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기승 도연 (2)
친구들을 하나하나 살핀 후 곧 휙, 다시 추룡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함께 나온 두 사람을 소개했다.
“인사하게. 이쪽은 원기袁琪라고 하네! 북평군부의 참모일세.”
또한 ‘윽!’ 소리가 나올 정도의 인물.
하지만 추룡은 놀라움보다 의아함을 느꼈다.
총사인 도연은 승려, 군부의 참모는 도사! 참 희한하다 싶은 것이었다.
“또 이쪽은 장옥張玉일세! 북평군의 병마총령이지!”
더불어 도연은 옆의 어마어마한 사내를 소개했는데 소개받고 나니 추룡은 더 할 말이 없어졌다.
병마총령.
바로 이 대한大漢이 북평군부의 사령관이었던 것이다.
말문이 막히는 심정이 되어 추룡이 그냥 포권을 취했다.
“말학 추룡, 어른들을 뵙습니다.”
도무지 이런 어마어마한 인물들이 왜 자신을 마중 나왔나 싶을 정도.
원기와 장옥은 정광이 일어나는 눈으로 추룡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피며 동시에 이마를 끄덕였다.
“만나서 반갑네! 총사께 말씀 들었거니와 역시 이만저만한 기품이 아니군. 잘 부탁함세.”
북평군의 대장군인 총령과 참모가 백두의 청년에게 부탁은 무슨 부탁. 대답하기조차 부담스러웠지만 어쨌건 여기에서 인사는 끝났다.
“들어가세! 원 참모는 귀인貴人들을 모시고.”
두 사람을 소개한 도연은 곧 왕부로 들어가기를 권했고, 추룡과 친구들은 엉거주춤 세 사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꽥꽥! 꽉!
‘맙소사!’
한데 들어서는 순간, 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괴상한 일이 발생했다.
한 마장이 떨어진 곳에서조차 시끄러울 정도로 들리고 있긴 했지만 들어서자 왕부 안이 온통 오리와 거위 떼로 뒤덮여 있었던 것이다. 허언이 아니라 수천 마리의 오리와 거위 들이 꽥꽥대며 사방으로 몰려다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근엄해야 할 왕부 안이 온통 오리, 거위 들의 빠진 깃털과 똥 천지다.
‘대체 이 무슨……!’
냄새까지 장난이 아니라 속이 메슥거릴 정도였는데, 그래도 도연 등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고, 거위 떼를 밀고 다니듯 오가는 병사들과 관료인 듯한 사람들 역시 마냥 담담하기만 하다. 아주 익숙해 있는 그런 모습들.
놀란 기색을 눈치챈 듯 도연이 물었다.
“왜? 이상한가?”
황당하다 싶은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추룡은 느낀 대로 대답했다.
“사실 좀. 거위가 아주 많군요.”
도연의 입꼬리에 보일락 말락 기묘한 웃음이 잡혔다.
“두 가지 이유가 있어 기르는 것일세! 첫 번째 이유는 쇳소리를 감추기 위해서일세! 소문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왕부 뒤편 지하에 병기 공장이 있네. 화포와 살촉 등 각종 무기를 제작하고 있지.”
전소가 이미 한 이야기였다.
추룡은 멈칫하는 심정이 되어 질문했다.
“왜 왕부 안에 공장을 두었는지 여쭤도 될는지요?”
도연은 숨길 게 뭐냐는 듯 대답했다.
“되지 못한 야견野犬들이 방해를 하기 때문이지! 원래는 밖에 있었네! 연왕 전하께서 부임해 오기 전의 일일세. 형편없는 시기였어. 밀려난 원은 국호를 북원北元이라 고치고 재기를 위해 이도�都에 중군 사령부를 만들어 이만의 군사로 쉴 새 없이 공격을 감행해 왔는데, 북평은 완전히 사람 살 곳이 아니었지. 주민들은 모두 남쪽으로 피신하고 잿더미만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
또한 악벽강이 했었던 이야기.
