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엉뚱한 사건 (1)
달, 별, 어둠.
휘이이이……!
머나먼 북평 길.
출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고초가 시작되었다.
“춥지 않습니까, 악 매?”
“괜찮습니다. 견딜 만한걸요.”
수만 리나 되는 길에 준비가 충분치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아니,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게 문제인 것 같았다.
휘주에서 북평이라면 안휘성을 가로질러 합비를 거쳐 산동, 하북성의 최북단까지 올라가야 한다.
자그마치 세 개의 성省을 종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거리를 움직여 본 사람은 드물거니와, 악벽강 역시 측근 성들에나 들러 봤을 정도지 안휘성의 끝까지 가 본 적은 없었다.
이렇다 보니 북로北路가 어디서 어떻게 갈라지고 어디에 마을이 있으며 어디까지 간 후 쉬어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의지하는 것은 지도였지만 그조차 대충이었다. 제대로 된 전국全國 지도地圖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있다 해도 지형, 거리 등이 다 중구난방이었다.
국지의 기밀을 누설한다는 등의 죄명으로 상세 지도조차 만들지 못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가진 것이라고는 거리조차 제대로 표시 안 된 엉성한 지도였고, 십중팔구 수소문에 의지했다.
그래도 파악이 제대로 안 되므로 차질이 생기면 노숙露宿까지 하는 불상사가 빚어지고 있었던 것인데 귓불이 얼어붙는 정월에 노숙을 한다는 것은 실로 곤고困苦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모포를 준비했지만 한기寒氣를 피하기 위해 몸에 두르는 정도일 뿐, 얼음 바닥에 눕거나 할 수도 없었고.
합비를 지나면서부터 시작된 이 어려움은 지속적으로 생겼고, 악벽강과 추룡은 발왕산?王山의 한 귀퉁이에서 또 모닥불을 피우고 모포를 몸에 두른 채 나란히 웅크리고 앉았다.
씽씽대는 칼날 같은 바람, 흔들리는 모닥불. 참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도 기대앉은 두 사람의 입가에는 웃음이 돌았다. 혼자가 아닌 둘인 것이다.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것 같군요. 그리 멀리 오지 않았는데도 피부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북쪽은 원래 그렇다고 합니다. 언덕 하나 차이로 기온이 달라진다고요. 가가에게 정말 죄스럽습니다. 저로 인해 이런 고생을 하시니.”
추룡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악 매와 저 사이에 그런 말은 맞지 않습니다. 악 매의 일이 제 일이고 제 일이 악 매의 일인걸요. 장 시위님 역시 남이 아닙니다. 동서 형님이 되실 분이고, 금릉에서 뵈었을 때 여간 좋게 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신세를 갚겠다고 했는데 모쪼록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악벽강은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전 소협의 혼인만 기다리고 계셨는데 그조차 참석지 못하게 되시고……! 정말 속이 상해 죽겠습니다.”
“진짜 괜찮데도요? 더 좋은 것은 다시 악 매와 함께 여행한다는 것입니다. 괜한 말이 아니라 악 매와 함께 있으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인데, 추위도 별로 느껴지지 않고 허기도 느껴지지 않고, 더 필요한 게 없다 여겨질 정도입니다. 아무것도 신경 쓰이는 게 없어요.”
그것이 사랑이었다.
“천하가 이렇게 재미있으니 기회가 되면 더 많은 곳을 여행해 보고도 싶습니다. 운남을 비롯하여 사천, 감숙, 가능하면 타클라마칸까지요. 물론 악 매와 함께 말입니다.”
대화하고 있으면 언제나 행복해지고 마음이 훈훈해졌다. 상대를 배려해 말하는 추룡의 어법 자체가 그런 것이었다.
무게감으로 나이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구태여 사랑한다는 말을 않아도 절로 사랑이 확신될 정도다.
“저 복 받은 여자인 것이죠?”
“함께 받은 것이지요.”
