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67화 (67/150)

# 67

추적 (3)

“주의할 것은 활일세. 놈들은 죽궁竹弓을 쓰네. 특징은 소리일세. 죽궁은 화살보다 소리가 먼저 오니 들리면 바로 엎드려야 할 걸세.”

각궁 같은 강궁은 사정거리도 길고 화살이 소리보다 앞서 날아왔다. 이런 각궁을 구하기 어려운 만큼 산적들은 대나무로 장궁張弓을 만들어 썼는데, 시위를 놓는 소리가 더 먼저 들린다는 특징이 있었다.

이동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지역민들이 목격한 화적들이 사라진 구화산의 기슭에서부터. 눈이 발자국을 지워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곽문은 오랫동안 사냥을 해 온 감각을 살려 최선을 다해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야생동물이 아닌 이상 산악에서 이동을 할 때는 골을 따라 움직이거나 능선을 타고 움직이게 마련일세. 일단 능선은 아닐 걸세. 황산 자체가 직벽이고 끊긴 곳이 많으니까. 분명히 골을 따라 북협으로 들어갔어. 당전唐田 쪽으로 해서 안상安床 방면으로 이동했기 쉽네. 어쩌면 십왕봉 주위에 소굴을 두고 머물고 있을지도. 그렇다면 이 골이 지름길일세.”

귀가 얼어붙을 듯한 기온.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까지 빠져들고 있었다.

반나절.

구화산을 지난 모두의 앞에 마침내 겨울 황산의 가공할 위험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날 몽마 정진을 추적해 옥병루로 가던 험로가 그랬듯이 코앞에 하늘을 찌르는 직벽이 나타나는가 하면 모퉁이 하나를 돌아섬과 함께 천 길 절벽이 발아래에 펼쳐지는 극악한 지형이 시작된 것이었다.

더욱이 모조리 눈이 덮여 있고, 얼어붙어 있었다. 정진을 추적할 때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상태! 워낙 깎아지른 직벽형 바위산이 황산이라 거의 벽에 붙어서 가다시피 해야 할 정도로서 한 걸음이라도 잘못 내디뎠다가는 천 길 벼랑 아래로 떨어져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이런 험로를 간다는 자체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와작!

“으아앗!”

“잡아!”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신발 바닥에 쇠 징을 박고 전신의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는데도 얼어붙은 눈이 부서지며 헛발을 딛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사태에 대비해 곽문은 일렬로 이동하며 서로의 허리를 밧줄로 묶어 단단히 경계케 했다.

이로 인해 미끄러진 사람은 간신히 끌어 올려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빙하의 기온임에도 모두의 얼굴에 땀이 줄줄 흘렀다. 빙판이나 다름없는 깎아지른 바위산, 바위 직벽.

이동하는 것만 해도 완전히 목숨을 건 것이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더욱 어마어마한 정경이 모두의 앞에 펼쳐졌다. 낭떠러지는 사라진 듯했으나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대협곡이 나타난 것이었다.

“북협일세. 암벽의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지. 이야기했듯 속은 미로迷路나 다름없네. 길을 잃어버리면 헤어 나오기조차 어려운 곳일세.”

“대기!”

바로 계곡 속으로 진입해 갈 수도 없었다. 이야기 들은 대로 어마어마하게 치솟은 벼랑에 비해 진입하는 직벽 사이는 서너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협소했는데, 이런 곳에 매복이 있다면 그대로 모두가 전멸당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 위로 올라가 매복 여부를 살펴 가며 이동해야 했다.

귓불은 얼어 감각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다행히 눈길을 헤치고 왔음에도 신통하게 발은 시리지 않았다.

“동상을 방지하는 데는 마른 고추만 한 게 없네. 마른 통고추를 신발에 채우면 냉기가 차단되지. 고추의 매운 기운이 열기를 내어서 그러하네. 여름에는 서홍시(토마토)즙을 바르면 모기가 접근 못 하고. 알아 두면 쓰일 모가 있을 걸세.”

