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속 썩는 부친들 (7)
십오 년 전이라면 모두가 청년이었을 것이다. 덕담일 뿐이지 피차 변하지 않았을 리 있겠는가.
막여사는 계속 미소 지었다.
“만날 때마다 상황도 비슷한 것 같아. 막여사라 하면 자네도 머리가 아플 테지만 당시에도 만날 때마다 사고가 생겨 쫓아가곤 했었는데. 희한치도 않게 십 년이 넘어 나온 터에 여기에서 또 자네를 보게 될 줄 몰랐군. 참 괴상한 인연이다 싶네.”
피식, 임대백도 실소 지었다.
“수하들이 뭔가 무례를 범한 것 같군요. 당시에도 귀신이다 싶긴 했습니다만 여기에 있는 것을 어찌 아셨습니까?”
귀신.
“우연이었네. 오후에 이 주루에서 차를 마신 적이 있었지. 보니 대단한 기도를 가진 무사들이 오가며 식사를 하던데 수효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았어. 한데 같은 차림의 무사들이 아들 녀석을 공격하더군. 검을 쓰는 수법이 홍묘였네. 여기에서 본 무사들이 오륙십이 넘고 아들을 공격한 게 서른이 넘었는데, 그 정도의 무사들이 움직였을 정도면 자네도 왔을 것 같았고, 여기에 있을 것 같았어. 친구의 일로 봉변을 당하고 있다는 것 같았는데 무슨 사연인지 들어 보고 화해를 구하려고 왔네. 자네들의 문화가 워낙 한번 적이다 싶으면 끝장을 보는 편 아닌가.”
임대백은 거듭 실소 지었다.
“제 뜻이 아닙니다. 아마도 큰놈과 함께 있었던가 보군요. 수하들이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막여사는 서두르지 않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도 똑같군. 맞아. 예전에도 늘 그렇게 대답했어. 문제가 생겨 쫓아갈 때마다 자네 뜻이 아니었다고. 긴가민가해서 고개만 갸웃거리곤 했었지만, 그런데 이번엔 아주 딱 걸린 것 같네. 현행범이거든. 같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로 서른 명이나 되는 녀석들이 칼을 막 휘두르면서 죽이려고 달려들었다는 것인데, 이거 분명히 살인미수 맞지?”
임대백은 계면쩍어졌다.
“송구스럽습니다만 정말 제 뜻이 아니었습니다. 큰놈이 하도 말썽을 부리는 터인 데다 가출까지 해서 찾으러 왔던 것인데, 휩쓸려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대신하여 사죄 올리겠습니다.”
막여사는 거듭 빙그레 웃음을 머금었다.
“응, 사람을 죽이려고 마구 칼을 휘둘러 놓고 사죄. 딱 죽여 놓았으면 어쩔 뻔했나? 그때도 내 뜻이 아니니 사죄?”
이래도 저래도 임대백은 난감해졌다.
막여사는 빙그레 웃으며 타일렀다.
“모처럼 자네를 만나 전에 들었던 말을 또 들으니 그 시절로 돌아간 같아서 기분이 좋네만, 다시 생각해도 자네들 문화는 너무 거친 것 같아. 나름 사정이 있다는 것도 알고 맺힌 것이 있다는 것도 알지만 만날 때마다 이래서야 어디. 삼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
서두르지 않고 조용조용 물었다.
“어쨌거나 무탈하니 되었고, 내용이나 좀 들어 보세나. 내 아들과 자네 아들이 친구라니 어찌 이런 묘한 인연이 있는가 싶네만, 대체 어찌 된 사연인가? 큰아들인가?”
임대백은 선선히 대답했다. 한족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딱 하나 인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막여사였다.
“그렇습니다. 또 이렇게 장군을 뵈어 유감이긴 합니다만 큰아들입니다. 아들 둘을 두었는데 어릴 때부터 말썽이 좀 심했습니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늘 겉돌기만 하더군요. 우리 쪽 규칙이 엄한 것을 아시겠지만 아마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삼 년 전에 내자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조차 제 탓인 양 반발을 하곤 해서 마음도 잡게 할 겸 청묘, 한사寒士의 딸과 정혼을 시켰지요. 혼인을 하면 마음을 잡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화근이 되어 아예 가출을 해 버리더군요. 수하를 보내 몇 번 찾긴 했는데 그때마다 도망치고 해서 직접 온 것입니다.”
“속이 많이 썩었겠군.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찾았으니 끌고 가서 혼인시키려고?”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었습니다만 포기했습니다.”
임대백은 고개를 저었다.
“삼 년 만에 다시 보니 어른이 된 것 같더군요. 가출 전에는 분명히 멋대로의 반항이었습니다. 차갑게 사람들을 대하는 제 모습도 싫고, 주위 방파들과 대립하는 것도 싫고, 엄한 규칙도 싫고, 공부도 싫고, 뭐건 다 싫은 그런. 불만을 말하라 해도 정확히 말하지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여러 면에서 맞지 않으니 그랬겠지만 무조건 싫을 뿐,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입니다. 한데 지금은 명확히 싫은 이유를 찾아 이야기하더군요. 머리가 다 큰 녀석을 아비인들 어쩌겠습니까.”
