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66화 (66/150)

# 66

추적 (2)

하지만 보기에는 아름다워도 눈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하하……! 막 형, 감탄만 하지 말고 어서 치우세. 흐린 걸 보니 또 올 것 같은데 쌓이면 골 아파.”

그러했다. 보기는 좋지만 치워야 하는 것이다.

“이 좋은 걸 그냥 두지……!”

어쩔 수 없이 추룡도 빗자루를 들 수밖에 없었다. 다들 치우고 있는데 혼자서만 좋다고 펄쩍거리고 있기도 그렇고, 무지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대로 복건은 남방이라 겨울에도 눈이나 얼음을 보기 힘들었다(평균기온 19∼21도). 더 어릴 때 개봉에서 살았으므로 눈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철도 안 들었을 때고, 여덟 살에 복건으로 이주한 추룡이므로 이런 굉장한 설경은 처음인 셈이었다.

눈이 가져다준 더 좋지 않은 요소는 따로 있었다.

겨울이 되고 눈이 오면 중부 위쪽의 향용들은 상시 비상이 걸리고 긴장으로 일관되었다.

“알겠지만 겨울은 극히 위험하다! 눈이 오고 인적이 끊기면 산적들이 움직인다! 언제 민가를 습격할지 모르니 철저히 대비하라! 도처를 살피고 주위에 물어 눈곱만큼이라도 심상찮은 기색이 보이면 바로 보고하라! 출발!”

“하-!”

콰두두두두두……!

그것이었다. 녹림적들이 말썽을 일으키는 것은 사계절 어느 때나 같았지만 겨울에 이르러 특히 위험했다. 산에 눈이 덮이면 행인도 끊기고 먹을 것이 없어지므로 민가를 습격하기 때문이었다.

무리를 지은 화적으로 돌변해 마을을 공격, 살인과 방화는 물론 여자들까지 납치해 갔다. 인신매매까지 하는 것이었다.

기이한 일 중 하나로, 전쟁이 심한 곳들의 남녀 성性을 비교해 보면 원래 남자들의 수효가 적고 여자들이 많게 마련이었다.

한데 중원은 그렇지가 않았다.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지기地氣가 양강陽强해서인지 고래로부터 여자의 수효가 압도적으로 적었다. 권문세족들은 힘의 상징처럼 삼처 사첩도 거느리고 살았지만 일반에서는 혼인을 못 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여인들이 위세가 있어 가부장家父長으로 군림하고 있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인신매매도 크게 성행했는데, 마을을 습격한 적당들이 여자들을 납치하여 타 지역의 사창이나 기루 등에 팔아넘기곤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겨울이 되고 산에 눈이 덮이면 향용들은 긴장했다.

영역 내의 마을들을 지켜야 하므로 밤낮없이 지역을 순회했다. 당연히 관官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막막한 지역을 다 지킬 수도 없고, 사방에 구멍이 뚫린 상태라 전전긍긍했다.

“여기도 산적이 있나?”

“황산성 쪽에는 없지만 칠정七井 쪽에 있네. 지주와 휘주의 중간인데 안상安床으로 넘어가는 산로가 있어서 드물잖게 출몰하곤 한다고 들었네. 성城의 경계인 곳이라 특히 문제가 많은 지역일세. 일이 벌어지면 지주 관사도 휘주 관사도 서로 떠맡기려 하거든.”

예나 지금이나 경계라 할 지역은 그런 무엇이 있었다.

“해서 지주 분파가 늘 신경 쓰고 있는데, 소탕하기가 쉽지 않아. 산이 깊은 데다 소수로 숨어 있어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늘 근거지를 옮기곤 하거든. 겨울이 되면 일이 더욱 커지네. 가을부터 흩어져 있던 놈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해서 무리가 커지면 연합해서 마을을 습격하곤 하는데 이동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므로 어디가 될지 몰라. 무조건 돌고 또 돌면서 경계하는 수밖에 없네.”

여러 면으로 향용의 노고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사에서는?”

