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98화 (98/150)

# 98

대명풍운大明風雲 (5)

여유 역시 지닐 수 있었다. 강력한 동료들을 지닌 군벌을 구축함으로 최악의 경우라도 상황을 살펴 가장 안전한 노선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들 간의 문화, 역시 알아듣는 눈치라 막여사는 차분히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특별히 하실 일이 없소이다. 단단히 마음을 굳히고 버틸 각오를 하셔야 한다는 게 중요할 뿐이지. 어떤 경우라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올시다. 그렇게만 해 주면 나머지는 필부가 알아서 하리다. 대왕 전하를 위시해 석 안찰사, 장 장군, 나, 대신들까지 다 좋아질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소이다.”

“전하까지……?”

장정희의 눈에 멈칫,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그런 길이 있다는 말씀이오이까?”

“아무래도 속수무책으로 있는 것보다는. 조만간 알현할 생각이지만 다 함께 좋아질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니 부끄러움 같은 것은 지니지 않으셔도 좋소이다.”

사실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완전히 기운을 되찾은 듯 장정희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이 살펴 장군을 보내 주신 것 같구려!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끌어 볼까요?”

그에게도 적잖은 인맥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막여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올시다. 나쁜 뜻은 없다 해도 때가 이르기까지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되어야 할 것이올시다. 필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 알려져도 곤란하고. 불안해하는 분이 계시면 자신감을 보여 밀착시켜 두기만 하면 될 것이올시다.”

장정희는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필요한 인물들을 모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군벌의 수장이 되려면 사실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최 감찰사.”

입증이라도 하듯 이 말을 끝으로 막여사는 최혁을 다시 불러들였는데 다시 들어오자 최혁은 쓱, 막여사의 기색을 한번 살피는가 싶더니 탁자 위의 장부들을 챙기며 희한한 소리를 했다.

“멍청한 녀석들이 장부를 엉망으로 정리하고 말이지! 장 장군, 행정관들을 좀 잘 다스려야 할 것 같소! 태수에게 최대한 추가 군비를 지급하라 해 둘 테니 비상시에 필요한 물품들을 적재해 놓으시고! 아, 그리고 한림의 상 장군, 동천의 정 장군이 안부 묻는 것 같던데 기별이라도 좀 하시오! 왜 이런 것까지 나에게 부탁하는지, 원!”

피식, 장정희의 입가에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떠올랐다.

이야기한 두 사람은 섬서 서안군의 수장들로서 그와 특별한 친분이 없었다.

한발 앞서 힘을 모으기로 했다는 뜻인데, 이것만 해도 연안군을 포함해 삼 개 군軍, 섬서에는 이미 새로운 군벌이 등장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보름.

“어이없는 놈들이 드디어 나타났군! 전소! 임백호! 곽영! 문대위! 장청! 송민! 허원소! 정백하! 조태형! 한자방! 신학철!”

“옛!”

친구들에게 기필코 벼락이 떨어졌다.

“너희들이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데, 세운 공이 좀 있다고 그러는 것이냐, 실력이 좀 있다고 그러는 것이냐? 감히 승낙도 없이 이 개월이 넘도록 무단이탈을 해?”

북평으로 출발한 지 두 달하고도 십칠 일, 소림을 거쳐 이윽고 악충보로 다시 귀환한 것이다.

갈 때보다 시일이 많이 걸린 것은 산서 노선을 택해 오는 등 정주에까지 들렀기 때문인데, 도착하니 어느새 봄! 순욱의 눈이 완전히 도끼눈이 되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흔 명의 부하 중 무려 열한 명이 허락도 받지 않고 무단이탈을 한 것이다.

떠나기 전 휴가 신청을 했고, 만약에 대비해 사직서까지 써 놓고 나왔다 해도 돌아온 이상 이건 완전히 중죄다.

알고 있으므로 친구들도 무조건 죄를 시인할 수밖에 없다.

“잘못했습니다! 중죄인 줄은 알지만 막 삼호가 너무 걱정이 되어서!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만만하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헤아릴 일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지금까지 들어 보지도 못했거니와, 방치했다가는 악충보의 기강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엄청나게 화가 난 듯 순욱은 휙, 오동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 단주! 곡괭이 자루 준비해! 반쯤 죽여 놔야 정신을 차릴 것이니!”

‘켁……!’

친구들은 제대로 잘못 걸렸음을 깨달았다.

향용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원래 천하 각 방파에는 지켜야 할 필수 법이 있었다. 첫째는 나라법으로, 우선적으로 엄수되어야 하는 부분이었다.

