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복귀復歸 (2)
사실 그런 무엇이 있었다. 꽤 거리가 있다 해도 북평과 장성은 지척지간이나 같았다. 언제 원군이 넘어올지 모르는 곳에 도시가 있다는 자체가 우스운 것이었다.
악서희가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원이 세운 대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지배할 때는 문제가 없었죠. 밀려난 후부터 계속 전쟁터가 된 것인데, 북평왕부는 전투 왕부라고 생각하셔야 해요. 연왕 전하께서도 호강을 누리라고 보내진 게 아닙니다. 황자라기보다 장수라 보셔야 합니다. 좌천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습니까.”
“……!”
북평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었다.
“돌아오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국경에 대한 위험만큼은 없애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도에 십만의 병력이 주둔한다고 들었는데 삼만에 못 미치는 병력으로 어떻게 안전을 도모하라는 것인지. 연왕 전하께서 강병을 키우고 화력을 증강시키려 하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봤습니다. 십만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면 북평은 결코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는군요.”
악서희는 곱게 미소 지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원이 현재 내전 중이라는 것이에요. 중원에서 밀려난 후 그들은 동몽골인 달단�y?과 서몽골인 와랄瓦剌, 둘로 나뉘어 싸우고 있습니다. 내전으로 침략해 올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지요. 하나로 통합된 상태라면 오래전에 큰 문제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속히 조정에서 군비를 풀고 병력 증강을 허락했으면 좋겠어요.”
북원이 내전인 상태.
악벽강이 울화가 쌓이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런 곳에 어떻게 있어? 벼슬이고 뭐고 형부에게 사직서 내라 하고 휘주로 와!”
이런 동생을 보며 악서희는 씁쓸히 미소 지었다.
“가끔씩 이야기하곤 해. 지난번 금릉에 갔을 때도 이야기했고. 하지만 듣질 않아. 그이도 지금 중간에서 할 짓이 아니지만 그렇다 해서 너도나도 다 떠나면 어쩌냐는 거지. 윤문 전하께서 등극하시면 좋아질 것이라 낙관하는 것 같아.”
홍무제의 사후.
“무슨 낙관? 더 나빠질 것이라는 생각은 않고?”
“설마 그럴 리는 없지. 아무렴 피가 물보다 진한데 대신들을 편들어 숙부인 분을 해치겠어? 함께 일을 도모하실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어. 왕부들의 힘이 적지 않으니 결심만 굳히시면 주위는 금방 안정되거든. 원래는 황상께서 하셨을 일인데 몸져누우셔서 못 하셨던 거지.”
악벽강과 추룡도 여기에는 공감했다.
친족 정치를 좋다 할 수는 없지만 누가 생각해도 혈연을 제쳐 두고 대신들과 일을 도모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장신도 여기에 무게를 둔 것 같았다.
“헛헛……! 심려 마시게. 윤문 전하께서는 틀림없이 왕야를 부르실 테니! 마침내 도연 총사님께서도 예견하셨네. 좀처럼 거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분이신데, 하늘이 대답했다고. 미루어 왕야께서는 중앙으로 내려가시고 세자 저하께서 왕부를 맡으실 느낌이야. 그리되면 북평은 아주 좋아지게 되네. 병력 증강과 함께 안정이 이뤄질 것이니.”
기인 도연. 늘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곤 하는 인물이지만 그가 자신감을 보였다 하니 왠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퇴청해 돌아오자 장신은 계속 벙글벙글 웃으며 추룡을 봤다.
“그때가 되면 자네도 함께 일하게 될 것이라는 어감도 풍겼고. 하루속히 그리되었으면 좋겠어.”
추룡은 장성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평으로 가도 눈에 밟힐 것 같습니다. 기회가 되면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장신은 계속 웃음 지었다.
“장성을 본 무인들은 거의가 같은 이야기를 하지. 워낙 상태가 안 좋다 보니 마음이 불편해지는가 보더군. 어쨌건 난 총사님의 예시를 믿는 편이라서 꼭 같이 지내게 되리라 믿네. 내일 떠날 생각인가?”
