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83화 (83/150)

# 83

기승 도연 (5)

마삼보는 계속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으신가 봐. 저하께서도 모르지는 않는데 습관이 되어 양이 커져 있는 데다 자꾸만 신경 쓰이는 일들이 생기곤 해서. 툭하면 원의 녀석들이 공격해 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속에서 성장하셨을 뿐 아니라, 조정에서 압력을 가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니 속이 안 상하실 수 없지.”

세 번째, 추룡은 예외적으로 여기에 대해 한 번 더 물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많은 소문을 듣고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느 쪽 말이 진위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확실히 모함당하는 것인지요? 대감님의 말씀이라면 믿겠습니다.”

“하하……! 고맙군!”

마삼보는 한바탕 웃어 젖혔다.

“하나, 거기에 대해서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네. 무슨 말을 해도 팔이 안으로 굽는 격밖에 아닐 것이니. 하찮은 환관이라 아는 것도 없고. 다만 한 가지, 전하께서는 매우 효심이 깊은 분이라는 것을 다시 이야기해 주고 싶네. 그뿐이지.”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다시 돌이켜도 역모란 조정을 뒤엎고 황제를 폐廢하고 권력을 잡으려 하는 것이다. 한데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아버지를 치려 할 리는 없는 것이다.

어제오늘 나온 것이라면 모를까, 십 년 전부터 나돌고 있는 게 북평왕부의 역모설이기도 하니.

“어딜 가나 남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사람들은 많은가 보군요.”

마삼보는 거듭 푸근하게 웃었다.

“특히 자신이 쓰러뜨린 사람이 강성해지는 것을 볼 때는 더욱 그렇지. 어쨌거나 그냥 다 잘됐으면 싶네. 왕야께서는 중앙으로 가셔서 기략을 펼치셨으면 싶고, 나는 배를 탔으면 싶어. 유감이지만 북평에는 수군이 없거든. 천진에 바다가 있긴 한데, 해역이 불리해서인지 조정에서 허락지 않고, 산동의 연태烟台, 청도靑島, 강소의 항주, 광동의 해남海南에만 있지. 좋은 시절이 오면 해남으로 가고 싶네. 작게라도 선단을 이끌고 세계를 돌아보고 싶어. 중원의 비단과 도자기가 서양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던데, 명明의 항해술을 만방에 떨치고 무역으로 큰 이문을 남겨 봤으면 좋겠다 싶네.”

꿈.

“부국을 이루는 거야! 어릴 때부터 해 온 생각일세.”

이야기하는 그의 얼굴은 그대로 흥분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멋집니다. 직접 만드신 거대한 범선을 타고 황금을 가득 싣고 돌아오시는 대감님의 모습을 꼭 뵙고 싶군요.”

“핫핫…… 그렇지? 세손 저하의 말씀처럼 그럴 때는 진짜 자네 같은 사람이 도독이 되어 반겨 줬으면 좋겠어. 안심하고 떠나고 언제든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있도록! 총사께서 간혹 사상을 이야기하시지만, 힘 있는 군왕이 국방을 튼튼히 하고, 어진 성품의 황상께서 백성을 두루 살피시고, 훌륭한 성격의 도독이 치안을 맡고, 황금을 실은 배가 포구로 돌아오고! 그야말로 최고가 아닌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그대로 부국강병에 태평성대가 되는 것이었다.

열정적인 그의 말에 추룡조차 정말 그리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강제로 내시가 되었음에도 한조차 잊고 변함없이 꿈을 꾸고 있는 남자의 소망이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기분이 들었다.

“막 형!”

추룡이 객관으로 온 것은 반 각 후였다.

“식신 등장!”

“아냐, 수사자 등장!”

친구들은 변함없이 한자리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아주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추룡 역시 올 때와 달리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표정들이 밝아 보이는군.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어, 그냥 좀 웃긴 이야기를 들어서! 도연 대사님이 오셨었는데, 우리가 전생에 암사자였대. 카카! 막 형은 수사자였고! 사람으로 나면서 성별이 바뀌었다는 건데, 전생의 업이 그래서 막 형이랑 어울리고 있다는 이야기 같아! 부부였을지도 모르지! 카카카!”

역시 좀 웃기는 이야기인 것은 맞는 것 같았다.

“전소는 변태 비둘기래! 사자 주위에서 맴돌던. 임 형은 전생에도 가출 늑대였고! 식신을 만나 이승에서는 잘 풀릴 거래!”

“식신은 뭔가?”

“점술가들이 말하는 먹보 신! 부엌 신이라고도 하는데 재신財神과 같은 거야. 막 형에게 붙어산대!”

피식, 추룡은 실소 지었다.

“워낙 기인이신 분이라서 이해 못 할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좋다니 좋군.”

“빨리 온 것 같은데 연왕 전하는 뵈었나?”

“어, 그냥 인사만 올리고 왔네. 지체 높은 분이라 그조차 부담스럽더군.”

“하긴. 왕부 속에 들어왔다는 것만 해도 신기하지.”

