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거용관居庸關에서 (3)
남자들의 이야기.
악의가 없는 한 이것은 영예였다. 중원 육상 삼군 중 최강이라는 북평군의 인물들이 비무를 청해 온 것이다.
친구들은 순간 웅심이 치밀었고, 추룡 역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견문을 넓혀 주겠다 하시니 얼마나 영광인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히 받들겠습니다.”
“핫핫……! 역시 통하는군요! 기도를 미루어 우리가 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떠나서 가르침 받겠습니다!”
시원시원, 패기 있는 젊은 무장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이각여 후.
“오! 오!”
거용관 북쪽 진영의 한 모서리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연무장으로 안내해 온 우양이 부하들을 소집했기 때문이다.
“들어라! 초대한 분들은 향용에 몸담고 계신 강자들이시다! 총령님의 초대로 오신 길에 우리 북평군의 진면모를 보고 싶어 하셔서 잔치 마당을 마련했다! 고르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으나 인원이 많아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계급순으로 간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 북평군의 면모를 보여라!”
“오! 오! 오!”
“휘익∼!”
수효는 천여, 연호 소리와 휘파람, 갈채 소리가 둘러싼 연무장 사방에서 일어났다.
고하를 막론하고 무사들에게는 즐거운 일인 것이다.
소개를 마친 우양은 곧 옆에 마련된 병기대를 가리켰다.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십시오. 군부의 비무는 향용과 다소 다릅니다. 향용에서는 호구를 입고 목검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지만 우리는 갑옷을 입고 날이 없는 진병으로 겨룹니다. 아무래도 이쪽이 더 실전에 가까울 것입니다.”
갑옷을 입고 날이 서지 않은 진병을 쓴다면 위험하지 않으면서도 더 정확히 서로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게 확실했다.
북평에 왔으니 북평의 법에 따르는 게 예의기도 하므로 친구들은 권유에 따라 곧 병사들이 입는 갑주를 입었다.
한데 그게……!
“무거운데? 호구와는 비교가 안 돼. 이렇게 둔해서야.”
입자 바로 둔중함이 느껴졌다. 호구도 가볍다 할 수는 없지만 철편을 엮어 만든 군부의 갑주는 마흔 근의 무게가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투구에 병기의 무게까지 합치면 쉰 근. 갑주를 처음 입는 친구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무게였다.
그러나 추룡은 팔다리를 놀려 보며 고개를 저었다.
“벗어도 마찬가지일세. 군병들은 늘 갑옷을 입고 생활하니까 무게에 익숙해져 있어. 벗고 싸우면 그만큼 속도가 더 나오는 걸세. 멋지게 판을 벌여 보기로 하지.”
“카카……! 그럼 춘추대회 때대로! 자살조부터!”
한자방이 몇 번 앉았다 섰다 해 보더니 바로 병기대에서 자신에게 맞는 무게의 검을 쑥 뽑아 들고 마련된 비무터로 나갔다. 바닥도 부담이 느껴지는 모래판이었다.
“미흡한 불초, 한이라 합니다! 국경을 지키느라 북평군이 얼마나 애쓰는지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노고에 감사드리며 가르침 받겠습니다! 겨루실 장수께서는 나와 주십시오!”
“인상이 좋다!”
“휘익∼!”
함성과 갈채가 일어나는 속에 늦을세라 둘러선 군병들 가운데서 한 젊은 병사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북평 이군, 오연대 삼분대, 이호 황삼평! 부족한 몸이지만 한 대협께 가르침 받고자 합니다! 모쪼록 높은 손 속으로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하하하……! 계급순이라 하니 번개같이 나갔군!”
친구들과 유사한 약관의 나이! 미루어 친구들과 유사하게 훈련병으로서의 수련을 마치고 갓 배치된 신입 병사 같았다.
“반갑습니다!”
한자방은 웃으며 포권으로 황삼평을 맞이했는데, 시작하자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황삼평이 뜻밖에 병기대에서 넉 자짜리의 장검과 방패를 집어 든 것이다.
“방…… 방패?”
