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65화 (65/150)

# 65

부자유친父子有親 (3)

그런 반면 세에 떠밀려 아들을 멀리한 아버지도 있었고, 어떻게든 그마저 부자의 연을 끊으려 드는 인물들도 있었다.

네 가지 물건이 담긴 상자.

모처럼 악몽을 꾸지 않은 그의 정신은 다른 날과 달리 맑았다.

주위에 오랜만에 중신들이 찾아와 있었다.

하지만 반갑지는 않았다.

“좋지 않사옵니다. 북평의 지하에 비밀 공장이 설립되어 있사옵고 밤낮없이 화포火砲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합니다. 거위를 수만 마리나 키워 소리까지 감추고 있다고 하니 필시 이는 대란의 징조입니다. 내부 감찰을 허락하소서.”

자리에 누운 채 그는 무겁게 천장을 쳐다봤다.

황금의 용이 꿈틀거리는 조각들. 허망할 뿐이었다.

“또 모함이냐?”

“모함이 아니옵니다. 뿐만 아니라 병력 역시 계속 증강시키고 있사온데 감찰사가 도가 넘으니 중지하라고 해도 아랑곳하지를 않는다 합니다. 상태가 정말 좋지 않사옵니다.”

이들은 올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큰아들을 가슴에 묻고 난 후였다. 그의 큰아들은 절맥切脈의 몸으로서 어려서부터 병약했는데, 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는 그 자리에 넷째 아들을 올리려고 했었다. 많은 아들을 두었지만 가장 사랑하는 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지 못했다. 몇 가지 까닭이 있었는데 첫째가 우선 법통 때문이었다. 장자長子를 중시한 중원의 가계에는 큰아들이 죽으면 집안의 대를 장손長孫에게 물리는 전통이 있었다.

저들이 그것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또한 넷째라 했듯 위에 두 형이 더 있는 게 문제기도 했다. 법통을 무시하고 아들에게 대를 물린다 해도 다음인 둘째에게 물려야지 넷째는 불가하다는 이야기였다.

이 사항에서 그는 큰 어려움을 느꼈는데 더 큰 난관은 다음이었다. 그에게는 많은 아들들이 있었지만 적자嫡子가 없었다.

환란의 시대에 태어난 그는 일생을 풍운 속에서 살았고, 그 속에서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 혼인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삼처 사첩이 흔한 시대이고, 역대의 군주들이 그래 왔듯 그도 후실들을 두었다.

지금의 아들들은 모두 후실들의 태생들이었는데, 처는 그중 좋아 보이는 아이들을 적자인 양 거두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는 일이었다.

한데 넷째를 낳은 소실은 한족이 아니었다. 온전한 한족의 피를 잇지 못했다는 불리함이 있었던 것이다. 이 세 가지 사항이 불가하다는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핑계일 뿐 진실은 아니었다. 두 형 역시 그를 인정하고 있으되 더 정확한 까닭은 그의 성격과 자질 때문이었다.

그는 시야가 넓고 성격이 대쪽 같으며 아첨을 좋아하지 않았고 원칙을 기준으로 매사에 임하는 점이 있었다.

이 성격이 주위에 위협이 되었다. 세상이 그렇게 청백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원칙을 고수하는 사람은 적이 많게 마련이었고, 늘 따돌림 받는 게 세상이었다. 눈감을 것은 감아 주고 덮어 줄 것은 덮어 줘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던 것.

이로 인해 저들이 반대하고 나섰던 것이며, 여기에 자신은 밀렸다.

눈을 감을 때마다 보이는 피의 바다.

그것 때문이었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기에 그에게는 적이 많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저들에게 힘을 주었으나 그 힘이 회수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저들이 없으면 안 되었다.

결국 뜻을 수렴해 손자를 후계로 세웠지만 여전히 저들은 넷째 아들을 경계하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밀어낸 만큼 어떻게든 제거하려 하는 눈치였다. 아니, 어쩌면 아들들을 다 겨냥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날이 힘이 강성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뜻이기도 했는데, 이로 인해 이젠 저들이 없어도 된다. 여기에 몸만 성하다면……. 딱 하나 그것이 문제였다. 병상에 누워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비로소 말하자면 그는 주원장朱元璋이라는 대단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당치가 않다. 비록 여기 누워 있지만 그곳의 사정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언제나 전쟁인 곳이지. 적들은 세를 키워 하루가 멀다 하고 습격을 감행해 오는데 강군强軍을 두지 않고 어찌 막아 내겠는가. 병력을 증강시킬 때는 증강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거위를 키우는 것 역시 같을 것이지. 그는 지혜롭다.”

늘 사용하던 방법을 썼다.

“정히 우려된다면 그를 불러들이겠다. 대신 그대들이 가서 북고北顧의 우려를 잠재워라. 누가 가겠는가?”

“그건……!”

그들은 멈칫하는 기색을 떠올리며 입을 다물었다.

사실 말하고 있는 그의 넷째 아들이 가 있는 곳은 지극히 위험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이 벌어지는 험지 중의 험지인 곳! 곧 겨울이 닥쳐올 것이지만 콧물이 얼어 떨어진다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 자신들이 왜 가는가.

