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추적 (5)
“무슨 짓이오!”
산속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으레 모두가 그러하듯 놀란 척, 추룡은 일단 달려오는 무리를 피해 여자들이 있는 우측면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무리보다 약간 빠른 속도.
“섰거라, 이놈!”
그러자 무리는 거듭 소리를 지르며 쫓아왔는데, 추룡은 화를 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듯한 모습으로 잡힐 듯 말 듯 계속 그들의 속도에 맞춰 여자들 주위를 돌며 달렸다.
재치였다.
“제법 발이 빠르다! 포위해!”
맨몸에 도망치는 모습도 그렇고, 무리는 추룡을 발이 제법 빠른 그냥 일반의 청년 정도로 알고 방심한 채 쫓았고, 추룡이 주위를 돎으로 가까워지면 여자들을 지키던 나머지 자들도 함께 가세했다.
도망쳐 달려오는 추룡의 앞을 막아섰다가 방향을 틀면 역시 함께 쫓기 시작한 것이었다.
“섰거라, 이놈!”
구레나룻도 가세했다. 추룡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앞쪽으로 오자 그 역시 추룡의 앞을 가로막았고, 잡힐 듯 말 듯 휙, 추룡이 다시 방향을 바꿔 비껴 달리자 우르르, 패거리와 함께 뒤쫓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쨌건 그들로서는 추룡을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없애 버린 후 가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추룡이 노린 것이었다.
잡힐 듯 말 듯 달리는 모습으로 여자들에게서 십여 장 정도 떨어지는 순간.
“에라, 이 나쁜 놈들아!”
쾅! 쾅! 쾅!
“컥!”
“크아악……!”
또다시 그의 철권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도망치던 것에서 휙, 신형을 돌리며 번개같이 주먹을 날려 무차별 놈들의 턱을 깨어 버리는 등 철퇴같이 후려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놈…… 보통이 아니다?”
“일제히 쳐!”
그러나 패거리는 아직도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 흥분한 상태로 떨어져 있는 여자들에 대한 일은 뒷전, 추룡 하나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구 칼을 휘두르며 덮쳐든 것이었다.
제대로 몇 수 수련했는지 산적들보다는 좀 더 위의 실력자인 듯한 기분. 하지만 역시 추룡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타!”
쾅! 쾅!
“아악……!”
무리가 덮쳐 올 때마다 추룡은 번개같이 몸을 틀어 번쩍이는 칼날들을 피해 가며 연거푸 쇠망치 같은 주먹으로 접근한 자의 안면을 으스러뜨리고 늑골을 꺼트리며 놈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시퍼런 칼날이 머리 위로 휘돌아 가고 가슴 앞을 스치는 등 위험천만한 장면도 연출되었지만 그러나 패거리의 칼끝은 추룡의 몸을 건드리지 못했다. 우습게 생각할 자들은 아니었지만 역시 추룡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일 정도의 실력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를 또 반 각.
“하!”
쩍-!
“키아악!”
와당탕!
“아이고……!”
신음 소리가 자자한 가운데 결국 구레나룻 패거리 역시 모두 피가 낭자한 모습으로 안면이 으스러지고 늑골이 부러져 눈 바닥에 쓰러져 뒹굴게 되었다.
“나쁜 놈들……!”
퍽! 퍽!
“크으……!”
추룡은 손을 놀려 다시 패거리의 마혈을 제압했다.
그리고 마침내 처녀들에게로 다가가 몇몇의 막힌 입과 포박을 풀며 지시했다.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놀라지 마시고 침착하게 대응하셔야 합니다. 일단 서로의 포박을 풀고 놈들을 완전히 묶으십시오.”
“아……!”
처녀들은 거의 정신이 없었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거니와, 삽시간에 일어난 싸움 등, 어찌 된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포박이 풀리고 구출되었다 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고맙다는 말조차 잊은 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서둘러 추룡의 말에 따라 마혈이 찍혀 뒹굴며 신음하는 패거리를 자신들이 묶였던 포승으로 꽁꽁 묶었다.