늦게 무예를 배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해도 평생 사냥을 하며 지내온 인물이어서인지 곽문은 산에 대해 누구보다 해박했고 산사람답게 지식이 많았다. 여기까지 무사히 온 것만 해도 그의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매복 없습니다!”

안전이 확인됨과 함께 추적대는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사건이 벌어진 지 사흘, 밤을 새워 추적해도 따라붙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나마 문제는 또 있었다.

언급되었듯 오래잖아 이동하던 모두의 앞에 거미줄 같은 북협의 미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부분 막힌 곳이고 트인 이동로는 네 곳일세. 지나면 십왕봉 좌우 골짜기들이 나오네. 어느 쪽으로 갔는지 모르니 여기에서 갈라지거나 이동로를 살펴야 하네. 혹시 사건 당일 후로도 눈이 왔나?”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날은? 얼마 동안 눈이 내렸는지 아는 바 있나?”

순욱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밤부터 시작해서 다음 날 오후까지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곽문은 차분히 염두를 굴리며 눈을 번뜩였다.

“다행이로군. 그렇다면 한나절가량 내렸다고 봐야 하는 것인데, 흔적이 남아 있을 수 있네. 간단히 말해서, 고지인 만큼 더 많이 눈이 내렸을 거고, 산은 더 전에 전체적으로 눈에 덮였을 걸세. 그친 후의 발자국이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답이 나오는 거지.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 반나절이니 그렇다면 여기쯤이야.”

역시 사냥꾼다운 노련한 점이 있었다.

쉽게 말해 눈은 지주 일대에 모두 내렸을 것이고, 내릴 동안까지의 흔적은 어쩔 수 없지만 그친 후의 족적은 남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녀석들이 밤에 여자들을 끌고 이동했다면 우리보다 빨리 움직이지는 못했을 거고, 대강 이쯤 왔을 때 눈이 그쳤을 걸세. 제대로 추적해 온 것이 옳다면 흔적이 남았을 수 있어. 계곡의 길이는 한 시진 정도일세. 발 빠른 사람 몇이 통로들을 조사해 보는 게 좋겠네.”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게.”

그러자 순욱을 비롯한 단주들이 셋씩 짝을 지어 번개같이 갈라진 통로로 뛰어 들어갔다. 한 시진 거리라 했으니 돌아오기까지 두 시진이 걸린다고 봐야 했다.

곽문은 하늘을 살핀 후 곧 다시 지시했다.

“땔감을 찾아보게. 몸을 녹여 두는 게 좋을 테니. 불은 항상 어둡기 전에 피워야 하네. 놈들이 가까이 있을 경우 밤에 불을 피우는 것은 추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세. 따라서 쉬는 것도 낮이어야 하지. 연기가 나지 않는 마른 나무여야 하네.”

나머지 사람들은 주위로 흩어져 마른 땔감들을 찾기 시작했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하는 것이었다.

도처에 마른 사목死木과 가지들이 상당수 있었고, 곽문의 지휘에 따라 일행은 곧 계곡의 후미진 구석에 불을 피웠다.

지니고 온 건포 등으로 요기를 하는 사이 곽문은 탄 나무들이 다 사그라지기 전에 집어내어 숯으로 만들었다.

“종적을 찾으러 간 친구들도 오면 몸을 녹여야 할 테니까. 일렀듯 어두워진 후에는 불을 피울 수 없네. 그래도 숯불은 밝지 않아 감추기 쉽고 잠깐잠깐 피워 몸을 녹이기도 용이하지.”

이래도 저래도 용의주도한 그.

“아버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는군요.”

추룡은 이런 곽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렇다 할 명성도 무엇도 없는 그였지만 관포가 되었거나 제대로 무림에 나섰으면 대명을 떨쳤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소가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도 원래 포사가 되고 싶어 하셨네. 사건 사고와 추적에 정말 강하셔. 나도 사부님께 배운 것이지만 완전히 비교가 되지 않네.”

