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속 썩는 부친들 (5)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들이 정말 일월교의 사람들이라면……! 이것은 더욱 예삿일이 아닌 것이었다.
마오苗! 무림이고 뭐고를 떠나 중원에서 가장 배척되고 있는 인물들로서 또한 중원인들에게 가장 적대적인 감정을 지닌 소수민족들을 일컫는 것이었다.
까닭을 이야기하자면 중원의 기원까지 따라 올라가야 했다.
태고 이래로 시작된 중원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이듯 중원에는 오십 개가 넘는 민족들이 뒤얽혀 살고 있었다.
원래 정착해 있던 민족이 한족漢族이라고 하나 정확한 사실은 알 수가 없었고, 어쨌건 중원이라는 거대한 땅덩어리에 살고 있던 오십여 개 종족을 누르고 천하를 통일시킨 것은 한족이었다.
한데 태고 이래로 이 중원을 두고 두 개의 민족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해 싸움을 벌여 왔는데, 그중 하나가 한족이었고 또 하나가 이들 묘족苗族이었다. 놀라운 일로서 이들의 싸움은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시대부터 시작되었을 정도였고.
그 당시 한족漢族들은 자신들의 선조인 황제黃帝로 일컬어지는 탁록, 헌원을 섬겼고 묘족이라 불리기 전에 이들은 가우리(구려-九藜)라 불렸는데, 선조의 수장으로 치우천황蚩尤天皇을 섬겼다.
역사가 증명하듯 치우와 탁록의 탁록대전은 신화로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싸움으로서 치우천황과 이들은 한족들을 화산 한곳에까지 몰아넣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맹위를 떨쳤고, 나아가 아주亞洲는 물론 우랄산맥을 넘어 서유럽으로, 베링해를 지나 북미로, 타클라마칸을 넘어 네팔에 수메르까지 힘을 뻗쳤을 정도였다.
탁록과 한족들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연패를 당해 밀리기만 했고.
하지만 치우는 언제나 싸움에서 사정을 뒀다. 몰아붙였으되 섬멸시키지는 않았고, 다스려 십이 제후로 하여 홍산문명을 일으키는 등 중원을 통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랬던 이들의 힘이 약해진 것은 후세에 이르러 각처로 제후들이 흩어지며 분열이 일어났기 때문인데, 세계가 무대일 정도로 각자가 너무 멀리까지 진출해 있었으므로 중원 한 곳에 신경을 쓸 수 없었고, 이로 인해 진대秦代에 이르러 한인들의 세가 강성해지기 시작하면서 결국 중원의 패권이 넘어간 것이었다.
더불어 이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자신들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민족으로 인식되어 있을뿐더러, 흩어져 있다고 하나 여덟로 나눠진 이들의 부족들은 여전히 터키, 토번(티벳, 네팔), 수메르 등 동북아 및 유럽까지 장악하고 있어 재차 뭉쳐질 시에는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라 여겨 서둘러 중원에서 몰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동북에 남은 것은 여리진이었고, 고립되듯 중원 복판에 남은 것이 마오苗였다. 고양이 묘猫와 발음이 같으므로 한족들은 이들을 온갖 요술, 마술을 부리는 고양이족이라고 일컬었지만 묘苗란 밭전에 풀초, 그대로 농사를 주업으로 하는 농경 부족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리 한족들이 기를 쓰고 이들을 몰아내려 해도 소수로 중원 복판에 남은 이들의 힘은 여전히 상상을 넘었다.
소수로 남았지만 운남, 호남, 귀주 등지를 장악한 채 아무리 밟아도 쓰러질 줄을 몰랐던 것이다.
어떻게 된 족속들인지 무조건 치우천황 타령을 하며 밟을수록 더 강력히 한족에 저항했고, 명明이고 뭐고 지금도 중원의 법을 거의 무시하며 자치구를 이룬 채 독립적으로 살고 있는 상태였다.
한족으로 보면 한마디로 딱 골치 아픈 그런 민족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도 하는 말은 있었다. 태고에 중원으로 진입해 홍산문명의 뿌리까지 내린 게 자신들이니 내가 떠나지 않는 한 중원이 내 것이지 어째서 너희 것이냐, 하는 뭐 그런.
이런저런 문제들로 온갖 곳에서 충돌이 일어나고 말썽이 잦았던 것이다.
해서 한인들은 마오라 하면 일단 고개부터 흔들었는데, 일렀듯 마오苗라 하는 것은 농경을 뜻하는 것이었고, 일월교라 하는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워낙 용감무쌍한 부족인 데다 소수민족이 한 덩어리로 자치구까지 이뤄 단체 생활을 함으로 한족들은 이들을 이상한 마교魔敎나 사교를 숭상하는 종족으로 치부했다.
그래서 일월교라 몰아붙였는데, 실제로는 종교와 관계가 없고 농경을 주업으로 하는 부족이라 태곳적부터 월력月曆과 태양력太陽曆을 중시해 해와 달을 부족의 표시로 사용하므로 그렇게 일컫는 것이었다.