“물론 신경이야 쓰지. 하지만 이렇다 할 대책이 없네. 열심히 하고 있지만 우리도 사실 황산성 주위를 빼고는 방어하지 못하네. 하려면 인원을 키워야 하는데 관부에서 허가를 않거든. 늘 사건을 뒤쫓아 다니는 것으로 알아.”

“하-!”

콰두두두두……!

출격한 모두의 말굽이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산이 깊고 산적이 있는 곳!

“모조리 죽여라!”

“와아아……!”

퍽! 퍽!

“으아아악!”

“크아아!”

사고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겠지만 안 일어날 수 없었다.

눈밭 속의 산적들에겐 먹을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봄에서 가을까지 산로山路가 있는 깊은 숲 속에 은닉해 행인들을 습격하는 이들은 겨울이 되고 눈이 쌓이면 언제나 산속에 고립되었다. 가을이 되기까지 양식을 장만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무조건 굶어야 하는 것이다.

흩어져 있다가도 이로 인해 때가 되면 연대를 했다. 그런 후 취약 지구를 덮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겨울일까. 어차피 연대하여 화적질을 하려면 봄, 여름, 가을, 어느 계절이나 다 좋을 텐데.

이유가 있었다. 적당들이 마을을 태우고 약탈을 하는 것은 반드시 겨울만이 아니지만 그래도 겨울에 임박하여 많이 일어나는 까닭은 절기상 가장 초조해지는 시점이기도 하고, 겨울 산이 사계절 중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얼어붙은 미끄러운 산악과 눈밭이 방패가 되는 것이다.

발자국을 남겨 추적당할 것 같지만 한 번 더 눈이 오면 발자국은 지워졌고, 큰 눈이 오면 길이 막혀 소탕대가 접근할 수 없는 게 겨울 산악이었던 것. 함부로 접근한 소탕대가 떼죽음을 당하는 예도 비일비재했다. 누구보다 산악과 지형을 잘 아는 자들이라 어디를 어떻게 막고 어디로 도주하면 유리하다는 것을 손바닥처럼 꿰뚫어 보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추적하기 어렵다는 점이 있었고,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지만 시일이 지나면 흐지부지되는 경향이 있어 소탕대 역시 포기하게 된다.

이동하는 자들이 계속 주위에 남아 있다는 보장도 없고, 처음처럼 흩어져 버리면 잡아낼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일찌감치 퇴로를 뚫어 놓고 일을 벌였고, 취약 지구까지 미리 물색해 두는 등 납치한 사람들을 팔아넘길 곳까지 정하고 있을 정도였다.

“안 된다, 이놈들아! 아직 열세 살밖에 안 된 아이야!”

촤ㄱ-!

“악……!”

일도 반드시 큰 눈이 오기 직전에 벌인다. 시기에 기후까지 살펴 노략질을 하는 것이었다.

쓸고 간 자리에는 당연히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

“이럴 수가……!”

“이게 인간들로서 할 짓인가!”

“욱!”

역시 눈은 모두의 발길을 잡고 있었다.

일이 터진 것은 이틀 후 구화현九華懸의 북쪽에 위치한 화촌華村이었다.

지주에 가까운 곳으로서 황산의 거친 십왕봉十王峰의 지맥을 타고 솟은 구화산에 둘러싸인 백여 가구의 촌락.

급보를 받은 악충보의 사람들이 달려갔을 때는 상황이 이미 끝나 있었고 촌락 전체가 불타 있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살해당한 삼백여 구의 시체가 시커멓게 피투성이가 된 채 한곳에 모아져 있었고,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잘린 팔다리와 끊긴 목이 아직도 원망하듯 허옇게 눈을 뜬 채 널려 있었다.

너무 참혹한 참상이라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입을 틀어막은 채 간신히 구토를 참고 있을 정도.

추룡조차 말을 잊었을 정도였다.

