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61화 (61/150)

# 61

속 썩는 부친들 (6)

임백호 역시 만만치 않게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단이 어떻다고 그리 말씀하십니까. 말단이 없는 한 수장도 없는 것이온데.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것을 가지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출신 하나로 무조건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자의 나이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절차를 밟는 것이라 봅니다. 소자는 더 이상 홍묘의 소토사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임대백은 냉소 지었다.

“포기한 것은 네 녀석이지. 게으를뿐더러 가르침에 따르지 않았고, 늘 반항만 해 왔으니. 더욱이 악보는 우리의 원수나 같다. 그것은 아느냐?”

특이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임백호는 고개를 저었다.

“집을 나서기까지 가르침 받아 온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다는 것인지 소자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물론 남송의 악비 장군은 금金과 싸웠습니다. 금이 팔족의 하나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수백 년이나 지난 일일뿐더러 그는 남송의 사람이었습니다. 알기로 당시 송을 먼저 공격한 것은 금이었고, 나라의 안위가 위태로운 상태에 송의 사람인 그가 전장에 나선 것인데, 이를 원수라 하면 세상에 원수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악보에 입문할 마음이 있어 한 것은 아니지만 악묘에 들렀었습니다. 과연 그가 원수인가 하여 수십 차례를 되물어 보았는데 이런 대답을 하는 것 같더군요. 나는 송의 사람이었고, 침략받아 싸웠다고요.”

뭔가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또 탁록대전을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더 전에 우리 것이었으니 금이 송을 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정확히 탁록대전은 국토가 확정되기 전의 싸움이었습니다. 광활한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었는데 당시 중원은 임자가 없는 땅 아니었습니까? 확고히 내 것인 상태에서 침략받았다면 모르되 그렇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내 것이고, 싸웠으니 원수다 하면 어찌할 것인지? 팔족은 세계로 흩어졌으나 모두 다른 국호를 세우고 이민족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국토가 확정되기 전의 진출로서, 다들 그것을 인정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우리만 유독 이러고 있으니 혹시 우리만의 아집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지요?”

피식, 임대백은 냉소 지었다.

“한동안 못 본 사이 생각이 많이 큰 것 같다만 그들과는 경우가 다른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으뜸이니 우리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릇된 것일 것이다. 하나 그들은 유사 이래로 계속 우리를 핍박해 왔고, 지금도 고양이족, 사교 등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과 융화될 수 있다고 보느냐?”

임백호는 똑같이 고개를 저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집을 나온 후 오랫동안 많은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수년간 소자가 만난 사람들 중 묘족에 대해 먼저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자세히 아는 사람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이야기할 때야 눈살을 찌푸리곤 했는데 그나마 묘족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극소수로 아는 사람들도 우리가 바른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매듭이 있으면 풀어야 할 것인데 독자적인 성향이 강하여 매사에 대립각부터 세우니 좋게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묘족은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묻더군요. 저 역시 의문인데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인 것인지요?”

역시 복잡한 이야기.

임백호는 자신이 묻고 자신이 구한 대답을 했다.

“정확하게 저는 명明나라의 묘족이라 생각합니다. 명나라에서 태어나 명나라에 살고 있으니까요. 오십여 개의 민족으로 되어 있는 명나라의 주인 중 하나인 것입니다. 송 대에 태어났으면 송나라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금이나 원을 옳다고 하니 누가 좋다고 하겠습니까? 조정에서도 경계할 수밖에 없지요. 솔직히 금이나 원이 우리에게 해 준 것도 없지 않습니까. 같이 핍박받았고, 같이 지배당했지요.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서 매일같이 칼을 갈고, 걸핏하면 주위 세력들과 싸우며 폐쇄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이런 것이 싫었고 아버지의 그런 표정도 싫습니다. 그로 인해 어머니도 병들었었고, 소자도 뜻에 따르기 싫었습니다. 오히려 집을 떠나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피식, 임대백은 다시 냉소 지었다.

“너같이 게으른 녀석이 무슨 노력을?”

임백호는 확고하게 대답했다.

“좋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너무 부럽더군요. 마오의 후계자로서 노력했다면 소자 역시 비슷할 정도는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고,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 아래에서는 분명히 아니었다고 봅니다. 하여 후회하지는 않습니다만 떠난 만큼 지금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소자의 앞날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묘의 사람임을 포기했다는 이야기냐?”

