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95화 (95/150)

# 95

대명풍운大明風雲 (2)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걸세. 사정상 후퇴하는 것일 뿐 가도 오래 있지는 않을 거니까. 길어야 삼사 년이라고 봐. 그사이 죽어라 실력을 키우는 거야. 그런 다음 또 합치면 되지.”

“그래도 자네들과는 다르거든. 늦게 아는 통에 나눈 것도 별로 없고, 좋은 점도 별로 보여 주지 못해서.”

“충분히 보여 줬네. 사직서까지 쓰지 않았나? 이건 동료를 넘어선 일일세. 한 형도 이젠 우리 패거리야! 하하……!”

“그렇다면야 안심이지. 이렇게 의리 있는 친구들과는 목숨을 걸고라도 함께 지내야 하거든. 분명히 말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걸세! 친구가 무언지 아니까.”

신학철이 웃었다.

“난 좀 얼결에 쫓아온 것도 있는데, 말하다 보니 슬그머니 걱정되는걸. 아무래도 돌아가면 무진장 깨질 것 같은데?”

“하하하……! 각오해야지 뭐! 그래도 열두 명일세. 같이 깨지면 덜 아픈 거지. 그냥 싹싹 빌어 보세!”

“하하……!”

웃는 사이 선두에서 달리던 정업이 걸음을 늦춰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단련이 돼서 그런지 역시 힘들어하지는 않는군.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인가?”

오면서의 대화로 상당히 친밀해진 그들.

“아닙니다. 그냥 우리끼리! 그런데 꽤 가는군요. 샘이 멀리 있는 것입니까?”

떠들고 있어서 그렇지 달리고 있는 길은 확실히 꽤 먼 편이었다. 소림사의 담 옆 소로를 돌아 소실봉의 후미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소림사의 뒤쪽이었다.

“계곡 쪽일세. 연천곡이라고 달마동達磨洞을 지나서 가야 하네. 저기가 조사묘祖師墓일세. 탑림이라고도 하지.”

“와……!”

순간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래잖아 모두의 앞에 진풍경이 펼쳐졌는데, 세인들의 상상처럼 소림사는 그리 웅장하거나 하지 않았다.

워낙 널리 알려져 있어 소림사 하면 궁실 같은 어마어마한 사찰을 연상했지만 실제 그렇지는 않았고, 사 층의 종루가 가장 높았으며``―``현재는 천불전이 가장 크다. 명 중기에 축조``―``이 층의 대웅보전과 법전(장경각), 달마전을 중심으로 좌우를 둘러 승려들이 기거하는 선방이 자리 잡은 형상이었다.

원과 명나라 초기``―``이 당시``―``에 주춤하여 절반으로 수효가 줄었지만, 당나라 당시에 이천 명이 기거했던 만큼 선방이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는 곳으로, 웅장함은 오히려 백마사가 더했다. 담장 역시 일곱 척가량으로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러나 규모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는데, 담장 안이 모두가 아니라 소림사의 영역은 소실봉을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경내 뒤편에 위치한 탑림을 그중 한 예로 들 수 있었다.

조사묘로 불리는 이곳은 소림사에 몸담은 역대 승려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고, 그런 만큼 역사만큼이나 어마어마했다.

수만 평의 규모에 단층에서부터 칠 층에 이르는 수많은 탑들이 중턱 한 곳을 메우다시피 빽빽이 들어서 있고 일 장 높이의 돌무덤까지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으니.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은 오유봉의 상부인 달마동으로서 소실봉을 넘어 있으니 소림의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를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아직도 어두운 새벽, 경내를 돌아 달리기 시작한 승려들은 이 탑림을 돌아 오유봉 쪽을 향하여 뛰고 있었던 것인데, 그 형상이 기이하게까지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비단길, 오래잖아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물을 길러 간다고 해 가까운 곳에 샘이 있나 보다 했던 터인데 오유봉으로 뛰어오르고 있으니 길이 가파르기 이를 데 없다.

‘웬 등산이지? 설마 산꼭대기에 샘이 있다는 것?’

당연히 친구들로서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달마동과 연천곡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어디인지 몰랐던 것이다.

