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99화 (99/150)

# 99

대명풍운大明風雲 (6)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시므로 사돈의 계획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 알 수 없다. 어려움이 닥칠지 모르니 대비해 몇몇 준비를 해 두라고 하시더구나.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네게 중요한 것은 역시 안사돈을 모시는 일이다. 무슨 뜻인지 모르지 않겠지?”

“예……!”

걱정이 되었지만 악벽강은 그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막여사와 악불비를 믿어야 했다.

그녀에게 있어 실제 시어머니가 될 장완옥을 섬기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나마 악불비의 신색이 심하게 어둡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고 해야 할지.

한 시진 후.

“딱 맞아 죽는 줄로만 알았네! 각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곡괭이 자루라니? 눈이 휙 돌아가더군.”

“제대로 역근 수행을 할 뻔했지, 할 뻔했어!”

“하하하……!”

추룡과 악벽강, 친구들은 악충보를 나와 황산성으로 향했다.

“심하게 혼나지 않았나?”

“어, 한창 터지던 중에 유 당주님께서 말려 주셨네. 내당주로 승격되셨다 하던데, 혼이 덜 난 것은 역시 소저 덕분이야. 출발한 후 총관께서 휴가 신청을 받아 주셨다고 해. 화가 잔뜩 나신 듯하셨지만 순 향주님께서도 힘을 많이 쓰셨던 것 같아.”

다들 표정이 밝았고 추룡 역시 도착할 때보다 한결 더 마음이 밝아져 있었다.

문제점을 알고 모친을 휘주로 오게 했다면 해결책까지 모색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산처럼 든든한 부친.

“순 단주님, 좋은 분이시지. 그런 분을 만난 것만 해도 행운인 걸세. 결국 향주님이 되셨군.”

“카카……! 신입 훈련 때가 생각나. 빨간 허리띠들과 들어오셔서는……! 이후부터 계속 승진하셨는데 그 또한 소저의 덕분일 거야. 뭐니 뭐니 해도 소저를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은 없었을 테니까. 막 형이 아무리 식신이라 해도 한 단에 소속되지 못했다면 이런 일은 생길 수 없었을 것이거든.”

사실이었다.

추룡이 친구들을 도왔다고 해도 모두에게 오늘이 있게 된 것은 악벽강의 덕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한 단에 소속될 수도 없었을뿐더러, 몽마 사건도 산적 소탕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

다른 신입들과 마찬가지로 뿔뿔이 흩어져 간신히 이호 계급을 달고 있을 것이고, 지주나 청국 분파로 나뉘어 가기까지 했다면 무예조차 일률적으로 상향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소저!”

일제히 악벽강에게 포권을 취해 보였고 악벽강은 무거운 듯 미소 지었다.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지만 함께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한데 어디로 가시는 것인지? 휴가가 나왔을 리도 없는데 보 내에 계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전소가 웃으며 대답했다.

“새로운 임무가 내려졌습니다. 오늘부터 저희들은 악충보에서 축출된 것처럼 해야 해요. 양곡상의 점원 일과 산채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양곡상의 점원 일과 산채 생활.

뜻밖의 이야기에 추룡도 악벽강도 모두 어리둥절해졌다.

“그 말씀은……?”

“보주님께서 내린 특별명령이라 하셨습니다. 두 가지 임무가 함께 수반되는데 첫째는 황산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지낼 곳을 마련해야 합니다. 은밀히 양곡을 운반해 그곳에 쌓아야 하고요. 위기 대처령이 아닌가 싶더군요.”

“아……!”

악벽강과 추룡은 즉각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위기 대처령이란 보루에 큰 위험이 닥칠 때 발동되는 것으로 전투 대기령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중 대피처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보를 떠나 피신할 은신처를 마련하는 것.

미루어 북평의 일에 대비하려는 움직임 같았다.

“장소까지 이미 정해졌더군요. 조금 우습지만 북협이었습니다. 지난번 소탕했던 산적 일당들의 산채를 보완한다 하더군요. 굉장히 험한 곳인데 대피처로 한다면 아주 적절한 곳인 게 맞습니다.”

십왕봉의 산채.

피식, 추룡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머금었다.

“제대로 입구를 봉쇄하면 천군만마도 쉽게 뚫지 못할 곳이 분명하지. 별 곳이 다 쓸모 있게 되는군.”

