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70화 (70/150)

# 70

추적 (6)

추룡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늦습니다. 들어올 때보다 더 눈이 쌓여 북협을 통과하기도 어렵고, 알리러 가는 등 여기까지 오는 데만도 나흘은 걸릴 것입니다. 다른 일이 없었다면 상관없겠지만 여자들을 끌고 갔던 자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수상쩍게 생각하고 흩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황산 패거리가 다 운집했다는 것 같던데 어렵더라도 우리가 해치워야 할 것 같습니다.”

“되기만 한다면야 일망타진이니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정말 쉽지가 않네. 늘 쫓기는 자들이라 평소에도 경계가 만만치 않을 터인데 사고를 일으킨 만큼 훨씬 더 삼엄할 걸세. 위험할뿐더러 계곡 안까지 뚫고 들어가기조차 어렵네. 눈치채면 마찬가지로 뒷길을 이용해 흩어질 것이고.”

이 외당의 단주 하나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설상가상 두령이 독각귀 왕평이라면…… 아주 위험한 자야. 산적이긴 하지만 원의 중랑장이었던 자로 알려져 있지. 원이 패망함과 함께 고립되어 남게 되자 잔병들을 끌고 산속으로 들어간 자로서, 전술을 알고 손 속이 악랄하기로 소문이 자자하네. 그자가 들어서면서부터 지주 쪽 적당들의 세가 강해졌고, 번번이 토벌대가 출동했지만 실패했지. 놈이 무리를 소집한 모양이군.”

원의 장수였던 괴수.

추룡은 얼핏 패거리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지주 쪽 마을을 하나 더 불 질러 놓고 굉촌을 치려 한다는 말이 나왔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바로 성동격서聲東擊西다.

현재만 해도 악충보의 전력과 관포들의 신경이 화촌 한곳에 집중되다시피 해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극히 위험한 두뇌를 가진 자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추룡에게는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묘한 기질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막여사가 추룡의 성격이 불이 나면 피하는 게 아니라 맞불을 질러서라도 끄려 하는 성격이라 했듯 위험하다 여겨지는 만큼 더 해치워야 한다는 역생각을 한 것이었다.

정광이 번지는 눈으로 모두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형에 수효, 무력, 두뇌까지 있는 도적인 셈이군요. 하지만 역시 지원을 청해 공격하는 것은 늦습니다. 그런 자라면 더 일찍 무리를 해산시키고 종적을 감출 테니까요. 차후에 일어날 후환은 상상을 넘어설 것입니다. 소탕이 허사로 돌아가고 나면 다시 무리를 집결시킬 것이고, 보복 공격으로 도처의 촌락이 재앙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분명히 그럴 공산이 높았다.

뜻밖의 말을 했다.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기회에 왕평이라는 자의 목을 잘라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미흡하지만 해 보겠습니다. 밤을 기해 습격해 들어갈 테니 지원해 주십시오.”

밤을 기해 습격해 들어갈 테니 도와 달라.

이상한 이야기였다.

“도와 달라니 어떻게? 설마 혼자서 놈들을 상대하려 한다는 말은 아니겠지?”

이백 대 일!

하지만 놀랍게도 추룡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놈들도 잠은 잘 테니까요. 뒤따르시다가 혹시라도 둘러싸이면 배후를 쳐 주셨으면 합니다. 반드시 해치우겠습니다.”

“말도 안 돼.”

순욱이 대뜸 고개를 저었다.

“예사 실력을 지닌 게 아님은 알겠다만 놈들은 활을 지녔다. 무예 전의 일이다. 아무리 풍침 불가의 실력을 지닌 인물이라도 등까지 방어할 수는 없으니 둘러싸이면 바로 죽게 되는 거다.”

하지만 추룡은 그래도 계속 같은 말을 했다.

