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77화 (77/150)

# 77

엉뚱한 사건 (2)

쉽게 이해가 갔다.

“하지만 더 정확히 이것은 황상과 대신들과의 대립일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황상께는 적이 많습니다. 파벌 싸움으로 많은 동료들을 숙청하셨고, 백련교의 반발을 우려해 팔십만에 달하는 백성들까지 참했으니까요. 이를 행하기 위해 금의위를 창설하셨고, 믿음이 가는 인물들을 각 부의 대신으로 삼아 감시 정책을 펼치셨지요.”

명의 초기.

“한데 문제는 이후가 됩니다. 그것으로 우여곡절 끝에 집권의 초석은 다져졌지만 대신들의 힘이 너무 커져 버린 것입니다. 연왕 전하의 좌천이 예가 됩니다. 황상께서는 전하를 후계로 생각하셨으나 대신들에 의해 무산되었을 정도이니.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지요. 의지할 것이 그들뿐이었으니까요.”

홍무제와 조정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해서 중기中期에 변화를 시도하신 흔적이 보입니다. 진정으로 믿을 것은 피붙이뿐이다 여겨 적·서자님들을 왕작에 봉위, 도처의 번왕藩王으로 삼으시고, 대신들을 견제할 힘을 키우려 하신 눈치입니다. 북평의 군력도 그런 일맥인데, 보내실 때 이런 어명을 내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강군을 키워 북침의 우려를 없애라고요. 다른 왕자님들께도 같은 명령을 내리신 것으로 압니다. 도처의 왕부를 맡기며 군력을 키워 지역을 안정시키라고요.”

“친족 정치로 전환하려 함으로 알력이 시작된 것인가요?”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대신들 역시 황상의 저의를 모르지 않겠지요. 번왕들의 힘이 커지면 자신들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것도. 해서 안전을 도모해 윤문 전하를 태손으로 올리고 중심으로 왕부들을 누르려 해 온 것으로 압니다. 그중 가장 막강한 세가 구축된 곳이 북평왕부입니다.”

기질이 껄끄러워 좌천시켰으나 힘을 키운 왕자에, 잡은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대신들, 그들의 세를 꺾으려는 황제.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발생하기도 했지요. 그로 인해 마침내 번왕들의 힘은 국정을 수행할 정도로 커진 셈입니다만, 정작 황상께서 병석에 눕게 되셨다는 것입니다. 운신조차 하기 어려운 것으로 아는데 이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뜻을 펼 수 없게 되셨고, 결과로 번왕들과 대신들, 양자의 대결 구도가 되어 상황만 악화된 것입니다. 두 개의 거대 세력이 맞서 있고, 수장이 연왕 전하처럼 되어 있는 것이지요. 중간에 황상과 태손이신 윤문 전하가 있고요. 굉장히 복잡한 정국인 셈입니다.”

그대로 복잡했다. 누가 봐도 대혼란이 일어날 징후가 엿보이는 그런.

추룡은 비로소 조정과 황실이 돌아가는 사정을 모두 파악했다. 막여사가 왜 자신을 찾아 나섰는가까지.

“어떻게든 일이 일어나고 말겠군요. 대신들을 견제하기 위해 번왕들은 힘을 키웠고, 맞서 대신들은 자신들이 봉위시킨 윤문 전하를 중심으로 뭉쳐 이를 경계하고 있으니. 회오리는 황상의 사후死後가 되겠군요. 붕어하시고 나면 윤문 전하께서 황제가 되실 것이고 궁실의 세는 완전히 대신들에게 넘어갈 것이니. 윤문 전하는 어떤 분이십니까?”

악벽강은 우려의 기색을 지었다.

“온후한 분이라고 들었는데, 후풍을 막아 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 고사하고 연치가 너무 적습니다. 열 살에 태손이 되셨고, 이제야 열다섯이니까요. 해내시려면 번왕들과 대신들을 모두 강하게 눌러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실 수 있을까 싶은 의혹이 듭니다.”

열다섯 살의 황태손. 대신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 기질까지 약하다면 기대할 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추룡은 고개를 저었다.

