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96화 (96/150)

# 96

대명풍운大明風雲 (3)

몽둥이로 맞는 것이 역근.

“세인들은 또한 나한들의 신체에 큰 의문을 지니고 있는데 알고 보면 또한 대단한 게 아닐세. 역근경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굵은 몽둥이에 천을 감아 적당한 매질을 해 근육을 강화시키는 것이지. 맞는 순간 반사작용으로 근육이 수축되어 충격을 완화시키도록 하는 것이 역근의 기본인 것일세. 누구나 할 수 있는 수련이지.”

천하의 절기라는 역근경의 실체.

두드릴수록 피부와 근육이 단단해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었다.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일 뿐.

“하……!”

친구들은 눈을 멀뚱거리며 연방 주위를 살폈고, 이런 그들을 안내하며 정업은 계속 소림 무예에 대해 설명했다.

“어째서 승려들이 이런 짓을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지닐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고대로부터 이어진 것일세. 세존께서 깨달음을 얻기 전부터 시작된 일인데, 세존 이전이니 당시에는 천축에도 불교라는 게 없었네. 그냥 브라만이라는 사제司祭 계급만 있었지. 승려와 비슷한 것이지만, 그러나 천축에서는 아무나 이 계급이 되지 못하네. 왕족을 넘어서는 존귀한 신분이라 같은 혈통과 계보에서만 이어지지.”

천축의 신분.

“해서 속세를 떠나 초극을 추구하고자 한 천축의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고행을 하였는데, 이를 사문沙門이라 일컫네. 모래알처럼 흩어져 수행을 한다 하여 그렇게 부른 것 같은데, 아무튼 세존께서도 사문으로 시작하셨네. 이 사문들의 기본 수업이 고행일세. 번뇌를 없애기 위해 몸에 고통을 가하는 것이지. 초극과는 관계가 없지만 당장 몸에 고통이 오면 잡념이 사라지니까 번뇌를 없애는 데는 큰 효과가 있네.”

고행.

“이 고행을 선용하고자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역근 수행일세. 용맹 정진을 하는 승우들 중에는 번뇌를 없애기 위해 손가락까지 불에 태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바에야 사념도 없애고 몸도 튼튼히 하라고 달마 조사께서 역근 수행을 소림에 뿌리내리신 것일세. 사실 몸에 못질을 하고 손가락을 태운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니까.”

이야기 그대로 석가모니 역시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육 년에 거쳐 고행을 하며 진리를 찾았지만 얻을 수 없어, 고행림을 벗어나 고향인 가비라 성으로 돌아가던 길에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명상하던 중 해탈의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마대사님은 매우 현명하신 분이셨군요.”

정업은 미소와 함께 친구들을 계속 광장 건너로 안내했다.

“그렇다고 소림에 삼십오방에 준하는 수련장이 없는 것은 아닐세. 백팔나한이 수련하는 장소가 따로 있긴 하니까.”

도착한 곳은 광장의 건너편인 달마전이었다. 일 층으로 된 넓은 법전. 들어가니 또한 놀라운 정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법전이라도 이곳에는 불상이 없었고 대리석으로 된 바닥에 안쪽 맞은편에는 달마대사의 좌상이 놓여 있었다.

“쳐!”

“하아압! 하압!”

훙훙! 후후훙! 팍팍!

여기에서 정명 대사의 호령 아래 사십여 명의 나한들이 질서 정연히 열을 맞춰 서서 곤을 휘두르며 수련하고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돌로 된 바닥으로서, 나한들이 선 곳마다 움푹하게 구덩이들이 파여 있다는 점이었다.

일부러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에서 무예를 연마함으로 돌바닥이 닳아서 생긴 구덩이들이었다.

‘맙소사! 물방울이 금석도 뚫는다 하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을 수련해야 돌바닥이 닳아서 저렇게 된다는 것인지!’

이를 본 친구들은 완전히 질린 표정으로 소림나한들의 신위를 인정했다.

