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비적匪賊 (4)
더 정확히 주체가 무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마차가 포위망을 뚫고 나가야 할 것이지만 면사인들이 기회를 주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오래잖아 군장들도 쓰러질 것이고, 주체 역시 변을 당할 것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포위망을 뚫고 나가 줘야 할 것인데……! 그것이 안 되는 만큼 마음이 타는 듯 초조하다.
“보아하니 실로 예사의 놈이 아니로군! 모두가 고수라 할 정도임에도 칼 한번 부딪치지 않고 쓰러뜨리다니! 내가 맡기로 한다!”
그러던 차에 눈여겨보고 있었던 듯 세 수뇌 중 하나인 거구의 대한이 ‘훙!’ 번개같이 신형을 도약해 그의 앞에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한데 이 거구의 사내의 몸놀림 또한 예사롭지가 않았다.
다시 일러도 칠 척이 넘을 듯한 키에 산만 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마어마한 체격을 지닌 인물이었는데, 그럼에도 몸을 솟구치자 한계라고 일컬어질 정도의 도약력인 일 장에 가까운 높이로 떠오르는가 싶더니 단숨에 흑의인의 앞에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시퍼렇게 신광이 이글거리는 눈에 들고 있는 것조차 다섯 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대환도!
흑의인이 들고 있는 것도 일반의 검이라 볼 수 없는 장검이었지만 두께에 길이, 무게에 이르기까지 모두 비교가 되지 않는 가공할 병기였다.
그럼에도 그는 이 엄청난 병기를 종잇장처럼 가볍게 훙훙, 손끝으로 회전시켜 보인 후 흑의인을 향해 겨냥했다. 공력 역시 상상을 넘어서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흑의인의 검이 무성검에 가깝다면 이런 엄청난 대환도를 쓰는 인물이 또한 천하에 몇이나 될까?
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흑의인이 이 대한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를 훑어보고는 멈칫하는 기색이 되더니 곧 면사 속에서 굳어지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실망이구려, 유 대협! 형을 천하의 대호한으로 보았거늘 설마 면사 따위를 쓰고 비적 행세를 하며 무리 지어 차륜전을 벌이다니! 형의 명예는 이제 없소!”
철렁! 대한의 가슴이 주저앉았다.
“설마 나를 아는 것이냐?”
흑의인은 굳어진 표정으로 그를 직시하며 말을 받았다.
“모를 리 없지. 천하를 다 뒤져야 이런 엄청난 체격에 대환도를 쓰는 사람은 드물 것이니. 면사로 가렸다지만 드러난 이마의 주름은 어쩔 것이오? 더 철저히 신분을 감추려면 두건을 써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소?”
그러고 보니 그의 이마에는 매우 특이한 주름이 잡혀 있었다. 가로로 세 줄, 미간에서 세로로 길게 한 줄! 드물다 싶게 왕王 자 형태의 깊은 주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한의 눈빛이 급격히 흔들렸다.
하지만 순간적일 뿐, 바로 정색을 되찾으며 우렁우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확실히 아는 것 같군! 하나, 세상을 위하는 일이니 부끄러울 게 없다! 남겨 두면 천하에 혼란을 일으킬 자들이니!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천하에 혼란!
처음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공격하고 있는 게 누구라는 것을 안다는 뜻이었다.
당치 않다는 듯 흑의인은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증거가 있소?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로 알았소. 최소한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과 동급일 것이라고. 하나 나는 그곳에 가 보았소. 십만에 달하는 원군에 맞선 국경이 위험하기 짝이 없더구려! 나라도 어떻게든 병력을 증강시키려 했겠다 싶던데, 형이라면 삼만으로 십만에 달하는 자들과 상대하고 싶겠소? 이하, 그들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소! 부친의 장례에 참석코자 와 마지막 모습도 못 보고 울면서 가는 사람을 기습해야 하겠소?”
대한의 눈빛이 다시 흔들렸다.
“대체 너는 누구냐!”
흑의인은 냉혹하게 그를 직시하며 말했다.
“우린 신양에서 만난 적이 있소. 그뿐이오.”
“신양?”
순간 대한의 어깨가 벼락을 맞은 듯 와르르 떨렸다.
“그러고 보니 너는……!”
기억을 환기하는 것 같더니 그 역시 흑의인이 누군지를 알아낸 듯했다.
찢어질 듯 눈을 치켜뜨며 다시 물었다.
“확실히 다녀왔느냐? 명확히 근거가 없다?”
“없소.”
대한의 눈빛이 다시 크게 흔들렸다.
“으아아악!”
대화하는 사이에도 마차 쪽의 접전은 치열하게 지속되고 있었다.
밀고 들어가는 면사인들의 압박은 더욱 거칠어졌고, 포위망은 이젠 마차에서 오 장 거리도 되지 않았다.
힐끗 상태를 보는가 싶더니 대한은 바로 대환도를 흑의인에게 겨누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할 수밖에 없다! 빨리 끝내기로 하자! 크아아압!”