처음 만나던 날처럼 추룡은 삼가 포권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보주님께 가 뵌 후 일단 남평으로 내려갈 생각입니다. 기회를 봐서 다시 나오려 합니다.”
“다시 볼 때는 상투를 틀었겠군. 식에 꼭 참석하고 싶네만 그러지 못함을 이해하게. 몸을 뺄 수 없는 시기인 데다가 남평이 여간 멀어야 말이지.”
정말 멀다. 북평에서 출발하면 빨라도 석 달이 걸리고, 쉬엄쉬엄 갈라치면 반년도 걸리는 거리였다.
장신은 슬그머니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성의이니 넣어 두게나. 축의금인데 미리 드려야 할 것 같네.”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동생이 혼인하는데 가지도 못하는 처지인걸요. 받아 두세요. 달리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
“고마워요, 형부. 언니도.”
악벽강이 대신 거두었고, 장신은 다시 미소 지었다.
“아차, 그리고 떠나기 전에, 마 태감님께서 왕부에 한 번 더 들러 달라는 말씀을 하시더군. 세손 저하께서 화가 많이 나셨다고, 하하……!”
추룡은 멈칫하는 표정이 되었다.
“저에게 말씀이십니까?”
장신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독으로 삼으셨다면서? 기다릴 줄 알았는데 그냥 가서 서운하셨나 봐. 성화가 심하시니 하직 인사 올리고 가는 게 어떻겠냐 하시더군.”
영특해 보이던 주첨기의 모습.
추룡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법으로는 그리해야 하는 게 맞지만 가면 무슨 말씀을 하실지 모르오니. 죄스럽긴 하지만 그냥 가는 게 나을 듯합니다. 서찰로 대신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기도 하군. 영특하시긴 해도 연치가 어리셔서 보나 마나 가면 쉽게 나올 수 없을 테니. 고집도 대단하신 것으로 아네. 하하……!”
장신 역시 동감을 표시했다. 아무리 영리하다 해도 여섯 살, 부하로까지 삼았으니(?) 분명히 쉽게 가게 할 리 없는 것이다.
땡깡이라도 부리면 난처할 것인 만큼 절충안으로 서찰이 좋겠다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미안하지만 가는 길에 정주에 잠시 들러 주시면 어떨까? 정주에 본가가 있는데 자식 걱정에 어머니께서 늘 마음고생을 하셔서. 서찰을 쓸 테니 전해 주고 가시면 고맙겠네.”
앞서 이야기 들은 바 있었다. 정주에 본가가 있고, 홀어머니께서 볼모처럼 되어 있다고.
휘주로 가는 도중에 있어 썩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악벽강이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지요. 산서山西 방향으로 내려갈 생각이니까요. 검문이 심해서 산동 쪽은 피하려 합니다.”
“맞아. 그게 나을 거야. 산동으로 가면 또 말이 많을 테니. 뭔가 수상한 첩보라도 지닌 게 아닌가 하고 시비를 걸기 쉽네.”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추룡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주첨기에게 전할 서찰을 썼다.
불초한 신臣, 삼생의 복이 있어 용안을 뵙고 하해 같은 성은을 입었사오나 피치 못할 일이 있어 하직 인사도 못 올리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언제 다시 알현하게 될지 기약조차 올릴 수 없지만 저하를 잊지 않겠나이다. 강녕과 청복이 옥체에 깃드시옵기를.
신경 쓸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린 나이의 세손,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출발.
“전 대협! 임 대협! 곽 대협! 장 대협! 문 대협! 송 대협! 허 대협! 정 대협! 조 대협! 신 대협! 한 대협!”
“옛!”
“말씀 들으셨다니 아시겠지만 제가 막 대협과 정혼했습니다! 분수에 넘는 일이지만 서로 좋아지게 되다 보니 그렇게도 되더군요. 흉보지 말아 주셨으면 싶습니다.”