어쨌건 달마동이 있는 곳은 오유봉의 꼭대기였다. 일반의 걸음으로는 반 시진이나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야 하는 곳!

하지만 여기가 끝도 아니었다.

“아미타불!”

정명과 승려들은 가파른 오유봉으로 뛰어올라 달마동을 지나서 이번에는 능선을 따라 아래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완전히 바위로 된 더 가파른 직벽에 가까운 곳이다.

자칫 발을 잘못 움직이기라도 하면 그대로 고꾸라져 새카만 절벽 아래로 낙하할 법한 그런 곳!

하지만 익숙한 듯 승려들은 비좁은 직벽 옆을 끼고 아래로 뻗은 길도 아닌 턱을 타고 계곡 아래로 내려갔고, 새카맣게 내려가 보니 비로소 계곡 아래에 얼음장 같은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무예를 지니고도 여기에 당도한 게 반 시진.

올라오는 것보다 내려오기가 더 힘들어 친구들은 한결같이 땀을 흘렸는데 그래도 승려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미타불!”

도착하자 훌훌 옷을 벗고 얼음장 같은 물을 뒤집어쓰는 등 세면을 하고 제각기 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몇 안 되었지만 동자승들도 같았다. 친구들도 땀이 나는 길을 열 살가량의 나이로 달려와 똑같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끼리끼리 모여 웃으며 세면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당해서 눈을 끔벅이며 살펴보는 친구들에게 정업이 다시 새로운 것을 알려 줬다.

“연천곡일세. 일반에는 연천대협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가 초입이지.”

연천대협곡. 안쪽으로 들어가 보지 못했으나 병풍처럼 깎아지른 천 길 벼랑이 멀리에서 보기에도 아찔하다.

“설마 새벽마다 여기까지 오는 것입니까? 물동이까지 짊어지고?”

정업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일세. 더러는 쓰러질 때까지 오가기도 하지. 번뇌가 생길 때는 땀을 흘리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으니까. 어쨌건 규칙은 아니고 자율적으로 하는 일일세. 이것이 소림 삼십오방三十五房 중 일방이지.”

저 유명한 소림 삼십오방 중의 하나.

친구들은 일제히 깜짝하는 표정이 되었다.

“이것이 일방이라고요?”

정업은 계속 웃으며 설명해 줬다.

“그렇네. 소림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바가 있다고 했듯 세인世人들은 장경각이나 소림의 삼십오방을 매우 신비하게 여기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삼십오방은 그냥 생활 수행을 하는 것을 일컫는 것일세. 번뇌도 씻고 체력도 올릴 겸 동료들을 위해 물을 길어 오고, 취사를 하고 땔감을 장만하고 참선을 하는 게 모두 삼십오방에 속하는 것일세. 술수를 수련하는 것은 사소한 하나일 뿐이지. 나한들은 이 생활들을 통해 힘을 얻네. 그뿐인 걸세.”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다.

소림의 나한들이 워낙 강하므로 일반의 사람들은 대개가 소림의 무승들이 특별한 신공을 수련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경각에 달마 비전들이 소장되어 있고 삼십오방에서 그것을 수련한다는 둥 하는 소문들이 돌고 있었던 것!

하지만 정업의 말을 조합해 보면 전혀 엉뚱한 추측인 것이다.

전통적인 절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소장된 비급 같은 것도 없고, 삼십오방도 별것이 아니라는 것.

기예는 오랫동안 체득해 온 윗사람들로부터 전해지고, 생활을 통해 체력을 얻는다는 뜻이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허언이 아닌 일이기도 했다.

조사묘에 이르기까지 십만 평에 달할 정도에 청소만 하는 것만 해도 예삿일이 아니다. 빗자루질을 하는 것만도 종일이 걸리는 것이다.

천 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위해 끼마다 밥을 짓고 땔감을 하는 취사 일은 또 어떤가? 이것이 모두 무승들이 하는 일이라면 그 노동량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여기에서 외적인 힘을 얻고 참선을 통해 공功을 쌓는다는 것인데, 분명히 이 하나만으로도 일반과 비교할 바 아닐 정도의 체력이 생길 수 있었다.