더불어 그는 천지가 떠나갈 듯 호통을 터뜨리며 대환도를 휘둘러 벼락같이 흑의인을 덮쳐 왔는데, 그의 칼놀림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대관절 한 호흡에 몇 검이나 후려치고 들어온 것인지 삽시간에 시커먼 도영이 하늘로 치솟는가 싶더니 폭우 같은 공세가 흑의인을 뒤덮은 것이었다.
“하아!”
콰차차차창-!
결국 흑의인의 검도 금속성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대한의 도법이 워낙 어마어마해 마주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속도 역시 상상을 불허했다.
저 거대한 몸이 어떻게 이런 속도로 움직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빛살같이 번뜩이며 도의 폭우를 퍼부어 내고 있었던 것으로, 물러서면 바로 궁지에 몰릴 정도! 속도와 공력, 수법이 모두 절정에 달했다 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맞선 흑의인의 공력이나 손 속 역시 그에 못지않았다. 워낙 어마어마한 대환도가 떨어지고 있어 부딪칠 때마다 손아귀가 터져 나가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 가해지고 있었지만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똑같이 광풍 같은 검영을 일으키며 치열히 뒤엉키기 시작한 것이다.
한데 이때였다.
“하아아압!”
장내에 또 한 번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처음엔 면사인들, 흑의인이 출현했던 숲 속에서 다시 쩌렁한 외침이 터지며 쉬익, 느닷없이 십여 줄기의 인영들이 또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것이었다.
“타-!”
촤ㄱ촤ㄱ촤ㄱ촤ㄱ!
“으아아아악!”
더불어 지체 없이 신형을 번쩍이며 마차를 압박해 가던 면사인들을 향해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는데 또한 손 속들이 한결같이 보통이 아니다.
“웬 놈들이냐!”
등 뒤에서 급습을 퍼붓긴 했지만 삽시간에 스무 명에 달하는 면사인들이 고개도 다 돌리지 못한 채 거꾸러져 나갔을 정도!
불행이라 해야 할지 그런 것은 대한에게도 닥쳤다.
육 척에 가까운 후리후리한 키! 그러나 가냘파 보이지 않나 싶은, 백의 인영 하나가 즉각 오 장여의 거리를 뛰어넘어 대한의 등 뒤에 떨어져 내리며 후왁, 번개같이 목을 겨냥해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흡!”
당연히 흑의인과 부딪치고 있던 대한으로서는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와중에도 그는 휙, 허리를 젖혀 기습을 피하는 대단한 몸놀림을 보였는데,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하아아압!”
펑-!
“흡!”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맞붙던 흑의인이 ‘철마각!’ 벼락같은 옆차기를 날려 그의 명치를 찍어 붙였던 것이다.
파파파파팡-!
순간 숨 막히는 신음과 함께 거구가 휘청했고, 찰나 기습 공격을 해 온 백의인의 연환퇴가 또 작렬했다.
한 호흡에 또한 몇 회나 되는 퇴법을 날렸던지 대한이 휘청하는 찰나 땅을 차고 오르며 그대로 발끝으로 등을 걷어차 북처럼 전신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퍽!
“크아!”
쿵!
더불어 충격에 대한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오는 사이 벼락같은 흑의인의 휘돌려 차기가 그의 목덜미를 가격했고, 결국 여기에서 대한은 완전히 무너졌다.
도리 없이 탑이 무너지듯 거구가 땅바닥에 나뒹군 것이다.
“빨리!”
“하아아아-!”
더불어 흑백의 두 인물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또한 지체 없이 훌쩍 신형을 도약시켜 마차를 압박해 가고 있는 면사인들을 향했다. 상태가 급박함으로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던 것!
콰차차창!
촤ㄱ촤ㄱ촤ㄱ촤ㄱ!
“으아아아악!”
이렇게 되자 면사인들의 원진에 큰 문제가 생겼다. 느닷없는 습격자들의 공격으로 앞뒤에서 협공을 받는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거론되었듯 습격자들의 무위가 모두 일반을 훌쩍 웃돌아 칼바람이 일어날 때마다 여지없이 면사인들은 한둘씩 고꾸라질 정도였고……!
어쩔 수 없이 일부가 또 돌아서 나타난 인물들과 치열히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사방이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변할 지경.
하지만 그래도 주체나 흑의인 쪽은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도 장난이 아닌 무력을 지닌 데다 역시 수효가 너무 많은 것이다. 일 차의 습격으로 십여 명의 군장들이 쓰러진 만큼 합쳐도 모두 오십 명이 되지 않는 셈이었다.
한데 이때였다.
“매우 쳐라!”
“하아아아아-!”
파파파-!
“으아앗!”
장내에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또 벌어졌다.
모두가 나타났던 숲! 그곳에서 우렁찬 외침이 터지더니 이번에는 오십여 명의 봉을 든 인물들이 또 번개같이 신형을 날려 면사인들을 습격해 온 것이었다.
끝없이 이어진다 싶을 정도의 기습!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어디에서 이런 놈들이?”
결국 원진은 완전히 무너졌다. 정말 기이하다 싶을 정도의 일로서 어디에서 이런 고수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인지, 새로 나타난 습격자들의 무위 역시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휘두를 때마다 하나같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봉영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아아압-!”