어느 특정인들에게만 국한해 하는 어법도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했고 하물며 동물에게도 그랬다.
“적낭자야, 미안하다. 마을이 나타나면 최고의 여물을 먹게 해 주마.”
노숙을 할 때나 휴식을 취할 때는 언제나 적낭자의 목을 두드려 주며 치하하고, 자신보다 더 먼저 적낭자에게 모포를 둘러 주는 등 배려가 상당하다.
힝……!
대화는 통하지 않지만 말이라고 이런 주인을 모를 리 없었고, 추룡이 가까이 올 때마다 적낭자는 좋다고 얼굴을 추룡에게 비볐다. 침에 옷이 얼룩이 져도 아랑곳없다.
“좋은 주인을 만나 저 이상으로 말도 행복하겠습니다. 재갈도 안 물리신 것 같은데 한눈도 안 팔고 신통하군요.”
그대로 적낭자가 재갈을 물지 않은 지도 꽤 오래였다. 말 도둑들에게 당한 후로 적낭자는 추룡 외에는 아무도 태우지 않으려 했고 그만을 주인으로 여기고 있어, 재갈을 물리지 않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추룡의 뜻이 아닌 한 적낭자는 그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 주인을 알아본다 해도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 말이라 재갈을 채우지 않으면 제멋대로 움직이기 일쑤인데 그러는 법이 없는 것이다.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것을 좋아할 리 없음에도 희한하다 싶게 추룡이라 하면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추룡은 계속 툭툭, 적낭자의 목을 두드려 주며 미소 지었다.
“똑똑하고 온순합니다. 마치 전생에 사람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도 그냥 가족 같습니다. 남평으로 돌아가면 자유롭게 초지에 풀어 놓을 생각입니다.”
“그러다 남의 농작물이라도 해치면요?”
“가르쳐야죠. 논밭으로 들어가거나 작물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그 정도로 지능이 높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안 되면 제가 물어 주죠, 뭐. 까짓것 얼마나 되려고요.”
“하하……!”
한마디로 만무방萬無妨이었다. 속도 넓고 통도 크고.
자신이 적낭자라도 떨어지지 않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적낭자로 인해 속 썩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햐……! 이것, 분명히 이 길로 간 게 맞을 것인데,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밤낮없이 쫓아도 보일 생각을 않으니.”
“막 형도 똑같이 밤낮없이 가고 있다고 봐야지. 그럴 경우라면 죽어도 못 따라가. 적낭자가 어디 여간 잘 달리는 말이라야 말이지. 소저께서 타신 말도 악충보 최고의 말이야.”
“따라잡는 것 포기하고 북평에서 만나는 것으로 해야지.”
흑, 청, 황, 회, 백.
바로 추룡을 뒤쫓아 악충보를 나선 전소와 친구들이었다.
이틀 차이로 악충보를 출발해 밤낮없이 치달리고 있었지만 도무지 추룡의 꼬리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소저와 함께인데 잠도 안 자나?”
“잉?”
“말투가 좀 오묘한 것 같은데 무슨 뜻이야? 소저와 함께인데 안 자냐니?”
“하하하……! 확실히 오묘하군! 본심을 말해 봐! 소저와 함께 자야 한다는 거야, 뭐야?”
“왜 갑자기 색왕녀 별명이 확 떠오르지?”
“하하하하……!”
떠꺼머리 친구들. 악벽강의 별명을 안주 삼아 열심히 웃으며 뒤쫓고 있었다.
힘은 들었지만 아직까지는 분명히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서주통문徐州通門.
산동성에 들어서면서부터 적잖은 문제가 생겼다.
“정확히 대라! 복건 남평의 녀석이 이유 없이 북평으로 갈 리가 없는데 정확한 사유가 무어냐!”
통문이란 유사시에 대비해 주州를 나누는 경계 및 성省을 가르는 주요 지역에 방벽防壁을 쌓고 관문을 만들어 행인들을 검문검색 하는 검문소를 일컫는 것이었는데, 산동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이곳을 통과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다.