앞뒤가 잘린 이야기라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었지만 임백호는 변함없이 확고하게 대답했다.

“묘의 사람이 어찌 묘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뜻은 달리할 것입니다. 소자는 친구와 함께 대리사의 사람이 될 것이고, 혼인하여 따로 일가를 꾸릴 생각입니다. 마음을 둔 좋은 사람도 생겼습니다. 집을 나온 결정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만, 대체 왜 소자가 얼굴도 모르는 청묘靑苗의 딸과 정략혼인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처해 있는 분위기조차 죽기보다 싫었던 터이온데 무조건 해라, 묘족이니 묘족과만 혼인해야 한다, 너는 소토사니 더욱 그러하다. 도무지 이해조차도 가지 않으며 모든 일들이 폐쇄적이라 생각합니다.”

휙, 고개를 저었다.

“소자보다 백표白豹가 재질이 탁월하고 효성 역시 지극하니 백표를 후계로 삼으시고, 원컨대 부족한 소자는 이대로 내버려 두셨으면 싶습니다. 차라리 목숨을 원하신다면 바치겠습니다만 생각을 종용하셔서 얻으실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뭔가가 희미하게 드러나는 것 같았다.

“……!”

이러한 아들을 임대백은 싸늘히 직시하며 물었다.

“묘의 사람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이족異族의 딸과 혼인하고 대리사의 관료가 되어 따로 일가를 꾸리겠다 하면? 정확히 네 뜻은 무엇이냐?”

“사람인 만큼 뿌리를 알고 자신이 누군가는 알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오나 뿌리내린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자는 중원에 사는 중원의 묘족으로서, 좋은 결실을 맺어 주위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살고자 합니다. 천 년을 넘게 한 땅에 살고 있으면서도 무조건 묘족, 이것은 영원히 주위와 융화되지 못할 사고라 생각하오니 헤아려 주십시오.”

“그래도 주위가 핍박한다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려도 소자는 집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친구들을 알았사온데, 소자가 묘족이라 하여 싫다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봅니다. 한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소자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사귀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묘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싫다고 하면 바로 포기하고 청묘의 딸과 혼인하겠습니다. 아닐 경우라면 소자의 길을 걷도록 해 주셨으면 싶습니다.”

임대백은 계속 싸늘히 임백호를 바라봤다.

“한심한 놈이로군. 주어진 복을 차 버리고 이족의 딸과 혼인하여 가시밭길을 가려 하다니. 한들 세상이 그렇게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

임백호는 변함없이 확고히 대답했다.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소자는 정말 훌륭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언제나 웃는 좋은 친구로서 천만뜻밖에도 그는 지닌 절기까지 망설임 없이 주위에 나눠 주더군요. 내 것이 아님에도 아깝고 하여 그렇게 나눠 줘 모두가 강해지면 어쩌려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노력해서 자신은 더 강해지면 된다고 하더군요. 더불어 크는 것에서 세상은 발전하는 것이라고요. 소자는 그 정도의 그릇이 못 되지만 정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받아 소자 역시 노력할 것입니다. 비록 홀로, 이제 시작할 것이나 마침내 홍, 청, 흑, 모든 묘족을 능가할 대가를 이뤄 모두가 잘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반면 소자를 끌고 가신다면 쓸모없는 시체를 끌고 가시는 것이나 같을 것입니다.”

맑은 정광이 흐르는 눈, 함께 생활하다 보니 닮아 가는 것인지 차분한 태도 속에 힘과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

이런 그를 임대백은 또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아비의 말도 듣지 않는 놈이 처음부터 끝까지 친구 타령이군! 아무래도 네가 희한한 놈을 만난 모양인데, 그렇게 하면 너는 홍묘의 일족에서 제적될 것이다! 토사로서 이런 생각을 하는 놈은 용서할 수 없으니! 그래도 좋으냐!”

임백호는 무릎을 꿇으며 결연히 대답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축출되어도 소자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완전히 결심을 굳히고 있는 것이었다.

“……!”

무엇인가를 찾기라도 하려는 듯 이런 임백호를 임대백은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굳어져 있었지만 눈빛은 맑았고, 흔들림도 두려움도 없었다.

저변에 큰 자신감과 의지가 보였다. 이것은 분명히 그가 아는 임백호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자신을 끌고 가는 것은 시체를 끌고 가는 것이나 같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런 녀석이라면……!