“뭐라던가?”
임대백은 무겁게 고소 지었다.
“원인이 된 것은 역시 관습법인 것 같더군요. 사실 폐쇄적이라 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족을 인정치 않는 것 말입니다. 특히 한족의 경우는 더욱 그런데, 아시겠지만 한족들은 늘 우리를 핍박하고 중원에서 밀어내려고 하지 않습니까. 사교에 이단異端이라 몰아세우기까지 하면서요. 밀리지 않으려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등을 돌리게 되었는데, 지금도 똑같이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사교라 몰아붙이고, 걸핏하면 영역으로 침범해 오곤 하는 상태입니다.”
“아직도 그런가?”
“마찬가지입니다. 장군을 처음 뵌 것도 황강삼십육채黃岡三十六寨와의 싸움 직후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큰 싸움이었지요. 그때도 우리 뜻이 아니었다 말씀드렸지만 실제 우리가 실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교라 하여 먼저 공격해 왔고, 반격으로 섬멸시켰던 것입니다. 묘족이란 이유가 늘 좋은 먹잇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향용들 따위와 싸워 봐야 사실 득이 될 것도 없습니다. 우린 자급자족하는 영토를 가지고 생활하고 있지만 향용은 남의 땅을 지켜 주는 것으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개인 영토를 지니고 사는데도 사교 어쩌고 하면서 늘 공격해 오곤 한단 말입니다.”
“세상 참 엄하게들 사는군.”
“그런 것 같더군요. 어쨌거나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모여 살 수밖에 없고, 지키려면 강해져야 하고 냉정해야 하는데 녀석은 그게 불만이었던가 봅니다. 그래도 뜻은 틀리지 않는 것 같더군요. 자꾸 문제가 생기는 게 손을 마주쳐서이고, 융화하지 못한 채 겉돌기 때문이니 나름대로 노력해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보겠다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하라 하는 수밖에요.”
막여사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한 생각 아닌가?”
“장합니다. 제 자식이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재능이 있습니다. 비뚤어질까 몹시 걱정이 되었었는데 오늘 다시 보니 정말 노력한 흔적이 보이더군요. 가출 당시보다 생각도 어른스러워졌고, 훨씬 강해진 느낌도 들었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친구를 만나 본받고 있다는 것 같았는데, 설마 그가 막 장군님의 자제인 줄은 몰랐습니다. 더 안심이 됩니다.”
막여사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예전엔 뭐든 옳다고 우겨 대더니 자네도 늙었군?”
피식, 임대백도 웃었다.
“세월이 어디 갑니까? 저도 내일모레면 오십인데요.”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지. 잠깐 봤지만 아이가 참 좋아 보이더군.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아이라 들었고. 그러면 풀어 주는 게 옳은 것일세. 법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은 법이 있으면 살 수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니. 구겨 넣으려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게 해 주는 게 부모의 도리인 거지. 대리사에 재직하면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쫓아가곤 했지만 본 중에 이번에 한 일이 제일 잘한 것 같네.”
막여사를 대하는 임대백에게는 차가운 모습이 없었다.
“꽤 신세를 졌었습니다만, 보다 어찌 된 일이십니까? 다시는 뵙지 못할 줄 알았는데 여기에 어쩐 일로? 아드님이 악보에 있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막여사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 어찌 된 일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사실은 나도 녀석 때문에 골치가 좀 아픈데, 서툴게 무예를 수련한다고 설치는 것 같더니 무과에 응시하겠다고 하더군. 어쩔 수 없어서 올 초에 승낙을 했었네. 한데 오던 길에 항주에서 사고가 생겼었나 봐. 와중에 자네 아들과 몇몇 친구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 과시 날짜는 놓쳤고, 내친김에 함께 악충보로 몰려갔던 것 같네.”
“기막힌 인연이군요. 장군의 아들과 제 아들이 그렇게 만나다니.”
막여사도 이마를 주억였다.
“기연일세. 하지만 아무래도 녀석을 끌고 가야 할 것 같아. 평소에도 권모술수가 여간 아닌 곳이 관부지만 또 큰일이 벌어지려는 조짐이 비쳐서 말일세. 가능한 조용히 자네도 집안 단속을 해야 할 거야.”
임대백의 얼굴에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뭔가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까?”
막여사는 신중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치는 않지만 예전에 겪었던 일 이상이 될 것 같네. 자칫하면 국호國號가 또 바뀔 수도 있네.”
“-!”
임대백의 눈이 한 번 더 찢어지게 치켜뜨여졌다.
어린아이라도 전쟁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어디와의 싸움입니까?”
막여사는 삼갔다.
“나도 정확히는 알 수 없네. 하지만 분명히 일어나. 누가 시작하고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위기일세. 이런 시기에는 무조건 집안 단속부터 하는 것이 상수이지. 환기해서 여간한 일이 있더라도 참도록 하게나.”
모른다.