양민들을 지키는 향용이 나라법을 어긴다는 게 말이 안 되므로 범법 행위를 해 발고되면 무조건 형당에서 잡아들여 포청으로 압송시키는 것이다.

가기 전에 먼저 치도곤을 맞아야 했고, 살인 등 죄질이 나쁘면 단근질을 해 수족을 쓰지 못하게 만든 후 압송하는 예도 많았다.

그 밖에 하극상이라거나 불복종 등, 보의 규율에 대한 법이 또 있었는데, 걸리면 또한 빠져나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입문하면서 처벌에 대한 조항을 승낙함으로 또한 형당으로 보내져 상당하는 벌을 받는 것이다.

떠난 후 손을 쓴 듯 형당까지 끌고 갈 기색은 아닌 것 같았지만 어쨌건 단단히 체벌을 면치 못할 눈치다.

한데 묘한 것은 오동주를 부르는 호칭 같았다.

친구들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사호 조장이었던 그.

이후 오장이 되었고, 특과가 된 후 산적을 토벌함으로 직급이 올라 떠나기 전에 부단주가 되었었다.

그를 단주라 칭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리띠 역시 단주의 신분을 가리키는 흰색 허리띠를 묶고 있었다.

다시 보니 순욱은 청색 허리띠를 묶고 있었는데, 미루어 그사이 또 변동이 있었던 듯했다.

청색 허리띠는 향주香主들이 묶는 것으로, 순욱은 향주로, 오동주가 단주가 되었다는 뜻.

딱하다는 시선으로 선참들이 둘러서서 보고 있었고, 오래잖아 오동주가 어디선가 곡괭이 자루를 찾아왔다.

“괘씸하긴 하지만 뜻이 나쁘지 않고 휴가 신청을 하는 등 사직서까지 써 두고 간 터이니 고려해 주셨으면 싶습니다.”

건네며 넌지시 선처하기를 간했지만 그러나 역시 순욱은 만만하게 끝낼 기색이 아니다.

“될 법한 이야기를 해야 말이지! 이놈들 때문에 속 썩은 걸 생각하면!”

퍽! 퍽! 퍽!

“어이쿠!”

곧 친구들의 엉덩이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는 빛나는 의리를 과시했지만 악충보로 볼 때는 여간 큰 죄가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오래가지는 않았다.

한창 매타작이 진행되던 중에 뜻밖의 인물 하나가 모습을 보이며 만류했기 때문인데, 그는 일외당의 유원헌이었다.

“제대로 당하고 있군. 됐으니 그 정도로 봐주도록 하게. 허락 없이 이탈한 것은 잘못이지만 보의 일과 전혀 무관하다 할 수도 없으니.”

“진! 충!”

입문하러 왔을 때 전소의 접수를 받아 줬던 성품 좋은 인물로서 추룡 등 친구들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남자.

당주인 그가 나선 만큼 신 나게 매질을 하던 순욱도 그쯤에서 끝낼 수밖에 없었고, 유원헌은 곧 엎드려뻗치고 있던 친구들을 일어서게 한 후 말문을 열었다.

“아무리 동료가 걱정되었다고 해도 규칙이라는 게 있는 것인데 삼가야지. 너희들이야 각오하고 출발했다지만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 순 단주나 다른 동료들이 당할 것은 생각해 봤나?”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다.

특과 마흔두 명의 인원 중 열한 명이나 되는 수효가 멋대로 무단이탈을 한 만큼 부하들을 잘못 다스린 것이 되어 순욱은 직위 박탈까지 당할 수 있고, 남은 동료들까지 덩달아 박살이 날 수도 있다는 것.

“잘못했습니다!”

친구들로서는 무조건 잘못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유원헌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총관님의 배려로 휴가 신청이 접수되어 이 정도로 끝나는 것이다. 순 향주가 애쓴 것이지. 이하 떠난 사이 보 내에 변화가 좀 있었다. 직급의 변화인데, 소저께서 직위 해제되시고 내가 내당주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머지 당주들과 향주들도 한 자리씩 당겨져 상향 조정이 되었고, 순 단주가 내향주로 승급했다. 오 부단주가 단주가 되었고.”

직급의 변화.

“보주님의 지시에 따라 너희는 다소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벌이라 생각하고 단단히 고생할 각오를 하도록. 알겠나!”

“옛!”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친구들은 무조건 대답부터 했다. 당장 빠져 있는 코가 석 자라 무슨 임무냐고 물어볼 처지조차 못 되었다.