더욱이 그가 중앙으로 오기까지 한다면……!

슬그머니 눈치를 보며 그들은 물러섰다.

한심한 놈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염불보다 잿밥이라더니 이건 잿밥에만 정신이 팔려 염불도 잊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염불은 할 생각도 않고 잿밥만 챙기려 하는 것과 같다.

상잔의 꿈, 이래도 저래도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그들은…… 물러나서도 잿밥 생각이 가득한 것 같았다. 어쩌면 염불은 할 줄 몰라도 부처를 위해 잿밥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정말 좋지 않구려. 아무리 간해도 허하지 않으시니.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어떤 문제를 말하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필경 적잖은 일이 벌어지고 말 것이오. 아무래도 차선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싶소.”

“어렵다고 결론 나지 않았소. 한데 어떻게?”

“원교근공遠交近攻이오. 보완하여 보았소.”

그들은 지극히 위험한 일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정말 부처를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손자孫子나 공명孔明이 지하에서 들었다면 대소를 지을 만한 잿밥 놀이였다.

추적 (1)

“하아아압!”

파파파팍-!

“허이!”

쿵!

“앗!”

와당탕!

“헛헛……! 잘하는 것 같지만 경험이 부족해. 뚝심도 더 길러야겠어. 힘들 내.”

“햐……!”

악충보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전체로 보면 크다 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지만 내당內堂에 특과가 생긴 것이었다.

무예의 수위를 재조절하기 위해 재질이 있는 젊은 수하들과 노련한 수하들을 적절히 섞어 시범적으로 만든 특과. 총 사십이 명으로 구성된 단丹으로서 내삼단이 채택되었고, 두 사람이 더 보충되어 한자방과 신학철이 가세했다.

친구들과 함께 춘추대회에 출전하여 개인전을 휩쓸었던 그들.

소속은 그대로 외당이었지만 대표로 참여시킨 것이었다. 사옥 역시 상당히 좋아졌다. 기밀을 유지한다는 차원으로 연무장에서 멀지 않은 두 동으로 된 별원을 숙사로 바꿔 이주를 시킨 것이었다.

생긴 까닭이야 뻔한 것이다. 방치하자니 삼단의 사람들이 단주 이상, 향주들이 쓰는 창법을 수련하므로 타 단과 이미 차별이 생기기 시작했고, 사윗감이 된 추룡까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한 것이었다. 숙사 하나만 바꾸어 준, 그야말로 약소하다 봐야 할 배려였지만.

하지만 삼단에 있어서는 보통 작은 변화가 아니었다. 숙사까지 옮겼을 정도에 차원이 다른 무예까지 수련하는 만큼 이만저만한 변화가 시작된 게 아닌 셈이었다.

친구들에게도 적잖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무예 부분에서 우선 그랬는데, 개인전에 나가 우승까지 한 상태였지만 함께 수련하다 보니 선참들에게 맞서기가 실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선참들 역시 칠우창법을 수련하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파훼식까지 흘리지는 않았지만 더 오래 무예를 수련하고 경험까지 풍부한 선참들이라 같은 창법을 쓰면 그냥 나가떨어지는 등 순식간에 친구들을 따라잡고 있었던 것이다. 한자방, 신학철의 경우는 오자마자 된통 당하고 있었고.

호랑이들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것이었다.

“안 되겠어! 방심했다가는 완전히 밀릴 판이야!”

문제가 생긴 만큼 또한 변화에 변화가 더 보태지지 않을 수 없었다.

추룡이 영웅전에서 선전하는 것을 보며 노력할 것을 결심했던 친구들이었지만 주위 상황까지 이렇게 되다 보니 더욱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부님! 계획적으로 이런 거지?”

“응? 내가 뭘?”

“선참님들에게 무예를 전한 것 말이야! 우리가 게을러질까 봐서 그런 거 아냐?”

“몰라, 난 그렇게 깊이 생각하는 거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싱글벙글, 음흉하게 추룡이 웃는 속에 친구들은 자발적으로 발 벗고 수련에 나서기 시작했다. 알려진 대로 악충보의 기상 시간은 묘시卯時였고, 식사는 묘시 중반부터. 진시에 업무가 시작되므로 아침 시간은 꽤 한가한 편이었다. 그러나 친구들은 일어나면 바로 대광장으로 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반 시진 내내 달려 땀이 범벅이 된 다음에야 후다닥 물을 뒤집어쓴 후 식사를 하고 업무 채비를 했고, 유시酉時에 일과가 끝나면 쏜살같이 다시 연무장으로 달려갔다.

한 시진 동안 수련을 하고 나면 다음은 심법 수련이었다. 별원이 숙사가 된 만큼 칸을 따로 둬 심법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어 술시戌時가 넘어서야 잠을 잘 정도로 집중하기 시작했던 것.

경계 임무 역시 시작되었다. 수련 문인 때는 하지 않았으나 견습 기간이 다해 감에 따라 일반과 똑같이 야간조로서 밤에 번을 서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 다음 날은 오전 비번이 되었는데, 역시 연무장에서 살다시피 하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저기 있는 장작, 속하가 패면 안 되겠습니까?”