분명히 정확히 모를 수 있었다. 그 역시 낌새를 눈치채게 된 것은 친구 이순문이 찾아와 흘린 어떤 이야기로 인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또한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친구들의 만남에서부터 너무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기연에서 기연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들의 만남이 중원의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게 될 줄은.
막여사도 몰랐고 임대백도 몰랐고, 귀신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싱글벙글, 추룡은 당연히 더욱 몰랐다.
“굉장하군! 설마 자네가 저 유명한 일월교의 소토사였을 줄이야! 운남에서부터 호남, 귀주, 호북에 이르기까지 뻗치는 힘이 실로 막강하다 들었는데, 거의 황태자나 다름없잖아? 만인의 오빠 인정하네!”
“거, 놀리지 좀 마. 나야말로 자네가 막 장군님의 아들인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아버님께서 대한장군이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왜 바보같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지……. 천하제일검인 부친이라니?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와.”
사실 둘 다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비밀일세.”
“나도 그래.”
어쨌건 비리가 같이 드러났으므로 함께 감추기로 했다.
“그런데 대체 왜 가출을 한 건가?”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으므로 임백호는 그냥 대충 넘겼다.
“청묘의 소저와 혼인을 하라고 하셔서. 얼굴도 모르는 소저인데 무섭더라고. 그래서 내뺐네.”
“하하!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더니만! 그래서 이젠? 잡혔으니 큰일 난 거군. 가서 혼인하는 건가?”
“아니. 아버지와 합의했네. 동생에게 후계를 넘겨주고 나는 따로 일가를 이루기로. 능 소저와 혼인할 생각일세.”
“와……!”
추룡은 적잖게 놀랐다.
“그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심이 아닌데! 정말 놀랍네! 역시 자네다운 것 같아.”
분명히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심이 아니었다. 막여사와의 대화에서도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제 마오의 힘은 막강했다.
소수라 해도 중원에 자리 잡은 한 종족의 집결체로서 자체가 거대한 영토를 지니고 있었고, 강력한 무력까지 지녔던 것.
그래서 수장을 토사라 칭하는 것이었는데, 지닌 땅 자체가 사유재산이었으므로 그 테두리 안에서의 수장은 왕이나 같았다.
임백호는 이런 직위를 버리겠다 한 것이었다.
“한데 청묘는 뭔가? 홍묘와 다른 건가?”
임백호는 간단히 설명해 줬다.
“같은 마오인데, 거주하는 지역이 다르네. 간단히 호남, 호북 쪽에 지내는 우리는 홍마오라 불리고 귀주 쪽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청마오, 운남 쪽에 지내는 사람들이 흑마오, 그래. 안남(베트남)에도 진출해 있는데 흐몽마오赫蒙苗라고 하네.”
“굉장히 광범위하군?”
“그런 편인데, 청묘의 소저들은 무서워. 고독蠱毒도 막 쓰고 그래. 걸렸다 하면 용빼는 재주가 없네. 그래서 매혹魅惑보다 강하게 사용되는 고혹蠱惑이란 말까지 나왔네.”
“이상한 벌레 같은 걸 남자 몸에 넣어서 부린다는 그것 말인가?”
“용고龍蠱라 하네. 숲 거머리의 일종인데 직접 보진 못했지만 남자가 딴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하는 거래. 혈관 속에서 피를 먹고 살지. 그러다가 부리는 사람이 죽으면 심장으로 들어가서 남자도 같이 죽어. 이유 없이 동생동사同生同死야. 용빼는 재주가 없다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일세.”
추룡은 입을 쩍 벌렸다.
“나 같아도 그런 소저와 혼인하라고 하면 내빼겠네! 무서워서 어디 같이 살겠나?”
“그런 걸세.”
임백호는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만만하게 혼인을 승낙해 주실 눈치가 아니셔. 능 소저를 만나 보고 마음에 들어야 허락해 주시겠다는 이야기셨네. 내일 데리고 와야 하는데 마음에 들어 하실까? 더 문제는 능 소저와 아직 그 정도의 관계까지는 아닌데, 어찌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어.”
춘추대회에 뭐에 사실 그다지 만날 시간도 없었다.
추룡은 걱정스러워하는 친구에게 힘을 줬다.
“염려 말게! 틀림없이 마음에 들어 하실 걸세. 가문이나 재산을 따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람 하나만 놓고 보면 능 소저만 한 소저가 어디 있던가. 인물도 곱고 얌전하지, 서예까지 한다고 홍이에게 들었네. 남자도 글공부를 하기 어려운 세상인데 무조건 딱이야!”
사실 여자가 공부를 하기 쉬운 시대가 아니었다.
“능 소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게. 일단 새벽같이 달려가 꽃이라도 들이밀면서 청혼을 하는 거야! 영주의 지위까지 포기한 자네인데 진심을 몰라줄 처녀가 있겠는가? 딱 부러지게 일편단심이니 혼인해 달라고 부탁하게!”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질 것은 생각도 않고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괜찮지 그럼! 이백 할 보증하겠네! 내가 능 소저라도 좋다 할 거고, 내가 토사님이라도 허락할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