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82화 (82/150)

# 82

기승 도연 (4)

가장 멀리 나는 신천옹! 인물임을 알아보고 주체가 중용 했다는 바로 그 인물.

곁에는 다른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추룡과 엇비슷한 스무 살가량의 청년이었고, 또 한 사람은 여섯 살가량의 어린 소년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들 두 사람의 모습이었는데, 지체가 높은지 두 사람은 모두 군청색 바탕에 구름 문양이 수놓인 금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청년은 체형이 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매우 온후하고 성실해 보이는 용모를 지니고 있었지만, 도무지 웬 살이 그렇게 쪘는지, 옆으로 퍼진 모습이 일반의 두 배나 되어 보일 정도. 걷기도 버거워 보일 정도로 비둔한 체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년은 어리지만 별나게 반짝이는 눈을 지닌, 아주 영특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마삼보의 옷자락을 잡고 무언가를 조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마삼보는 옆구리에 나무로 만들어진 두 자 길이의 모형 배를 끼고 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매우 특이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형상을 봐서는 장식용으로 만든 모형 배 같았는데, 일반에서 보는 전함戰艦이나 상선商船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선에 가까운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길이가 길었고, 긴 만큼 큰 깃대가 넷이나 달린 처음 보는 모양의 모형 배였다.

더 특이한 것은 배의 돛이었는데, 넷 중 앞의 셋은 돛의 모양이 세모꼴이었다. 뒤쪽의 큰 하나만 네모꼴의 돛! 매우 특이한 형상으로서 중원에는 이런 형상의 배나 돛이 없었다.

일률적으로 보는 길이에 네모꼴의 돛을 지녔을 정도였다.

소년은 이 배를 물에 띄워 보라고 조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람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물길은 남쪽에서 끌어들여 가산을 따라 북쪽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센 편으로 서북에서 불었다.

띄우려면 돛을 모두 내리고 그냥 나무토막을 띄우듯 물 흐름에만 맡겨야 하는 것이었다.

돛이 있는 채로 띄우면 역풍을 맞고 뒤집어지거나 한쪽으로 가서 처박히게 마련이었다.

세 사람을 본 장옥이 슬그머니 추룡의 팔을 끌어당겼다.

“피해서 가세. 주고치朱高熾 저하와 주첨기朱瞻基 저하일세. 전하의 큰아드님과 장손이시지.”

주체의 장자! 두 사람 역시 부자지간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추룡은 도연에 대해서는 다소 거부감이 있었다.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딘지 자신과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주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나 본바 처음 대한다 할 큰 위엄과 강직한 모습을 지녔지만 역시 자신과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는데, 워낙 인상이 좋아서인지 처음부터 마삼보는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인물이었다.

호감이 느껴지는 인물로서 편안한 기분을 줬고, 함께 어울려 있는 두 사람 역시 첫눈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주첨기는 씩씩한 모습이 귀여워 보였고, 주고치는 너무 평화롭게 웃고 있었는데, 그 자체가 선함 하나로 일관되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이에 추룡은 장옥을 따라 몸을 돌리면서도 세 사람을 바라보았는데 이때였다.

“어?”

시선을 의식한 듯 마삼보가 고개를 돌리더니 곧 멀리에서 반색을 했다.

“잠깐만, 거기 걷는 것이 혹시 장 장군과 금릉에서 만난 막 공자 아니신가?”

추룡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러자 배에만 관심을 지니고 있던 주고치와 주첨기도 시선을 돌렸고, 바로 주첨기가 눈을 반짝이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정말! 장 장군! 이리 좀 와 봐! 삼보 태감이 배를 띄워 준대! 바람이 거꾸로 부는데도 간다고 해! 거짓말이면 장 장군이 힘차게 엉덩이를 차 줘!”

역풍이 부는데 돛배가 간다?

난처한 표정이 되었지만 알아보고 부르기까지 하므로 장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군. 잠깐 문안 올리고 가세나.”

추룡도 어쩔 수 없다 생각했고, 곧 세 사람에게로 다가가 깊숙이 포권을 취하며 허리를 숙였다.