온갖 조화를 일으키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했듯 재능들도 대단히 뛰어났다.
홍산문명을 퍼뜨렸다 했듯 염초와 화약을 처음으로 제조해 낸 것도 이들이었고, 온갖 악기를 만들어 내어 중원의 가무를 주도해 온 것도 이들이었으며, 농경법, 약초법, 동물의 사육법, 문무에 이르기까지 두루 못 하는 게 없는 종족이라 요술을 하는 것처럼 치부될 정도로서, 하물며 중원인들이 사용하는 월력*(*이집트의 태양력보다 앞선다. 역력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지금도 귀주 자치구에서 딱 버티며 중원은 우리 것, 하고 있다.)조차 실은 이들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이렇다 보니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도 없고, 밀어내려고 해도 밀려나지도 않으며, 그러면서도 중원은 우리 것**! 하고 눈을 딱 부릅뜨고 버티기까지 하는 판이라 여간 골이 아프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부족이었던 것이다.
한데 그런 부족의 무사들이 여기에 나타나 사고를 치고 있는 것이었으니.
추룡은 한순간 머리가 아파졌다.
영문도 모르고 싸우고는 있지만 자칫 이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완전히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평소 조용하지만 이들이 한 번씩 똥배짱을 부리기 시작하면 중원이 들썩할 정도였는데 무슨 수로 이를 감당할 것인지.
“머리를 밀어 변발?髮을 한다고 하셨는데 아니지 않습니까?”
“부족에 따라 안 깎는다. 수가 많으니 빨리 끝내기로 하자.”
펑펑!
“와아앗……!”
어쨌거나 싸움은 오래잖아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았다. 하나하나가 쉬운 무사들이 아니었지만 다시 말해도 이들은 상대를 잘못 만난 셈이었다.
싸우는 상대가 자그마치 천하제일로 불리는 호랑이인 것이다.
오래잖아 거의가 한 번씩은 흙바닥에 나뒹굴었고, 그러면서도 용감무쌍하게 일어나 또 덮쳐 오곤 했지만 보통 상대가 아님을 알아 눈을 번쩍이며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는데, 이때 막여사가 한마디 꺼냄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이었다.
“무위와 높은 기백을 알아봤으니 충분히 됐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만 너희들과는 싸우고 싶지도 않거니와, 보아하니 홍마오紅苗 같은데 대백大佰과 그럴 사이도 아니다. 함께 온 것이냐?”
“무슨……!”
순간이었다. 흑의인들의 얼굴에 멈칫, 크게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설마 토사土司님과 아시는 분이란 말씀입니까? 존성대명이?”
“막여사라고 한다.”
“막 장군님?”
“설마 금의위의……?”
덜컥! 그들 역시 막여사를 알고 있는 듯했다. 모두가 안색이 홱 돌변했고, 비로소 막여사는 추룡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한데 왜 싸웠느냐?”
그제야 추룡도 급히 포권을 취해 보였다.
“습격을 받은 터입니다. 소자 역시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만 친구를 찾아온 것 같더군요.”
특이한 부자였다. 팔 개월이 지나 만났지만 대화하는 모습도 그렇고, 희한하게 남평에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나 다름없이 막여사는 태연자약, 차 밭이나 둘러보러 나온 듯했고, 추룡도 그대로 나무를 하다 막여사를 만난 것 같았다.
“친구라면? 항주에서 도와줬다는 친구들 말이냐?”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부친이라 했듯 추룡은 무조건 무한 신뢰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중 임백호라고, 소주군이라 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데 무작정 검부터 휘두르니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임백호라……!”
막여사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다시 흑의인들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성씨도 그렇고, 소주군이라 했다면 대백의 아들 같은데 대백은 어디에 있나? 려연원旅宴園인가?”
“-!”
머뭇거리고 있던 흑의인들은 한 번 더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그것까지……?”
“모처럼 나온 터에 신기하게 그를 보는군. 앞장서게.”
흑의인들은 엄청나게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난처합니다! 아무리 장군님이라 해도 토사의 행방은 극비에 부쳐지는 것이오라……!”
막여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행방을 알아낸 건 나지 자네들이 말해 준 게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알아낸 사람이 찾아가면 되나?”
듣고 보니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다.
사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난감한 처지가 된 것은 흑의인들이었는데 그들 역시 막여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존중까지 하는 눈치였다.
명성 때문이 아니라 천만뜻밖에도 친분을 지닌 듯한 눈치인 것이다.
따라서 애매해진 것은 추룡을 공격하고 있었다는 점이 되는데, 어찌 된 노릇인지 두 사람이 부자지간 같지 않은가?
사실이라면 역시 엄청나게 난처할 수밖에 없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지만 지인의 아들을 공격한 상황에 천하제일쯤 되면 신통력까지 있는지 극비에 부쳐진 주인의 행방까지 꿰뚫고 있으니……!