당연히 친구들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중갑重甲을 입고 있는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 판에 방패까지 든 상대라니?
향용이나 사 무림의 사람들은 방패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더욱 그런 것이었다.
“잠깐만.”
추룡이 곧 한자방을 불러들였다.
“주의해야 할 게 있는데, 군병들의 방패는 매우 조심해야 하네. 방어에도 능할 뿐 아니라 휘둘러 치기 등 공격에도 사용되고 있어. 특기로 방패술을 수련한 경우는 여간한 고수들도 당하지 못하네. 최대한 빠르게 움직이면서 허를 노리게.”
“그리하지.”
당황스러운 기분이었지만 한자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담스러운 점이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천의 응시자가 운집한 신입 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하였던 그. 설마 사병 한 사람 정도야 제치지 못하겠느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로 큰 착각이었다.
“시작!”
시합 시작과 함께 한자방은 곧 그것이 자만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인사하자 바로 자신감을 보이며 달려 나온 황삼평!
이호의 말단 병사라 해도 그가 보통의 실력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까닭은 군부의 무과에서 기인되었다. 군부의 무과는 사병 시험과 무관 시험 둘로 분류되어 있었고, 실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다수 무관 시험을 치렀다.
그러나 시기를 놓치거나 실력이 다소 미치지 못해 탈락한 경우 신경 쓰지 않고 사병 시험에 응시하는 예가 많았다.
사병으로 복무하면서도 장교 시험인 무관 시험을 보는 제도가 있어 다음 시기를 기다린다거나 할 필요 없이 입대부터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복무자 우선 원칙으로 해마다 승격 시험이 있었고, 자대에서 승격되므로 실과 교육이 면제되는 등 혜택 역시 작지 않았다.
이로 인해 사병 중에도 무관급에 필적하는 실력자가 많았는데, 황삼평이 바로 그런 청년이었던 것이다.
입증이라도 하듯 마주 서자 한자방은 적잖은 압박감을 받았는데, 떡하니 버티고 선 황삼평의 자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왼팔에 방패를 끼어 앞세운 채 오른손 하나로 장검을 중中으로 잡고 웅크리듯 하여 방패 뒤에 몸을 감춘 그런 자세. 발은 어깨너비 정도로 앞뒤로 둔 팔상이었다.
이 자세가 왜 이렇게 철벽처럼 보이는 것인지! 앞세운 방패가 몸 전체를 가려 버리는 듯한 느낌으로써 흡사 난공불락의 철벽을 대하는 것 같다. 어디를 쳐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지경.
‘뭐야, 이거?’
추룡이 한 말도 있고 비로소 훅, 경각심이 치밀어 신중히 황삼평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상관없이 그는 행동을 개시했다.
방패를 앞세운 채 서두르지 않고 한 발 한 발 한자방에게로 접근해 오기 시작한 것.
“하아아압!”
쾅! 쾅! 쾅! 쾅! 쾅!
그러나 공격은 한자방에게서부터 시작되었다.
황삼평이 밀고 들어옴에 따라 춘추대회에서 보여 줬듯 특기라 할 빠른 몸놀림으로 벼락같이 상하좌우로 강력한 검세를 일으키며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과가 되어 친구들과 함께 수련하고 있으므로 춘추대회 때보다 가일층 실력이 비약해 있는 상태.
“하!”
쾅! 쾅! 쾅……!
그러나 방패를 든 상대에게 일반의 수법은 소용없었다.
시작하자 한자방은 시커멓게 검영을 일으키며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번개같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떨어진 곳은 죄다 방패 위, 소리만 컸지 유효한 무엇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만치 황삼평의 방어가 뛰어나기도 했다. 소나기 공격이 퍼부어져도 그는 처음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섬전같이 이리저리 허리를 놀려 가며 앞세운 방패로 정확히 한자방의 공세를 차단해 내고 있었는데, 속도도 대단하거니와 추호도 빈틈을 내주지 않았다.
“핫-!”
쉬익!
“흡?”