“힘들 것 같군요. 지금 일만 봐도 이미 정면 대결이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대놓고 북평왕부를 거론하며 행인을 잡아들인다는 것은 선전포고나 같은 것인데, 전에 없었던 일이라면 궁실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황상의 환후가 정사를 돌보지 못하실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뜻으로 대신들이 집권하기 시작했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어쨌건 우리야 상관없습니다. 권문세족들의 아귀다툼이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니 지지든 볶든 알아서 하라 해야겠지요.”

휩쓸려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보다 문제는 장 시위님이신데, 이런 시국에 투옥되셨다 하니 갈피를 못 잡겠군요. 어느 쪽에 투옥되신 것입니까? 왕부입니까, 대신들 쪽입니까?”

악벽강 역시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모르고 있습니다. 집사執事께서 보내온 기별을 받은 것인데, 그냥 누명을 쓰고 투옥되셨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문제가 생기자 서둘러 연락한 것 같은데, 둘 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형부께서 금릉으로 오셨던 것은 호출령에 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새 품직을 받게 되실 것이라 하더군요. 대신들의 청에 따라 왕부에 불리한 임무를 받고 가셨다면 왕부 쪽에 투옥되셨을 수 있고, 거부하셨다면 도위부에 투옥당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가 봐야 압니다.”

어느 쪽이 되든 도움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도우려면 권력이 있어야 하는데 백두의 무사가 무슨 힘이 있는가.

문제가 생겼다 하니 무작정 가고 있을 뿐.

“진상부터 알아보지요. 직접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고, 아니라도 장인어른께서 조치하실 때까지 저변에서 지켜 드리는 것으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두두두……! 두 사람은 다시 말을 치달리기 시작했다.

갈수록 기온이 더 내려가고 있었다.

“서라! 어디로 가는 것이냐?”

친구들 역시 심한 검문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친구들은 추룡보다 훨씬 잘 대처하고 있었다.

“청도靑島에 가는 길입니다.”

“안휘성에 사는 녀석들이 청도에는 왜?”

“항주 금삼 상회 진 대관인의 심부름입니다. 고려에서 주문한 홍삼이 도착할 것이라더군요. 물품을 받아 오라는 분부셨습니다.”

발해만을 끼고 고려와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지역.

“상단商團의 수하들이라는 소린데, 그렇다는 놈들의 복장이 다 제각각이란 말이냐?”

“알다시피 고가高價의 물품 아니겠습니까? 상단은 늘 도둑들의 표적이 되어 있는데 표시 내어 좋을 일이 뭐겠습니까.”

“속이고 다른 곳으로 빠지려는 것은 아니겠지?”

“다른 곳이라면요?”

“북평 쪽 말이다!”

친구들은 바로 손사래를 쳤다.

“역모설이 도는 곳 아닙니까? 거길 왜 갑니까? 좋을 일이 뭐 있다고요? 행수께서도 얼씬 말라 명한 곳입니다.”

“통通!”

늘 그랬지만 저변에는 전소의 재치가 있었다.

“히히히……! 문제없군! 아직까지는 청도가 먹히지만 덕주쯤 가면 안 될 텐데 뭐라고 할까?”

“산서성山西省으로 간다고 해야지, 뭐. 직으로 올라가면 태행산맥도 있고 길이 험하니까 돌아서 간다고. 하북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북평을 거론해서 안 돼. 연왕이 대신들과 등을 돌리고 있는 만큼 세력권 밖에서는 불리해.”

“결국은 충돌할 것 같은데 부딪치면 누가 이길까?”

전소는 차분히 염두를 굴렸다.

“정확히 연왕 하나만 본다면 대신들이 이겨. 아무리 북평군이 강하다 해도 조정에는 백칠십만 금군이 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어찌 될지 몰라. 그 백칠십만이 금릉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도처에 분포되어 있거든. 더욱이 상당수가 번왕들의 휘하야. 번왕들이 연왕을 돕고 나서면 문제가 심각해지지. 한데 통수권을 지닌 게 또 금의위라서 번왕들 역시 멋대로 군사를 움직이지는 못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희한한 정국이지. 이런 상태를 만든 게 황상이야. 피를 너무 많이 흘린 데다가 의심이 많아서.”

