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91화 (91/150)

# 91

복귀復歸 (3)

북평, 연왕부, 휘주, 악보, 추룡 그리고 자신!

주어진 모든 것들을 눈곱만치도 놓치지 않고 광범위하게 계산하며 무언가를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돌 같은 굳어진 표정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열흘 만에 다시 찾아온 벗을 보며 석천중은 크게 놀란 기색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그가 실로 뜻밖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네…… 그게 사실인가? 복직復職을 하겠다고?”

그러했다.

복권! 열흘 만에 막여사가 내린 결정은 그것이었다.

당연히 석천중은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결심을 굳힌바, 막여사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네. 하지만 중앙은 아니야. 여기에서 자네와 있고 싶어. 혹시 내가 있을 만한 자리가 있겠나?”

“대체 그게 말이나 되나! 피비린내 나는 아귀다툼을 피해 학같이 떠났던 자네가 나조차 은퇴를 생각하는 시점에 복권을 하다니? 어불성설도 유만부득인 걸세! 설령 한다고 쳐도 여기는 아닌 거야! 떠날 당시 대천호의 직함을 가졌던 자네인데, 이런 외지에서 뭘 하려고? 순문이에게 가야지.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세상이 웃을 걸세.”

섬서 연안. 같은 도위부라 해도 한직이었다. 막강한 힘은 섬서의 군, 관부 민간의 생살권을 휘어잡고 있고, 산서의 대동大同까지도 미치고 있으나 중앙의 명령에는 무조건 따라야 하니 또한 하늘과 땅이라 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하지만 막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상관없네. 내가 좋다고 생각해서 판단한 일이니. 원하는 것은 그냥 어제처럼, 친구인 자네와 한 번 더 호흡을 맞춰 보고 싶은 것일세. 부천호 자리도 좋고, 좌하의 사령使令도 좋아. 폐는 끼치지 않을 테니까 그리해 주면 고맙겠네.”

“도무지 말이 될 이야기를 해야 말이지!”

석천중은 거듭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천호란 중랑장급 군관이었고, 사령이란 그의 부관과 같은 직책이었다.

도위부인 만큼 수월한 직위가 아니었으나 은퇴할 때 만萬을 거느렸던 대천호인 인물이 이런 직위로 복직을 하면 또한 세상이 웃을 만한 일이 되는 것이다.

고사하고 그가 천하제일의 명예를 얻게 된 것은 학 같은 고고한 인품으로 인해서였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복직한다는 것조차 얼굴에 먹칠을 하는 셈.

그러나 막여사는 또 한 번 모든 것을 버렸다.

“물론 싫다면 어쩔 수 없이 순문이에게 가야겠지만 그것만큼은 정말 사양하고 싶어서 하는 부탁일세. 딱 자네면 좋아. 내가 왜 이러는지는 아마 자네도 알 거야.”

사유.

까닭이 있다면 하나뿐이었다. 열흘 전 이야기를 나누었으므로 석천중 역시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해법에 가서는…… 너무 무리한 방법을 택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나 마음을 굳힌 듯 그는 확고한 결심을 보이고 있었고, 그런 만큼 응하지 않으면 분명히 이순문을 찾아갈 것이었다.

그것만큼은 그 역시 절대 만류하고 싶었다.

우려스러운 눈으로 석천중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자네다 싶네만……! 하나,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정 무엇하다면 내가 대신 나서 줄 수도 있네. 악불비를 만나 깔끔히 아들 일을 정리해 주지. 자네에게 오점이 남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

대신 악불비를 만나겠다.

이런 석천중을 보며 막여사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고맙지만 내가 해결하고 싶네. 다시 이야기하지만 어제처럼이야! 도와주지 않겠나?”

어제.

석천중의 눈에 미묘한 빛이 떠올렸다.

언급되었듯이 이순문, 조해흥, 석천중, 이들은 막여사의 친구이자 동료였다. 정확히 석천중은 대리사 때부터 함께 재직했고, 이순문과 조해흥은 금의위로 가서 만난 친구로서 막여사가 하야할 때까지 함께 일했다.