하지만 이것은 이상할 게 없었다. 지난 오후, 악충보로 오기 전에 그는 객잔을 겸한 주루에 있었고, 교대로 식사를 하러 오갔던 게 바로 저들 흑의인들이었던 것이다.
가게 되면 크게 혼이 날 것인데……!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흑의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겠습니다. 따르십시오.”
힘으로는 안 되고 행방까지 아는 터이니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비로소 추룡은 장완옥의 안부를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평안하신지? 남평에 홀로 계시는 것입니까?”
“그렇게 되었다. 안부 한번 참 빨리 묻는구나.”
“아, 예. 잘못되었습니다.”
“걸음이 빠르구나. 이런 일에는 조금 천천히 가는 게 좋은 거다.”
“아, 예.”
남평에 있을 때도 그런 면이 있었지만 좀 신기하다 싶은 부자였다.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진짜 베겠다!”
쉬쉬쉬쉭!
“읏……!”
상황은 오히려 임백호 쪽이 더 급한 것 같았다.
흑의인들이 나타나자 한발 먼저 숲으로 뛰어들었던 그. 한데 문제는 숲에도 있었다.
그는 흑의인들을 피한다고 숲으로 신형을 날렸지만 숲 속에는 훨씬 더 많은 인물들이 매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쏘아 가는 임백호를 삽시간에 둘러쌌고, 함께 달리며 그를 잡고자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처합니다, 소주군! 칼을 거두십시오. 주군을 뵈셔야 합니다!”
호칭은 계속 소주군이었다.
참 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임백호가 정말 저 대단한 일월교, 홍마오의 후계자라는 것인데, 대체 뭐가 어찌 되어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소주군이라 부르는 것도 그렇고, 그런 신분인 게 확실한 것만은 사실인지, 가로막히면 검을 휘두르곤 했지만 위협일 뿐, 다급해하면서도 임백호도 정말 치거나 하지는 못했고, 막아서곤 했지만 흑의인들도 병기를 뽑아 대응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냥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눈치로, 달리기 시작하면서 수십 명이 따라붙었고, 추격해 가면서 여기저기에서 나타난 인원이 점점 늘어나더니 오 리쯤 가서는 무려 백오십여가 그를 둘러싸 몸으로 팔방을 막았다.
워낙 수효가 많다 보니 뛰어넘을 수도 없고, 결국 임백호는 걸음을 멈춘 채 검을 겨누고 눈에 냉광을 걸었다.
“죽어도 돌아갈 수 없다! 나올 때 이미 이야기했거니와 아무리 아버지의 말씀이라도 따를 수 없는 것은 따를 수 없는 거다! 난 허수아비가 아니니!”
뭔가 곡절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듯했는데, 둘러싼 인물들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임백호에게로 다가왔다.
“물론 소주군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하오나 우린 명령을 받들어야 합니다. 일단 주군을 뵈어야 합니다. 함께 와 계십니다.”
“여기에 오셨다고……?”
“그렇습니다. 아니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모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칫하면 악충보와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모쪼록 속하들의 사정도 헤아려 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임백호는 더욱 화가 난 표정이 되었다.
“이런 따위가 싫단 말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악보와 충돌한다는 것이냐? 악보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데! 모든 것이 멋대로다! 어머니께서도 이런 일들로 인해 화병으로 돌아가셨지만 세상이 마오를 축으로 돌아가더냐? 우리가 세상의 기준이라도 된다는 소리냐? 대체 무언데 매사를 멋대로 결정하고 남을 공격한다는 소리냐?”
훙훙, 다가오는 흑의인들을 향해 위협적으로 검을 휘둘렀지만 흑의인들은 애매해하는 표정으로 그래도 계속 다가왔다.
“속하들로서는 무엇이라고도 말씀 올리지 못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명령에 따라야 하고 지금은 소주군을 모시고 가야 할 뿐입니다. 말씀은 주군께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딱한 일 같았다.
여전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눈치를 보니 임백호는 역시 홍묘의 후계자, 부친과 어떤 갈등 같은 것이 있는 듯했다.
항주에서 볼 때부터 이상하다 싶었지만 미루어 가출을 한 것 같았는데, 어쨌거나 흑의인들로서는 그를 잡아 오라는 명령을 받고 온 셈이었다.
당연히 임백호도 더는 어쩔 수도 없었다.
피할 수도 없었고, 벨 수도 없었으며 이들에게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버지.”
돌처럼 굳어진 표정. 결국 임백호는 려연원으로 왔고 그를 만났다.
그의 부친은 임대백臨大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토사란 이들의 지도자를 칭하는 호칭이었다.
하늘과 관계없이 존재하는 달, 처음 모습을 보일 때 노여움으로 달아 있던 그는 어느새 원래의 창백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냉혹하다 싶은 눈으로 골치 아픈 아들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한심한 놈. 꼴이 그게 무어냐? 아비를 거역하고 집을 나가더니 고작 타 방파의 말단 무사냐? 그것도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