“촌민 막추룡, 왕자 저하와 세손 저하를 알현하나이다. 청복이 있으시기를.”

“막추룡? 이름이 뭐 그래? 성씨가 이상한가?”

그러자 주첨기가 영특해 보이는 눈을 반짝이며 먼저 말을 했다. 주고치가 빙그레 웃으며 이런 아들을 타일렀다.

“말을 함부로 하면 못쓴다. 특히 남의 성씨를 흠잡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대로 성품 좋은 아버지가 철부지 아들을 타이르는 모습.

부드럽게 웃으며 추룡에게 마주 포권까지 취해 보였다.

“결례를 용서하게. 아이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러니. 보통 장사가 아니신 것 같은데 새로 임관한 무장이신가?”

세자의 몸임에도 위세 같은 것을 보이지 않는 모습이 또한 좋아 보였다.

추룡은 더 삼가며 깊숙이 포권을 취해 보였다.

“아니옵니다. 용무가 있어 북평에 온 길에 전하께 문후 올리고자 들른 촌민이옵니다. 즐거운 시간 방해한 무례, 용서하십시오.”

“무례는 무슨. 불러 세운 것은 우리인데. 오히려 길을 방해한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네.”

역시 소탈하면서도 후덕해 보이는 모습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주첨기가 다시 추룡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말문을 열었다.

“체격도 성격도 굉장히 좋아 보이는데? 뭐라고 불러야 하지? 막 백성? 막 무사?”

‘풋!’ 하마터면 추룡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하지만 자그마치 왕부의 왕자와 세손의 앞이다. 간신히 눌러 참으며 그냥 웃는 모습으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백두의 천민이니 아무렇게나 부르셔도 될 것이옵니다. 그냥 이름을 불러 주시면 감사하겠나이다.”

“막추룡! 왠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나중에 이름을 바꿔 줄게! 삼보 태감도 이상해서 그러기로 했어! 내 부하가 되는 게 어때?”

“또!”

이런 아들을 주고치가 다시 타이르려 했는데, 귀엽기도 하고, 추룡은 다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저하의 부하이옵니다. 굳이 정하지 않으셔도 촌민 역시 부하이오니 편히 대하여 주십시오.”

“응! 그러면 직책을 주지! 삼보 태감을 제독提督으로 임명했는데 무지하게 세 보이니 막추룡은 도독都督이 되는 거야! 괜찮지?”

“하하……!”

추룡은 결국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자신이 왜 세 보였는지 모르지만 느닷없이 오경五京 십오부十五府를 총괄하는 대신이 된 것이었다.

당연히 황제만이 봉할 수 있는 직책이다.

즐거이 허리를 숙이며 사의를 표시했다.

“황송하옵나이다. 충심을 다해 받들겠나이다.”

어차피 여섯 살 아이일 뿐인 만큼 그냥 맞추어 준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추룡을 보며 주첨기는 매우 좋아했다.

“응! 막 도독! 그럼 함께 삼보 태감의 허풍을 봐! 맞바람을 받으면서도 돛배가 갈 수 있대! 틀리면 막 도독도 엉덩이를 차 줘!”

“하하……!”

역시 귀엽다.

주첨기는 계속 마삼보를 재촉했다.

“삼보 태감! 그럼 어서 배를 띄워 봐! 진짜로 갈 수 있는지!”

“예, 저하. 그럼 잠시만.”

마삼보는 웃는 모습으로 풍향을 살폈다. 겨울이라 물골의 저변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고, 약한 물 흐름에 바람은 여전히 반대쪽에서 불어오는 강한 역풍이었다.

돛을 내리지 않으면 역시 배는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삼보는 매우 특이한 행동을 했다. 모형 배를 내려 일단 네 개의 기폭旗幅 중 뒤의 네모 기폭 하나를 내렸고, 나머지 세 개의 삼각 기폭을 바람 부는 방향에 맞춰 비스듬히 측면으로 돌려세웠다.