오늘 추룡과 친구들이 그렇듯이 어제 태양처럼 젊었던 그들! 무수한 사건, 온갖 적들과 부딪쳤지만 함께하는 동안 한 번도 패하거나 실패한 적이 없다. 결과 오늘에 이르렀지만 선두에는 늘 막여사가 있었다.

그런 만큼 그가 얼마만 한 실력을 지녔는지 석천중이 모를 리 없었다. 신중하고 치밀하며 무엇이든 계획하면 완벽했다. 무위가 군위 제일로 불렸으니 법복까지 입으면 가히 무적이라 할 정도였다.

느끼고 있지만 또 한차례 대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폭풍 속에서 자신도 무사히 버텨 낼 것이라는 자신은 없었다. 한데 그가 정말 마음먹고 자신과 함께할 것 같으면……!

심호흡과 함께 석천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려한 은퇴가 되겠군! 시작도 함께, 마지막도 함께! 솔직하게 자네가 곁에 있어 준다면야 하늘이 무너져도 두려울 게 없지. 순문이 알면 입에 거품을 물겠군.”

남평까지 찾아갔다가 퇴박당했던 그.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단 연안도위부의 감찰교두監察敎頭일세! 요즘 이쪽 군부의 수장들이 고삐가 좀 풀려 있어. 전술도 지휘도 들쑥날쑥이야. 초빙했으니 잘 좀 부탁함세.”

초빙!

모양새가 참 좋았다. 두 사람이 친구인 만큼, 부하들이 시원찮으니 온 김에 지도를 좀 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고, 못 이겨 들어줄 수도 있었다.

최소한 전면에 나설 때까지 권력 욕심으로 복직했다 하지는 않는 것이다. 전면에 나서도 돌풍이 불 때면 우연히 휩쓸린 것이 될 수 있었고.

막여사의 눈에 언뜻 칼날 같은 신광이 스쳐 갔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포권을 취해 보였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 성심껏 수행하겠네. 남평까지 소식을 전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 물론 자네 역량으로.”

석천중은 씩, 거듭 미소 지었다.

“보름이면 되지. 매를 사용할 거야. 점선에서 점선으로 이동하네. 당연히 특급 기밀로.”

“내자에게 서찰을 보내야겠네. 주선해 주게.”

석천중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함세. 유사시 자네를 중심으로 작전이 수행되도록 계획을 세워 보지.”

한데 너무 무리한 해법을 택한 것 같다 생각했듯, 그가 실로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주체는 보통 상대가 아냐. 십 년 이상 역모설이 돌고 있는데도 피해 가고 있고, 군력도 막강하지. 수하의 도연이나 원기 역시 보통 책사가 아닐세. 제압하기가 쉽지 않을 거야. 만전을 기해야 할 걸세.”

막여사가 연왕을 제압한다.

그야말로 세상이 깜짝 놀랄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막여사는 태연자약, 눈 하나 깜박 않고 대답했다.

“여우는 머리로 잡는 게 아닐세. 먼저 잡아 놓고 머리는 다음에 써야 하는 거지. 어쨌든 추이를 살펴야 할 테니까, 서두르지 말고 모든 정보망부터 동원해 주게. 궁실에서부터 북평, 모든 번왕부까지 하나도 놓치지 말고. 행동하면 단숨에 끝내야 할 테니까.”

여우는 머리로 잡는 게 아니다.

“기대되는군!”

석천중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의 기색을 떠올렸다. 그대로라 생각했다. 대신들은 늘 말로만 역모가 어쩌고 하며 주체를 넘어뜨리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천만 마디가 소용없다.

영악한 여우는 무조건 잡아서 가죽부터 벗기고 봐야 했다.

머리는 이후에 써야 하는 것으로써(수습), 가죽을 처리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역시 막여사다 생각하는 사이, 막여사는 깊숙한 눈으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여우를 잡을지 무엇을 잡을지는 아직 몰라. 전에도 그랬듯이 나는 정확히 바른 쪽에서 이기는 싸움을 할 테니까.”

십수 년의 침묵을 깨고 다시 기지개를 편 친구.

