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비적匪賊 (2)
해서 일단 섬서군부 사람들을 만나 보고 함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언짢겠지만 그리 알아주면 고맙겠고, 무엇이건 일이 생기면 지급으로 연락 주게나.
추신 : 악보나 악 보주는 온건한 사람이었네. 맞이한 큰사위가 우연히 북평으로 갔을 뿐인 거지. 나를 봐서라도 잘 좀 헤아려 주게. 내 성격은 잘 알겠고, 다각도로 살피고 있으니 좋은 방향으로 가기로 하세. 줄이겠네.
“어떻게 이런 일이……!”
서찰을 읽은 이순문의 가슴이 철렁했다.
실로 상상치도 못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그럴 수도 있었다. 추룡이 악충보의 딸을 만날 수도 있었고, 사정을 모른 채 정혼시킬 수도 있었으며 이로 인해 그가 나설 수도 있다는 것.
다만 일이 너무 공교롭고 그럴 경우라면 자신을 찾아와야 할 그가 연안에 가 있다는 것이 크게 마음에 걸렸다.
북평에서 멀지 않은 연안! 막여사를 아는 그! 이것은 정말 중대했다.
갑작스러운 모습에 각료들이 의아해서 말문을 열었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 것인지? 연안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아……! 별로 그렇지는.”
이순문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나 간신히 누르고 서찰을 품속에 넣으며 대충 대답했다.
“짐작대로 석 안찰사가 군을 집결시켰다는 소식이군. 다음 명령을 기다린다는 내용이야.”
“역시.”
보고했던 흑의 장삼인은 그 보라는 듯 미소를 머금었고, 이순문은 빠르게 계산을 해 봤다.
일단 막여사가 돌아왔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자신의 옆이 아니라는 게 싫었지만 어디에 있건 친구인 만큼 큰 힘이 될 것이었다.
한데 문제는 이게 중앙 쪽일 경우였다. 만에 하나 다른 경우라면……! 다시 이야기해도 연안은 북평에서 멀지 않았다.
안절부절, 완전히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앉은 자리가 한순간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원칙대로라면 즉시 그의 직위를 해제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 석천중과 함께 소환해야 할 것인데……!
누르고 돌같이 굳어진 표정으로 일단 물었다.
“근래 연안안찰부의 동태가 어땠나? 황상께서 붕어하시기 전을 이야기하는 거다.”
다른 장삼인 하나가 대답했다.
“지부에서 연락 온 적이 있는데 각처의 군부들을 감찰했다고 하더군요. 섬서군과 산서 쪽입니다. 아시다시피 그쪽 사정이 묘해서 살피는 지역이 꽤 넓지 않습니까.”
연안도위부가 살피는 지역.
정확히 섬서 전역과 태원, 대동에 이르는 산서성의 동쪽까지였다. 묘하다 했듯 특이한 일이었는데, 원래 도위부는 각 성마다 안찰 지부를 뒀고, 지부마다 안찰사가 파견되어 나가 있었다.
하지만 섬서의 경우가 다소 달랐다. 까닭은 앞서 거론되었던 일로서 서안왕부의 상황 때문이었다.
홍무제는 생전에 스물다섯 명의 아들을 뒀고, 이들을 번왕으로 봉했지만 가장 실력 있는 아들들이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가장 먼저 죽은 게 태자였던 주표였고, 그다음에 죽은 아들이 진왕秦王 주상이었다. 해가 넘어가 이젠 사 년이 되었는데, 그가 왕으로 있었던 곳이 바로 섬서! 서안이었다.
연안의 바로 아래 지역으로서 서안왕부를 맡고 있었던 것! 이후 아들인 주천호가 뒤를 이었지만 그가 죽음으로 서안왕부의 힘은 크게 감소되었다.
홍무제는 아들들에게 군력을 키우라 했지만 그가 죽음으로서 서안왕부의 군력은 구심점을 잃고 그럭저럭 연안부에 복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북평이 있는 하북과의 중간에 있는 산서는 왕부의 세가 매우 강했다. 여기에는 왕부가 둘이나 있었는데, 태원왕부와 대동왕부가 그곳이었다.
대동왕부는 홍무제의 열셋째 아들인 대왕代王 주계가 맡고 있었고 태원왕부는 셋째 아들 주강이 맡고 있었다.
산서에도 안찰부가 있었지만 두 왕부를 살피기는 버거웠고, 이로 인해 사 년 전 주상이 죽고 섬서가 다소 안정(?)되자 연안부에게 대동왕부까지 살피게 해, 자연적으로 연안안찰부가 커졌고, 산서 안찰부는 휘하처럼 되어 있는 상태였다.
두 개 성을 걸칠 정도로 연안안찰부의 영역이 넓었던 것.
이로 인해 감찰 당시 막여사가 삭주까지 가는 등 장정희를 만났던 것.
이순문은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산서 쪽도 감찰했나?”
“석 달이 넘게 한 것으로 아는데 하지 않았겠습니까. 감축에 대비해 사람들을 선별을 한 것 같은데요?”
‘방벽이로군! 이 친구가 완전히!’