퍽-!
“아악……!”
비로소 추룡은 몸을 돌려 세차게 발을 날려 신음하는 구레나룻의 턱을 걷어차며 말문을 열었다.
“대답해라! 뭐라는 자들이냐? 보아하니 황산 일대의 산적들과 연대하여 인신매매를 하는 패거리 같은데 어느 지역, 어느 자의 수하들이냐?”
위협적인 음성.
하지만 구레나룻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설마 어수룩해 보였던 녀석이 보기 드문 강호의 고수! 산적 패거리를 추적해 왔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입을 잘못 놀리면 그대로 큰일이 나는 것이었다. 자신들은 물론 나머지 일당, 근거지까지 모두 끝이 나게 된다.
“죽고 싶은 모양이군!”
우직!
“으아아악!”
그러나 근거지는 둘째, 사신死神은 한발 앞서 자신들의 목전에 더 먼저 닥쳐와 있었다.
추룡 역시 화가 치밀어 있는 상태였다. 수백 명의 양민들이 난도질되어 피투성이로 숨이 끊어진 참상을 보고 추적에 나선 상태, 우물쭈물 쉽게 대답할 기색이 아니자 바로 전소가 보여 줬던 것을 응용했다.
상황이 급한 만큼 위협적으로 발을 들어 세차게 패거리 중 하나의 정강이뼈를 분질러 버리며 계속 문초했다.
“어차피 누구라도 대답하게 된다! 대답하지 않으면 너희들부터 모두 죽일 것이니! 결코 쉽게 생각하지 마라! 어느 지역의 어느 패거리냐!”
지끈!
“아악!”
다른 녀석의 정강이뼈 하나가 더 부러져 나갔다.
“헉! 우, 우린……!”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세가 장난이 아닐뿐더러 하는 것을 보니 정말 자신들을 다 죽일 것 같은 눈치였다.
“평호平湖 쾌활림快活林을 운영하는 문익희文翼熹, 문 노대의 수하요! 아무것도 모르오! 그냥 노대께서 이리로 오면 여자들을 데려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니 은자를 주고 넘겨받아 오라 하는 지시에 따랐을 뿐이오!”
다른 한 녀석의 정강이뼈가 또 부러지는 순간 결국 사색이 된 구레나룻은 질질 오줌까지 지리며 입을 열었다. 졸개인 만큼 관사에 잡혀가도 처형될 정도는 아니니 옥살이를 하더라도 사는 것이 났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추룡은 계속 눈을 번뜩이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너희들만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패거리는 어디에 있느냐?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촌은?”
“우이촌牛耳村이오! 동쪽 십 리 아래에 있소. 서른 명이 왔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바깥 계곡 속에 마차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고, 우린 인수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오.”
추룡은 거듭 눈을 번뜩이며 위협했다.
“다시 말하지만 허튼소리를 하면 너희들은 정말 모두 죽는다! 시간이 없어 끌고 갈 수 없는 만큼 방치해야 할 테니까! 관포들이 올 때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고 늦어지면 얼어서라도 죽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라! 주위에 다른 패거리가 매복하고 있다거나 우이촌보다 가까운 곳이 없는지!”
구레나룻은 파랗게 얼굴이 질렸다.
“정말 없소! 싸우러 온 게 아닌데 무엇 때문에 매복하겠소? 촌락도 정말 우이촌이 제일 가깝소!”
십 리. 결코 먼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추룡이 자신들을 여기에 두고 가 버린다면, 우이촌에 당도해서도 포청에 신고를 하고 관포들이 오기까지 최소한 몇 시진이 걸린다. 코가 얼어붙을 듯한 기온에 눈까지 내리는데 그 시간이나마 견뎌 낼 수 있을지.
다른 녀석들도 필사적이었다.
