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독각귀獨角鬼 (2)
높아질수록 무게로 인해 아래에서 버티는 사람은 허리가 주저앉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했지만 무예로 단련된 강인한 체력으로 순욱은 이를 악물고 잘 버텨 냈다.
높이가 되었다 싶자 마지막으로 추룡은 번개같이 이인교를 타고 발 디딜 곳이 있는 십이 장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또 위험천만한 직벽 타기! 목숨을 걸어 놓고 얼어붙은 빙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참 많은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런 추룡을 보며 친구들 등 모든 사람들의 눈에 거듭 경이의 빛이 떠올랐다. 하나에서 열, 실로 쉽게 생각할 청년이 아니었던 것이다.
턱, 턱!
그런 속에 비지땀을 흘리며 추룡은 결국 좌측 직벽까지 넘어섰다. 실족할 뻔한 것도 여러 번, 손톱이 찢어져 손끝에 피가 낭자할 정도.
그러나 내색치 않았고, 밧줄이 날아오자 다시 그것을 내려뜨려 일행을 하나하나 끌어 올렸으며, 곧 이 차 행동을 개시했다.
신경을 곤두세운 채 곡구 쪽으로 다가가 다시 경계를 살피기 시작한 것이었다.
멀리에서 진행한 일이라 번을 서는 자들은 아무 눈치도 채지 못한 듯했고, 상태를 살핀 추룡은 곧 일행을 나눠 소리 없이 그들의 뒤에 매복케 한 다음 건너 쪽을 향해 휙, 돌멩이를 하나 집어 던졌다.
퍼석……!
“하아아압!”
촤아아악!
“흡! 웨…… 웬 녀석들?”
찰나 매복했던 일행은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터-!”
콰차차창!
“크아아악!”
혼신지력을 다해 놈들이 번을 선 곳으로 치달려 한꺼번에 급공을 퍼부은 것이었다.
이런 밤중에 깎아지른 직벽 위로 누군가가 올라와 급공을 퍼부어 오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한 적당들은 당황하여 대응조차 제대로 못 하고 하나씩 거꾸러졌다. 무위에서 차이가 났고, 좌우, 합쳐서 열 곳에 두 명씩 총 마흔 명, 수효에서도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한꺼번에 들이침으로 불화살 신호 같은 것을 할 여가 역시 없었다.
“크으으……!”
쿵-!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피를 뿜으며 쓰러짐과 함께, 손짓으로 건너의 동료들에게 신호를 한 일행은 마침내 안쪽으로 진입해 가기 시작했다. 계곡 위도 거칠기는 마찬가지로, 곳곳이 끊겨 있는 등 미로처럼 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안으로 이어져 있었고, 도착하자 과연 곽문의 이야기대로 직벽이 비스듬히 누운 끝에 상당한 분지가 나왔다.
진입해 온 곳과 마찬가지로 좌우는 병풍으로 둘러쳐진 듯한 바위 벼랑으로 되어 있었고, 건너편 쪽에 가파른 산봉우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천험의 요새 맞군.’
추룡이 이마의 땀을 닦는 사이 곽문이 바닥을 가리키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큰 고비를 넘겼군. 번을 서는 놈들의 발자국이 있네. 따라가면 산채가 나올 걸세.”
눈 바닥에는 과연 경비를 서러 온 자들이 오간 흔적인 듯한 발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조심해서 가 보기로 하지요.”
예상대로 발자국은 건너의 숲, 가파른 산기슭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리고 삼분의 일가량! 중턱으로 올라가자 마침내 적당들의 산채인 듯한 곳이 나타났다.
숲으로 둘러싸인 지형에 오 장 높이의 목책木柵이 있었고, 가운데에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문 안쪽 좌우에 높은 망루가 있었고, 또한 적당들이 번을 서고 있는 게 보였다.
“허술한 곳을 찾아 한 번 더 이인교를 사용토록 하지요.”
실로 유용한 인간 사다리.
“곡예단이 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그걸 싸움에 응용하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군.”
긴장한 속에서도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비쳤다. 들어오며 제거한 자들이 마흔. 이백이라 해도 잠들어 있을 것이니 급습으로 소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까지 침투해 오는 것이 더 문제였던 것!
다시 작전이 시작되었다.
숲에 의지해 몸을 감춰 가며 목책을 돌다 보니 망루 사이가 넓은 곳이 눈에 띄었고, 일행은 소리 없이 목책 아래로 접근해 다시 이인교를 만들었다.