도처에 관군들과 한발 앞서 달려온 듯한 이 외당, 지주 분파의 무사들이 흩어져 생존자를 찾는 등 수색하고 있었고, 여기에서 처음으로 추룡은 지주 분파와 청국 분파를 맡고 있는 손위 처남인 악용岳鏞과 악완소岳完所를 봤다.

휘주보다 가까운 지주였으므로 소식을 들은 악용이 먼저 도착해 있었고, 오래잖아 청국에서 악완소가 달려온 것이었다.

“멍청한 놈! 대체 무슨 꼴이냐! 무얼 하고 있었기에 이 지경이 되도록 태만했던 것이더냐!”

참상을 본 악불비의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금시라도 핏물이 굴러떨어질 듯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노성을 토해 냈다.

“무능함을 용서하시기를……!”

악용의 표정도 침울하기는 같았다. 아니, 그의 표정은 그야말로 죽은 사람과 다름없어 보였는데, 마찬가지로 핏물이 흐를 듯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백지장처럼 하얗게 얼굴에 핏기를 잃었다.

서른여섯 살. 아버지를 많이 닮은 듯 청수한 육 척 장신으로 금시 눈물이 굴러떨어질 듯 악불비의 분노에 용서를 구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넓은 영역에 수하들을 모두 풀어 감시한다고 해도 촌락 하나에 열 명이나 돌아갈까, 분파에서 수백 리나 떨어진 곳을 방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악불비 역시 모르는 사실이 아니었으나 참상이 눈에 보이는 이상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주 포청에서 나온 포두들 역시 핼쑥하게 사색이 되어 있었다.

“놈들은!”

“자정경에 덮쳐 약탈한 후 처녀들을 납치해 구화산을 타고 사라졌습니다. 보주, 부디 한을 갚아 주십시오.”

가까스로 화를 피해 달아났다가 돌아온 부락민들은 완전히 오열의 바다였다. 핏기 잃은 입술을 달싹이며 쿵쿵, 연거푸 이마로 바닥을 찧으며 눈물로 한을 호소했다.

“추적하고 있느냐!”

“찾을 수가 없습니다……! 밤사이 또 눈이 내려 흔적을 지워 버려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백 명이 넘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백?”

그대로 악적들이 즐겨 쓰는 고유의 수법이었다. 날씨를 살펴 눈이 오기 직전에 마을을 덮친 후 약탈을 감행하고 사라지는 수법. 산이 얼어붙고 눈이 쌓이므로 추적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섣불리 들어섰다가는 역공을 받아 엄청난 사상자가 생기기도 쉽고 사건이 일어난 지 이틀, 이미 산속 깊숙이 들어가 어디에 있는지 알 도리도 없다.

설상가상 이백 명이면 완전히 대규모라 할 떼도둑이었다.

“사지를 찢어 놓아도 시원치 않을 놈들!”

쿵!

노기를 이기지 못한 채 발을 굴렀지만 악불비로서도 달리 대책이 없었다.

“……!”

친구들의 표정도 침통했다. 잿더미가 된 마을에 사방은 눈물의 바다로 화해 있는데, 사방에 널린 팔다리, 머리가 베어진 시체들하며.

“전 형, 이야기 좀 하세.”

처음으로 보는 끔찍한 참상에 돌처럼 표정이 굳어진 추룡이 지그시 이를 깨물며 전소를 청했다.

“안타깝지만 죽은 사람은 어쩔 수 없고, 여자들이 납치당했다 하는군. 찾을 방법이 없을까?”

납치당한 처녀들.

하나 전소의 표정도 어두웠다.

“어려워. 십중팔구 놈들은 구화산을 통해 북 협곡 쪽으로 갔을 걸세. 거미줄처럼 계곡이 얽혀 있어서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고 눈과 얼음으로 길이 얼어붙어 추적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하네. 가능하다 해도 여러 곳으로 흩어졌을 거야. 어느 패거리가 여자들을 끌고 갔는지 어떻게 알겠나.”

“전혀 방법이 없나?”

“없을 것 같네. 찾아도 문제야. 따라붙은 걸 알면 놈들은 필경 여자들을 인질로 세울 테니까. 역시 다 죽게 되지.”