“자아! 그럼 갑니다, 저하!”

“우와!”

그런 후 배를 흐르는 물에 내려놓았는데 그러자 순간 매우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이치를 봐도 느린 물 흐름에 강한 역풍이 불므로 배는 정상적으로 갈 수 없어야 했는데, 희한하게 물위로 올리자 쏜살같이 역풍을 뚫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이 아니었다.

속도가 대단히 빠른 것을 보아 역풍을 흡사 순풍 받듯 한 형상으로 가는 것이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추룡조차 크게 의아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삼보 태감의 말이 맞았군! 최고야!”

쏜살같이 바람을 타고 배가 내려가자 주첨기는 엄청나게 좋아하며 배를 쫓아갔고 주고치도 놀랍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로군! 마 태감이 배에 관심이 많고 잘 만든다는 것도 알지만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것인가?”

신기한 일인 게 분명했는데, 그러나 마삼보는 특유의 호감 가는 웃음을 머금고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삼각돛의 묘리이옵니다. 중원의 배는 모두 사각 돛으로 되어 있고 사각 돛은 순풍에만 의지할 수 있지만, 삼각돛은 위가 좁고 아래 폭이 넓어 역학적으로 바람이 아래로 타고 흐르면서 유리하게 휘어 움직이므로 어느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든 이를 받아 직진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뒤에서 부는 순풍에 약하옵니다. 순풍이 불 때는 사각 돛이 유리하므로 주 돛대를 사각 돛대로 하되, 샛바람과 역풍이 불 때는 삼각돛을 쓰는 게 좋습니다. 흑선(黑船-서양 배)들이 이 돛을 사용하고 있사옵니다.”

매우 지식이 많은 인물 같았다.

“신기한 일이로군.”

배를 따라 내려간 주첨기는 한참 멀어져 있었는데, 혹시 넘어지기라도 할세라 걱정이 되었던지 주고치는 웃음과 함께 다시 추룡을 향했다.

“좋은 성격을 지닌 것 같은데, 아쉽지만 이만 첨기를 따라가 봐야겠네. 차후 차라도 함께 하세나. 만나서 반가웠네.”

“황송하옵니다.”

추룡이 허리를 숙여 보임과 함께 주고치는 뒤뚱뒤뚱 비둔한 몸을 움직여 주첨기가 있는 쪽으로 내려갔다.

비로소 웃음과 함께 마삼보가 추룡에게 말을 건넸다.

“총사님께서 말씀하시더니 역시 왔군. 그간 잘 지냈는가?”

푸짐한 체격에 푸근한 웃음, 마주 서니 늘 싱거운 듯 웃는 추룡과 어딘지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가 격의 없이 소탈하게 대하는 만큼 추룡 역시 왕부에 온 후 처음으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잘 지냈습니다. 대감님께서도 편히 지내셨사온지요?”

“궁실 속에서 빈둥거리는 태감이 편치 않을 리 있겠나.”

마삼보는 장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총사께서는 어디로 가시고 총령께서 수고하시는지. 제가 안내할 테니 일 보십시오.”

“예, 그럼 저는 이만.”

그러자 장옥은 마삼보에게 포권을 취해 보인 후 추룡에게 고개를 끄덕여 다시 보자는 표시를 하고 성큼성큼 먼저 내궁 밖으로 걸어 나갔다.

추룡과 할 말이 있는 듯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멀어지자 마삼보는 다시 웃음과 함께 추룡에게 말을 건넸다.

“안쪽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전하를 알현하고 나오는 것 같은데 가는 길인가?”

“그렇습니다. 벗들과 함께 왔사온데 객관으로 간다고 하였습니다. 함께 돌아갈 생각입니다.”

“이리 오게나.”

추룡은 다시 마삼보와 걷기 시작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해 보였지만 호의였던 듯 그는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금릉에서 만났을 때도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자네에게서는 아주 특이한 기운이 느껴지는군. 항상 무장들을 대하고 있지만 이런 기운은 없는데, 혹시 자네도 아나?”