“그래서 도와 달라 부탁드리는 것이지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자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야기하더군요. 두 달을 기한으로 지주 쪽 마을에 불을 질러 놓고 이목이 집중되는 사이 휘주의 마을을 치겠다고. 이백의 수효에 그 정도 지능을 가진 자라면 능히 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굉촌이라 들었지만 짚어 말하지는 않았다.

“혼자서라도 놈만큼은 칠 생각입니다.”

혼자서라도!

날이 밝아졌음에도 보일 정도로 정광이 일어나는 눈하며 분명히 장난이 아니었다.

추룡의 성격을 대략 아는 만큼 친구들의 경우는 더욱 허언이 아님을 알았다. 집념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이 친구는 분명히 산속의 고혼이 되더라도 왕평을 추적할 것이었다.

결심이 보이는 만큼 둘 중 하나가 끝이 나야 한다는 것!

임백호가 눈을 번뜩이며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세! 활과 수효가 마음에 좀 걸리지만 가지치기 식으로 해 나간다면……! 자네와 함께라면 난 어디건 가.”

전소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듣고 보니 확실히 위험해. 화촌의 일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어. 자칫하면 우리가 추적한 것이 더 재앙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살고 같이 죽어야지.”

좋은 친구들.

허원소, 정백하, 조태형까지 아홉 명이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고, 오동주 및 삼 내단의 가족들 또한 굳은 표정으로 동조하고 나섰다.

“해 보기로 하자. 내단이랍시고 늘 보에만 머물러 별 도움도 되지 못했지만 왕가 놈을 잡을 수 있다면 최고의 보람이 될 것이니.”

그대로였다. 천하 도처에 협객이라 할 무인들이 종횡하고 저마다 사마외도를 치는 등 빛을 발하고 있지만 이들은 휘주의 향용이었다. 휘주의 양민들을 지키는 무사로서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죽기까지 떳떳하게 남을 훈장이 될 일이었다.

이렇게 되자 순욱이나 단주들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상관上官이나 마나 제쳐 두고 하겠다잖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너희들 안위가 더 걱정되어서 이야기하는 것이지 어디. 정히 그렇다면 해 보기로 하지. 아무리 무위가 하늘을 찔러도 혼자서 산채로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니.”

결정.

“조금 쉬어야겠습니다. 밤까지는 이상 없을 테니 몸을 좀 회복시킨 후 움직이기로 하지요.”

비로소 추룡은 자리에서 일어나 숲 한쪽, 눈과 바람을 피하느라 얼기설기 나뭇가지로 엮어 일행이 만들어 둔, 몸을 눕힐 수 있는 자리로 갔다.

퍽! 그리고 쓰러져 바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진력까지 고갈되어 파 죽이 된 몸! 되돌아왔다는 것만 해도 초인적인 정신력의 소산이라 봐야 하는 것이었다.

“이 겨울에 얼어붙은 눈길을 뚫고 하룻밤 만에 칠정까지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보주님보다 아래 무위가 아닐 것 같군.”

“보주님은커녕…… 그냥 괴물일세.”

천둥 치듯 한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질렸다, 하는 표정으로 모두가 고개를 내둘렀다.

독각귀獨角鬼 (1)

밤.

구름 사이로 빠르게 달이 흐르는 가운데 사자바위는 시커멓게 치솟아 포효하듯 허공을 향해 쩍 입을 벌리고 있었다.

거대한 형상으로 주위는 북협과 마찬가지로 온통 깎아지른 암벽 천지의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사자바위에서 협곡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였다. 십 장 정도의 폭을 지닌 통로였다.

일행은 숲과 어둠을 은폐물 삼아 소리 죽여 사자바위 쪽으로 접근해 갔다.

죽은 듯 곯아떨어졌던 추룡이 잠에서 깨어난 것은 섣달의 짧은 해가 떨어질 무렵인 유시경. 변함없이 풀죽 같은 몸 상태였지만 일어나자 곧 간단히 요기를 하고 십왕봉의 골짜기 둘을 돌아 여기까지 접근해 온 것이었다.