“그러게 말이야. 일 역시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네. 선참님들께서 정리하고 계신 것 같던데, 외부 사람을 통하면 의혹을 사니까 양곡 상회까지 마련하신 것 같아. 황남관이라고, 거기로 가는 중일세.”

황남관.

모친인 장완옥이 있다는 곳.

추룡은 도연이 떠올랐다.

그는 자신에게 남평으로 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는데 또한 그대로 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놀라운 신통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추룡이 아연함을 금치 못한 것은 황남관에 도착해서였다.

“어머니.”

“오랜만에 보는구나. 잘 지냈느냐?”

이야기 들은 대로 황남관은 황산성의 남문통에 위치한 장원까지 낀 대규모 양곡 도매 상회였는데, 과연 장원의 후미, 별원에는 장완옥이 있었다.

남평을 떠나올 때, 그리고 이순문이 막여사를 찾아갔을 때 보여 준 조용하면서도 후덕해 보이는 모습 그대로.

“벽강이어요, 어머님.”

“만나서 반갑구나. 그이에게 이야기 들었다.”

악벽강은 막여사를 만날 때보다 더 가슴이 터질 듯 긴장된 표정으로 절을 올렸다.

장완옥은 꼼꼼히 악벽강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는데, 빠지지 않는 모습도 그렇고 일단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 같았다.

어렵긴 했지만 악벽강 역시 장완옥의 훈훈한 모습에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한데 놀란 것은 직후 시작된 이야기로 인해서였다.

“깜짝 놀랐습니다. 설마 어머니께서 휘주에 오실 줄은요. 대관절 어찌 된 영문인가요?”

모친이란 어느 경우이거나 세상의 아들들에게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므로 추룡은 미소와 함께 장완옥에게 경위를 물었는데, 장완옥이 뜻밖에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한 것이었다.

“글쎄, 나도 영문을 잘 모르겠구나. 떠난 후 중앙 도위부의 이 도독께서 오셨었다. 도위부에 머무실 당시 막역히 지내시던 친구 중 한 분이시다. 그로 인해 조정에 험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아시고 걱정하시던 중 네 서찰을 받고 찾아 나서셨지.”

이순문.

“한데 한 달 보름 전, 이번에는 아버지가 서찰을 보내셨더구나. 연안에 계시는데 네가 좋은 아기를 만나 정혼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과 함께 부득이한 일이 있어 복권을 해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셨다.”

복권!

“아버지께서……?”

추룡으로서는 그대로 머리카락이 쭉 곤두서는 듯한 그런 이야기였다. 기실 피비린내 나는 정쟁을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풍진에 묻힌 게 부친인데, 그런 그가 복권을 한다면 누구 때문이겠는가.

더욱이 이런 시기에 복권을 하게 되었다 하면.

“설마 도위부로 다시 들어가신 건가요?”

악벽강 역시 완전히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러나 장완옥은 태연자약, 변함없이 후덕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 놀라운 이야기를 했다.

“그러시겠지. 연안도위부에는 석천중이라는 분이 계신다. 친구분들 중 가장 막역한 어른이시지. 부탁드려 자리를 다지시는 것 같은데 아마도 연왕부 때문인 것 같더구나. 남평에 있음이 좋지 않으니 나에게는 휘주로 와서 너와 함께 있으라 하셨고, 네게는 절대 경거망동하지 말고 추이를 살피라고 이르셨다.”

“아버지께서 복권하신다니……!”

추룡은 순간 적잖은 혼란함을 느꼈다.

이것으로 일단 한 가지 의문은 풀렸다. 막여사가 어떻게 알고 남평으로 서찰을 보내는 등 연락을 취한 것인지.

하지만 해결책에 있어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복권이라는 점에서 우선 그랬다.

복권을 한다는 것은 조정 쪽에 선 것이다.

유사시 악충보를 살피자는 뜻으로, 도위부에 있는 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되면 일단 도처의 왕부와는 적이 되는 것이었다.

조정이 왕부들의 힘을 삭감하려 하고 있는 만큼 도위부에 있는 한 앞장서야 할 것이니까.

부친이 한 결정치고는 크게 뜻밖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급한 김에 그랬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렇다면 막여사는 어째서 장완옥을 휘주로 오게 한 것일까.

남평에 있는 게 불안하다 판단했기 때문에 오게 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으로, 복권했다면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인데.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막강한 게 금의위인 만큼 서찰 한 통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다.