“그랬던 곳을 왕야께서 부임하시면서 안정시켰는데, 초기만 해도 똑같이 엉망진창이었네. 장성에 의지하고 있을 뿐, 총병력이 삼천이라 침입을 막아 내기 역부족이었지! 어쩌겠어. 병력이 부족하니 화력이라도 강해야지! 해서 공장들을 총가동시켰는데 바로 방해가 시작되더군. 되지 못하게 안방을 차지하고 앉은 녀석들이 생산을 중지하라는 거야! 이만이나 되는 원군이 하루가 멀다 하고 침습하고 있는데도.”
휙, 고개를 저었다.
“강행하자 반란을 꾀하려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시시때때로 금의위의 녀석들이 들어와 감시하고, 방해하고. 생각다 못해 장인들을 불러들여 왕부 안에 공장을 차린 것일세! 황상의 허가가 없는 한 여기까지 들어와 방해할 수는 없으니까! 거위를 키운 것은 그 후가 되네.”
쏘는 듯 눈을 번뜩이며 말을 이었다.
“두 가지 까닭이 있네! 첫째, 우리는 장성이 무너질 경우 왕부를 마지막 보루로 여기서 모두 죽을 생각이야! 하루라도 더 버텨 줘야 후방에서 맞설 채비라도 하지! 도무지 다들 위험성을 몰라. 그때가 되면 저 녀석들은 병사들의 양식이 되어 줄 걸세! 또 하나는 백성들을 위해서일세. 병기 제조 소리는 불안함을 줘. 알고 있어도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차이는 큰 거지. 가까스로 장성이 안정되어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이런 소리가 계속 나면 불안해서 거주하려 하겠느냔 말이야. 내가 잔머리를 쓴 걸세!”
알 듯 모를 듯.
“더 큰 오해의 소지가 있을 듯한데요?”
“있으나 마나 어쩔 수 없어! 어차피 역모를 꾸민다는 소문이 나돈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것저것 가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돼. 당장 필요한 것이 화력이고, 중요한 것이 병사들의 목숨인데 어쩌라고? 짖어라 버려두고 할 일부터 해야지.”
역시 완전히 깡다구였다.
“그 정도로 몽고의 기세가 강한 것입니까?”
“알고 싶으면 이틀만 장성에서 번을 서 보게! 북평이 어떤 곳인지 실감 날 테니!”
힐끗, 떨어져 따라오는 친구들과 장옥, 원기를 본 후 거듭 번뜩이는 눈으로 물어 왔다.
“삼가는 눈치지만 장 시위에게 들은 것이 있을 걸세! 뭐라고 하던가?”
추룡은 신중히 대답했다.
“특별한 말씀 없으셨습니다. 혼인 전에 보고 싶어 부르셨다 하셨고, 왔으니 총사님께 문안 올리라고 하시더군요. 얼마 전 악보의 둘째 소저와 정혼을 하였는데 총사님께서 응원해 주셨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불러들이기 위해 꾀를 내었다는 등 장신에게 불리한 말은 모두 뺐다.
“핫……!”
도연의 입에서 처음으로 웃음이 터졌다. 사실 얼굴 한번 봤다는 것으로 문안까지 하라 할 사람은 없다.
“신중하군! 석년 뵈었던 막 장군과 비슷한 것 같은데, 그냥 솔직히 이야기하지! 내가 부르게 했어! 좀 봤으면 해서. 혹시 사상에 대해 이야기 들었는가?”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추룡은 비로소 생각났다는 듯, 그러나 신중히 대답했다.
“아, 잠깐 이야기하시는 것 같더군요. 연왕 전하께서 부국강병을 원하고 계시고, 이를 위해 사상의 시대를 열고자 하신다고요. 그러나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도연은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주위에 피해가 될 듯한 말들은 모두 삼가는 것이다. 답답해 보여도 최상의 성품이었다. 자신에 대한 일 또한 그리해 줄 것이었으니.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해 줌세! 일단 그대로야. 왕야께서는 기략이 높으신 분일세. 비록 변방에 와 계시지만 늘 부국강병을 생각하시네! 언제건 중앙으로 내려가면 큰일을 해 보시겠노라고 많은 계획을 세우고 계시지. 가장 큰 것이 국방, 치정, 치안, 부국이야. 사상에 기인해 나는 이를 이루기 위해 합당한 큰 동물 넷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네.”