각료들은 쉽게 대답했지만 이순문은 정확히 내막을 들여다봤다. 완전히 목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홍무제의 사망 소식과 함께 연안에 집결한 섬서군부!
석천중의 성격을 들여다본다 했듯 그렇다면 보나 마나 이것은 막여사의 계획이라는 뜻이었고, 산서까지 갔다 하면 규모는 연안에 집결한 삼군뿐만이 아니라고 봐야 했다.
섬서삼군만 해도 병력이 삼만에 달하는데, 몇 개의 군부가 더 있을까?
장난이 아닌 규모로서 어쨌건 중요한 것은 그의 계획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었다.
서찰에는 명령을 기다린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악충보를 거론하고 있고, 악불비는 장신과 연관되어 있는 상태!
아무것도 아닌 듯 움직이면서 놀랍게도 막여사는 양날의 칼을 휘어잡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섣불리 연안안찰부나 그를 건드릴 수 없다. 결속을 다진 상태라면 직위 해제를 하든 뭘 하든 동료들과 함께 두 사람은 복지부동할 것이었다.
해산시키려면 무력밖에 없는 터인데 당연지사로 그럴 시국이 아니었고 구실 역시 없었다.
명령을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혼란에 대비해 한곳에 운집해 있을 뿐이고, 꼭대기에는 석천중이 있으니 어찌 됐건 도위부가 한 일인 셈이다.
한다 하면 도위부끼리 싸우는 것으로 피차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석천중에게 연안을 맡긴 것이 다름 아닌 그 자신이었다는 것!
난데없이 막여사가 튀어나옴으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 되었던 것으로, 금의위가 출범한 후 한 번도 없었던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던 것이다.
속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친구였다! 남평까지 찾아갔듯 또한 막여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속도 들여다보이는 듯했지만 서찰을 보내온 것을 보면 어쨌건 자신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수염을 모두 뽑아 놓을 테다!’
지글지글 속이 끓었지만 태연자약, 아무 일도 아닌 척 다음 일로 넘어갔다.
“연왕은?”
“복양?陽을 지났다는 기별입니다. 황상께서 역마권驛馬權을 내려 역마를 이용하고 있어 대단히 빠릅니다. 마차를 이용하고 있어 열두 시진 계속 치달려 오고 있다고 합니다.”
말이 지치지 않을 거리마다 군목軍牧을 두어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해 둔 역마. 마차를 이용해 속에서 자기까지 하면 말을 교체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정말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다.
이순문은 싸늘히 눈을 번쩍였다.
“만전을 기해라! 어떤 경우라도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라의 안위가 걸린 일이다.”
“명!”
흑의 장삼들은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했고, 구렁이 담 넘듯 이순문은 슬그머니, 끝으로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아, 그리고 휘주 쪽 사안 말인데, 악보의 동태는 살피고 있나?”
또 다른 장삼인이 대답했다.
“상태가 좋다고 하더군요. 한동안 소란했던 몽마라는 음적을 잡아내는 등 지난겨울에는 황산을 거점으로 약탈을 일삼던 산적들까지 모두 소탕했다 합니다. 관사들과의 관계도 좋고, 향용 자체로서 특별한 문제점은 보이지 않습니다. 해산령을 내릴까요?”
악충보에 해산령!
이순문은 움찔하는 심정이 되었지만 내색치 않고 대답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좀 더 둬 봐라. 워낙 유서 깊은 곳이라 지금 해산시키면 주위가 뒤숭숭할 것이니. 정확한 사유가 없는 만큼 장신을 떠올릴 것이고, 연왕부와 관계 지어 억측들을 할 거다. 윤문 전하께서 즉위하신 후 확고하게 북평과의 관계가 설정된 다음 해도 늦지 않다. 해 봐야 천 명에 불과한 자들이니.”
“천 명이라도 무위가 수월치 않은 자들입니다. 북평왕부와 연관은 없어 보이지만 한순간 서투른 짓을 할 수도 있사온데?”
이순문은 슬그머니 짜증이 났다.
“그 한순간이 제일 나중이라 하는 소리다! 향용이란 해산시킨다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흩어져도 다시 모이면 그만이므로 뿌리를 뽑으려면 수뇌를 잡아야 하지. 그러나 악불비를 잡을 명목은 없고, 헤쳐 놓으면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가만히 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포위해 한꺼번에 끝을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실이었다. 향용은 사조직私組織이므로 해산시켜도 다시 모일 수 있었다. 없애려면 수뇌를 잡아야 하는데 허가받은 단체에 너무 잘하고 있는 악불비를 잡을 죄명은 없었다. 탕음악가의 명망까지 장난이 아니었다.
진충보국으로 대명을 떨치는 집안이라 아무렇게나 죄를 씌울 수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실없는 누명을 씌워 어찌해 보려다가 놓치기까지 한다면 후환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것.
죄가 있다면 장신이 북평왕부의 내신이라는 것뿐인데 북평왕부도 아직 멀쩡하지 않은가.