이쯤 되면 절기고 뭐고를 떠나서라도 소림의 나한들이 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강철 체력이어야 가능하다 싶을 정도의 종일 노동에 몽둥이찜질로 다져지는 근육, 돌로 된 바닥이 닳을 정도로 수련하는 터인데 약하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인 셈이다. 이 정도로 노력하면 누구라도 고수高手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그런 한편, 추룡은 같은 시각 원혜 대사를 만나고 있었다.

은은한 향촉 냄새가 도는 방장실.

상좌에는 장문인인 원혜 대사가 있었고, 좌우에는 원혜 대사와 유사하거나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덟 명의 팔순 장로들이 좌정해 있었다.

“만나게 되어 반갑구나, 정진. 너를 알게 된 것은 지난여름, 정명이 소개하였기 때문이다만, 뜻밖에 지난밤 정업으로부터 또 다른 사실들을 알게 되었구나. 부친께서 막여사 장군이시라고?”

서리처럼 흰 눈썹을 지닌 그. 추룡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매우 뜻밖의 일이었다. 군관이었던 부친을 두었고, 노력으로 나한에 상당하는 무예를 쌓았을 뿐 아니라 심성이 후덕하다 하여 적에까지 올렸다만, 설마 막 장군의 아들이었다니. 정식으로 소림사의 적에 올랐다는 사실을 아느냐?”

추룡은 계속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몰랐습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소림사의 적에까지 올려 주실 줄이야. 삼생의 영광이 아닌가 싶습니다.”

원혜 대사는 깊은 물처럼 가라앉은 시선으로 찬찬히 추룡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기쁜 일이지. 이렇다 할 가르침도 주지 못한 상태에 제자로 맞이한 터이니. 부친께서도 그리 생각하시겠느냐?”

“그러실 것입니다. 소림의 높은 수양과 공명정대함을 크게 칭송하시더군요. 반드시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들 역시 막 장군을 크게 존중하는 터이다. 의에 기인해 사마와 부딪쳤으되 매사에 인정을 남겼고, 그릇된 길 앞에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공명을 버리고 떠났으니 이런 인물은 천하를 다 뒤져도 찾기 어렵지. 그대로 천하제일이신 것이다.”

소림사에서도 인정하는 막여사.

“한데 알고 나니 의구심이 작지 않더구나. 막 장군의 아들인 네가 악충보의 무사로 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금의위를 피하는 상태였다 하니. 악충보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이더냐?”

정업이 느꼈던 의문.

“처가妻家가 될 집안입니다.”

“처가라고?”

구태여 숨길 것이 없어 추룡은 친구들을 만난 일을 비롯해 악벽강과 정혼하게 된 것을 간략히 이야기했다.

“아미타불……!”

원혜 대사는 진중히 불호를 읊었다.

“기연이로구나. 막 장군의 아들인 네가 특이한 연을 접했거니와 동서가 될 사람이 북평왕부의 중신이라니. 부친께서도 사실을 알고 계시느냐?”

추룡은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 아뢸 생각입니다.”

원혜 대사는 깊숙이 가라앉은 시선으로 추룡을 응시했다.

“여간 중한 일이 아니거니와 사실을 알면 크게 당혹해할 것 같은데 어찌하실 것 같으냐?”

추룡은 거듭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일찍이 정쟁을 피하여 권력을 떠나셨고, 부질없는 일에 휘말릴까 우려하여 찾아오신 길에 말씀 올려 정혼한 것이온데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원혜 대사는 묵묵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말문을 열었다.

“너는 어찌할 생각이냐? 길흉화복이 크게 엇갈리는 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추룡은 심호흡과 함께 대답했다.

“길이든 흉이든 안고 갈 생각입니다. 한번 정한 마음을 어찌 바꾸겠습니까. 무엇이든 감내하고자 합니다.”

“조정과 북평왕부가 충돌하면 싸울 것이라는 뜻이냐?”

