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비적匪賊 (1)
두두두두두!
불꽃을 튀기며 치달리는 사두마차!
오십 기의 기마!
“연왕 전하께서……?”
불과 수일이 지나지 않아 산동성 일원으로부터 지극히 정상이면서도 의외인 소문이 퍼져 나갔다.
주체에 대한 이야기로서 홍무제의 죽음과 함께 모든 왕부들이 혼란에 휩싸여 있을 뿐 침묵을 지키는 속에 유독 그 하나가 금릉으로 치달려 오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말도 안 돼! 분명히 황상이 오지 말라는 유언을 내렸다 들었는데 오고 있다니?”
“주고치 저하도 한 마차에 타고 계신대! 아드님까지 대동한 채 오고 있다는 소문이야.”
“그런……!”
소문은 퍼지는 곳마다 주위를 들썩하게 했고, 친구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휘주로 돌아온 지 석 달, 이즈음 친구들은 어지간히 임무를 수행해 두고 있었다.
동료들과 함께 십왕봉의 산채를 보수했고, 비밀리에 이천 석이 넘는 양곡을 옮겨 산채 등 황산의 심처 곳곳에 분산시켜 숨겨 놓은 상태.
악충보에도 이젠 완전히 비상이 걸려 있었다.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내외의 무사들을 불러들인 후 문을 걸어 잠그는 대기령을 내린 것이었다.
더 일찍 일급에 속하는 대처령이 발동되어 있었으나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친구들과 특과의 인물들 및 비밀리에 엄선된 백여 명뿐으로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이때 비로소 을호에 해당하는 명령이 떨어진 셈이었다.
대방파 간의 싸움에 준하는 대기령과 같은 것이었다.
황남관에 머물던 장완옥과 악벽강은 한발 앞서 산채로 들어간 상태, 친구들과 추룡은 악벽강의 지시에 따라 다시 악충보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 속에 도처 향용들 사이로 이어지는 첩보, 전서구를 통해 주체의 동태를 알게 되었던 것.
하지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쩌자고? 왕부들 중에서도 조정 대신들이 가장 적대시하는 북평왕부인데 오지 말라 한 명령까지 어기고 오면? 죄를 자처해 뒤집어쓰는 행동이나 같지 않은가?”
분명히 그런 점이 있었다.
호출되어 궁성에 들어섰다가도 화를 당한 인물들이 적지 않았는데 주체는 자진해서 위험을 향해 오고 있었으니 그대로 모험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주고치 저하까지 대동하고 온다는 것은 더욱 그래. 자칫하면 부자가 모두 투옥될 판국이잖아?”
“……!”
추룡의 표정이 또 돌같이 굳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얼음 같은 위모를 보이고 있었지만 마삼보는 그가 지극히 효심이 깊다고 했는데 사실이라면 분명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자신이라도 부친이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달려가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다만 주고치까지라면 너무 무리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부인 만큼 함께 오는 게 옳지만 그래도 위험이 보이는 길이다.
“어떻게 생각해, 막 형? 너무 위험한 행동 아냐?”
우려하는 모습으로 친구들은 추룡에게 향했다.
잔뜩 신경을 쓰는 모습들이었는데, 아무래도 왕부까지 다녀왔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하지만 신경을 쓴들.
추룡은 좋게 이야기했다.
“위험까지는 아닐 거야. 아무렴 한 숙부인데 부친상에 참석하겠다고 오는 사람을 어쩌지는 않을 테니까. 그랬다가는 세상 사람 모두에게 욕을 먹을 거거든. 윤문 전하 경우는 더욱 그래. 후위를 이으실 분이 시작도 전에 욕부터 먹고 싶지는 않을 거야. 싫더라도 온 만큼 좋게 참석케 하겠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쨌건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어머니를 뵙고 오겠네. 산채로 가신 지 닷새인데 우려되는군.”