더욱이 장신의 신분까지 표면상으로는 현재 자신들 쪽에 속한 도사였다. 조용히 뒀다가 북평왕부에 대한 방침이 확실해지면 들이쳐 완벽하게 제압하는 게 나은 것이었다.
주지시킨 후 이순문은 싸늘히 눈을 번쩍이며 한 번 더 모두에게 주의를 줬다.
“보다 신경을 집중시켜야 할 것은 이번 사안이다! 이번 일만 순조로이 끝난다면 나머지 일들은 전혀 신경 쓸 게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성사시키도록 해라!”
“명!”
흑의 장삼인들은 다시 일제히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이번 일이라는 것! 특급 기밀로 되어 있는 부분이었지만 아닌 게 아니라 이들에게 있어 그 일은 대단히 중요했는데, 성사되면 사실 다른 일들은 전혀 신경 쓸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
콰두두두두두!
불꽃을 튀기는 말굽들과 무섭게 돌아가는 마차 바퀴.
그런 속에 주체는 끊임없이 금릉으로 치닫고 있었다.
세 대의 사두마차가 동원되었고, 마차에서 번갈아 휴식을 취하며 오십 명의 군장들이 경호하고 있었다.
군목마다에 들러 말을 바꾸며 열두 시진을 끊임없이 남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 사흘 만에 하북을 빠져나와 하남의 복양에 이르렀고, 닷새 만에 산동성의 남단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서주徐州까지 지났다.
한 달이 걸려 추룡이 북평에 당도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인 셈이었다.
이야기 나왔듯 말을 바꾸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까지 마차에서 자며 치달리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 하나 지체되는 곳은 도처의 관문을 지날 때였다.
“지나실 수 없습니다! 황상께서 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으므로 남하를 승인할 수가 없습니다!”
관문에 도달할 때마다 관병들은 주체와 군장들을 막고자 했지만 그러나 어림없었다.
“허튼수작을 하는군! 황상께서 부르지 말라 하셨지 막으라 한 것은 아니다! 장례도 중하지만 보다 왕부의 일로 윤문 전하를 알현코자 가는 것이다! 너희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일반의 백성이나 고관이라면 모르되 상대가 자그마치 일국의 번왕이었다. 관병들이 막아 낼 신분이 아닌 것이다.
“하오나 소인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야 하므로……!”
“닥쳐라! 머뭇거리면 목을 베어 버리겠다! 관문을 열어라!”
파죽지세.
번왕에 맞설 수는 없는 만큼 관병들은 문을 열 수밖에 없었고, 엿새 만에 주체와 군장들은 급기야 강소성의 회안淮安에 도착했다. 회수淮水라고 불리는 곳으로 도도히 장강 회하의 물굽이가 휘돌아 가는 곳.
이 속도로 강을 건너면 한나절에 금릉에 도달하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한달음에 북평에서 회안까지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주체는 회안의 관문 앞에서 또 가로막혔다.
“입궁하시지 못합니다. 황상의 유언이 있어 오시지 못하게 하라는 분부가 내렸습니다.”
이번에 막아선 것은 일반의 관병이 아니라 사모관대를 갖춘 조정의 병부시랑인 인물이었다.
당연히 주체라 해도 함부로 대할 인물이 아니었다.
상복喪服 차림으로 마차에서 내린 주체는 눈을 번쩍이며 그와 맞섰다.
“분명히 황상께서는 부르지 말라 하셨다고 들었소! 절차를 간소화하고 번거로움을 피하라는 뜻이지 결코 친자인 번왕들을 오지 못하게 하라 하신 것이 아닌 것이오! 까마귀도 어버이의 은혜를 알거늘 인간이 어찌 부친의 장례에 참석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오! 썩 물러서시오!”
하지만 가로막은 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마음은 모르지 않사오나 소관 역시 명을 받들어야 합니다. 황상의 유명도 그러셨지만 태손 전하께서도 막으라 하셨고, 상서께서 보내신 것이옵니다. 양지하여 주시기 바라옵니다.”
“태손 전하의 분부셨다고……?”
주체의 눈이 순간 찢어질 정도로 치켜뜨여졌다.
상상치도 못한 이야기로서 이렇게 되면 자신은 회하를 건너지 못한다.
정확히 윤문은 차기 황제가 될 인물이었고, 지금도 번왕들의 위이다. 건너면 그의 명을 거역한 것이 되는 것이다. 자신을 만나기 싫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제 북평의 앞날은 어찌 되는가? 보다 부친의 장례식은?
“어떻게 그럴 수가! 한 핏줄을 나눈 혈육으로서 부고를 듣고 달려왔는데 부친의 장례에 참석지 못하게 하시다니? 분명히 저하의 분부시오?”
막아선 인물들은 분명히 대답했다.
“확실합니다. 분명 저하께서 내린 분부십니다. 회하를 넘지 말라 전하라 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런……!”
주체는 꼿꼿이 눈썹이 곤두섰다.
적잖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원컨대 전하께 전해 주시오! 혈육의 정을 살펴 황상의 마지막 모습만 뵐 수 있게 해 달라고! 맹세컨대 절만 올리고 돌아가겠소! 경도 부모를 섬기지 않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