악벽강은 결심을 굳힌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들 관계도 조금 이상해진 것 같습니다. 부군의 벗으로 존중할 분들이지만 신분은 상관이니. 해서 고심한 끝에 지금은 그대로 상하 관계를 유지하고, 조만간 직책을 벗어나면 그때 다시 바르게 관계를 설정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침내 친구들을 만나 추룡과의 사이를 밝히고 어색해지기 쉬운 관계에 대해 확실한 선을 그은 것이었다.
“속하들은 좋습니다!”
싱글벙글, 친구들이야 무조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직책을 벗어난 후라고 하지만 칭호는 벌써 슬그머니 대협으로 올라갔고, 말투 역시 존대가 되었다.
상관없이 악벽강 자체가 좋은 것이다.
사실 지금껏 한 번이라도 그녀가 친구들에게 나쁜 인상을 준 적이 있었던가.
보자마자 내당으로 편입시키는 등 친구들에게 있어 최고의 후원인이자 산만큼이나 든든한 상관이었던 것이다. 이렇다 보니 처음부터 가족 같아 전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 출발합니다!”
“하-!”
두두두두두……!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라 조금 미묘한 무엇은 있었으나 그냥 처음 그대로, 좋은 상관이자 친구의 정혼녀라 생각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출발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추룡과의 우정과 더불어 악벽강에 대해서도 무너지지 않는 신뢰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이쪽입니다.”
“주, 우 장군님!”
동문東門을 나서자 우양과 주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분께서 여기에 웬일이신지?”
“핫핫……! 오늘 가신다는 말씀이 있어 총령님께 허가받아 배웅하러 온 것입니다.”
뜻밖에도 그들이 친구들을 배웅하고자 왔던 것이다.
“바쁘신 분들께서 구태여 이러실 필요가……!”
“있습니다. 덕분에 많은 부하들이 목숨을 구했는데 어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멀리 나갈 수는 없지만 경계까지만이라도 모시겠습니다.”
우양과 주탁은 꼼꼼하게 친구들에게 두루마리로 지도까지 건네줬다. 군부의 작전 전국 지도로서 산과 마을, 강과 내, 몇 리 지점에 무엇이 있다는 것까지 면밀히 표시된, 상세하기 이를 데 없는 지도였다.
“전략지도 같은데 주셔도 되는 것입니까?”
“핫핫……! 물론 안 되는 부분입니다. 한들 허튼 일에 이용하실 분들이 아닌데 상관있겠습니까. 가시다 보면 어차피 알게 될 지형인데요.”
그러나 이야기와는 달랐다. 지나며 보아서는 산의 형태나 크기, 마을 규모, 거리 등 전체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오면서 고생한 것도 있고, 실없는 일에 사용할 것이 아니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은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출발.
두두두두! 장성을 뒤로하고 추룡과 친구들은 이윽고 북평성을 벗어났다. 언제나 다시 올지.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깔끔히 중립에서 떠나는 셈이었다.
하지만 조화라는 것.
도연의 예견은 실로 무시할 것이 못 되는 것 같았다.
그는 추룡의 가치가 무예 같은 것에 있는 게 아니라 타고난 복록과 지닌 조화에 있다고 하였는데, 역시 그 말은 옳은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북평까지 갔었나 의혹이 들 정도로 추룡은 그렇게 돌아오고 있었지만, 금릉에서의 만남으로 모두의 운이 달라졌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도연이 말했듯 실제 그는 오래전에 이미 중립이 아니었던 것이다.
입증이라도 하듯 연안.
같은 즈음 막여사는 계속 속이 타는 듯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추룡으로 인해서였지만 원인은 장신 때문이었다.
친구인 석천중을 만나면서 알게 된바 설마 그가 연왕부의 내전시위, 그로 인해 악충보까지 주시받고 있을 줄은 꿈에서도 상상치 못했던 것이다.