“크크크……! 이기는 싸움 좋지! 아무렴 자네가 하는 일에 차질이 있겠나. 뭐가 되건 기왕 마음먹었다면 멋지게 해 보세! 나로서도 마지막 일이 되겠지만, 환상적인 은퇴식이 되었으면 좋겠어!”

석천중은 기묘하게 웃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가 나서는 한 실패란 없다는 불변의 믿음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더 일찍 어떤 계산을 끝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막여사는 정말 주체를 치려 하는 것일까?

치려 한다면 무엇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 보면 거기에 대해서는 간단히 답이 나왔다. 일단 조정과 북평왕부가 격돌하면 주체가 역적이 되고 장신이 휘말릴 것은 기정사실. 하나 그가 조정 편에 선다면 한통속이라는 것에서 벗어나고, 공까지 세우면 청하기에 따라 장신의 죄(?)가 감해질 수도 있었다. 장신은 면죄받을 수 있고 악충보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예상 밖의 국면이 어디로 흐를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금릉에서 추룡을 만났을 때 도연은 막여사를 독수리라 했고, 그가 적이 되면 자신들은 죽은 목숨 같다고 했지만 여우를 잡을지 무엇을 잡을지는 막여사 자신도 아직 모른다 했으니까.

분명한 것은 그가 다시 관복을 입었다는 것이다.

“하-!”

두두두두두두……!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 바 없이 추룡과 친구들은 열심히 말을 치달리고 있었다.

시간 차로서 앞서의 일은 추룡이 북평으로 가고 있을 당시, 막여사가 석천중을 만나면서 발생했으므로 훨씬 일찍 일어났지만 추룡은 그가 섬서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북평이 있는 하북성 옆의 성이 산서, 또 그 옆의 성이 섬서로서, 하나의 성을 건너뛰고 있었지만 세 개의 성이 나란히 붙어 아래로 뻗어 있고, 가로 폭이 넓지 않았으므로 실제 북평과 막여사가 있는 곳은 아주 멀지도 않았다.

산서라면 더욱 그런 셈이었다.

어쨌건 모르는 일이었고, 다만 흡족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여행.

전소의 혼인 하나가 유감일 뿐, 남평을 떠나서 만난 아끼는 사람들이 다 있는 것이다.

임백호를 비롯해서 고마운 호의를 보여 주었던 친구들, 장신에게까지 인사를 했다.

한데 모여 장쾌하게 말을 치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좋은가.

무미건조하게 악충보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남평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백배나 더 좋았다.

도착하여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했듯 북평에 대한 인식 역시 크게 좋아졌다. 올 때까지만 해도 금밥그릇도 부족해 권력 다툼을 하는 사이인 줄로 알았던 쌍방의 마찰이 상당수 대신들의 질시로 돌려진 것이었다.

물론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들여다볼 수 없다고 했듯 주체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은 이상 그가 역모를 꾀하고 있지 않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꾀해도 마각을 드러내지 않은 한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북평왕부에는 더 많은 병력이 필요했고, 필사로 안정을 꾀하려 하는 게 눈에 보이는 한 무엇이든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눈으로 본 사실만 마음에 두고 금밥그릇 다툼을 하든지 역모를 꾀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본연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싱글벙글, 친구들의 입에도 함박웃음이 피었다.

“카카카……! 이렇게 함께 달리고 있으니 정말 좋네! 처음 말을 얻어 항주에서 돌아올 때가 생각나!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지. 솔직히 내 말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때인데, 악충보에서 입문해도 삼 년은 돈을 모아야 마련할 것이라 여겼거든. 중도에 쓸 일이 생길 것이니 그 삼 년이 또 삼 년이 될 수도 있고! 한데 덜컥 공짜 준마가 생겨 달리게 되니 미치게 기분이 좋더군.”

사실 간부들을 제외한 나머지 악충보의 무사들 중 자신의 준마를 지닌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기분이 좋아! 중원의 끝을 보는가 하면 산서 길을 달리고 있으니 꿈이 아닌가 싶어! 전소의 혼인이 조금 유감이긴 하지만.”

하지만 뭐, 전소도 싱글벙글하는 것은 다름없었다.