추룡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최악의 경우라면 그리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오나 그리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최선을 다해 피해 가고자 하는 터입니다.”

“어떻게?”

“악 보주님께서도 부친 이상 의로운 분으로서, 말씀 올려 최대한 충돌을 피해 물러서는 쪽을 택하려고 합니다.”

“물러선다는 것은?”

“혼란을 피해 은거하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탕음악씨의 명예와 협명이 크니 그래도 세상은 악충보를 잊지 않을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조정에서도 진의를 알고 사면령을 내릴 것이니 그때 일을 재개하기를 권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악의 경우라는 것은?”

“사면초가가 될 때를 일컫는 것입니다.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평심을 지킬 것입니다만, 그래도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 모두가 궁지에 처해지면……! 그런 상황을 말씀 올린 것입니다.”

그러자 원혜 대사는 이마를 주억이며 크게 예상 밖이라 할 이야기를 했다.

“잘 알았다. 물은 것은 막 장군의 의중을 알고 싶었기 때문인데, 그것이 부친의 뜻이기도 할 것이다. 들었던 대로 생각이 바르고 마음이 곧은 것 같아 크게 기쁘구나.”

추룡의 대답이 막여사의 대답!

그대로 예상 밖의 이야기인 것이었다. 어째서 추룡의 뜻이 막여사의 뜻이 된다는 것인지?

크게 의문이 들 정도였는데, 그러나 원혜 대사는 신경 쓰지 않고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니 네게 각별히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구나. 몰랐던 상태에서 만났으나 기왕 기연이 시작되었으니 막 장군께 안부를 한번 여쭙고 싶다. 황산성의 서쪽에 보리사菩提寺라는 작은 사찰이 하나 있다. 그곳에 전서구가 있는데, 부친과 연락이 닿으면 어디에 계신지 기별해 줄 수 있겠느냐?”

소림의 장문인인 그가 막여사에게 안부!

역시 뜻밖이라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추룡이 소림의 적에 오른 만큼 막여사와도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림의 장문인인 그가 안부를 할 정도는 아니지 않겠는가.

“그리하겠습니다.”

의문이 느껴지는 일이었지만, 그러나 추룡은 선선히 대답했다. 해가 될 일은 아니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삭주朔州.

“전군 앞으로!”

둥! 둥! 둥!

“와아아아-!”

두두두두두두……!

그런 속에 막여사는 움직이고 있었다.

복권이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연안도위부의 감찰교두가 된 그.

“장사長蛇! 학익鶴翼! 사두蛇頭! 방원方圓!”

두두두두두……!

성사되자 곧 곳곳을 순회하며 도처 군부의 전력을 감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지사로 주위의 군부들은 초비상 상태가 되었다. 느닷없이 도위부에서 감찰이 뜬 것이니.

어느 곳이나 중원의 최북단, 취약 지구에 주둔한 군부들이라 안일하다 할 곳들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찰이란 꺼림칙하다.

기강이 해이하다거나 사기와 전력이 떨어진다 판단되면 수장들이 문책을 받고, 더 문제가 있으면 옷까지 벗겨 나가는 불상사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총통 발사!”

콰콰콰콰쾅!

펑! 펑……!

따라서 도착하는 지역마다 수장들은 얼어붙은 기색으로 부하들을 사열을 시키고 최선을 다해 전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만치 감찰이 심상치 않은 것이기도 했다.

평소에도 감찰사가 뜨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 형식에 지나지 않았고, 와도 그냥 거드름을 피우고 가곤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완전히 실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는 곳마다 기동, 용진, 포격에서부터 행정 처리와 내무반까지 모두 살피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감찰을 하고 있는 게 막여사다 보니 내용조차 완전히 사정이 없다.

“헉헉……!”

“대체 뭐야? 미친 것도 아니고 왜 이래? 장사진에서 학익진, 학익진에서 사두, 사두진에서 방원진으로 바꾸라니? 이런 정신 나간 지휘가 어디 있어? 아무리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게 용진술이라지만 그래도 기본이라는 게 있는데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으니! 우리에게 죽으라는 거야 뭐야?”

