을 든 인물들은 추적하지 않았다.

좌우가 숲이라 추적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군장들은 서둘러 쓰러진 동료들을 찾아 살피기 시작했고, 원기가 서둘러 흑의인 및 도움을 준 모두에게 깊숙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감사드리오이다. 대협들의 덕분에 사경에서 벗어났구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어느 방면의 고인들이신지요?”

하지만 묘하게도 다들 대답을 꺼려했다.

흑·백의인은 물론 함께 나타난 십여 명의 인물들, 봉을 든 인물들까지 모두 머뭇거리며 신분을 밝히기를 피하는 눈치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아주 입을 다물기도 뭣한 일.

머뭇머뭇 흑의인이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포권과 함께 쉰 듯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두건을 쓴 사람에게 이름이 있겠습니까. 연왕께서는?”

정상적인 음성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신분을 감추려고 일부러 괴상한 소리를 내는 듯한 것.

하지만 이런 음성이 오히려 원기에게 어떤 단서 같은 것을 준 것 같았다. 빠르게 시선이 두건인의 허리에 둘러진 넉 자 반의 장검을 스쳐 백의인 등 십여 명의 인물들에게로 돌아가는 듯하더니 포권을 취하며 최대한 소리를 죽여 대답했다.

“변복하시고 먼저 북평으로 가셨소이다. 마차와 우리는 시선을 끌기 위한 사람들일 뿐이올시다.”

“-!”

찰나 흑의인 등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치켜뜨여졌다.

느린 듯 움직였던 마차! 책략이 있었던 것이다.

말을 타면 사람이 보이지만 마차를 타면 보이지 않는다. 만약에 대비해 주체는 변복을 한 채 빠졌고, 군장들과 원기는 그대로 주체를 호위한 척 느리게 오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이라면 주체는 전속력으로 이미 산동의 진안이나 하남 경로를 통해 복양까지 갔을 것이었다.

흑의인은 다소 당황스러운 신색이 되어 질문했다.

“호위하신 분들은 그대로인 것 같은데, 두 분이서 위험하신 게 아닙니까?”

그러나 원기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도처에 우리 사람들이 있소이다. 가장 위험한 게 강소를 벗어나기까지인데, 저들이 모르는 것을 보아 무탈하신 것 같소이다. 덕분에 고비를 넘겼으니 이젠 완전히 뒤쫓지 못할 것이올시다. 어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누구의 책략일까.

도연? 이야기하고 있는 원기?

흑의인은 일시 당황했으나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안전을 기해 무사히 북평까지 가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수습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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