“보다시피 장난이 아닌 지형이네. 황산이 거의 이런 형상이지만 곡구를 막으면 안쪽으로는 접근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이 있네.”

“거칠군요. 안쪽도 저런가요?”

안내해 온 것은 곽문이었고 변함없이 차분히 대답하고 있었다.

“대강 그런 형태일세. 도처가 병풍 같은 기암 직벽과 가파른 산턱으로 되어 있네. 북협 쪽에서 들어가는 입구는 저기뿐이고 속은 더 좁아져. 천험의 요새지. 산채는 지나서 맞은편 산 중턱 어딘가에 있을 걸세. 백만 대군이나 되면 모를까, 토벌하려면 여기에서 뒤쪽 봉우리를 모두 포위해야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고, 소수로 치려 하면 안쪽의 중턱과 골짜기 등을 따라 피신할 수 있게 되어 있네. 모르는 통로가 또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어디가 되든 입구마다 경계를 하고 있을 걸세. 몇 명만 세워도 곧 습격을 알게 되어 있네.”

힐끗, 모두 깎아지른 듯 치솟은 직벽을 봤다.

“올라가기조차 쉽지 않을 듯하온데……!”

“여기서는 그렇지. 하지만 안쪽에서는 올라가기가 용이하네. 그쪽은 경사가 비스듬하니까.”

깎아지른 직벽, 첩첩이 이어진 가파른 산봉우리. 그대로 천험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이런 지형이라면 말 그대로 백만 대군이 몇 개의 산을 둘러싸기 전에는 소탕하기 어렵다는 뜻이었다.

수괴가 패망한 원元의 장수라면 제대로 피신하기 용이한 장소를 골랐다는 것!

굳은 표정으로 순욱이 말문을 열었다.

“분명히 매복이 있을 텐데 어쩔 생각이냐?”

추룡은 시커멓게 치솟은 곡구를 보며 모두를 향했다.

“많은 수효는 아닐 것입니다. 양쪽에 모두 있기 쉽고, 사이가 십 장 정도니 서로를 마주 보는 형태일 것입니다. 일이 생기면 불화살로 신호하기 쉽고요. 상대하기 어렵지는 않겠지만 한꺼번에 해치워야 하는 부담이 따를 수 있습니다. 양쪽으로 나누어 올라가 급습하는 게 좋겠습니다.”

쉽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삼십 장이 넘어 보이는 직벽인데 올라갈 수 있을까?”

“우선 살펴보지요.”

일행을 대기하게 한 후 추룡은 나무와 바위 들을 은폐물 삼아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좌우, 직벽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좌측의 직벽은 올라서기가 불가능하다 할 정도로 거의가 깎아지른 미끈한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갈라진 틈이 있어 들어가 보려 하면 모두가 막혀 있었고.

‘험해도 이렇게 험한 산은 정말……!’

추룡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우측 직벽 쪽을 둘러봤다. 좌측보다는 좀 나은 편이었는데, 서른 마장가량을 돌아가 보니 똑같이 가파르긴 해도 다행히 간신이라도 올라갈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발 디딜 턱들이 다소 있는 곳이 있었다.

“우측에 올라갈 수 있을 듯한 곳이 있습니다. 조를 둘로 나누지요.”

돌아온 추룡은 인원을 반으로 나눠 곽문, 순욱, 친구들과 함께 한 조가 되었고, 나머지 단주들과 무사들을 이 조로 하여 보아 둔 우측 직벽으로 이동했다.

“올라가면 밧줄을 던져 올려 주십시오.”

“벽호공壁虎功이 있어도 올라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

일행은 우려하였으나 안전을 도외시한 채 추룡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혼신의 공력을 끌어 올려 손으로 잡을 곳과 발 디딜 만한 곳을 찾아가며 직벽을 타기 시작했다.