지휘받는 병사들조차 거의 초주검이 되고 있을 정도였는데, 기동 및 진형의 감찰 부분만 해도 그랬다.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듯 사실 진형이란 변화되는 원칙 같은 게 있었는데 어느 진형으로 시작하든 처음은 별문제가 없다. 기본 세를 이루고 있다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지시하는 진세를 이루고 적과 마주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첫 번째 진형에서 두 번째 진형으로 변화를 시도할 때는 유사한 고리 같은 것을 찾아서 했다.

간략히 장사 진형이란 명칭 그대로 뱀이 움직이듯 전군이 선봉장을 기준으로 길게 대열을 이뤄 적을 쳐 가거나 돌파를 시도하는 진세로서, 여기에서 변화되는 다음 진형은 거의 방원 진형이 되거나 사두 진형이 된다.

빠르게 일렬로 상대를 휘감아 나가 포위, 압박 공격을 시도하거나 세모꼴 형상으로 뭉쳐 중앙을 돌파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이 진형에서 학익진으로 변화하기란 실로 어렵다. 장사진은 종대로 기동하는 진형인 반면 학익진은 횡대의 진형이기 때문이었다.

변화시키기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하려면 진형을 새로 짜야 하는 등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움직임이 커지므로 말이나 병사들의 체력이 엄청나게 소모된다.

펼쳐진 학익에서 한 덩어리의 세모꼴인 사두진 세를 이루는 것도 그렇고, 사두진에서 갑자기 적을 포위하는 방원진으로 변화시키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칙을 벗어난 명령만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우왕좌왕, 진형을 이룬 건지 뭔지 오래잖아 병사들은 형태를 잡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엉망이 되었다.

워낙 중구난방식의 요구를 하니 정신없이 뛰다가 어디에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할지조차 모르게 된 것이었다.

“헛헛……! 완전히 오합지졸이로구만! 장 장군, 저것도 진형이라고 할 수 있소? 총통에 화약을 장전하는 시간, 조준 능력 등 포대까지 형편없으니, 이게 무슨 정예라고! 믿고 있었더니 완전히 꼴도 아니구려!”

막여사를 보좌해 나온 감찰사는 연안도위부의 최혁이라는 인물이었다. 오십 초반에 검은 피부를 가진, 공처럼 단단하게 생긴 인물.

신분 자체는 막여사보다 위지만 석천중의 지시에 따라 그를 보좌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도착해 있는 곳은 산서의 삭주, 주위에는 삭주군의 참령 및 수장 들이 벌겋게 얼굴이 달아 있었다.

아무리 감찰이라 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었다.

아무리 전력을 파악하기 위환 일환이라지만 정석을 벗어난 명령만 해 대고 있는데 병사들이 제대로 따라 낼 수 있을 게 뭔가.

하지만 함부로 불만을 토할 수는 없었다. 도위부의 감찰에 명령을 하고 있는 인물의 내력이 워낙 어마어마한 것이다.

삭주군의 병마참령은 장정희라는 쉰 살의 인물로서, 벌겋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었고, 부참령, 이문구라는 장수가 불편한 표정으로 대신 말을 꺼냈다.

“지휘에 따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무리한 명령을 내리시는 것에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진의 원칙을 떠난 지휘를 하시니……! 체력이나 움직임에 한계가 있는데 저 병력이 어떻게 엇박자가 나는 진형을 계속 이루어 나갈 수 있을는지요.”

집결시킨 병력은 육천가량.

“감히!”

순간 최혁의 눈에 퍼렇게 서슬이 떠올랐고, 막여사가 그를 막았다.

“옳은 말씀이오. 하나 전쟁에는 원칙이 없소. 오히려 거의가 비원칙인 셈이지. 의표를 찔러 적이 변칙 공격을 해 와도 원칙만 고수할 수 있겠소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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