이런 모두를 보며 유원헌은 한 번 더 히죽이 웃었다.

“아버님.”

그런 가운데 같은 시각, 악벽강과 함께 추룡은 악불비를 만나고 있었다.

악불비는 매우 편치 못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는데, 그래도 추룡을 치하했다.

“다녀오느라 고생 많았다. 떠난 후 다시 연락을 받았다만 장 대감이 정말 실없는 일을 한 것 같더구나. 아무리 동기간의 정을 생각했다 해도 하옥 핑계까지 대어 사람을 북평까지 보내게 하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지.”

출발한 후 다시 서찰을 보냈다 했던 장신.

도연의 청에 따라 추룡을 오게 했다는 것은 숨긴 듯했다.

흐린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보다 보름 전 사돈께 뜻밖의 기별을 받았는데, 더 중한 문제가 발생해 있더구나. 장 대감이 북평왕부에 몸담고 있음으로 변고가 생기면 악충보가 휘말리게 될 것이라는……! 어째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지 모르겠다만 정말 면목이 없었다.”

“엣……?”

추룡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크게 멈칫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일은 자신에게 있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막여사에게 사실을 고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했는데 무엇이라 해야 할지 면목이 없었던 것.

한데 막여사가 더 빨리 사실을 알고 악불비에게 연락을 취했다니!

크게 긴장되는 심정으로 질문했다.

“안 그래도 북평에 가서 심각성을 깨달았사온데, 설마 아버지께서 사실을 아셨다니……! 무어라 하시던가요?”

악불비는 무겁게 고소 지었다.

“남평으로 가신 줄 알았더니 연안에 계신다 하더구나. 벗을 만나기 위해 들르신 길에 문제가 있음을 아신 것 같은데, 남평으로 가지 말고 모친과 함께 여기에 있으라 하셨다.”

“옛……?”

철렁, 추룡은 더욱 가슴이 주저앉았다. 악벽강 역시 가슴이 주저앉았다.

“그 말씀은……? 설마 어머니께서 휘주로 오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인 것.

악불비는 크게 미안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름 전에 이미 오셨다. 기별을 가지고 오신 분도 안사돈이셨고. 현재 황산성에 머물고 계신다. 문제점을 아신 사돈께서 도위부의 연락망을 통해 남평으로 기별하신 것 같더구나.”

추룡은 비로소 떠난 사이 자신이 모르는 적잖은 일들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밖에 다른 말씀은……?”

“없었다. 분부하신 일이 있다면 안사돈께서 말씀해 주시겠지. 바로 황산성으로 가거라. 남문통에 황남관黃南館이라는 양곡 상회가 있는데 장원의 별원에 머물고 계신다.”

악벽강에게도 일렀다.

“강이, 너도 함께 가거라. 너는 이제 당주가 아니다. 어차피 남평으로 갈 것이라 해야 할 일이었지만 사돈의 연락을 받고 한발 앞서 일을 처리한 것이다. 이제부터 너는 안사돈을 모셔야 할 것이다.”

한발 앞서 직위에 변동이 생겼던 까닭!

악벽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또 가슴이 떨렸다.

장신의 집 앞에서 금의위와 부딪친 후 소림을 거쳐 돌아오기까지 이십 일.

추룡도 그랬지만 그사이 악벽강은 정혼하기 직전보다 더 심하게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팔자가 이런 것인지, 처음에는 분에 넘치는 신랑감을 만나 마음고생을 했는데, 산 너머 산이라고 해결되자 이번에는 총체적인 위기가 닥쳤던 것이다.

이로 인해 오는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얼굴이 수척하게 변해 있을 정도였는데, 일단 추룡과의 일에 대해서는 한시름을 덜긴 했다.

고맙게도 막여사가 이해하고 뭔가 대비책을 세운 듯한 눈치인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집안일이 남아 있는 상태에 시어머니가 될 장완옥을 대할 일까지 생긴 것이니……!

“시아버님께 감사 올려야 할 일이겠지만 소녀가 떠나면 집안일은……! 시어머님께서는 왜 보에 계시지 않고 황산성에 머무시는 것이온지?”

악불비는 무겁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혼자시니 여긴 부담스럽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 봐도 이곳은 좋지 않고. 보의 일에 대해서는 네가 신경 쓸 게 없다. 어차피 너는 남평으로 가야 할 것이었으니.”

하지만 집안이 위기에 몰린 것과는 사정이 또 다른 것이다.

“시아버님께서 무엇이라 하신 것이온지……?”

효성이 지극한 딸. 악불비는 어두운 중에서도 악벽강을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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