그대로였다. 중원을 다 뒤진들 왕부 속으로 초대된 사람, 왕과 독대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래도 저래도 막 형을 안 게 행운이야! 전소 경우는 더 좋은 일이 있었어. 총사님께서 기서까지 주셨거든.”

“기서?”

전소가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받은 책자를 가리켰다. 그대로 팔선탁 위에 놓여 있었다.

“자부진경이라 하던데, 차후 요긴하게 쓰일 일이 있을 거라고 보라고 하시더군. 그러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 이유 없이 이런 것을 받을 수는 없거든.”

“흠……!”

추룡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듣지 못해 자부진경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역시 불필요한 신세를 지는 건 뭣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받은 것은 자신이 아닌 전소였다.

“뭐라며 주신 건가?”

“그걸 잘 모르겠어. 전생에 내가 비둘기였다 하시며 그냥 요긴하게 쓰일 날이 있을 것이니 두루 좋은 소식을 전해 달라 하시더군.”

이해가 안 갔다.

도연이라는 인물이 그만큼 기인인 것이었다. 나름대로는 뭔가 헤아리는 것이 있어 하는 것이겠지만 그의 말이나 행동은 전체적으로 종잡기가 어려웠다.

여러모로 이해가 안 갔지만 추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식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다른 무엇이 없다면야. 전 형이 판단할 일 같아.”

전소는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자부진경을 보며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태평서라는 것 같았는데, 무엇인지 궁금하긴 해. 호기심이 많아서……! 받아도 될까? 분명히 막 형과 관계된 것일 텐데.”

헌원 황제를 가르쳤다는 선인이 남긴 책.

누구라도 궁금할 수밖에 없다. 망설여졌지만 전소가 가지고 싶어 하는 눈치이므로 추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받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전 형을 어렵게 하지는 않으실 걸세.”

“그럼……!”

우물쭈물했지만 전소는 웃으며 자부진경을 품속에 넣었다.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미루어 크게 기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혼인까지 미루고 달려와 준 친구.

추룡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만 가 보기로 하세. 더 있어도 불편한 것이니.”

“히히히……! 휘말리기 전에 튀는 거야!”

친구들 역시 같은 마음이라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이때였다.

“실례하네. 미안하지만 나가는 길에는 의복을 갈아입는 게 좋겠네.”

또 뜻밖의 일이 생겼다.

그것으로 일이 끝났나 했는데 기침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바깥에서 검은 얼굴의 원기가 들어왔다.

북평군부의 참모라 한 도사 차림의 인물!

“존체를 뵙습니다.”

추룡과 친구들은 다시 허리 숙여 포권을 취했고, 번뜩이는 눈으로 이런 모두를 보며 원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는 군관인 듯한 중년인이 따르고 있었는데, 손에 왕부의 군사들이 입는 금위군의 옷을 들고 있었다.

“들어오면 여긴 나가기가 쉽지 않네. 도위부의 감시가 따라서인데, 틀림없이 주시하고 있을 걸세. 옷을 바꿔 입고 뒷문으로 나가야 번거로움을 피할 것일세. 병사들과 함께 나간 후 자연스럽게 흩어져 숙소로 돌아가게나.”

친구들은 다시 멈칫하는 심정이 되었다.

“왕부가 감시당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원기는 무뚝뚝한 인물인 것 같았다.

“도위부의 세상인데 어쩌겠나? 장성을 보려면 장가구張家口로 가야 할 것인데, 그때도 군복을 입는 게 좋아. 그래야 의심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가서는 장 총령을 찾게. 이야기해 두었으니 장성과 주위를 둘러보게 해 줄 걸세.”

‘햐……!’

친구들은 기가 찬다 싶었다. 아무리 도위부의 힘이 크다지만 왕부 자체까지 감시하고 있다니.

어쨌거나 이야기대로라면 나가는 즉시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므로 친구들은 군복을 덧입고 금위군의 모습을 했다. 시비는 무조건 피하는 게 좋은 것이었다.

“하하……!”

돌아온 추룡을 보며 악벽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금위군의 복장, 난데없이 추룡이 북평군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또 말단이다. 갑주를 입거나 할 때는 어깨의 견장肩章으로 계급을 표시하지만 일반일 때는 악충보와 다름없이 허리띠에 계급을 넣어 신분을 알리는데 이호! 의심을 피하기 위해 갓 배치된 병사의 차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짜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요. 북평 한복판에서 왕부가 감시당하고 있다니. 정말 장난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추룡은 덧입고 있던 군복을 벗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참, 기가 찬다 싶습니다.”

악벽강은 변함없이 눈을 반짝이며 이런 추룡을 바라봤다.

“왕부 분위기는 어떻던가요? 연왕 전하는 뵈었는지요?”

“거위가 엄청나게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연왕 전하는 대단한 분 같았습니다. 뵙자 두려웠는데, 무예도 범주를 넘어서신 것 같았고, 철벽같은 기도를 보이시더군요. 사람들이 어려워하겠다 싶었습니다. 대신들이 꺼려 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사람이 너무 강해 보이면 주위에서 피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립에서 냉정하게 평가한 것.