“왕부들이 패한다는 거지?”

“대신들도 삼가야 해. 황상이 너무 많은 피를 흘림으로써 백성들이 조정의 편은 아니니까. 금의위가 앞장섰잖아. 공생 정책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 거지.”

“공생은 이미 틀린 것 같은데?”

“틀리거나 말거나 알아서들 하라고 해. 우리와는 상관없으니. 피 터지게 싸우다 보면 하나가 수그러지겠지.”

생각은 추룡과 같았다.

금金밥그릇도 부족해서 아귀다툼하는 권력층의 싸움에 신경 쓸 일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달.

북평에 당도해서는 생각이 다소 달라졌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장성을 보러 갑니다.”

“호패를 보니 집이 남평 같은데 그 멀리서 장성을 왜?”

“견문도 쌓을 겸, 중원의 끝이니 보고 싶었습니다. 가장 위험한 지역이라 들었고, 꿈이 무관인 터라 더 확인해 두고 싶었습니다.”

“사실 중원의 남자라면 봐 둬야 할 곳이지. 꿈이 무관이라면 더욱. 시험은 봤나?”

“지난봄 시기를 놓쳤습니다. 명년에 치를 생각입니다.”

“그럴 생각이라면 기다릴 필요 없네. 여긴 언제나 시험을 볼 수 있으니까. 관심이 있으면 승덕군부承德軍部로 가 봐. 실력이 되면 백호소까지는 언제든 될 수 있으니.”

“들러 보겠습니다.”

일단 하북으로 들어서니 검문검색은 약화되었고, 관문을 지키는 병사들도 호의적이었다. 하북이 북평군의 세력권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한데 정작 문제는 북평성으로 들어가서부터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했던 일로, 우선 북평은 컸다.

싸움이 끊이지 않는 지역에 사람들도 살지 않는다고 하여 황폐한 줄로만 알았던 곳인데, 막상 도착해 보니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호되게 춥긴 했지만 사대문 안 도처에 고루거각, 사찰, 장원, 점포 들이 즐비한 크고 번화한 도시였던 것! 금릉만큼이나 큰 곳이었다.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데요? 썰렁한 곳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대도시 아닙니까?”

예상치 못한 정경에 추룡이 눈을 끔벅거리자, 악벽강이 웃으며 대답했다.

“최북단이지만 변방이나 촌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원의 대도大都였던 곳이니까요. 그랬던 곳을 평정시켰다 하여 북평이라 이름 지은 것입니다. 따라서 원래 번화했고, 전쟁 중에 붕괴되었지만 복구된 것입니다. 오래 걸리긴 했지요. 되찾으려고 원 역시 끊임없이 공격해 왔고, 사람들이 피신해 폐허나 마찬가지였던 곳이라 들었으니까요.”

원나라의 도읍이었던 곳.

“복구가 시작된 것은 십 년 전, 연왕께서 지난 원의 승상인 내아불화乃兒不花가 이끄는 이만의 대군을 물리치고 장성의 경계를 강화시킨 후였다 들었습니다. 오긴 처음이지만 생각보다 훨씬 크군요.”

추위에 웅크리고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고, 표정들도 어둡지 않았다.

“뜻밖의 일인데……!”

이래저래 추룡은 계속 촌내기일 수밖에 없었다. 가는 곳마다 남평보다 작은 곳이 없었던 것이다.

“왕부정王府井 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남쪽 외곽에 사택이 있다 들었는데, 언니를 만나 상황부터 알아보기로 하지요.”

두 사람은 왕부정을 찾았고, 곧 거리의 남쪽 언저리에 있는 주루로 들어갔다. 지명이 그러하듯 왕부정은 북평의 복판에 위치한 거리로서 중앙에 북평왕부가 있었고, 주변에 관료들이 지내는 장원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아 북평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기도 했다.

주루 안은 사람들이 꽤 붐볐고, 자리를 잡자 두 사람은 곧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점원에게 물었다.