말이 쉬울 뿐 실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깎아지른 직벽에 말이 좋아 발 디딜 곳이지, 서너 치나 나왔는가 싶을 정도의 돌출부를 잡고 새카맣게 솟은 얼어붙은 절벽 위로 올라가는 일이었다. 마치 작은 거미가 붙어 올라가는 그런 형상.

아무리 무예가 출중하고 공력이 높다 해도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떨어지면 즉사를 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나마 모두 얼음과 눈에 덮인 상태.

그대로 빙벽氷壁이라 할 정도로 위험한 직벽이었다.

열 살 때부터 봉황산을 오르내리며 나무를 하고, 휘주에 와서도 수없이 연화봉을 오르내린 추룡이었지만 발 한 번, 손 한 번을 옮길 때마다 이마에 축축이 땀이 뱄다. 겨울 산의 위험은 그로서도 처음인 것이었다.

하지만 이각, 아래에서 보는 사람조차 조마조마, 가슴이 조였지만 올라갈 수 있겠다 생각하고 시작한 만큼 남평의 나무꾼은 결국 해내었다.

손끝이 얼어 감각이 없어질 즈음 간신히 갈지之자 식으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 가며 얼어붙은 직벽을 기어올라 계곡 위에 도착한 것이었다.

“휴……!”

아슬아슬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일행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휙휙, 가지고 온 밧줄을 직벽 위로 던져 올렸다.

이동할 당시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서로를 묶었던 그 밧줄이다.

올라간 추룡은 밧줄들을 단단히 연결해 아래로 내려뜨렸고, 곧 이 조에 해당하는 서른다섯 명이 밧줄을 타고 하나하나 위로 올라왔다.

거칠긴 했지만 직벽 위는 안전해 보였다.

이후 소리 죽여 몸을 숨겨 가며 곡구 쪽으로 가 보자, 과연 예상대로 초입 쪽부터 털가죽 옷을 입은 적당들이 건너 쪽의 서로를 마주 보며 활과 창칼을 소지한 채 드문드문 번을 서고 있는 게 보였다. 두 명씩 조를 이뤄 건너와 이쪽, 열 지점에서 통로를 살피며 경계를 하는 상태였다.

“매복해 계십시오. 건너 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면 돌을 던지겠습니다. 신호로 일제히 치는 것입니다. 절대 불화살이 올라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조심하게.”

단주들은 참 대단한 청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추대회에 함께 출전하기도 했지만 이 청년은 어찌 볼수록 이렇게 빛이 나는지.

추룡은 밧줄을 타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단주들이 밧줄을 떨어뜨리자 그것을 짊어지고 좌측 직벽으로 자리를 옮겼다.

“맙소사! 여긴 아예 세워 놓은 무 같잖아? 발 디딜 곳조차 없이 미끈한데 어떻게 올라간다고……?”

지세를 본 모두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러나 추룡은 미리 살펴 둔 곳으로 가서 위를 가리켰다.

“아래는 미끈하지만 십삼사 장 위부터는 짚을 곳이 있네. 올라갈 수 있어.”

모두의 표정이 크게 의아해졌다.

“거기까지는 어떻게 올라가고? 방법이 있나?”

추룡은 눈을 번뜩이며 대답했다.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이 있네. 이런 경우는 이인교異人橋를 인용하라 하시더군. 곡예단의 곡예 기술을 응용한 방법일세.”

이인교!

“공력이 높은 사람부터 차례로 무등을 타 인간 사다리를 만드는 것일세. 벽을 뛰어넘는 수법으로 썩 괜찮지.”

“그런 방법이……!”

모두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떠올랐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었다.

“힘드시겠지만 단주님께서 받침대가 되어 주십시오. 공력이 있는 순으로 계속 목말을 타고, 제가 마지막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힘의 부담이 덜어집니다.”

“해 보지!”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순욱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작전은 실행으로 옮겨졌다. 순욱이 가장 아래에서 첫 받침이 되었고, 그 위에 임백호, 그 위에 곽문, 이런 식으로 계속 직벽에 기대 목말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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