흥미롭다는 듯 악벽강은 눈을 반짝였다.

“가가께서 두려우셨다는 말씀입니까?”

추룡은 느낀 대로 대답했다.

“그랬습니다. 처음인 일인데, 저와 맞지 않는 무엇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워낙 커서 그런 것 같아요.”

기질에서 느껴지는 두려움이라는 뜻이다.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좀처럼 친구가 되지 못한다.

헤아리며 악벽강은 미소 지었다.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오게 한 까닭은요?”

추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가장 난해한 부분인데,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무엇이 없었습니다. 왔으니 그냥 두루 둘러보고 가라 하시더군요.”

사상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모조리 뺐다. 무슨 뜻인지도 몰랐지만 신경 쓸 게 없다 생각한 것이다.

“기이하군요. 이유 없이 이런 일을 하실 분은 아닐 텐데……! 이젠 어쩌시려고요?”

추룡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기왕 왔으니 친구들과 함께 장성을 보고 내려갈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그마저도 없으면 허무해할 테니까요.”

악벽강은 전소 등을 떠올리며 실소 지었다.

“각별한 사이신 줄은 알지만 정말 끔찍한 의리입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 하나로 수만 리 길을 쫓아오다니. 전소의 경우는 혼인까지 미룬 듯싶은데요.”

“그렇다 합니다. 돌아가서 날짜를 다시 잡기로 했다더군요. 사직서까지 써 놓고 왔다는데 기가 딱 찼습니다. 그렇게 입문하고 싶어 했던 악충보인데 말입니다.”

“하하……! 그러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악벽강은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어 웃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죠? 이쯤에서 저와의 관계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추룡은 엉거주춤, 미소 지었다.

“어제 실토했습니다. 저에게처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선 대협이라 하시는 것으로. 저도 그 호칭이 참 좋았습니다. 거기에서 악 매에게 크게 호감이 갔었습니다.”

둔계에서 만났을 당시, 장부가 함부로 무릎을 꿇는 게 아니라 하며 대협이라 부르겠다 한 그녀.

악벽강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대로 대협에 부끄럽지 않은 의리를 지니셨으니. 전 대협과 임 대협은 분명히 대명을 떨치시겠지만 나머지 분들도 모두 그러실 것이라 믿습니다. 가가께 무예까지 전해 받으셨으니 더욱.”

추룡은 부연 설명을 해 줬다.

“임 형은 이미 신분이 대단합니다. 몰랐던 사실인데 홍묘의 소토사더군요. 의견 충돌로 잠깐 집을 나오는 등 곡절이 있는 것 같지만 분명히 대토사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악벽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북, 하남 일원의 일월교를 이야기하시는 것입니까?”

묘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추룡은 불리한 내용들을 모두 빼고 이야기해 줬다.

“그렇습니다. 악충보로 온 후 문제도 원만히 해결한 것 같더군요.”

“몰랐군요. 설마 임 대협이……! 가가 역시 뜻밖이었지만 홍묘의 소토사가 악보의 말단 무사로 있었다니.”

악벽강은 기가 찬다는 표정이 되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정말 기연인 것 같군요. 이런 일은 듣기도 처음입니다. 다들 잘되었으면 싶습니다. 출신을 떠나서 다 함께 대명을 떨치고, 한 지역의 패주가 되었으면 싶습니다.”

추룡도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아버님께서 잘 좀 살펴 주셨으면 좋겠어요. 도처의 패주가 되어 악충보와 함께 안휘 향용을 석권할 수 있도록요.”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아는지라 악벽강은 웃음 지었다.

“부탁 올려 보겠습니다. 저마다 꿈이 다르겠지만 개파에 뜻이 있고 때가 이를 때까지 악충보에 남으면 분파를 낼 수 있도록 해 달라고요. 가가께서 무예까지 전하셨으니 노력하는 한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악 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추룡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순간 악벽강의 얼굴에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또 객잔의 친구들에게 갈 눈치를 보이지 않는가.

왔다는 말을 듣고 나가서 지금 돌아왔으니 어제만 해도 외박을 한 셈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건 좀……!

물론 남평으로 가면 오랫동안 못 보게 될 것이니 한시가 아쉽긴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문제는 자신을 대하는 모습이기도 했다.

정혼까지 한 사이임에도 도무지 진도가 안 나가는 것이다.

처음 마음을 확인할 때는 포옹까지 했지만 그건 자신이 울고불고 해서였고, 이후로 영 진행이 없는 것이었다.

춘추대회 당시 어깨를 한번 감싸 준 게 전부이고 한 달이나 되는 긴 여정에 북평까지 왔지만 손 한번 안 잡을뿐더러, 이렇게 한 실내에 있거나 하면 늘 내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왜일까.

눈 딱 감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추룡을 불러 세웠다.

“막 대협!”

나가려다 말고 이번에는 추룡이 멈칫했다. 그러나 잠시, 한동안의 짬밥이 있어 바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아, 예! 삼호 막추룡!”

이런 추룡의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악벽강은 계속 눈을 딱 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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