“뜨끈하게 속이 풀릴 수 있는 요리를 준비해 주십시오. 그리고 집을 찾고 있는데 혹시 주위의 장원들에 대해 잘 알고 계신지요?”

점원은 쉽게 대답했다.

“큰 장원이라면 압니다. 대부분 왕부 나리들의 장원이고 요리를 배달하기도 하니까요. 어느 댁을 찾으시는가요?”

추룡은 더욱 목소리를 낮췄다.

“얼마 전까지 내전시위로 계셨던 장신, 장 시위님의 장원을 찾는 중입니다. 집사님을 뵈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아, 장 시위님 댁!”

순간 ‘깜짝!’ 할 일이 생겼다.

장신이 체포, 투옥되었다 하여 혹여 서투르게 찾았다가는 문제가 될 듯해 목소리까지 낮췄는데, 말하자마자 점원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정도로 큰 목소리로 아는 내색을 한 것이었다.

더욱이 대답이 또한 걸작이었다.

“잘 압니다!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보화상회라는 큰 만물상이 나오는데, 옆길로 한 마장가량 들어가다 보면 용호龍虎라는 글을 붙인 대문이 있는 큰 장원이 나와요. 바로 그 댁입니다. 경사가 생겨 얼마 전에도 잔치를 하셨고, 요즘도 수시로 요리들을 주문하시죠.”

추룡과 악벽강은 함께 얼떨떨해졌다. 미루어 장신의 집안 사정을 아는 눈치 같았는데 사람이 잡혀간 터에 경사라니?

의아하여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물었다.

“잔치라면……?”

점원은 웃으며 계속 아는 것을 말했다.

“직분이 오르셨습니다! 오랫동안 왕부시위를 역임하시다가 얼마 전 북평도사사北平都司使로 승격하셨지요. 품직은 같지만 시위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수년 내에 도지휘사사에 오를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황당한 대답이 나온 것이었다. 새 품직을 받기 위해 금릉으로 왔었다는 이야기는 악벽강에게 들었으나 도사사라니? 행정을 살피는 감사監事의 신분으로서 금의위 산하의 직분이었다.

바꾸어 말해 지난 신분이 왕부의 살림을 꾸리던 내전시위였다면 반대의 신분이 된 것으로 왕부의 행정을 감시하는 직책이 되었다 봐야 하는 것.

어이없다 싶은 심정이 되어 추룡은 눈을 끔벅거렸다.

“도사都司……로 승격되셨군요. 그 밖에 다른 일은 없으신가요? 근래 모습을 뵙기 어렵다거나 하는.”

최대한 말을 돌려 물었는데, 점원은 계속 웃으며 대답했다.

“그야 뭐, 뵙기가 쉽지는 않죠. 높으신 신분이니. 등·하청 하실 때 간혹 지나시는 모습이나 볼까. 열흘 전에 등청하시는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다.”

열흘 전.

추룡은 거듭 눈을 끔벅거렸다. 사실이라면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장신이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다 한 게 한 달 전이었다. 한데 열흘 전에 등청하는 모습을 봤다니?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악벽강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기별받았습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었는데, 도사가 되셨다는 이야기조차 초문입니다.”

여간해서 당혹스러워하거나 하는 추룡이 아니었지만 이마에서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기막힌 심정이 되었다. 설마 집사라는 사람이 헛된 연락을 했을 리 없고 점원이 허튼소리를 할 리도 없으니, 절충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기 쉬웠다.

직함이 바뀌면서 뭔가 착오가 생겨 오해로 잠깐 압송되었다가 바로 풀려났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당황한 집사가 큰일이 났는가 보다 싶어 허둥지둥 바로 연락을 취했기 쉽다는 것. 사실이라면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출혈이 너무 크다. 엄동설한에 풍찬노숙을 하며 자그마치 휘주에서 북평까지 일 개월을 달려온 것이었다. 더욱이 도착해 보니 이월 중순, 빨리 돌아가도 삼월 중순이니 이래도 저래도 친구의 혼인식은 못 보게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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