친구들은 자신도 모르게 저만치서 웃으며 세면을 하는 등 몸을 씻고 있는 동자승들과 추룡을 번갈아 봤다.

열 살부터 십 리 길을 달려 봉황산으로 오가며 무예를 수련했다는 추룡과, 같은 나이에 가파른 산을 달려 물을 길어 오는 동자승들! 차이점이 무엇인가.

바로 저 동자승들이 차후 나한이 되는 것이다.

‘하……!’

절로 한숨이 나왔다. 실력의 차이는 여기에서 났던 것이다.

절기는 둘째, 노력이라는 것.

정업은 거듭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했다.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무예는 무조건 체력이 우선하는 것일세. 아무리 뛰어난 술수를 지녀도 힘이 따르지 않는 한 대단한 것이 아니지. 체력이 없는 사람이 열 번을 치는 것보다 힘이 있는 사람이 한 번 치는 게 더 강하게 먹힌다는 이치일세. 기氣를 누르는 게 술術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는 거지. 권법 같은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고 검법도 그러한데, 같은 체질이라면 힘이 강할수록 더 빠르게 몸을 놀린다는 게 정해진 이치 아닌가. 기 전에 술이지만 술 후에 또 기일세. 술은 잠깐이지만 기는 평생 동안 쌓아도 부족하지. 이것을 생각지 않고 절기만 바란다면 결코 대성하지 못하는 걸세.”

술은 잠깐이지만 기는 평생 동안 쌓아도 부족하다!

남평의 나무꾼이 통나무를 들고 뛰는 이유.

분명히 추룡의 파괴력은 술수에서 나오는 게 아닌 것이었다.

소림 무승들이 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후에 더 극명히 보였다.

몸을 씻은 그들은 지체 없이 가지고 온 물동이에 담은 후 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더 예삿일이 아니었다.

그냥 오기도 땀이 흐를 정도인데 물이 가득한 물동이를 짊어지고 가파른 바위벼랑 꼭대기까지 올라가 오유봉을 내려간다는 게 상상할 정도가 아닌 일인 것이다.

어깨는 주저앉을 듯하고 가파른 오름과 내림 길에 걸핏하면 물동이가 출렁거려 물이 쏟아진다.

그렇다고 내려놓고 쉴 수조차 없었는데, 아래가 뾰족한 물동이라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굳이 쉬고자 하면 어정쩡하게 다리를 굽힌 기마 자세로 끝 부분만 바닥에 닿게 해 힘을 더는 정도.

그래도 승려들은 기가 막히게 달렸다. 깃털처럼 몸을 놀리고 있었는데, 익숙해서인지 물동이도 심하게 출렁이지 않았고 출렁여도 물은 거의 쏟아지지 않았다.

물동이가 움직이는 원심력을 이해해 익숙하게 상황에 대처하며 바람처럼 다시 소림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도착하자 묘시.

“컹!”

“물이 반도 안 남았군. 완전히 졌다 싶네.”

친구들은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다시피 한 채 자신도 모르게 다시 실소를 머금고 말았다. 이야기 나온 대로 동이의 물이 절반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승려들은 대부분 삼분의 이 이상이 남아 있었고, 도착하자 곧 그것을 취사당 등 도처의 항아리에 부은 후 지친 기색도 없이 바로 다음 일을 시작했다.

도처로 흩어져 비질을 하는가 하면 어마어마한 무쇠솥에 밥을 하고 장작을 패는 등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학승學僧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한참 후였다. 식사 채비가 끝날 즈음 선방에서 밖으로 나와 길어 온 물로 세면을 하고 주위를 살펴본 후 식사를 시작했다.

직후 알게 된 일이지만 소림 승려들은 대부분 축시(丑時-01∼03시) 후로 잠을 자지 않았다.

원래 소림에는 하루 세 번 부처에게 공양을 올리고 예불을 하는데, 새벽 예불이 한밤중인 바로 그 축시에 있었다.

그리고 오전 예불이 사시(巳時-09시∼11시)에 있었으며 저녁 예불이 유시(酉時-17시∼19시)였다.

아침 식사는 묘시 말(07시)까지.