곽문도 빙그레 웃었다.

“처음 무예를 배운 게 열여덟 살 때였지. 우연히 부상을 입고 쓰러지신 화산파의 어른을 돕게 된 인연이었네. 열심히 수련했지만 앞서 시작한 사람들을 따라잡기는 어렵더군. 포사 시험도 봤고, 악충보에 입문하려고도 해 봤지만 이삼 년 정도로는 무리였지.”

곽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영이나 잘되었으면 싶어. 제대로 길을 들어섰으니 훌륭한 향용으로서 지역을 위해 큰일을 해 줬으면 싶네.”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

무사로서 큰 빛을 발하지 못했더라도 그 역시 곽영에게는 누구보다 훌륭한 아버지였던 것이다. 곽영이 없었다면 이런 일에 나섰을 리도 없었다.

한 시진가량 후.

좌측 첫 번째 통로로 들어갔던 세 단주가 크게 밝은 표정으로 달려 나오더니 보고를 했다.

“찾았습니다! 말씀대로 놈들의 것으로 보이는 대단위 흔적들이 도중에 있더군요! 필경 첫 번째 통로로 놈들이 이동한 것 같습니다!”

일행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 보세! 단주님들께서는 다른 통로로 간 분들이 돌아오기까지 숯불로 몸을 녹이시고. 오면 곧 따라와 주시게.”

“그리하겠습니다.”

이들이 일찍 온 것은 도중에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 나머지 사람들은 끝까지 갈 테니 필경 한 시진이 더 걸려야 돌아오는 것이다.

추적이 다시 시작되었다.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진 상태였지만 따라붙으려면 밤낮이 없다. 머뭇대다가 또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나마 찾아낸 흔적까지 지워질 테니까.

반 시진 후. 어둠을 뚫고 계속 진입하자 과연 북협의 중간쯤에 적당들의 흔적이 있었다. 눈 위에 상당한 무리가 이동한 발자국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맞는 것 같군.”

순간 추룡과 모두의 눈이 번쩍! 칼날 같은 섬광을 뿜어냈다. 흔적을 찾아낸 이상 추적은 어렵지 않아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곽문이 바로 추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요행히 운이 따른 것 같군. 그러나 방심할 수 없네. 언제 또 눈이 내릴지 모르니 그 전에 놈들의 근거지를 찾아내어야 하는 게 관건일세. 누구라도 조속히 뒤를 쫓아 놈들이 있는 곳을 알아내야 한다는 거지. 발이 아주 빠르다고 들은 것 같은데, 여기서부터는 자네가 좀 수고해 주겠나? 곧 뒤쫓아 갈 테니.”

말을 돌리고 있었지만 내공신법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추룡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습니다. 흔적이 지워지면 난처할 터이오니.”

“계곡을 지나면 십왕봉의 봉우리로 이어진 계곡들이 나올 걸세. 느낌이 틀리지 않다면 필경 산 안쪽 어딘가에 산채가 있을 것 같은데, 한발 앞서 가서 위치를 파악해 놓게나. 길목마다 나무를 꽂아 표시도 해 주고.”

곽문은 침착하게 차근차근 해야 할 일을 일렀다.

“단, 도중에 놈들이 갈라졌을 수도 있네. 그럴 경우라면 무조건 발자국이 끌린 듯한 곳으로 가게. 여자들이 끌려간 곳이기 쉽네. 소탕도 중요하지만 사람부터 구해야 할 테니. 수효가 많다니 조심하게.”

“명심하습니다.”

쉬익, 소리와 함께 추룡의 모습이 곧바로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몽마의 사건 후 두 번째 보여 주는 신법! 흡사 섬광이 번뜩이듯 하다.

