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87화 (87/150)

# 87

거용관居庸關에서 (4)

어쨌건 방패 기술을 아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엉성했지만 그래도 두 번째 판은 처음처럼 선뜻 진행되지 않았다.

까닭은 황삼평이 크게 경계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실제 그는 한자방에게 패했다고 봐야 하는 것이었다. 한자방이 착각을 해서 승부가 뒤집어진 것일 뿐.

이렇다 보니 처음처럼 마음 놓고 전진해 가지 못했고, 어설픈 자세일지라도 장청이 방패까지 들고 있어 더욱 그런 무엇이 있었다.

기술은 가지지 않은 것 같지만 한자방과 동료라는 것을 생각하면 유사한 실력을 갖췄다 봐야 했고, 같은 방패를 든 상대와 싸울 때는 맞서는 수법이 달리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눈빛이 장난 아니게 번쩍거리는 게 더 조심스럽다.

무조건 자신 이상의 방패 기술을 지녔다 실력을 인정하고 황삼평은 천천히 장청을 중심으로 하여 왼쪽 측면으로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같은 기술을 가진 상대일 경우는 돌면서 허를 포착하고 힘과 기술을 다해 무너뜨리는 게 방패 기술의 기본이었던 것이다.

방패의 용도를 안다면 장청 역시 마주 원을 그리며 돌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들고만 나갔을 뿐 아는 것도 없고, 장청은 그냥 눈만 번쩍이며 한자리에 서서 황삼평을 바라볼 뿐이다.

아니, 돌기는 돌고 있었는데 황삼평이 완전히 방향을 바꿔 측면으로 돌아갈 즈음에야 선 자세에 발을 조금씩만 바꿔 방향만 틀고 있을 정도.

‘모르는군!’

황삼평은 비로소 장청이 방패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렇다면 방패를 들고 나온 그는 바보였다.

“하아아압!”

순간 황삼평은 신중하게 돌아가던 것에서 움직임을 바꿔 훅, 빛살같이 장청을 밀어붙이듯 돌진해 들어갔다.

“타!”

쾅! 쾅! 쾅! 쾅! 쾅! 쾅!

더불어 장내에 다시 격타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황삼평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 장청이 번개같이 장검을 휘둘러 소나기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한자방이 그러했듯 황삼평에게 이런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방패 기술이란 적의 공격으로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보호하는 것으로, 철벽같은 자세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한 공격이 모두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하-!”

쾅! 쾅!

“흡?”

입증이라도 하듯 황삼평은 또 몸을 수그린 채 번개같이 이리저리 허리를 놀리며 방패를 앞세워 쏟아지는 장청의 공격을 차단해 냈고, 더불어 역공까지 감행했다.

퍼부어지는 공격을 차단하면서도 맞대응하여 장검을 번뜩이며 장청을 공격해 들어오기 시작한 것!

당연히 장청은 크게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기술을 알고 방패를 들었다면 모르지만 아닌 상태에서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르다 보니 동작도 커졌고, 부자유한 몸놀림에 연거푸 뒤로 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아아압!”

쿵-!

“앗……!”

그리고 밀리던 한순간 기어코 황삼평의 기술에 걸려들고 말았다. 밀리면서도 그는 전차처럼 육박해 오는 황삼평을 향해 계속 소나기 공격을 퍼부었는데,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며 검세를 파악하던 황삼평이 장청의 검이 방패 위로 떨어지는 한 찰나, 기다렸다는 듯 구부렸던 허리를 용수철처럼 튕기며 강력한 육탄 공격을 시도했던 것이다.

밀어붙이기 몸통 공격! 역시 방패 기술의 하나였으나 검만으로 싸우는 무인들에게는 완전히 생소한 수법이라 여기에 걸려들고 말았던 것이다.

뒷걸음질하며 허리를 젖히고 칼을 휘두르던 사람이 강력한 육탄 공격에 부딪치면 어떤 꼴이 되겠는가.

와당탕!

“헛?”

여지없이 두 발이 허공으로 뜸과 함께 장청은 바로 모래판 위로 나뒹굴고 말았다.

“와아……!”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가 다소 이상하게 나왔다.

“장 대협 한판!”