따라서 이들의 일과는 아침부터가 아니라 밤부터 시작되었는데, 술시戌時 정(20시)에서 자시子時 말(01시)까지 눈을 붙이고, 새벽 예불을 한 후 아침 식사 때까지 법당이나 선방에서 참선을 했으며, 식사를 마치고는 전원이 공동으로 운신공양(運身供養-청소 등 일반적인 일들)을 했다.

이후 사시 예불을 한 후에는 자유 수행이라 불리는 포행을 했고, 유시에 다시 저녁 예불과 식사를 마치고 세 시진가량 잠을 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승들은 더 어마어마한 강행군을 했다. 한발 앞서 예불 준비까지 함으로 하루 종일,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자시 이전에 일어나 예불과 공양 준비를 하고, 밤새 참선을 한 다음 물을 길어 와 동료들의 식사 준비를 하고 나면 또 사시 공양을 준비한다. 이후 포행으로 자유 정진을 한 다음, 유시 공양을 준비하고 저녁 식사의 마무리까지 한 다음에야 눈을 붙이는 것이었다.

“완전히 사람 잡는 일이군! 두 시진은 자는 거야?”

“대강 그렇다고 봐야지. 참선을 하는 게 휴식인 셈이야.”

“황당하다.”

친구들은 한결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거렸는데, 그때도 정명 등 무승들은 분주히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조를 나눠 설거지에 청소에 불상을 닦고, 약초와 채소 등을 심은 텃밭을 돌보고, 사찰 곳곳을 살펴 보수하는 등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

그야말로 완전히 철인鐵人들 같아 보일 정도다.

그런 사이 금방 사시가 가까워져 또 공양을 준비한다.

천 명이 먹을 점심 식사까지 함께 마련하므로 그것만 해도 엄청나게 바쁜 것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포행 시간이 되어 다소 한가해졌다. 저녁 예불이 유시이므로 두 시진가량 자유 정진 시간이 난 것이었다.

이 시간은 법승과 무승 모두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수행을 하였으므로 경을 읽어도 좋고 참선을 하여도 좋았으며, 휴식을 취해도 좋은 그런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시간에도 승려들은 쉬지 않았다.

문을 열자 곧 치성을 올리려고 온 신자들이 밀어닥쳤는데, 법승들은 그들을 맞이하느라 분주했고, 무승들은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나한당을 구경시켜 주겠네. 따라오게나.”

오시 말이 되자 정업은 다시 친구들을 청했는데, 안내한 곳은 저 유명한 소림의 나한당이었다.

대웅전의 뒤편, 장경각과 달마전의 사이.

선방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쳐진 곳으로, 정확히 무승들이 기거하는 전체가 나한당인 셈이다.

정확히 선방으로 안내한 것은 아니라 달마전 앞에 널찍한 공터*(*명 중기에 달마전을 새로 세우고, 뒤쪽에 소림에서 가장 큰 천불전千佛殿을 세웠다. 그 전에는 천불전의 터가 이 공터였다.)가 하나 있었는데 그곳으로 안내한 것이었다.

“하아압! 하앗!”

도착하자 또한 진경이 펼쳐져 있었는데 바닥에는 넓게 모래가 깔려 있었고 여기에서 수많은 승려들이 체력을 단련하고 있는 게 보였다.

권각법을 수련하는 승려, 봉을 들고 바람을 일으키며 곤법을 수련하는 승려, 혹은 절편 등 각종 기문 병기를 수련하는 승려들도 보였다.

퍽! 팍!

“흡……!”

특이한 예로 옷을 벗고 상체를 드러낸 승려들이 일렬로 선 속에 벌이라도 받는 듯 팔뚝만 한 몽둥이에 천을 둘둘 감아 복부, 등, 어깨 등에 뭇매질을 하는 정경도 보였다.

가리키며 정업은 다시 설명을 해 줬다.

“수련 공양을 하는 곳인데 세인들은 여기를 삼십오방이라 착각하지. 일반인이 들어오지 못하는 곳이라 신비하게 여기지만 보다시피 특별한 곳은 아닐세. 일반과 같은 수련 장소지. 저렇게 몸을 두드리는 것이 역근 수련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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