“글쎄, 신경 쓸 일이 아니라니까. 완 매가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니고! 막 형이 아니었다면 사실 정혼도 이루어지지 않았어. 마음만 굴뚝같았지 뭐가 있어야지? 입문 시험에 접수도 못 했을 거고, 보나 마나 난 백수야! 무얼 해야 하나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거지. 하지만 지금의 난 부자가 되어 내 말을 타고 달리고 있네!”

“카카카……!”

“완 매도 그걸 알아! 서운하기는 하겠지만 막 형 일이라 하니 무조건 선처리하라고 했지. 그럴듯한 선물을 준비해서 안겨 줄 생각이야. 그걸로 될 것 같아.”

이런 친구들을 보며 악벽강도 미소 지었다.

“선물까지 생각하고 있군요. 전 대협은 여자들 심리도 잘 헤아리는 것 같습니다.”

“그 정도야 뭐……!”

추룡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거 내가 준비해 줌세! 나로 인해 생긴 일에, 어차피 혼인 선물도 해야 할 거고, 뭐가 좋은가?”

“하하하……! 됐네! 막 형도 곧 혼인할 거면서 뭘! 보주님께 졸라 볼 거야! 어떻게든 가을에 남평으로 가는 것으로. 막 형이 혼인하는 것을 봐야지! 밤새도록 신방 앞에서 폭죽을 터뜨릴 테니 잠잘 생각은 아예 말게! 소저께서도 각오하십쇼!”

“카카……! 그러다가 집에 불나는 거 아냐?”

“나거나 말거나지 뭐. 우리 중에 막 형이 가장 부자인데! 그참에 멋지게 새 장원을 짓는 거야! 받아 놓은 상금만 해도 엄청나잖아. 영웅전에서 획득한 것만 해도 금자 스무 냥이야!”

“제대로 알부자 맞군!”

모두가 웃는 속에 한자방과 신학철만 어리둥절했다.

“영웅전 상금이라니? 막 형이 어느 영웅전에 출전했는데?”

같이 갔지만 두 사람만 모르고 있었다.

“흑무사가 막 형이었어! 카카카……!”

“허걱!”

이래도 저래도 웃음이 가득하다. 무림이 살벌하다 하지만 친구들에게는 오로지 홍소강호哄笑江湖일 뿐인 것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무림의 모습이 아닐까?

실상 날건달이 아닌 다음에야 허구한 날 칼부림을 하고 다닐 리도 없겠지만, 그렇게 형편없는 곳이 무림이라면 몸담으려 할 골 빈 당수도 없을 것이거니와 무림 역시 호탕하고 웃음이 더 많은 곳이라고 봐야 했다.

“낙양이다!”

“이야……!”

“카카카……! 역시 대단하군! 항주 이상 같아! 북망산北邙山만 빼고!”

친구들이 정주에 도착한 것은 이십 일 후였다.

천하, 하면 장안長安이라 할 정도로 대명이 자자한 곳.

항주 역시 대단한 고도이긴 했지만 동주, 동한, 조위, 서진, 북위, 수, 당, 수양, 수당 등 열세 개의 왕조가 도읍으로 삼았을 정도로 큰 도시가 낙양 정주였고, 대리사가 있는 개봉 역시 정주에 속한다.

‘낙양을 차지하는 자가 천하를 지배한다.’ 할 정도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한 곳으로서 천하 패권과 풍운을 다투던 영웅호걸의 무덤이 산재한 북망산도 이곳에 있었다.

오랜 역사 속에 많은 참화를 겪은 곳이지만 끊임없이 발전과 번화함을 이뤄 온 고도.

장신의 본가는 백마사白馬寺 옆에 있었다. 처음으로 중원에 불교를 정착시킨 사찰이었다.

장원은 크고 깨끗했으며, 장신의 모친은 서릿발이 내린 듯 하얗게 센 머릿결을 지닌 칠순의 노파였다.

귀티가 있고 곱게 늙은 듯하면서도 엄해 보이는 노부인으로서 전형적인 대갓집 마님의 모습이었다.

“대부인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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