추룡을 정혼시킬 때만 해도 단순히 탕음악가의 후예, 휘주 향용의 태두 정도로 알았던 악벽강의 집안 내력에 이런 문제가 있었을 줄은.
그로서는 보통 낭패가 아닌 것이었다.
다시 언급해도 조정 대신들과 왕부 간에 충돌이 일어나면 역신逆臣은 왕부 쪽이 되었다. 까닭은 황제의 측근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 대신들이기 때문인데, 정확히 왕王이나 왕부란 집권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황제의 아들로 태어난 덕으로 한 지역의 영지를 얻어 자리매김을 할 뿐으로, 황족이라는 것 하나를 제외하면 그냥 일반의 영주나 다름없는 것이다.
명의 왕부들이 유독 특이한 예를 지니고 있었던 것인데, 이야기 나왔듯 홍무제가 친족 정책을 계획해 병력을 키우게 함으로 지방 군벌 같은 양상을 띠고 있었던 것.
비정상인 일이었지만 어쨌건 홍무제가 하라 했으니 건재한 상태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주위에서 말이 나와도 그가 알아서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후에는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실권을 잡은 대신들이 지나치게 힘이 커진 번왕들을 좌시하려 할 리 없으므로 최소한 군축을 명하고, 눈에 벗어날 경우에는 삭번까지 단행하게 된다.
그 중심에 북평왕부가 있는 것이었다.
물론 장신이 자신했듯 황위를 이어받게 될 윤문이 혈연을 생각해 주체를 중앙으로 불러 중용하는 등 번왕들과의 상생을 도모한다면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희망론일 뿐 역모설도 넘어 거병설까지 나도는 형편에 주체도 아닌 수하들, 그리고 수하들의 외척까지 주시하고 있다고 하면……!
막여사가 보기에는 결코 상황이 낙관적이 아니었다.
대신들은 이미 주체를 칠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이고, 만반의 채비까지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더 일찍 남평으로 찾아온 이순문에게 귀띔받은 이야기까지 있었다.
당연히 역모 죄로 처벌받게 되는 것이고, 부하들까지 줄줄이 엮여 투옥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래도 좋은 예에 해당한다. 주체가 무조건 죄를 인정하고 목을 늘어뜨릴 경우였다.
반면 만에 하나라도 불복할 경우라면 무력 진압이 시작되고 이때부터는 진짜 반역죄가 된다.
엄청난 피가 뿌려지게 되는 것이다. 반역을 하거나 반역에 동조한 자들은 삼족을 멸하는 원칙으로, 장신도 휘말리게 되고 외척이 삼족에 속한 만큼 악충보도 화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악불비는 물론 악용, 악완소, 악벽강까지 모두 참수당하게 된다는 것. 추룡은 당연히 덤이다.
정말 기도 안 찰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물론 피해 갈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아직은 회오리가 시작되지 않았고, 추룡 역시 사실혼事實婚 상태가 아니므로 서둘러 정혼을 파기하고 악충보와 거리를 두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원인들은 체면을 목숨보다 더 중히 생각한다. 대체 무어라 하고 정혼을 파기할 것인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들춰내 자식 목숨이 위험하니 파혼하겠소, 할 것인가, 장신이 사위인 줄 몰랐으니 파혼해야겠소, 할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고, 추룡이 그냥 있을 리도 없다.
더 문제는, 낙관적이지는 않다 해도 원만히 일이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윤문에게 달린 것인데, 장신이 자신하듯 혈연을 살펴 그가 친족 정책으로 나갈 수도 있고, 죽을죄를 지었소, 하고 수하들을 위해 주체가 손을 들 수도 있다는 것.
그리되면 인척들에게는 이상이 없는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문제일뿐더러, 실상은 그 자신조차 목숨 따위가 두려워 약속을 번복할 정도로 신의가 없는 인물이 아니었다. 추룡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더 문제였던 것이다.
연안에 도착한 지 열흘.
“……!”
어쩔 수 없이 막여사는 특유의 신중한 성격으로 하나하나, 차분히 주위를 환기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