실낱같은 희망 하나를 비췄다.

“혹시 사부님의 도움을 받으면 추적은 가능할지도……!”

“사부님이라면? 곽 형의 아버님?”

말을 돌보는 곽문!

“사냥을 하셨거든. 북협은 물론 황산의 지형을 누구보다 잘 아셔. 놈들의 이동 경로를 찾아내실 수 있을지도 몰라.”

추룡의 눈에 바로 칼날 같은 섬광이 일었다.

“모셔 오게.”

“하-!”

콰두두두두두……!

곽영이 바로 황산성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가슴속에는 한결같이 울분만이 가득했다.

곽문이 달려온 것은 다음 날이었다.

“놈들을 추적하자고?”

“그렇습니다. 용납할 수 없는 자들일 뿐만 아니라 방치했다가는 누가 또 화를 당할지 모르오니. 아버님께서 좀 이끌어 주셨으면 싶습니다.”

폐허가 되다시피 한 마을을 본 곽문 역시 돌처럼 표정이 굳어졌다.

“쉬운 일이 아닐세. 황산은 이미 얼어붙었고, 북협은 협소할 뿐만 아니라 천 길 낭떠러지가 즐비해. 한 발만 잘못 디뎌 미끄러져도 시체조차 찾기 어려운 곳일세. 추적하는 것을 알고 놈들이 매복이라도 하면 무조건 전멸이기도 하고. 입구만 차단해도 대여섯 명으로 수백을 위협할 수 있는 게 북협일세.”

“옥병루까지는 가 보았는데 그렇게 위험합니까?”

“한두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칼날 벼랑 사이로 거미줄같이 통로들이 얽혀 있네. 낭떠러지 역시 타 계절과는 비교할 수 없지. 눈이 덮이면 얼음 자체니까.”

추룡은 바로 바닥을 짚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아버님.”

“……!”

굳은 표정으로 추룡을 바라보던 곽문은 한참 만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도라도 해 보세. 그러나 위험이 느껴지면 바로 포기해야 하네. 정말 자살행위나 같으니까.”

추룡은 조용히 악불비를 만났다.

“추적하겠다고?”

“그렇습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소수 정예가 필요합니다. 단주님들과 삼단 중에서 지원자를 받아 움직여 보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악불비는 내키는 기색이 아니었다.

“겨울 황산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나? 더욱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상태에?”

추룡은 굳은 표정으로 계속 부탁했다.

“해 보고 안 되면 돌아오겠습니다. 위험해도 철수하겠습니다. 모쪼록 도와주십시오.”

“……!”

악불비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곽문이 망설였듯 역시 적잖은 위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룡은 계속 부탁했다.

“어려우시다면 친구들만이라도 함께 움직이게 해 주십시오. 혼자서라도 갈 생각입니다.”

결국 악불비도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사윗감임을 고사하고라도 예사 청년이 아니었다. 금나한이었던 몽마 정진을 깨었고, 춘추대회를 제패, 호면도황까지 무너뜨린 그.

약관에 이 정도의 실력을 지닌다는 것은 집념의 화신이라 봐야 했다. 아무리 부친인 막여사가 있었다 해도 본인이 사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런 성취는 불가능했다. 처음이다 싶을 정도로 칼날 같은 정광이 비치는 눈하며, 정말 혼자서라도 추적할 기세다.

“지원하게 하지.”

추적대가 편성되었다.

곽문을 중심으로 추룡과 친구들, 순욱 등 단주들 중에 지원자가 스무 명, 내삼단 전체 지원 등 칠십여 명으로 구성된 추적대였다.

겨울 은폐색인 두터운 흰색 방한복에 호구, 창과 검, 포사들의 협조를 받아 각궁角弓으로까지 무장했고, 산악에 노련한 곽문의 지시에 따라 밧줄을 준비하고 신발 속에 마른 통고추를 넣고, 신발창에 쇠 징까지 박았다.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해 필수라 강조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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