실상 추룡이나 친구들이 아무리 신경 써도 달라질 건 없었다. 천하의 권력자들이 하는 일을 백두의 그들이 어쩌겠는가.
두두두!
오래잖아 추룡은 적낭자를 타고 화촌 방향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유사시에 대비해 적낭자까지 끌어다 놓았던 것인데, 십왕봉으로 진입하려면 화촌에서 가는 게 빠르다.
연안.
“연왕이 금릉으로라……!”
석천중의 눈이 날카롭게 번쩍였다.
막여사를 만남으로 새로운 어떤 일을 시작한 그.
도위부의 집무실이었고, 앞에는 감찰사로 나섰던 최혁, 갑옷을 입은 막여사와 처음으로 모습을 보는, 또한 갑옷을 입은 거창하다 싶을 정도의 체격을 가진 세 명의 장수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있었다.
“잘된 것 같군! 다행히 생각보다 쉽게 일이 끝나겠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금릉으로 향한 주체를 거론하면서 쉽게 일이 끝날 것이라 하면? 왠지 검측한 느낌이 드는 발언이었다.
“자네에게도 그래. 쉽게 마무리가 되는 한 측근까지 일이 번지지는 않을 것이니 운이 따르는 것 같아.”
그러나 막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 간의 이야기인 만큼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지 않았지만 거기에 대해 의혹을 가진 것이었다.
“어쩌면 그럴지도. 하지만 쉽게 끝나지 않을 걸세. 자네도 이야기했듯 도연은 결코 쉬운 인물이 아니라 보니까. 천문 지리를 헤아린다는 소문에, 연왕 자체도 대단한 고수라는 소문이던데, 삼천으로 이만 병력의 이도를 굴복시켰을 정도로 뛰어난 지모를 지닌 인물이 무대책으로 주인을 사지로 보냈을 리 없지. 그 정도로 호락호락한 게 연왕부라면 신경 쓸 일도 없네. 오히려 책략일 수도 있어.”
석천중 등 모두의 얼굴에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책략이라니?”
특유의 신중한 성격으로 막여사는 꼼꼼히 여러 가지를 환기하며 말을 받았다.
“포전인옥抛塼引玉일세. 관료들의 권모술수를 겪은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 일도 꽤 의혹이 있네. 첫째 황상의 유언일세. 번왕들을 걱정해 부르지 말라 하셨을 수도 있지만 허가 있어. 번왕들도 바보는 아닐세. 잘못 입궁하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르지 않을 것인 만큼 대처할 채비를 해 두고 가겠지. 대처 안을 마련한 후 한꺼번에 움직이는 게 그것일세. 대표 하나를 남겨 힘을 몰아준 다음 험한 일이 생기면 부하들에게 그를 따르라거나 하는 보완책 말일세.”
응급조치.
“아니라 해도 부친상에 참석한 번왕들을 건드리면 큰 혼란이 일어나. 즉위하기도 전에 백성들에 대한 윤문 전하의 위신은 바닥에 떨어질 것이고, 여러모로 최악의 상태가 되는 걸세. 따라서 황상께서 이런 유언을 하신 것도 이상하고, 이로 인해 연왕은 더 금릉으로 달리는 것일 수도 있어.”
“오지 말라고 해서 더 간다?”
“쌍방의 책략 싸움이라고 생각하면 속이 눈에 보이지 않나? 유언은 잘못된 것이고, 다른 번왕들은 눈치를 살피며 움직이지 않는데, 혼자 달리면 더 빛이 나지. 물론 권모술수일 경우를 이야기하는 거야. 그냥 다 사실일 수도 있네. 유언도 사실일 수 있고, 연왕이 가는 것도 지극한 효심일 수 있지.”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하지만 책사들의 시각은 일반과 달라. 머리가 하늘 위에서 노는 자들인 만큼 모든 일에 만전을 기하지. 가면 주인이 어떤 위험에 처할지 모르지 않을 것인데 도연만 한 인물이 그냥 보내지는 않았을 거야. 만전을 기했다고 보고, 연왕이 장례에 참석한 후 무사히 북평으로 간다면 그대로 포전인옥이 되네. 벽돌을 던져 주고 옥玉을 얻어 내는 거지. 위험 아닌 위험을 감수하고 천하의 칭송을 얻는 걸세. 자신이 있다면 해 볼 만한 일 아닌가?”