번뜩이는 눈으로 다소 떨어져 오고 있는 전소를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냥 인재人才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보면 되네! 동물이란 표현은 도가나 불가에서 쓰는 것으로 전생의 업을 헤아려 말하는 것이지.”
도연은 매우 기이한 이야기를 했다.
“정신 나간 소리 같겠지만 그냥 들어 두게! 하여 합당한 사람을 찾고 있었던 터인데, 때가 맞아서인지 기연으로 그중 세 마리의 동물은 이미 모였네! 그중 한 사람이 우선 연왕 전하일세. 내 눈이 썩지 않았다면 전하께서는 전생에 병정개미셨네. 종족을 지키고자 끝도 없이 싸웠지. 그리하여 왕가에서 태어났네.”
연왕 주체, 병정개미!
“그리고 나는 여우였네! 약은 머리로 늘 사찰 주위를 돌며 장난을 치고 다녔지! 결과 승려가 되었어.”
도연 여우!
“또한 잠깐 본 적이 있을 것인데 마삼보, 마 태감은 신천옹이었네! 먹이를 찾아 가장 멀리 나는 갈매기였지! 불운하여 태감이 되었으나 때가 되면 중원의 부흥을 위해 세상 끝까지 날아갈 걸세!”
마삼보 갈매기!
도연은 계속 기이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일단 몇 가지가 보일 걸세! 전하는 왕이시고, 나는 책사가 되었으니 힘을 합치면 일단 국방을 살필 수가 있어. 치정에도 보탬이 되겠고! 삼보가 칠해七海로 날아 먹이를 물어 와 부국도 이룰 것일세! 하지만 하나가 비어! 치안이 그것일세. 법을 다루기에 마땅한, 어질면서도 강력한 인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가 비어 있었지. 한데 자네를 보니 되겠더군! 자넨 전생에 수사자였네!”
다시 나온 이야기, 추룡 수사자!
추룡은 멈칫하는 기색이 되었다.
“제가 사자였다는 말씀입니까?”
“틀림없네! 이놈은 늘 점잖게 영역을 지키며 주위를 돌아보면서 한자리에 있지. 포효하지 않아도 주위가 알아서 인정해. 그러다가도 해가 되는 개체가 나타나면 단숨에 물어뜯어 버리지. 그게 자네의 천성이야. 얼핏 듣자니 대리사를 지향한다고 하던데, 이 역시 업과 무관치 않아. 적격자인 셈이지! 해서 자네를 마지막으로 사상을 이루어 볼까 하는 것일세.”
신기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추룡은 계속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하찮은 제가 사자였다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그냥 무관이 되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조차 형편이 되지 않아 남평으로 돌아가게 되었고요. 높으신 분들과 큰일을 도모할 실력도 처지도 못 되니 양해해 주셨으면 싶습니다.”
절대 함부로 휩쓸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역모설이 나도는 터에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길 시에는 실로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자칫하다가는 함께 역모의 누명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보일락 말락, 도연은 묘한 웃음을 머금으며 계속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네! 어쨌건 자네에게 뭘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야. 그냥 그렇다는 것만 알고 있으라는 것일세! 함께 일을 해도 자넨 가장 마지막이 될 것이니 그냥 한자리에 엎드려 있기만 해도 돼! 그래도 조화는 이미 시작되었네! 금릉에서의 만남으로 모두의 운이 바뀌었으니, 천하의 운도 자네로 인해 달라지기 쉬워. 아마 자넨 남평으로 갈 수 없을 걸세.”
도무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자리에 엎드려 있는 사람이 천하의 운을 바꾼다는 게 있을 수나 있는 이야기인지?
하지만 도연은 계속 눈을 번뜩이며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하, 온 만큼 자네는 많은 것을 볼 것이지만 다시 이야기해도 항간에 떠도는 역모설은 진실이 아닐세! 연왕 전하나 우리는 결코 반란 따위를 계획하지 않아. 그러나 야견의 무리가 도를 지나칠 때는……! 우리는 분명히 그냥 있지 않을 걸세! 죽음으로 맞설 것이며 최선을 다해 나는 왕야께 흰 모자를 씌워 드릴 것일세! 여기까지만 기억하고 있어 주면 좋겠네!”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야견이 대신들을 의미하고, 그들이 극한 짓을 해 오면 맞부딪치겠다는 뜻인 것 같았지만 왜 자신에게 이것을 기억하라고 하는 건지?