오 장 높이가 장난이 아니지만 의지할 것이 없어도 이인교를 쓰니 뛰어넘기가 완전히 여반장이다.
먼저 넘어간 사람들이 밧줄을 넘겨 쳐 일행은 삽시간에 산채 속으로 침투했고, 살펴보니 안은 똑같이 나무들이 자라 있는 숲인 상태, 여기저기 통나무로 된 숙사들이 있는 게 보였다.
계곡 경비와 목책을 믿어서인지 숙사를 지키는 자들은 없어 보였다.
“어찌해 볼까? 망루에 있는 놈들도 꽤 되는 것 같다. 역시 숙사부터 쳐야겠지?”
어느새 추룡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숙사부터 치는 게 유리합니다. 문제는 왕평인데 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라. 어느 숙사에 있는지가 문제군요.”
“설마 수괴란 놈이 달아날까?”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차피 여러 무리가 모였다 들었고, 전술에 능한 자인 만큼 적이 여기까지 들어왔을 때는 위험하다는 것을 바로 직감할 테니까요.”
침착히 염두를 굴린 후 말을 이었다.
“요령을 한번 부려 보지요. 조를 나눠 숙사들을 덮칠 준비를 해 주십시오. 번을 서는 자를 하나 유인해 보겠습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하면 바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잠잠하면 잠시만 대기해 주시고.”
“그리하지.”
다시 행동을 개시해 추룡과 일행은 대담하게 적지 안쪽에서 망루를 살피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행은 셋으로 나눠 곧 제일 큰 숙사 세 곳의 옆에 붙어 매복했고, 추룡은 경계를 피해 상당수 떨어진 망루가 있는 측면 쪽 숲으로 가 작은 나무를 하나 힘줘 흔들었다.
쏴아……!
“-!”
그러자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와 가지에 쌓여 있던 눈이 떨어져 내리며 소리를 내었고, 번을 서던 자들이 이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안쪽에서 소리가 난 것 같은데 들었나?”
“나무에 쌓인 눈이 떨어지는 소리 같던데 흔한 일 아닌가?”
쌓인 무게로 처져 있던 가지에서 눈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예는 드물지 않았다.
“그런 정도가 아닌 것 같던데……?”
“아니면? 산채 안인데 뭔가 문제라도 있단 소리야?”
특별히 무언가를 의심하기 어려운 상황. 의심했던 자도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시선을 목책 밖으로 돌렸고, 더불어 추룡은 ‘와스스!’ 또 한 번 작은 나무를 하나 흔들어 소리를 내었다.
후두두둑!
“이상한데?”
쌓인 눈이 또 쏟아졌고, 말을 꺼냈던 자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분명히 그냥 떨어지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아. 한번 살펴보고 오지.”
대 위에서 내려와 추룡이 있는 안쪽 숲으로 걸어왔다.
추룡은 얼른 적당한 나무 뒤에 몸을 감췄다.
말은 했지만 걸어오는 자도 의아해하는 눈치일 뿐이었다. 설마 적이라 할 인물들이 여기까지 들어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
하지만 그 방심은 치명적인 위험을 불렀다.
턱!
“웁……!”
가까이 오는 찰나 번개같이 추룡이 뒤에서 덮쳐 입을 틀어막으며 목에 칼을 들이대었던 것이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던 그의 눈은 찢어지게 치켜뜨여졌고, 추룡은 입을 틀어막은 채 좀 더 안쪽으로 끌고 들어가 그대로 목에 칼을 들이댄 채 위협했다.
“순순히 대라! 왕평이 있는 숙소가 어디냐! 허튼짓을 하면 바로 목이 끊어질 것이다!”
“주, 중심…… 뒤쪽의 제일 작은 목옥木屋……!”
찰나 추룡은 바로 그자의 아혈과 마혈을 쳐 쓰러뜨린 후 빛살같이 바닥을 차고 그자가 왔던 망루 쪽으로 쏘아 갔다.
“놈들!”
“흡……?”
촤아악!
“으아아악!”
급습!
더불어 어둠에 잠겨 있던 산채에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깨어라! 이놈들!”
쾅-!
“헉! 누, 누구?”
촤ㄱ! 촤ㄱ! 촤ㄱ!
“으아아아악!”
“침입자다!”