당하여 나동그라지긴 했는데, 희한하게 장청의 승리로 승부가 가려진 것이다.

“뭐야? 대체 어찌 된 거야?”

“장청이 이겼어?”

워낙 순간의 일이라 친구들조차 상황을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그러나 장청 또한 제대로 눈빛 값을 한 것 같았다.

비밀은 쓰러지는 순간에 있었다.

지난 판과 달리 이번에는 황삼평이 방심했던 것으로, 분명히 육탄 공격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쓰러지는 순간 장청이 뒤로 나동그라지지 않고 휙, 번개같이 옆으로 몸을 쓰러뜨리며 장검을 뻗어 황삼평의 종아리 부분을 쳤던 것!

또한 목과 다름없는 급소였다. 원래 갑옷을 입고 싸우는 병사들에게는 가장 위험한 부분이 셋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목이고, 두 번째가 팔 부위이며, 세 번째가 바로 하체인 다리 부분이었다.

갑옷이 가리지 못하는 이 부분들은 병사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곳으로, 실제로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을 보면 십중팔구 이 부분에 상흔이 발견되기도 했다.

등을 치고도 패한 한자방을 본 장청이 제대로 약점을 생각해 공격했던 것이다.

“카카카……! 저건 전 형 주특기 같은데?”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있더니 꾀를 부렸군?”

“허허……! 저 친구들 보통이 아니군. 총령님의 손님이라더니만. 계급만 이호지 삼평의 실력은 소대장급인데……!”

친구들도 웃었고, 둘러싼 병사들도 웃으며 갈채를 보냈다.

“졌습니다. 사실은 두 판 모두 패한 것입니다. 실력이 미치지 못함을 인정합니다. 향용이라 말씀 들었는데 어느 지역의 호걸이신지요?”

황삼평 역시 깨끗이 패배를 시인했다. 속은 쓰렸지만 분명 친구들이 자신 이상의 실력자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장청 역시 성격 하나는 시원시원하다.

“송구하지만 사정이 있어 밝히지 못하니 이해해 주십시오. 보다 황 형의 방패 기술, 정말 탐나고 놀랍습니다. 이긴 것은 요행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 무림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것인데 기본 요령만이라도 가르쳐 주실 수 없을는지요? 단단히 한턱내겠습니다.”

“부족한 기술을 가지고……! 끝나고 술이나 함께할 기회를 주십시오.”

“반드시 시간 내어 보겠습니다. 친구로 지내고 싶습니다.”

이래서 호걸들의 이야기였다. 겨루고 서로를 칭찬해 주고 그러면서 친분이 생기는 것이었다.

“핫핫……! 군부와 향용을 떠나 역시 무를 숭상하는 무인답습니다! 그러면 다음! 누가 장 대협에게 도전해 보겠는가?”

우양이 호탕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칭찬한 후 다시 운집한 부하들에게 물었다.

“껄껄……! 삼평이 패한 것을 보니 아무래도 소관이 나서야 할 듯합니다! 오연대, 삼소대장 걸연傑然입니다!”

“와아아아……!”

마침내 무관급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황삼평은 역시 입대부터 한 후 무관 시험을 기다리는 청년인 만큼 그가 패하자 오십호급 무관들이 자리를 떨치고 나오기 시작한 것!

그리고 또 시작!

“크아아압!”

“하-!”

쾅! 쾅! 콰차차창!

사위를 진동시키는 호통과 격돌음, 함성 속에 파묻혀 장청은 갑옷과 방패라는 새로운 적을 맞이해 힘이 다할 때까지 부딪쳐 연속 세 명을 무너뜨린 후 떨어져 나갔고, 전소, 임백호에 이르기까지 나머지 친구들도 차례로 나와 힘이 다할 때까지 맹위를 과시했다.

한자방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서너 명, 혹은 대여섯을 연파해 내었는데, 놀랍게도 임백호가 마지막으로 격파해 낸 인물은 교위(校尉-중랑장급 바로 아래)였다.

“와아아……!”

“최고다!”