“그런 자신이 어디 있는데? 북평 안이라도 안전하다 할 수 없을 것인데 외지에서 어떻게? 대규모 이동이 금지되어 호위군도 오십여뿐인데 화가 닥치면 무엇으로 피한다고?”
하지만 막여사는 의견은 같았다.
“그야 나도 모르지. 어쨌건 짐작이 틀리지 않는다면 연왕보다 더 위험한 게 도연이라고 보네. 그는 어디 있나?”
최혁이 대답했다.
“왕부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행하는 것은 원기라는 책사로, 지모가 높고 무예가 천하의 고수라 할 정도로 극히 높은 인물입니다. 그 밖에 북평군의 장수들이 따르고 있다더군요.”
“세손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왕부에 남아 있지요?”
“그런 것으로 압니다. 첨 자 기 자를 쓰는데 일곱 살이 된 것으로 압니다. 지극히 사랑한다 하더군요.”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막여사는 다시 석천중을 향했다.
“순문에게서 연락은?”
“아직. 아무리 소식망이 빠르다 해도 만 리 밖인데 벌써 답장이 올 리가 있겠나. 이제야 연락이 갔겠지. 자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면 기분이 좀 묘할걸.”
묵살하고 막여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모든 게 자연스러운 일로서 연왕이 윤문 전하를 알현했으면 좋겠다 싶네. 아닐 경우라면 정말 힘들어질 수 있으니. 다시 말해도 도연이 문제일세.”
“예나 지금이나 엄청나게 다각도로 본다는 것을 알겠는데 뭘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원……!”
계속 거론되는 도연.
석천중이 입맛을 다시는 가운데 묵묵히 듣고 있던 세 장수 중 고슴도치처럼 빳빳한 수염에 고리눈을 지닌 구릿빛 피부의 오십 대 인물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계속 대기만 하는 것입니까?”
“특별한 일이 없으니 그래야 하지 않겠소이까. 아, 그래. 점심시간이니 식사해야 할 일이 있구려.”
“자넨 대체 왜 그렇게 안 변하나?”
피식, 석천중의 입가에 실소가 떠올랐다.
금릉. 응천부의 동쪽에 자리한 중앙 도위부.
같은 시각 이순문의 만면에는 적잖게 불쾌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남평으로 막여사를 찾아왔던 그.
윤기 도는 홍안에 통통한 체격의 호인으로 보이는 인상으로서 남평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는 아니었다.
친구 간의 모습일 뿐, 오군도독의 하나라는 신분만으로도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집무실로서 앞에는 한결같이 찬바람이 이는 듯한 표정의 각료들이 서 있었고, 서탁 뒤에 앉아 그는 도처에서 보내온 전문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섬서군부가 감히 항명을 한 것인가? 이동 금지령을 내렸는데도 한곳에 집결?”
장작개비처럼 마른 체격에 키만 육 척인, 비수처럼 섬뜩하게 눈빛이 번뜩이는 사십 세가량의 흑의 장삼인 하나가 포권을 취하며 대답했다.
“그랬다고 합니다. 한데 항명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멋대로 움직인 것이라면 왕부에 집결해야 하는 게 정상인데 연안에 있다고 하더군요. 미루어 안찰부에서 소집한 것 같고, 우리 쪽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이동한 것도 금지령이 도달하기 전입니다. 하루 차이긴 하나 황상께서 붕어했다는 소식과 함께 바로 이동했다는 것 같더군요.”
이순문의 눈빛이 다소 기묘해졌다.