추룡이 망루를 쳐 일어난 비명을 신호로 매복했던 일행이 일제히 문을 걷어차고 숙사 안으로 들이닥치며 살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숙사 안의 정경은 향용 방파의 것과 비슷했다. 중간에 통로가 있고 좌우에 마루판 같은 자리가 있었는데 그들 역시 여기에서 열 지어 자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코를 골던 그들이 일행의 공격을 피하기는 힘들다. 방심하고 잠들어 있던 터에 느닷없이 살검을 휘두르는 적이 덮쳐 왔으니 화를 피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놀라 잠을 깨긴 했지만 거의 비몽사몽인 상태. 뭔가 하고 상체를 일으키는 사이 그대로 번뜩이는 장검에 피를 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섬뜩한 일이지만 그러나 일행으로서도 손 속에 인정을 남기거나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양민들을 파리 죽이듯 하는 자들인 만큼 재고의 여지도 없었지만 수효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추룡이 얻어 낸 마지막 정보만 해도 수효가 이백이라 했는데 사실이라면 들어오며 제거한 자들을 제외하고도 백육칠십 명의 적당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아군에 비해 두 배가 넘는 무리라는 것! 무위가 위라고 해도 두 배가 넘는 수효와 정면충돌하면 위험도가 컸다. 더욱이 이자들은 활을 쓰고 있었는데 아무리 호구를 입었다 해도 둘러싸였다 하면 전멸까지 당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는 일이 살육에 허구한 날 수장 다툼을 하는 자들인 만큼 무위 역시 실제로 약하지 않았다. 독하게 마음먹고 살검을 휘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적이다!”
“웬 놈들이 침입했다.”
땡땡땡땡……!
“와아아……!”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쇠 종이 울리는 소리와 외침, 호통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는 속에 망루를 습격했던 추룡은 즉시 신형을 번뜩여 다시 숙사들이 있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숙사인 듯한 산채의 건물들은 대여섯 동이 되어 보였는데, 뒤쪽에 작은 목옥 하나가 보였다. 자칫하면 소홀히 하기 쉬운 그런 목옥!
그러나 들은 바에 의하면 이곳이 왕평이라는 자의 숙사였다.
패망한 원의 장수 중 하나이자 황산 일대를 휩쓰는 적당들의 수괴인 자. 전해진 바가 틀림없다면 쉬운 상대가 아닌 것이었다.
어느 국가나 마찬가지지만 전쟁이 일어나거나 내란이 일어난 직후에 적당들은 심히 힘이 커지곤 했는데, 까닭은 패잔병 등 전술을 아는 자들이 산속으로 피신해 수괴로 자리 잡기 때문이었다.
이런 떼도둑들은 조직화되어 관군들조차 제압하기 어려웠고, 토벌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이들이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하는 것 같았다.
원과의 전쟁이 끝난 게 삼십 년 전인데 당시 피신한 자가 아직도 건재해 행인들을 덮치고 때마다 마을을 습격해 살육을 행하고 있는 것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해되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을 정도.
어떻게든 잡아야 할 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왕평, 예상대로 이자는 역시 보통의 도적이 아닌 듯했다.
불시의 습격으로 모두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도착하자 벌써 ‘꽈당!’ 목옥의 문이 부서질 듯 열어젖혀지며 시커먼 육 척 반의 인영 하나가 섬전처럼 장검을 움켜쥐고 쏘아 나오는 게 보였다.
“일단 흩어져 피신하라!”
더불어 내기가 실린 쩌렁한 외침을 터뜨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쉬익, 한 줄기 연기가 되어 목책이 둘러져 있는 산채의 뒤쪽 숲 속으로 빛살같이 쏘아 가는 것이었다.
일단 피하고 보자는 눈치 같았다. 적당들의 상투적인 수법으로서 원래 이들은 토벌대가 공격해 오면 정면으로 부딪치거나 하지 않았다. 토벌하러 온 만큼 어차피 자신들을 파악해 더 많은 병력으로 공격을 해 오기 때문이었다.
오는 것을 미리 알면 지형 등을 이용해 곤경에 빠트린 후 흩어져 종적을 감추었고, 기습일 경우에는 무조건 피신부터 했다.
그런 후 토벌대가 철수하고 나면 다시 운집하곤 했던 것.
그렇다 해도 이 사내의 경우는 아주 특이한 예에 속했다. 상황이 발생하면 상태부터 살피기 마련임에도 이 사내는 신경조차 쓰지 않고 바로 피신해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든지 습격당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럴 경우 무조건 피한다는 방침을 세운 채 즉각 대처할 만큼 단호하다는 뜻이었다.