보다 왕야에게 흰 모자를 씌울 것이라는 말에 가서 추룡은 자신도 모르게 섬뜩함을 느꼈다.
왕王에게 흰白 모자를 씌우면 황皇이 되는 것이다.
죽음으로 조정과 맞서 연왕을 황제로 만들고 말겠다는 이야기인 것.
그야말로 엄청난 이야기였지만 추룡은 모른 척했다.
“아둔하여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리하겠습니다. 어리고 부족한 말학을 귀히 여겨 주시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래도 저래도 삼가는 특징.
도연은 ‘핫!’ 하고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워낙 천품이 그래서 말이지! 아무튼 이야기했으니 이젠 뭐건 알아서 하게! 왔으니 전하를 알현한 후 두루 북평을 보고 가게나. 장부인 만큼 장성도 봐 두는 게 좋을 거고, 특별한 것은 없지만 왕부도 둘러보고.”
견문을 쌓는 것은 좋았다. 그러나 연왕을 만나라는 것은……!
“분에 넘치는 일 같사온데, 뵙지 않으면 안 될까요?”
도연은 고개를 저었다.
“원치 않는 일이겠지만 전하께 이미 말씀 올렸네. 한 젊은이를 봤는데 상相이 매우 좋더라고. 말씀 올리자 왕야께서도 보고 싶다 하셨는데,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닐세. 뵙는다 해도 우리 외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안심해도 좋네! 왕야께서도 별다른 이야기는 하시지 않을 걸세.”
시작부터 끝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장신은 도연이 그에게 같이 일하자는 뜻을 비칠 것같이 이야기했으나 정확하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도무지 무엇 때문에 꾀까지 내어 오게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동료가 될 것을 암시하면서도 기억만 해라, 연왕에게 소개를 했다면서도 인사나 올리고 가라.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으면 인사는 왜 하라는 것인지?
하지만 희한하게도 도연의 이야기는 사실인 것 같았다.
“전하.”
일각 후 추룡은 결국 주체를 만나게 되었다.
사십일 세. 육 척에 가까운 키에 넓은 볼, 우뚝 솟은 코, 번쩍이는 봉안鳳眼에 단정히 기른 수염이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왕자로 태어났다지만 무장의 위엄을 보이는 인물로서 도연을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등줄기가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백두의 청년이 일국의 번왕을 만나는 것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신분 때문이 아니라 지닌 위엄 때문이었다.
만난 장소는 금정전의 뒤에 위치한 내전이었는데 추룡이 인사를 하자 그는 묵직이 모습을 살피며 말문을 열었다.
“반갑다. 도 총사에게 이야기 들었거니와 과연 출중한 모습이로구나. 이름이 추룡이라고?”
크게 심신이 긴장되었으나 추룡은 일단 전신의 힘을 풀었다.
전생이 병정개미였다는 그!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왕이라기보다 무인에 가깝게 느껴지는 기운이 있어 버티면 기력이 상충되어 적의가 전해지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그를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추룡은 최대한으로 말을 줄여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번쩍이는 눈으로 주체는 계속 추룡을 살피며 질문해 왔다.
“부친이 금의위의 대천호였던 막 장군이라 하더구나. 사실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주체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귀가 따갑도록 이야기 들었지만 연이 닿지 않아 만나 보지는 못했다. 그가 위명을 날리던 시기에 나는 어렸거니와, 어떤 장수가 군위 제일의 대명을 얻었던가 했는데, 너를 보니 짐작이 가는구나. 일찍 하야한 것으로 아는데, 무고하시더냐?”
“그렇사옵니다.”
“핫……!”
계속 그렇다는 말만 하자 우스웠던지 주체는 크게 대소를 한번 터뜨렸다.
“도 총사가 사자라 하더구나. 그대로 기도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설마 사자가 개미에게 겁을 먹은 것도 아닐 것이고, 내가 싫은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