찰나 원기 역시 공격에 가담했다.
타는 듯한 심정으로 마차를 지키며 접전을 주시하고 있었던 그! 포위망이 무너지자 군장들에게 방어를 맡긴 채 쉬익, 연기처럼 신형을 솟구쳐 남은 두 수뇌를 덮쳐 간 것이었다.
들고 있는 것은 평범한 석 자의 검!
그러나 일찌감치 천하의 고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듯 떠오르자 그의 전신은 웅혼한 검영 속에 휩싸였다.
검영의 덩어리인 듯 칼 그물로 완전히 전신을 가리며 두 사람에게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쩌저저정-!
하지만 대한이 그러했듯 남은 두 수뇌 역시 예사의 고수가 아니었다.
원기가 공격을 감행해 오자 장포 인물이 폭갈을 토하며 또한 번개같이 몸을 번뜩여 전진해 석 자 반가량의 박도朴刀로 원기와 맞섰는데 일어나는 그의 도영 역시 풍우불침風雨不侵이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치고 휘돌리고 베는 등 하나도 손실이 없을 정도로 무서운 검영을 일으키며 원기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네놈! 도마刀魔 한상필인 게로구나!”
단번에 원기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 같았다.
“문답무용問答無用!”
“흐아아-!”
카카카캉!
“흡!”
그러나 장포인은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어마어마한 기세로 박도를 휘둘러 원기를 압박했고, 찰나 냉안의 수뇌 역시 공격에 가담했다.
섬광같이 넉 자의 장검을 뽑아 장포인과 함께 원기를 협공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검세라는 것이 또! 도무지 어디에서 이런 고수들만 나타난 것인지 냉안인의 무위 역시 상상을 넘어섰다.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지 검을 휘젓자 또한 가로세로로 빗발치듯 한 섬광이 일어나며 원기를 위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감당하지 못하고 천하의 고수라는 원기도 연거푸 밀릴 정도였다.
“히아아압!”
훙-!
“흡……?”
그러나 상태는 오래잖아 호전되었다.
원기가 밀리자 면사인들을 휩쓸고 있던 흑의인이 이를 본 듯 용트림하듯 쩌렁한 외침과 함께 여기에 가세한 것이었다.
“애송이 같거늘!”
“타아아압!”
콰창!
찰나 장포인의 몸이 빙글 돌려지는가 싶더니 그의 도영이 구름같이 흑의인에게 퍼부어져 왔다.
좌우, 우로, 횡으로, 빗발치듯 퍼부어지는 어마어마한 공세.
“조심하게! 놈이 칠천마七天魔의 도마 한상필일세!”
더불어 원기의 입에서 실로 대단한 명호가 터져 나왔다.
칠천마!
언젠가도 한번 스친 적이 있었던 깜짝 놀랄 만한 명호!
칠천마란 현 무림에서 가장 무서운 살명을 떨치는 일곱 명의 사인邪人들을 총칭해 일컫는 것이었다. 이들의 악명은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었는데, 모두가 출현한 지 이십 년이 가까운 자들이었다.
각자의 특징이 다 다르지만 중원 전역에 흩어져 제멋대로 살상을 일으키는 살인마들로서 간단히 이르자면 그중 하나가 몽마夢魔였다.
천 수가 넘는 여자들을 강간 살해한 몽마 정진 역시 칠천마 중 하나로 불리고 있었던 것.
환기해 보면 나머지 자들의 악행도 얼마만 한 것인지 짐작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거니와, 손 속 역시 결코 그에 못지않다고 봐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 한상필의 악명은 몽마의 단계조차 넘어서고 있었다. 감숙 신도문의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신도문의 배신자였다.
입문한 직후 특출한 재질을 인정받아 문주의 경호 무사로 채용되었지만 등 뒤에서 암습, 문주를 살해한 후 천도검경天刀劍經을 절취해 달아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절기를 수련해 무림으로 나온 그는 도처에서 무수한 살상을 일으켜 수배가 되는 등, 사 무림과 관 무림, 양쪽 모두에 공적으로 낙인찍혔으나 아직도 건재하고 있었다.
살상을 일으키기 시작한 게 수십 년이니 손에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는지 알 만한 자로서 이런 자가 여기에 나타난 것.
“크아아압!”
차차차창-!
흑의인 역시 바로 그의 위험도가 이만저만하지 않음을 경각했다. 원기의 주의가 아니라도 퍼붓고 있는 어마어마한 도영이 빗발치듯 그의 전신 곳곳을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촌각 사이에 칼날이 코앞을 스치는가 하면 곧바로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턱밑으로 휘돌아 가고 있었던 것!
그야말로 빛살이며 전광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런 엄청난 속도로 박도 공격을 가하면서도 시시각각 좌수가 갈고리처럼 뻗어 나와 목을 휘감아 오는 등 번개 같은 조·각법까지 함께 구사하고 있었는데 몸놀림이 완전히 사람 같지도 않을 정도다.
“하!”
차차창! 퍽! 펑! 펑!
하지만 흑의인 역시 대단한 맹위를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