할 테면 얼마든지 해 보라는 듯 퍼부어지는 공격을 차단해 가며 한 발 한 발 오히려 밀어붙이며 들어오기까지 했고, 한자방의 칼날이 방패 위로 떨어짐과 함께 빈틈이라도 보일 새면 바로 오른손의 장검으로 찌르기에 나서곤 했는데 이 또한 전갈의 독침 같아 위험천만하기 이를 데 없다.
공격을 하면서도 한자방이 오히려 밀리고 있다는 것! 주어진 모래판은 십 장이었고, 선을 벗어나면 실력 차이의 패배가 된다.
“하아아압!”
쾅! 쾅! 쾅!
어쩔 수 없이 한자방은 수법을 바꾸었다. 정면공격으로는 아무리 들이쳐도 모두 방패에 걸리고 마는 터이라 추룡의 귀띔을 환기해 움직임을 크게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쉭쉭, 빠르게 좌우로 몸을 이동시키며 틈이 보인다 싶은 곳을 찾아 섬전같이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그조차 적잖은 부담감이 느껴졌다.
난생처음으로 쉰 근이나 되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쇠 장삼(?)을 입고 투구까지 쓴 채 몸을 움직이자니 제대로 속도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움직임 자체가 불편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더욱이 바닥까지 모래판이었다.
이렇다 보니 역시 유효한 무엇이 없는 것 같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좌우로 몸을 번뜩이며 공격한다고 하고 있었지만 황삼평은 변함없이 처음의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은 채 훅훅, 한자방이 움직이는 대로 허리만 돌려 방향을 맞추었고, 빗발같이 공격이 날아와도 방패를 들이대어 가볍다시피 공격을 차단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쉭!
“흡……!”
그리고 순간적으로 날아오는 독침 같은 공격!
무리한 공격으로 한자방의 자세가 무너져 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섬전같이 장검이 날아들기도 했다. 지극히 위험한 상태로 완전히 한자방이 밀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한 형이 보통 실력자가 아닌데도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잖아? 강군이라 듣긴 했지만 일개 병사의 실력이 저 정도였던 거야?”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속에 추룡의 시선이 전광같이 두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붙었다.
“일반 사병이 아닐세. 자세도 그렇고 방어가 완전해. 무관급인데, 시기를 놓치거나 하여 때를 기다리는 친구 같네. 방패를 놓고 싸워도 한 형의 아래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듣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한자방이 이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하아아압!”
촤악!
“왓……!”
그러나 한자방은 역시 한자방이었다. 수천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입문 시험에서 장원을 했듯 처음 보는 수법,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대단한 무엇을 보여 주고 있었는데, 정면공격도 좌우 공격도 안 된다 싶자 그는 실로 멋진 실력을 보여 줬다.
빠르게 몸을 좌우로 움직이던 중 그에 맞춰 황삼평의 허리가 돌아가는 어느 한순간, 혼신지력으로 허리를 튕겨 쉰 근의 무거운 장비를 차고서도 후웅, 여덟 자나 허공으로 도약해 비조처럼 황삼평의 머리 위를 뛰어넘었던 것이다.
더불어 일격! 번개같이 장검을 날려 그의 등을 후려쳐 냈다.
“이야……!”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신법이 아니었으므로 사방에서 놀라움의 탄성이 나왔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결과는?
“황삼평 한판!”
“엣?”
한자방의 패배가 되고 말았다.
까닭은 황삼평의 등을 친 한자방이 이겼다 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놓았기 때문인데, 보여 줬던 대로 황삼평도 만만한 실력자가 아니어서 한자방이 도약하는 순간 몸을 돌리고 있었고, 등을 침과 동시에 칼을 뻗었는데 한발 늦긴 했지만 그의 칼끝이 한자방의 목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쳤는데도 패배, 모두가 얼떨떨해진 속에 우양이 손뼉을 치며 부연 설명을 했다.