쏘아 가는 몸놀림 역시 상상을 넘어섰다. 몽마 정진이 그러했듯 땅을 차고 번뜩여 가는 형상이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내공신법까지 지녔다는 뜻!
퇴로까지 정해 두고 있는 듯했다. 오래잖아 사내는 산채의 뒤쪽 목책 주위에 도착했는데, 가까이 큰 참나무가 한 그루 자라 있는 게 보였고, 이르자 사내는 바로 참나무의 가지들을 차고 올라가 훌 쩍 오 장 높이의 목책을 뛰어넘었다.
그런 후 계속 섬전같이 몸을 번뜩여 눈 덮인 산 중턱을 따라 봉우리의 측면으로 질주해 가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얼마간 가자 앞에 삼십 장 폭으로 건너편 산 중턱과 끊어진 천 길 벼랑이 나타났는데, 사내는 여기에도 대비책을 세워 두고 있었다. 밧줄을 묶어 유사시 건너 쪽 중턱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해 둔 것이었다.
이 정도의 치밀함을 지닌 자라면 일반으로서는 절대 잡지 못한다. 수개월을 살피지 않는 이상 천 길 절벽의 피신용 밧줄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아래에서 보기에는 그냥 건너뛰지 못하는 새카만 직벽이 솟아 있을 뿐이라 이리로 도피하리라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토벌대가 와도 건너편 산에 포위망을 치지는 않을 것이므로 영락없이 허를 찔려 놓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몽마 정진이 그러했듯 아무래도 사내는 상대를 잘못 만난 것 같았다.
이렇게 용의주도한 도피로까지 만들어 두었지만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습격에, 일찌감치 도피할 것을 예상해 따라붙은 추적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번개같이 절벽 앞까지 쏘아 와 밧줄을 타고 맞은편 봉우리까지 건너기는 했지만 내려서는 순간 후웅, 또 하나의 인영이 독수리처럼 머리 위를 뛰어넘어 그의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
추룡이었다.
“제법인 천예賤隸로군.”
하지만 뜻밖에도 사내는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추룡이 따라붙은 것을 알고 있었던 듯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검을 뽑아 건너온 밧줄부터 끊었다.
이것으로 산채가 있는 건너 쪽 봉우리와는 길이 끊어진 것이고, 자신을 추적할 사람은 더 이상 없는 것이었다.
“어린 것 같은데, 포청의 즙포사자緝捕使者더냐? 혹은 대리사의 무직외관武職外官?”
추적해 낸 추룡을 최대한 높이 보고 있는 것이었다.
비로소 추룡 역시 사내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쉰다섯 살가량의 나이에 떡 벌어진 어깨, 신광이 번뜩이는 찢어진 매의 눈과 우뚝 솟은 코, 특징은 앞머리를 밀어 변발을 하고 있다는 것과 이마 위쪽 복판의 뼈가 불거져 나와 흡사 뿔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들고 있는 것은 다섯 자에 이르는 대장검이었고.
추룡은 서두르지 않고 사내를 뜯어보며 입을 열었다.
“악충보다. 변발을 한 것을 보니 역시 몽고족, 원의 패장이라는 독각귀 왕평임에 틀림없는 것 같군.”
사내의 눈에 의아한 듯한 빛이 떠올랐으나 곧 사라졌다.
“악보에 대한 정보를 상당히 입수하고 있지만 너 같은 녀석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구나. 악보가 단독으로 감행한 기습이었다는 소리더냐?”
“틀림없다. 대답부터 해라. 네가 독각귀 왕평임이 확실하지?”
“악불비라도 본 좌 앞에서 이런 대담함을 보이지 못할 것이거늘.”
씰룩, 사내의 입꼬리에 기이한 웃음이 떠올랐다.
“하지만 맞다. 내가 왕평이다. 더 정확히 와엔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너희 천예들은 독각귀라 하는지 모르나 독각룡獨角龍이라 한다.”
와엔페이! 옛 원, 몽고에서의 이름 같았는데, 아직까지 하고 있는 변발에 천예(賤隸-천한 종)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자부심이 대단한 자 같았다. 원이 중원을 지배할 당시 중원인을 일컫던 명칭이었다.
특이하다는 생각을 하며 추룡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눈을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