남평 관사에 연락을 취해 장완옥을 보호하라고 하면 그것으로 모두 끝난다는 것. 한마디에 남평 관사는 관병들을 보내 삼중 사중으로 집을 둘러쌀 것이었으니 불안할 일이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도 남평으로 내려가 모친을 살피라 하면 되고.

하지만 반대로 일을 풀고 있었던 터인데, 비로소 돌이켜 보니 악불비의 태도도 다소 이상하다.

위기감을 느껴 대피처를 마련하는 등 하는 것이겠지만 그가 산채를 보완할 이유는 없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수하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가족들만 피신하면 되는 것인데 왜 그런 일을 하려 하는 것인지?

그대로도 이삼백이 거주하기에 문제가 없는 산채를 보완하고 양곡을 적재한다는 것은 악충보의 수하들을 모두 이끌고 들어가겠다는 뜻으로 전투를 뜻한다.

설마 조정과 싸우려 할 리 없는 만큼 역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그에게도 어떤 뜻이 전해졌을 것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모친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죄스러워 고개조차 들기 어렵습니다만,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복권하실 의향이라면 어째서 어머니께서 휘주까지 오신 것인지……?”

하나만 풀리면 모두가 풀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완옥도 만만한 모친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막여사를 잘 알 것임에도 함구하고 그냥 푸근히 대답했다.

“세상이란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니 까닭이 있으시겠지. 무엇이 됐건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보다 세심한 사람이 아버지이니,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깨달아지는 게 있겠지.”

“아시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없다.”

‘하……!’

추룡은 눈만 끔벅거릴 수밖에 없었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난국에 휘말리는 것을 막으려 하는 뜻이 보였지만 한결같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 그는 도연이 왜 자신을 보고자 했는지에 대해서조차 자세히 알 수 없는 상태였는데, 막여사의 움직임이 또 그런가 하면 슬그머니 내막을 피하는 장완옥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모두가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할 것은 없었다.

드러나고 있는 사실만 봐도 도연은 천문 지리를 헤아린다 할 만큼 앞을 내다보는 기인이고, 막여사는 조정의 온갖 권모술수와 권란을 겪으면서도 한 번도 패배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비교해 추룡은 이제 겨우 세상에 첫발을 디딘 약관의 나이. 이런 그가 천하를 다투는 권력자들의 술수와 공방에 대해 알 리가 없다. 세상이란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라 했듯 배워야 하는 것이다.

악벽강 역시 그러했다.

“부족한 소녀로 인해 아버님, 어머님께서 모두 어려움을 겪게 되셨으니 어떻게 사죄드려야 할지……!”

장완옥에게 고개 숙여 미안함을 표시했는데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장완옥은 미소 지으며 계속 조용히 대답했다.

“네가 미안해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모든 일이 기우일 뿐인데. 어려움은 헤쳐 나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이 달고도 쓴 것임을 알고 보면 낙담할 일도 노여워할 일도 없지. 원하는 것은 하나뿐으로 해로하면 모쪼록 금슬 좋게 살도록 해라. 잘살고 못살고는 하늘에 달려 있지만 금슬만큼은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남자에게도 그렇다만 조밥에 무명옷을 입을지언정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여자에게는 좋은 지아비이며 집안의 화목이고 웃음인 것이다.”

나이에 비해 만만찮게 깊은 생각과 기품을 지닌 악벽강이었지만 그녀 역시 장완옥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워야만 했다.

쿵! 쿵! 쿵……!

십왕봉을 흔드는 도끼, 망치질 소리.

추룡과 악벽강, 친구들의 특이한 임무가 시작되었다.

특과의 선참들 및 비밀리에 선별된 사람들과 함께 십왕봉의 계곡 속에 있는 지난 왕평 일당의 산채를 확장해 더 튼튼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지낼 수 있도록 막사와 곡간을 짓는 일과 남문통 안의 양곡 도매상을 살피는 일이었다.

무단이탈로 악충보에서 축출된 바보들로서, 양곡상의 점원이 된 것이다.

정말 희한한 일이 시작된 것인데, 어쨌건 이 양곡 도매상은 일반의 상회가 아니었다.

외관상으로는 소매까지 하고 있었지만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들이는 게 목적인 곳이었다. 중간상인 양 도처에서 양곡을 사들여 다른 곳에 되넘기는 것같이 마차에 싣고 가다가 슬그머니 산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후 산채 등 곳곳의 심처에 저장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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