“제발 인정을 베풀어 주시오. 우린 정말 노대의 명령에만 따를 뿐이니. 이대로 두고 가면 다 죽소! 언제 도착할지 몰라서 일행과도 새벽에 만나기로 했소.”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추룡도 이들을 처리할 다른 어떤 방도를 찾을 수는 없었다.
“너희들이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다! 시간이 없어 나는 포청으로 갈 수 없고 끌고 갈 수도 없으니. 여기 소저들이 우이촌으로 달려가 포청에 발고하여 포사들이 오기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소리를 못 내도록 아혈을 찍고 보태어 입까지 틀어막은 후 한 줄에 묶인 패거리를 두어 마장가량 떨어진 후미진 숲 속으로 옮긴 후 한 귀퉁이에 숨겼다.
그런 다음에야 처녀들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지체하지 말고 곧장 동쪽으로 가십시오. 우이촌이 나오면 바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포청에 발고를 하시고. 오셨던 길을 돌아 모퉁이를 돌면 산적들도 몇 있으니 그렇게 전해 주십시오.”
처녀들은 변함없이 거의 넋이 빠진 상태였다. 마을을 급습한 산적들, 사로잡혀 끌려온 나흘, 벌어진 싸움 등으로 사색이 되다시피 해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한 처녀가 말을 꺼냈다.
“협객께서는 누구신지……? 함께 가 주시는 게 아닌지……?”
“그러고 싶지만 경황이 없습니다. 관포들이 물으면 흑무사라 하면 되실 것입니다.”
흑무사黑武士.
“어서 가십시오.”
지친 기색이었지만 처녀들도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패거리야 얼어 죽든 말든 신경 쓸 필요도 없지만 한시바삐 자신들도 민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구원을 요청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먼저……!”
여전히 고맙다는 말을 잊고 있을 정도로 경직된 모습으로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허둥지둥, 서둘러 숲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나쁜 놈들.”
처녀들이 사라지는 것을 본 추룡은 쉭! 다시 눈밭을 쏘아 나갔다. 역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던 것.
호구와 칼을 찾아 다시 두르고 급히 적당들을 제압해 둔 곳으로 갔다.
마혈과 아혈을 제압당한 다섯 녀석은 변함없이 쓰러져 콧소리로만 신음을 발하며 뒹굴고 있었고, 도착한 추룡은 다시 봉쇄한 녀석들의 아혈을 풀었다.
“솔직히 대답해라! 산채가 어디냐! 나머지 패거리가 있는 곳 말이다!”
“악……!”
콱콱, 다시 놈들의 정강이를 밟기 시작했다.
“십왕봉 북쪽…… 두 골짜기를 돌아가면 사자바위가 있는 계곡이 있소! 그 안쪽에……!”
“수효는?”
“이백 명 정도요. 지주 방향 친구들이 모두 모였소. 대두령은 독각귀獨角鬼 왕평王平이오.”
“나쁜 놈들!”
추룡은 아혈을 다시 찍은 후 또한 놈들을 모퉁이 한쪽에 몰아 둔 후 쉭! 남은 공력으로 신법을 전개, 또다시 빛살같이 어둠과 퍼부어지는 눈보라 속을 가르고 온 길을 되돌아 북협 쪽으로 쏘아 가기 시작했다.
천만다행히 여자들은 구했지만 일행이 걱정되었기 때문인데 남은 힘으로 거기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일 정도였다.
“막 형!”
“맙소사! 막 삼호!”
그러나 남평의 나무꾼은 역시 초인적인 면모를 보여 줬다. 땀으로 범벅이 된 전신, 신들린 듯한 광기光氣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았을 즈음, 기어코 온 길을 되돌아 표식을 남긴 북협까지 당도한 것이었다.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일이지만 이쯤 되면 그의 상태는 초죽음이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었다. 말이 쉬울 뿐이지 한나절, 출발한 게 지난 저녁이니 열두 시간을 쉴 새 없이 거친 산속, 눈밭을 달린 것이다.