죄를 짓고 도망치는 범죄자를 색출하고 금지된 물품을 밀매하는 자들을 잡기 위해 하는 것인 만큼 신분이 명확하고 수상한 물건을 소지하지 않았다 싶으면 바로 통과시키기 마련인데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북평으로 간다 하니 죄인 다루듯 질문을 퍼붓고 있었던 것.
예기치 않은 일이라 추룡은 얼떨떨한 심정으로, 북평행을 문제 삼는 것 같아 말을 돌려 대답했다.
“장성長城을 보러 가는 길입니다. 남평에서 북평까지는 거의 중원의 끝에서 끝이 아니겠습니까? 견문도 쌓을 겸 경험 삼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만만치 않았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군! 할 일이 없어서 이 겨울에 그런 경험을 쌓는다는 말이냐? 솔직히 불어라! 필경 북평에 다른 용무가 있지? 행색도 그렇고 보통 녀석이 아닌 듯한데, 연왕부燕王府로 가는 길이지?”
귀신이다 싶었지만 말을 바꾸면 더 수상하게 여길 수 있어 추룡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물론 가는 만큼 왕부도 구경할 것이지만 장성을 보러 가는 게 틀림없습니다.”
심하다 해도 이쯤하면 보내 줘야만 옳았다. 하지만 병사들은 도통 보내 줄 생각을 않았다. 오히려 눈을 번쩍이며 추룡의 아래위를 훑었다.
“이놈 수상쩍군! 아무리 경험을 쌓기 위해서 간다고 해도 그렇지, 그런 의향이라면 호시절에 가는 게 정상인데 엄동설한에 무슨!”
“신경 쓰지 말고 체포해! 문초해 보면 알 테니.”
체포!
그야말로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이 없어도 체포되면 오래간다.
관아로 압송되고, 취조를 받고, 죄가 없음이 밝혀져도 체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고의춤까지 다 뒤져 옭아 넣으려 하는 게 이들의 속성이기 때문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 추룡은 강수로 나갔다.
“터무니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관문마다 도위부의 분이 한 분 나와 계신다 들었습니다. 좀 뵙게 해 주십시오.”
금의위를 일컫는 것이다.
관병들의 얼굴에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지휘사를 왜? 무슨 까닭으로?”
추룡은 계속 강하게 나갔다.
“말씀드리면 믿어 주실 것이니까요. 불초의 부친께서도 도위부의 대천호셨습니다. 도무지 왜 이러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관병들의 얼굴에 ‘헉!’ 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무슨……? 아버지……! 아니, 부친께서 도위부의 대천호셨다고?”
켕기지 않을 수 없었다. 눈에 벗어나면 정승의 목도 홍시처럼 따 내는 게 금의위였는데, 대천호라 하면 대한장군이다.
은퇴했다 해도 인맥이 막강한 만큼 비위를 거슬렀다가는 간단히 목이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겁을 먹는 모습을 보며 추룡은 계속 강하게 나갔다.
“틀림없습니다. 막 장군님이라 하면 알아들으실 것입니다. 불러 주십시오.”
비로소 관병들의 기세가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저만치에서 듣고 있던 다른 관병 하나가 눈치 빠르게 다가와 포권을 취해 보였다.
“헛헛……! 동료들이 오해를 한 것 같군요. 그렇다면 아시겠지만 연왕부의 눈치가 워낙 심상찮아서……! 상부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렸습니다. 가는 자들을 차단하고 미심쩍으면 압송하라고요. 그래서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양해 바라겠소이다.”
추룡도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남자답게 겨울에 장성을 봐야겠다 싶어 가는 길입니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겠는데,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심하게 검문을 하는 것인가요?”
관병들은 힐끗 서로의 얼굴을 본 후 목소리를 낮췄다.
“거병설擧兵說이 나돌고 있습니다. 진위를 파악하는 중입니다.”
“거병……?”