“실로 놀라운 실력입니다. 갑주를 입고 모랫바닥을 차고도 그 정도로 높고 섬광 같은 비월이라니. 그러나 실책을 범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두 분은 갑주를 입고 계신데, 몸통을 쳐서는 치명상이 되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패하신 것으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
갑옷으로 인한 패배! 한마디로 기가 막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양의 지적은 틀리지 않았다.
일반의 경우라면 한자방의 일격은 분명히 몸통을 갈라놓을 만큼 치명적인 게 분명했지만 지적대로 지금은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철퇴 같은 둔기라면 모를까 검으로 쳐서는 부상을 입히기 어려운 셈이다. 비례해 늦었다 해도 황삼평의 검은 한자방의 목에 닿아 있었으니 이것은 확실한 승수였다.
황당하다 싶어 눈을 끔벅거렸지만 어쩌겠는가?
“승복합니다. 덕분에 좋은 경험을 얻었습니다.”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이겼다 하는 생각으로 방심한 게 실책이었던 것이다.
“휘∼익!”
“와아아……!”
“하하……!”
친구들은 실소를 지었고, 북평군은 사기가 올랐다. 그러나 보는 눈이 있는 만큼 한자방의 실력도 인정했고, 두 사람 모두에게 갈채를 보냈다.
엄살을 부리며 한자방은 돌아왔다.
“실력이 장난이 아닐세! 완전히 철벽을 방불케 하는데, 나 졌네! 복수를 해 주게!”
“까짓것 눈에는 눈, 이에는 이지, 뭐!”
성격 좋은 장청이 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엣?”
한데 이번에는 그가 뜻밖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나가자 병기대에서 손에 맞는 검을 뽑아 들었는데, 떡하니 왼손에 방패까지 쥐고 나선 것이었다.
“방패 기술 근처에도 간 적 없는데 괜찮은 거야?”
“별로 괜찮을 것 같지 않은데……!”
추룡 역시 대답하기가 좀 애매했다. 어차피 친선 비무이고 경험을 쌓기 위해 하는 것이니 소신껏 하는 것도 좋지만 방패라는 게 또, 기술 없이는 사용하기 어려운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방어에만 사용한다면 특별히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그럭저럭 보탬이 될 수 있긴 하겠지만 문제는 이기기 위한 대결이라는 것. 이기려면 검을 써야 했는데, 일반의 무사들은 대부분 두 손으로 검을 사용했다.
정확히 검을 잡고 놀리는 것은 오른손이나 왼손 둘 중 하나이고, 다른 손은 밑을 받치는 보조 역할을 했는데, 이 차이가 한 손으로 잡는 것과 하늘과 땅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한 손 검에 익숙하지 않은 이상 방향을 돌리는 것도 그렇고 속도를 가하는 것도 그렇고 치거나 베는 위력 면에서도 절반 이상의 차이가 난다고 봐야 했다.
더욱이 방패를 들면 공격 역시 불편하다. 방어에는 유리한 면이 있지만 검을 사용하기에 아주 불편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뭐, 상관없이 장청은 척척 황삼평의 앞으로 걸어 나가서 힘 있게 인사를 했다.
“미흡한 불초, 장이라 합니다!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휘익!”
“기백이 좋아 보인다! 조심해라, 황 이호!”
“시작!”
신호와 함께 두 번째 판이 시작되었다.
한데 대결선에 선 장청의 자세는…… 예상되었던 대로 역시 어딘가 좀 어정쩡하다.
임기응변으로 들고 나온 방패가 오죽하겠는가마는 황삼평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완전하다 싶은 자세를 취한 반면, 장청은 대충 가슴 정도로 방패를 들어 올리고 칼까지 비스듬히 내려뜨린 모습! 그러면서도 두 손으로 칼을 쓸 때처럼 자세 역시 꼿꼿하다.
“뭐 저래? 기왕 방패를 들고 나갔으면 모양새라도 좀 그럴싸하게 잡아 볼 것이지.”
“카카……! 저러고 있으니 꼭 무슨 절정 고수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떡하니 멋대로의 자세로 서서 눈을 번쩍이고 있는 장청의 모습은 진짜 뭔가 한가락 하는 대가大家의 모습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