달린 것도 그냥 달린 것이 아니었다. 내력과 외력을 모두 써 달린 것이었다. 아무리 공력이 심후하다 해도 약관의 나이, 이를 다 감당할 수는 없다.
도착하기 전에 진력은 고갈되었고, 고갈된 후에는 체력으로 달렸다. 물이 흐르듯 할 정도로 땀으로 푹 젖은 전신에 핼쑥해진 모습하며, 여자들을 끌고 갔던 적당들 및 사창 패거리와 싸우다 튀어 시커멓게 얼룩진 핏물까지, 그대로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 같지 않을 정도였다.
이를 본 일행은 표정이 홱 돌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들은 추룡이 남긴 표시와 글을 보고 기다린 듯했는데 얼어붙은 산악, 눈밭에서 하루를 보낸 만큼 마찬가지로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없었지만 추룡과 아예 비교할 정도도 아닌 모습인 것이다.
그래도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추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려 주셨군요. 무엇이라 감사드려야 할지.”
경악한 눈으로 추룡을 바라보며 곽문, 순욱 등 둘러싼 동료들과 친구들은 한결같이 아연실색한 기색으로 다투어 말을 꺼냈다.
“어찌 된 모습인가! 놈들과 싸운 것 같은데 다친 것인가?”
파 죽같이 지쳐 있었지만 그래도 추룡의 눈은 번뜩였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냥 좀 지쳐서 그렇습니다. 녀석들이 꽤 멀리까지 갔더군요. 우이촌이라는 곳의 측근까지 가서야 따라잡았습니다.”
“우이촌……?”
곽문 등 지형을 아는 인물들의 입이 일제히 쩍, 벌어졌다.
“말도 안 돼! 거긴 안상성의 칠정현 쪽인데……! 여기서 보면 황산의 끝에서 끝일세! 설마 하룻밤 만에 거기까지 달려갔다 왔다는 말인가?”
좋은 계절에 빠른 걸음을 가진 무사가 달려도 하루가 넘게 걸리는 거리! 여전히 괴물怪物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다녀온 것은 사실이고, 추룡은 피곤해 보이는 모습으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다행히 여자들을 구했습니다. 패거리가 평호 쾌활림의 사창 조직에 여자들을 넘기려 하더군요. 일단 무사히 구출했고, 포청에 도움을 청하라 했습니다. 지금쯤 관포들이 쾌활림을 포위했을 것입니다.”
“기가 차서……!”
모두는 변함없이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말이 쉽지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었다.
“산채는 십왕봉 북쪽, 사자바위가 있는 골짜기 속에 있다고 하더군요. 이백여가 있다고 했고, 이끄는 자는 독각귀 왕평이라 했습니다.”
“초인超人이로군! 철인鐵人이라 해야 하는 건가……?”
하지만 곽문을 비롯한 일행은 이런 말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의 오백 리 길을 반나절 만에 주파한 것하며, 아무리 별 볼일 없다 해도 살육으로 먹고사는 자들인데 끌고 간 산적 패거리에 사창 패거리까지 상대해 여자들을 무사히 구해 냈다고 하면 이건 역시 사람이라고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질렸다는 듯 순욱이 실소 지었다.
“완전히 초고수급이었군. 그것도 이런 눈밭에서……!”
곽문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문을 열었다.
“사자바위라면 어렸을 때 한번 가 본 적이 있네. 십왕봉 뒤쪽, 골짜기 둘을 돌아가야 하는 곳인데, 뒤는 호리형 지형을 지닌 계곡일세. 접근하기 어려워. 북협과 똑같이 사방이 깎아지른 협곡이라 입구만 봉쇄해도 들어설 수 없네. 수효까지 이백이라고 하면 우리들만으로 상대하기 어렵네.”
“찾아냈으니 보주님과 관사에 응원 요청을 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