“해 주면 우리야 좋지. 그게 왜 죄송해?”

“옛! 그럼……!”

“아, 그쪽에 있는 나무는 말랐어. 조심해야 할 거야.”

“주의하겠습니다!”

퍽! 퍽!

임백호의 경우는 아예 취사장 주변까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힘을 키우기 위해 취사반으로 가서 땔감을 패는 것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작을 패며, 그는 비로소 전에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강한 허리와 손목, 어깨 등을 만들기 위해 장작을 패는 무인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마른 장작을 팰 경우는 집중에 순발력까지 늘어난다는 사실이었다.

대단히 위험한 일로서, 언급되었듯 서투르게 마른 장작을 패다가 크게 다치거나 눈까지 잃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크고 작은 파편이 튀기 때문이었는데 튀는 것은 허리를 숙여 나무를 찍는 순간이고, 튀는 속도조차 상상을 넘어서므로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던 것.

언제 튈지도 모르는 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집중해야 하는 것으로, 무예로 이야기하자면 돌발 사태다. 생각지도 않은 수법을 언제 전개해 올지 모르는 적과 같았다.

마음 놓고 패다가도 돌발적으로 날아드는 파편을 쉽게 피할 정도의 감각이 생긴다면 실전에서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흠흠……!”

음흉한 데가 있는 임백호는 이런 사실을 숨겼다. 천만인의 오빠는 열 살부터 했던 일이었는데 큰 비밀을 발견했다 생각하여 나름 흐뭇해하고 있었다.

“고마워, 막 형. 덕분에 모든 일이 잘 해결됐으니.”

싱글벙글 웃음까지 추룡을 닮아 갔다. 친구들이 모두 잘 풀리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일이 생긴 것은 역시 그인 셈이다.

반항아로서 가출까지 했던 터에 부친과 화해하고 신념을 지닌 채 원하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능설운이라는 아름다운 연인까지 생겼으니.

이런 친구들을 보며 추룡은 언제나 미소 지었다. 노력하고 있는 자체가 아름다웠고, 그 자신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강도强度가 달라 함께 수련할 수는 없었지만 마침내 악충보의 업무에 눈치가 빠삭해져 일과가 끝나면 계곡으로 가 나무둥치를 치고받고, 부담 없이 심법 수련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어 봉황산을 오르내릴 때처럼 된 것이다.

그 외에 달라진 것은 없었다. 드디어 악벽강과 정혼까지 한 상태였지만 외부에 알려진 것은 없고, 친구들과 함께 지내기를 원하므로 악불비도 모른 척 이 특이한 사윗감을 자유롭게 내버려 뒀다.

변함없이 악벽강도 미소를 머금은 채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스스로를 드러내기 싫어하므로 방해하지 않으려 마음먹은 것이다.

그래도 한 지붕이나 다름없는 곳에 있는 만큼 언제든 조용히 만날 수 있었고, 충분히 미덥다.

혼인은 명년 가을로 결정되었다. 원래는 다음 과시까지 친구들과 함께 악충보에 머물기로 작정하였으나 상황이 변하므로 명년 봄까지, 전소가 혼인을 하면 추룡과 함께 남평으로 가 장완옥에게 인사를 한 후 식을 올리기로 했던 것.

무엇보다 시어머니의 마음에 들어야 할 것이므로 한고비가 더 남아 있었지만 막여사가 허락을 했고, 설득해 줄 것이므로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혼례를 하는 만큼 생전 해 보지 않은 바느질과 요리를 배우는 등 나름대로 또한 신부 수업을 하고 있었고 그런 사이 한 달, 휘주에 첫눈이 내렸다.

“이야……! 굉장하군! 이런 거였었나?”

깨어나니 하얗게 변한 세상, 하얗게 변한 황산.

달려 나간 추룡의 앞에는 장엄한 은빛 세상이 펼쳐져 있었고, 순간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친구들과 단의 선참들은 모두 빗자루를 들고 나섰다.

“헛헛……! 막 삼호, 눈 처음 보나? 아, 그래. 집이 복건이라고 했지?”

친구들은 어느새 삼 자가 수놓아진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조금 일렀지만 특과가 되면서 묶도록 한 것이었다.

“옛! 복건에는 눈이 오지 않습니다! 겨울도 따뜻해서 얼음도 못 봅니다!”

“헛헛……! 우리야 해마다 보는 거니 그냥 좋다 싶을 정도고 치워야 하니 귀찮을 뿐이지. 그래도 황산의 동설冬雪이 천하제일이긴 해. 처음 보는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지지.”

“옛! 정말 그렇습니다. 봄에 왔지만 여름도 멋졌고, 가을도 좋았지만 저 장엄한 정경은 정말! 햐……!”

동설로 천하제일을 자랑하는 눈 덮인 황산의 정경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깎아지른 듯 치솟은 웅장한 봉우리마다 들어선 소나무들에 피어난 눈꽃은 그대로 보는 이의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대절경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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