추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과 같을 것 같사온데요?”

웃으며 마삼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많이 달라.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가 풍기는 기운은 아주 부드럽네. 일반 무장들의 몸에는 완강하고 기계처럼 절제된 기운이 흐르는데 자네가 주는 느낌은 굉장히 따뜻하고 부드럽네. 흡사 훈풍 같은 느낌인데, 그러면서도 속에는 폭풍이 밀어내는 듯한 막강한 잠력 같은 것이 엿보여. 어떻게 무예를 수련하면 이런 기운이 느껴지나?”

“하하……!”

추룡은 자신도 모르게 또 웃고 말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태감님께서도 수월치 않은 무예를 지닌 분이심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같은 수련 방식일 것이라는 기분이 드는군요. 저도 태감님에게서 똑같은 느낌을 받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이 같은 느낌.

앞서도 잠깐 언급되었지만 푸근하게 웃는 모습도 그렇고, 확실히 두 사람에게서는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느낌이 있다고?”

“말씀하신 느낌과 완전히 같습니다.”

“내가 무슨……! 사실이라면 무예 때문이 아니겠군. 혹시 예기도 성품의 영향을 받는 건가?”

마삼보는 소탈하게 웃었다.

도저히, 어려서 일가가 몰살당하고 강제로 거세당해 내시가 된 사람이라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훈훈한 모습.

속에 정말 멀리 나는 신천옹의 기상 같은 게 보인다 느끼며 추룡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느낌은 성격에 더 좌우될 테니까요. 그런데 그 모형 배, 신기하던데 대감님께서 만드신 것인가요?”

마삼보는 계속 소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취미가 있네. 어려서부터 유별나게 바다를 동경했는데 태어난 곳이 운남이라 그런 것 같아. 멀지 않은 곳에 남해南海가 있지. 커서 큰 배를 타고 안남 해를 돌아 천축 등 도처로 가 보고 싶었네.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모아 모형을 만들어 보곤 하지.”

강제로 환관이 되어서도 웃음과 소년기의 꿈을 잃지 않은 인물! 어려서부터 대리사 한길만을 생각해 온 추룡과 또한 다르지 않았다.

“멋집니다. 세손 저하께서 제독이라 하시더니 정말 그대로군요. 대감님께서 수군 제독이 되어 수천 척의 함대를 거느리고 바다를 가르시는 모습을 뵙고 싶군요. 틀림없이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만.”

“총명하고 영특하신 분일세. 장차 훌륭한 군왕이 되시리라 여겨져. 저하께서는 더 성품이 좋으시지만.”

주고치와 주첨기.

“무례한 이야기지만 다정해 보이는 모습하며, 전하와는 많이 다르신 것 같던데요?”

“하하……! 분명히 많이 다르시네. 아무래도 모후이신 효문비마마의 기질에 더 가까우신 것 같아. 너그러울뿐더러 효성이 지극하시지. 하지만 성품은 전하께서도 마찬가지시네. 똑같이 효성이 지극하고 좋은 분이시지. 다만 기질 자체가 강직하셔서 안으로 감춰져 있을 뿐일세. 반반씩 섞인 성품으로는 세손 저하 같으신데, 기대가 되네. 모쪼록 저하께서 건강하시고 세손께서도 잘 성장하셔서 봉지封地를 물려받으셨으면 좋겠네.”

“건강이 안 좋으신가요?”

마삼보는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특별히 불편하신 곳은 없지만 식습관이 안 좋으신 편일세. 너무 많이 드시는 경향이 있네. 뛰기조차 어려울 정도인데도…… 주의해 주셨으면 싶지만 잘 안 되시는 것 같아. 속이 상하시거나 하면 먹는 것으로 푸시는 것 같은데 걱정이 되네.”

걷는 게 뒤뚱거려 보일 정도로 몸집이 있던 주고치.

추룡 역시 관리를 좀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웃었다.

“때가 되면 줄이시겠지요. 거기서 더 살이 오르면 숨도 쉬기 힘드실 텐데, 어련히 알아서 하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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