곽문이 놀랍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역시 들은 대로 고수로군. 듣긴 했지만 젊은 나이에 저 정도 성취를 이루기는 실로 쉽지 않을 것인데.”

“워낙 무귀거든요. 감추고 있지만 진짜 자나 깨나 무예만 수련해 온 것 같아요.”

영웅전까지 제패한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었고, 임백호는 부친이 막여사라는 것까지 아는 터였다.

하지만 그와 친구들을 제외한 나머지, 추룡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여전히 악충보에 없었다.

같은 삼단의 사람들조차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이해하기 어렵군. 막 삼호 말이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내가고수였나?”

좀처럼 말이 없는 문대위가 히죽 웃음을 머금었다.

“내가고수 맞습니다. 외가고수기도 하죠. 하나하나 알고 보면 정말 놀라운 친구입니다.”

“처음 볼 때부터 여간한 실력이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어. 한데 저런 실력으로 왜 말단으로 있는 거지? 소저나 윗분들은 훨씬 빨리 알아보았을 텐데 더 위의 주요 부서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었나?”

전소가 잘 마무리하고 있었다.

“막 삼호의 뜻이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막 삼호는 대리사에 뜻을 두고 있는데 집을 나섰던 까닭도 무과를 치르려 했던 것입니다. 도중에 사고가 생겨 날짜를 놓치고 저희를 위해 악충보로 온 것입니다. 일반으로 남은 것은 마음 편히 떠나기 위함인데 분명히 막 삼호는 크게 이름을 떨칠 것입니다.”

“그랬던 것이로군.”

모두는 곧 이해했다. 떠날 것이라면 무명으로 지내는 게 부담이 없는 것이다.

비로소 추룡에 대한 무엇인가가 일반에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쉬익!

어둠을 가르는 빛살 같은 몸놀림! 추룡의 움직임은 그대로 눈밭을 가르는 비호飛虎와 같았다.

몽마를 추적할 때와 마찬가지로 삽시간에 북협의 계곡을 벗어났고, 나서자 곧 멀리 하늘을 찌를 듯 첩첩한 십왕봉의 봉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곽문의 예상대로 무리가 지나간 흔적은 십왕봉 쪽으로 계속 연결되어 있었다. 십왕봉 어딘가에 적당들의 근거지가 있다고 봐야 했다.

한데 흔적을 따라 십왕봉의 중간까지 쏘아 갔을 때였다.

‘이런……!’

역시 예상되었던 문제가 발생했다.

북협에서부터 줄곧 한 줄로 이어졌던 흔적이 둘로 나뉘어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십왕봉 쪽으로 이어져 있었으나 또 하나는 십왕봉 좌측의 산봉우리 쪽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었던 것.

여기에서 무리가 둘로 나뉘었다는 뜻인데, 적게 난 흔적이 좌측으로 향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자 그쪽으로 간 발자국들이 산만 한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미루어 여자들이 끌려간 흔적이기 쉬웠다.

‘큰일이군!’

구름에 덮여 하늘은 별빛 하나 보이지 않는 상태.

추룡은 가슴이 초조해졌다.

곽문의 도움으로 요행히 적당들의 흔적은 찾았으나 결국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되는 것이었다. 자칫하면 둘 다 놓치게 될 수도 있었다.

역시 날씨가 말썽인 것이다. 잔뜩 흐려진 하늘에서 언제 또 눈이 올지 모르는 상태였고 어두워지면서 바람까지 세어지고 있었다. 눈이 내리면 추적은 끝난다.

남은 일행도 걱정이었다.

상대가 이백에 달한다고 들었는데 다른 쪽을 쫓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무위는 걱정할 정도가 아니었지만 추적하는 것이 밝혀져 습격이라도 받는다면 크게 위험해지는 것이었다.

오겠다고 한 것이 자신이니 책임 역시 자신이 져야 하는 것이다. 적당을 소탕하거나 여자들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료의 안위는 더 중요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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