순간, 추룡은 자신도 크게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장난도 아닌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기실 권력이 큰 권문세족에게는 언제나 구설수가 따랐고, 드물지 않게 역모설이 나돌 때도 있었다. 그것만 해도 체포되어 혐의가 풀릴 때까지 문초를 받게 마련이었는데, 거병이라 하면 그조차 넘어선 단계였다. 역모를 꾸민 것은 기정사실이고, 반란마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뜻.
황당하다 싶은 심정이 되었다.
“그렇다면 검문이 아니라 진압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관병들은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한데 정황 판단이 잘되지 않는가 봅니다. 역모설이 돈 지는 오래됐지만 증거가 없고, 병력을 증강시키고 있어도 진의가 불분명해서……! 그래서 더 왕래하는 자들을 잡아 문초하라는 것일 것입니다.”
추룡은 더 황당하다 싶은 느낌이 되었다.
그렇다면 추론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없는 죄를 캐내려 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는 것.
어이없다 싶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랬었군요. 하지만 불초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정말 역모에 거병이라면 앞장서서라도 막아야겠지요. 아무튼 도위부의 분이 오시면 신분이 증명될 것이니 뵙게 해 주십시오.”
관병들은 우물쭈물 웃음으로 넘겼다.
“구태여 그럴 필요 있겠습니까. 닦달한 것도 공자의 기도가 범상치 않아서 그런 것 같사온데, 대천호님의 자제시라니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범상치 않을수록 더 검색이 심합니다. 옆의 소저께서는 어찌 되는 분이신지요?”
“정혼한 사이입니다. 승선원 통판通判님의 따님이지요.”
정오품, 유사시에 대비한 신분이었지만 이래저래 관병들이 집적거릴 신분이 아니었다.
“결례 많았습니다. 마음 푸시고 다녀오십시오.”
또한 만만한 기도를 지닌 악벽강이 아닌 만큼 관병들은 힐끗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통과.
처음인 일이라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하! 자칫했으면 체포될 뻔했습니다. 이런 일은 듣기도 처음인데, 북평으로 간다는 것만 해도 죄가 되는 세상인가요?”
악벽강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저 역시 뜻밖입니다. 소문은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이해가 안 갈 정도입니다.”
추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안 갈 정도가 아니라 상식까지 넘은 것 같습니다. 대놓고 사람을 잡아들일 정도면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거병설에 힘이 실릴 근거 같은 것은 있나요?”
악벽강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금시초문입니다. 있다면 병력을 늘리고 있다는 것과 황상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 때문이겠죠. 아시겠지만 황상께서는 스물다섯 명의 적·서자를 슬하에 두셨는데 연왕 전하께서는 그중에서도 황상의 신임을 가장 크게 받는 분이십니다. 맏이이신 태자 전하께서 돌아가신 후 후위를 이으실 뻔했는데,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지요. 강직한 성격으로 타협을 모른다고 하더군요. 이런 분이 황위에 오르면 아무래도 힘이 들고 불이익이 많을 것이라 대신들이 밀어내었다 합니다.”
“장 시위님의 말씀인가요?”
“형부의 말씀도 그렇고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황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래서 북평으로 좌천되어 가신 것입니다. 몽고와 대치해 늘 싸움이 일어나는 위험한 곳이라 거주하는 사람조차 없는 곳으로요. 그러나 연왕 전하께서 안정시키셨죠. 도처의 인재들을 불러 강군을 키우고 국경을 튼튼히 함으로 사람들도 모여들고, 그로 인해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는 소문이더군요.”
“정쟁政爭이 마침내 거병설로까지 발전한 것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권력의 속성이 ‘한번 쓰러뜨린 사람은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한다.’인데 최악인 곳으로 좌천시켰음에도 강성함을 이루셨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좌천시킨 자들이 더욱 경계하고 모함하는 것으로 압니다. 혹여 돌아오시거나 하면 크게 당할 것이니 어떻게든 경질시키려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