임대백은 휙,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해도 혼인은 멋대로 안 된다! 하더라도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다. 축출은 둘째 치고라도 나에게는 아들이니!”

“아버지!”

순간이었다. 임백호의 눈이 본 중 가장 크게 휘둥그레졌다.

임대백은 싸늘하게 계속 말했다.

“봐서 시원치 않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겠다. 청묘의 딸이 아니라 해도 묘의 처녀가 한둘이 아닌데, 버리고 택했으니 그만한 처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머무를 수 없으니 내일 상오까지 데리고 오도록!”

임백호는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웠다. 그로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꿈이 아닌 만큼 그대로 ‘쿵쿵!’ 연거푸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정녕코 어찌 감사드려야 하올지!”

임대백은 싸늘히 냉소 지었다.

“가졌던 것을 다 잃고 축출되는 놈이 감사라니 어처구니가 다 없군! 가 보도록 해라.”

“예……!”

그렁, 눈에 눈물이 고였다.

한데 이때였다. 임대백에게 있어 실로 뜻밖이라 할 일이 일어났다.

“주군, 송구스러우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사온데 만나시려는지요?”

“손님이라니?”

순간 임대백은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리고 말았는데, 이것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

까닭은 이들 묘족은 언제나 극비리에 움직이는 경향이 있었고, 우두머리인 토사의 움직임은 더욱 그러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밝혀져서는 안 되었고, 설령 밝혀졌다 해도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한데 뜬금없이 손님이 찾아왔다고 하니.

그러나 다음 말로 임대백은 가슴이 ‘쿵!’ 주저앉았다.

“막여사 장군님이십니다. 지난 금의위의. 어떻게 아셨던지 주군이 여기에 계시는 것을 알고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막 장군?”

임대백의 눈이 절로 치켜뜨여졌다.

‘천하제일검……?’

임백호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역시 막여사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름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밖의 음성은 분명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 막 장군님이십니다. 수하들과 시비도 있었고, 꼭 뵙고 싶다 하시는데 어찌하올까요?”

임대백의 눈이 더욱 크게 치켜뜨여졌다.

“시비라니? 무슨 터무니없는! 관직에서 물러선 지 십 년이 넘은 사람이고, 부딪쳐야 할 일이 없는데 그와 왜 시비가 일어났다는 소리냐!”

“그게 좀 확실치가 않사온데, 아무튼 문제가 생겨 있는 듯합니다.”

“일단 모셔라!”

“받자옵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생각하며 임대백은 만나기를 허락했고, 오래잖아 바깥에서 두 사람이 들어왔다.

“막 형!”

“어, 임 형! 역시 여기 있었군?”

더불어 임백호의 눈 역시 커다랗게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들어온 것은 산 같은 위엄이 엿보이는 조용한 모습의 중년인, 천만뜻밖에도 옆에는 추룡이 싱글벙글 웃으며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도무지 뭐가 뭔지. 대단한 충격이기도 했는데 비로소 생각하니 추룡의 성도 막씨다.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는 느낌이 드는 가운데 상관없이 추룡은 들어서자 임대백에게 넙죽 인사부터 했다.

“말학 추룡, 토사님을 뵙습니다.”

하지만 임대백 역시 그가 누군지 왜 막여사를 따라 들어와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도 뭔가 좀 정신이 없는 상태였는데, 일단 임백호에게 물었다.

“아는 아이냐?”

임백호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일단 꾸벅 막여사에게 인사부터 한 후 대답했다.

“말씀 올린 친구입니다.”

“-!”

찰나 임대백의 눈이 한 번 더 크게 치켜뜨여졌으나 곧 정색을 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친구와 일단 나가 있거라.”

“예. 막 형, 우린 밖으로……!”

추룡은 넙죽 한 번 더 인사를 한 후 임백호와 함께 밖으로 나갔고,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막여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임대백에게 아는 내색을 했다.

“오랜만일세, 임 토사.”

딱 한 번, 친구인 이순문이 찾아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는 법이 없는 그였다. 늘 느린 호흡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장군. 뵌 지 십오 년이 넘은 것 같군요. 이리 앉으시지요.”

그제야 임대백도 자리를 권했고 미소와 함께 막여사는 탁자 옆자리에 앉았다.

“벌써 그리된 것인가? 참 세월이 많이 지났군. 그래도 자넨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아.”

“장군께서도 그대로십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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