“핫핫핫……! 훌륭합니다! 역시 대단하군요. 어쩌면 한결같이 이렇게도! 이런 실력을 지닌 분들께서 향용에 머물고 계시다니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과찬이십니다. 운이 따르고 있을 뿐, 북평군의 위모가 실로 놀랍습니다. 개별전에서 이 정도라면 전술전에서는 상대가 되지 않을 듯합니다.”

이런 친구들의 실력에 북평군도 완전히 매료된 것 같았다.

겨룰 때마다 우양과 주탁은 아낌없이 찬사를 보냈고, 추룡과 친구들은 겸례를 보였다.

“핫핫……! 막 대협과 한번 겨루어 보고 싶었는데, 서운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겠군요!”

그러나 비무는 안타깝게도 교위의 선에서 마쳐야 했다.

하고 싶어도 더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북평군의 진영. 더 위는 장수급인데 우양과 주탁은 일천 이상의 부하를 거느린 중랑장이었으므로 비무라 할지라도 패하면 군軍의 명예 및 부하들의 사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었다.

실력이 위라 해도 이겨서는 안 되었고, 이 점을 알므로 피차 삼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주 싱겁게 끝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냥 지나치기는 서운하고, 부하들 역시 실력을 궁금해할 터이니 특기할 기술을 한번 선보여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받들겠습니다.”

“세워라!”

“명!”

퍽퍽퍽!

문제점을 인지해 임백호의 대결을 마지막으로 우양이 새로운 제의를 했고, 추룡이 응하자 곧 모래판 위에 새로운 준비가 시작되었다.

휑하니 부하들 대여섯이 막사 쪽으로 달려가더니 이 장 높이에 한 자 굵기의 큰 통나무 셋을 날라 와 대들보를 세우듯 단단히 바닥에 박아 넣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져오라!”

“명!”

준비가 끝나자 우양은 다시 명령을 내렸고, 부하들 몇몇이 또 어디론가 달려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서른 근이 넘을 듯 보이는 시퍼렇게 날이 선 일 장 길이의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와 여섯 자 길이의 어마어마한 대장검을 들고 나타났다.

“그럼 소관이 먼저!”

그러자 주탁이 청룡언월도를 움켜쥐고 모래판으로 나갔다.

“미흡하나마 소관은 월도에 재간이 조금 있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보아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와……!”

칠 척의 훌쩍 큰 키에 표범 견장의 갑옷을 입은 시커먼 얼굴의 장수가 일 장이나 되는 청룡언월도를 움켜잡고 버티고 선 모습! 그 모습은 실로 천왕과 같았고, 감히 누구도 범접 못할 정도로 큰 웅자가 보였다.

심약한 사람들은 아예 가까이 가지도 못할 정도!

“헙!”

놀라운 기도에 친구들은 물론 추룡마저 감탄을 금치 못했는데, 인사와 함께 덩실덩실 주탁은 거대한 언월도를 휘저으며 검무劍舞를 추기 시작했다.

찌르고 휘젓고 밀고 당기고 휘돌리는 등 눈이 현란해질 정도의 화려한 언월무! 창이 아니면서도 창이며, 도刀가 아니면서도 도인 월도의 위용은 삼국시대의 관우 운장에 의해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이런 거병巨兵을 사용하는 인물은 장군부에서나 간혹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는데, 주탁이 그 대단한 검무를 모두의 앞에서 선보인 것이었다.

풍차처럼 휘돌아 가는 번쩍이는 월도의 날 속에 숨이 멎을 듯한 긴장감이 숨겨져 있고, 긴장감이 화려한 춤으로 표현되니 아름다움 또한 극치다.

행여 하나라도 놓칠세라 숨까지 죽인 채 다들 이 보기 드문 현란한 월도무 속에 빠져들어 하염없이 바라볼 즈음!

“타아아아앗!”

팡-!

“으아아아아……!”

한순간 장내에 실로 장관이라 할 정경이 벌어졌다.

검무를 추던 주탁이 기수식을 다 마친 듯 잠시 동작을 멈춘 채 앉듯 한 자세에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번쩍! 벼락같이 세워진 세 개의 기둥 중 하나를 향해 언월도를 날려 일섬을 그었는데, 찰나 한 자 굵기의 허리 부분에서부터 동강이 나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정확히 수직의 절반 각도! 말이 쉬울 뿐이지 이런 기력技力을 지닌 인물은 천하를 다 뒤져도 찾기 어려웠다.