“연안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이후로는 움직임이 없는데,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 올린 경우라면 오히려 잘한 일이 되는 셈입니다. 석 안찰사께서 한 일이라고 봐야 하는데, 섬서군부를 확실히 잡고 있다는 증거로서 유사시에 행동할 채비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 쪽 사람이라면 운집해 있는 것이 훨씬 좋은 것입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알 일이었다.
이순문은 의혹의 빛을 떠올렸다.
“사실이라면 그렇지만 웬일인지 모르겠군. 누구보다 잘 알지만 석 안찰사는 그 정도로 체계적으로 일을 하는 친구가 못 되는데. 실력은 있지만 매사 한 호흡이 느리지. 분명히 그가 한 일이 맞나?”
장삼인은 다시 포권을 취했다.
“그렇다고 봅니다. 아니라면 연안군延安軍이 안찰부를 쳤다는 뜻이 되는데 그런 내용은 전해진 게 없으니까요. 시국이 시국인 만큼 사전에 단단히 채비를 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이순문은 비로소 흡족한 표정이 되었다.
“변방의 바람을 쐬더니 정신이 번쩍 든 것인가? 그렇다면 머잖아 안으로 들어오겠군. 공을 세울 기회가 있고 그는 채비를 했으니. 혹시 모르니 그래도 기별을 해 봐. 지부로 하여금 살피라 하고 친필 서안을 보내라 해. 그래야 안심하지.”
“시행하겠습니다.”
장삼인은 척, 부동자세를 취해 보인 후 바로 시행하려는 듯 문 쪽으로 향했다.
“충忠!”
하지만 이 일을 위해 나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문 앞쯤 도착했을 때 집무실 밖에서 또 한 사람의 흑삼인이 눈을 번쩍이며 들어와 부동자세를 취함과 함께 엄지손가락만 한 붉은 통 하나를 이순문에게 건넸다.
“연안안찰부에서 도착한 연락입니다.”
나가려다 말고 흑의 장삼인은 멈칫 걸음을 멈추었고, 이순문은 곧 붉은 통을 받아 뚜껑을 열었다.
매의 발목에 부착하는 전서구용 통이었는데 자그마했지만 속에는 차곡차곡 접어 돌돌 말아 넣은, 펼치자 그래도 꽤 큰 서찰 하나가 들어 있었다.
“뭐……?”
순간 이순문의 얼굴에 크게 깜짝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궁금해하던 터에, 서찰 안에는 천만뜻밖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깨알만 한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던 것이다.
순문, 막여사일세.
만난 지 또 일 년이군. 잘 지내고 있나?
늘 찾아봐야겠다, 생각하면서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함을 이해하게.
읽으며 속상해하겠지만 나는 지금 연안에 있네. 아주 고약한 일이 생겨서 그래.
아들 녀석 때문인데, 만났을 당시 자네에게 한 가지 숨긴 일이 있네.
녀석을 자네에게 보내 달라 했지만, 사실 그때 이미 녀석은 대리사로 무관 시험을 보러 떠났던 상태였네. 폐를 끼치기 싫어 둘러댔던 것일세.
한데 직후 정말 골치 아픈 일이 생겼네. 녀석이 항주에서 사고가 생겨 시기를 놓치고 헤매던 중 악보의 딸을 만났어. 서로 좋아져서 악보로 갔던 모양인데, 서찰을 받고 가 보니 혼인을 하겠다고 조르지 뭔가.
가문도 그만하고, 때도 되었다 싶어 정혼을 시켰었네.
이후 천중에게 들렀는데, 그가 뜻밖의 이야기를 하더군. 악보의 큰딸이 연왕부의 내신으로 있는 사람과 혼인했고, 그로 인해 주시받고 있다는.
머리가 깨어질 것 같았네. 하지만 맺은 혼약을 어쩔 수 없어 생각다 못해 궁여지책으로 천중과 함께 일해 보기로 했네.
상황이 엉망이니 나라도 일을 해서 녀석을 도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