검으로 바위를 쪼개네 하는 속설도 있긴 하지만 글쎄?

그냥 있다고 치고, 이 정도만 돼도 격중되면 사람은커녕 말까지 허리가 동강이 난다. 갑옷이고 방패고 뭐고 걸리기만 하면 끝장이 나는 것이다.

“맙소사!”

운집한 군병들이 입에 거품을 무는 속에 친구들까지 눈이 툭 튀어나왔다.

“기도가 어마어마하더라니 역시나!”

“대竹 치기조차 힘든데 대체 얼마나 수련해야 저렇게 되는 거야?”

그대로 북평군의 위엄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약과.

“껄껄! 주 형의 월도는 언제 봐도! 그럼 이번엔 내가!”

주탁이 신위를 보이자 크게 호기가 치솟는 듯 바로 우양이 자리를 차고 나섰다.

그가 든 것은 또한 여섯 자 길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대장검!

세인들은 더러 장수들이 사용하는 대장검의 길이에 의혹을 금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관운장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지만 그가 지녔던 검만 해도 일곱 자가 넘고, 어지간히 이름 있는 장수다 하면 대다수가 예닐곱 자의 대장검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여섯 자만 해도 어지간한 사람의 키를 넘고, 일곱 자가 되면 들기도 어려운 만큼 전시용일 뿐이지 이런 병기를 정말로 사용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장수들은 실제로 이 검을 사용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장수들은 말을 타고 전장戰場을 치달리며 폭풍 같은 기력으로 적군을 휘몰아쳤다. 이런 장수들이 일반의 검으로 싸운다는 게 더 이상한 것이다.

병사들이 드는 장창만 해도 길이가 일 장에 달하는데 석 자짜리 검을 들고 적진으로 뛰어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같다.

고사하고, 말을 탄 사람이 석 자짜리 검을 들고 땅에 선 자를 치려 한다면? 몸을 숙이고 허리를 빼고……! 이런 자세로 어떻게 천군만마를 휘몰아칠 수 있겠는가.

너무 길어 미리 뽑아서 나가기까지 해야 할 정도로 불편한 것이 이런 대장검들이지만 장수들이 사용하는 것에는 분명히 불편함 이상의 용도가 있는 것이었다.

시황열록始皇列錄에 의하면 진시황이 사용한 장검인 녹로도 일곱 자가 넘어 혼자서 뽑기가 어려웠고, 자객으로 보내진 형가와 부딪쳤을 때 신하들이 도망치므로 독 단검을 피해 가며 간신히 등에 둘러메고 뽑았다 기록되어 있지만 분명히 폭풍처럼 전장을 누빌 때는 이런 검을 든 것이다.

나서자 우양 역시 검무를 췄다. 여섯 자 길이의 대장검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우아하게 보일 정도로 유연하면서도 정교한, 숨 막히는 푸른 칼날의 검무! 찌르고 베고 휘젓고! 칼끝이 돌아갈 때마다 현란하게 빛을 뿌리는 푸른 검망이 흡사 용이 살아 꿈틀대며 비늘을 번쩍이는 듯하다.

그리고 질식할 듯한 검무의 끝!

“하아아압!”

쫙-!

“와아아아아-!”

그 역시 엄청난 실력을 보여 줬다. 주탁과 마찬가지로 검무를 마친 그는 벽력 대갈과 함께 세워진 기둥 중 하나를 향해 빛살같이 장검을 휘둘러 갔는데, 찰나 역시 한 자 굵기의 통나무가 깨끗이 동강 나 바닥에 굴러떨어진 것이다.

결코 병기의 무게와 예리함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정신력과 기술, 내공, 삼위일체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한 베기인 것으로, 이 정도가 되면 능히 달인이라 할 만하다.

그대로 백만 명의 무인 중에 하나라는 일국의 장수임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중원을 다 털어야 중랑장급을 포함, 장군이라 할 인물은 백여 명뿐이기도 했다.

“서른 안에 반드시 이루어 내고 말겠다!”

친구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결의가 생겼다. 베기가 전부일 수는 없지만 분명히 멋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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