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괴물怪物 (5)
“흐아아아-!”
퍼퍼퍼퍽-!
“-!”
하지만 추룡의 수법은 거기에서 끝나지도 않았다. 쏘아 들던 여력과 회전력을 이용해 그대로 그의 거구 안으로 파고들어 등을 붙이며 양 팔꿈치로 일고여덟 번이나 복부를 가격해 낸 것이다.
엄청난 충격! 유곡의 호랑이 눈이 찢어질 듯 치켜뜨여졌다. 하지만 그 역시 덩치만큼 다져진 쇳덩어리 같은 몸으로 그냥 무너지지 않았다.
“흐아아압!”
팡팡팡팡팡팡!
가격당하는 순간 한 걸음 휘청, 하긴 했지만 즉시 자세를 바로잡으며 솥뚜껑만 한 주먹을 날려 벼락같이 연속 정권 치기를 가해 온 것이었다. 휘익, 추룡 역시 어느새 자세를 바로잡으며 번개같이 양 정권을 연속으로 휘둘러 공격을 차단해 냈고.
“크아아압!”
펑-!
“흡!”
더불어 ‘부왕!’ 철퇴 같은 휘돌려 차기가 감행되었고, 이어진 두 번째 발이 다시 유곡의 가슴팍에 작렬했다. 휘돌려 차기가 감행되는 찰나 유곡은 허리를 젖혀 이를 피해 냈으나 추룡이 회오리처럼 몸을 돌리는가 싶더니 창날 같은 족도의 옆 차기를 감행했던 것이다.
“크압!”
휘청! 유곡은 다시 한 걸음 뒤로 밀렸지만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 밀림과 함께 위잉, 그 역시 번개 같은 돌려 차기를 시도해 이어질 추룡의 공격을 방지하는 한편 이를 피해 휘청, 옆으로 몸을 젖히는 추룡을 향해 육탄으로 섬광같이 거구를 밀고 들어온 것이었다.
“하-!”
파아악!
더불어 두 사람은 다시 무시무시하게 몸으로 얽혀졌다. 독응착작毒鷹捉雀! 응급조처로 돌려 차기를 한 유곡이 중심을 잡기도 전에 회전력을 이용, 벼락같이 추룡을 덮쳐들며 쇠스랑 같은 좌수를 뻗었기 때문인데, 추룡 역시 피하느라 중심을 잡지 못했던 상태였으므로 찰나 마주 우수를 날려 온 그의 팔을 휘감듯 움켜잡았고, 동시에 유곡의 오른손이 날아들어 또한 좌수로 그 팔을 마저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하아아압!”
빠악! 파파파파……!
더불어 또다시 살과 뼈가 부딪치는 섬뜩한 음향과 함께 격렬한 발 공격이 이어졌다. 목검이 얽힐 때 그랬듯 팔이 얽히자 지체 없이 두 사람은 무릎을 꺾어 올리는 등 철퇴 같은 발 차기를 날려 또다시 각법으로 부딪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크흐읍!”
“이이익!”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무도 이익을 얻지 못했고, 두 사람은 다시 서로의 팔을 움켜쥐고 다리를 뺀 채 버티기에 들어갔다.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 부릅뜬 눈과 악물린 이빨!
말이 비무고 비무대인 것이지 완전히 사투나 다름없었다. 검에서 권, 권에서 각, 각에서 조, 조에서 공功! 피차 사력을 다해 쌓아 올린 기량을 퍼부어 내고 있는 것이었다.
“크아아아압!”
“읏……?”
한데 이 버티기에서 남평의 나무꾼은 실로 초인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덩치를 봐도 그렇고 뼈대를 봐도 밀릴 듯한 그가 천만뜻밖에도 움켜잡은 유곡의 팔을 밖에서 안으로 좁혀 들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유곡의 눈이 또 한 번 찢어질 듯 치켜뜨여졌다. 검을 겨루면서 큰 힘을 지녔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추룡의 괴력이 자신을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허벅지만 한 팔에 완강하게 힘을 줘 버텼으나 소용없이 계속 양팔은 안으로 좁혀 들었고, 더불어 벌리고 있던 두 팔이 맞닿을 정도로 좁혀 들었다 싶은 순간!
“크아아압!”
쾅-!
“으아아앗!”
“맙소사……!”
기어코 두 사람 간의 승부가 가려졌다. 완강하게 버티던 팔을 완전히 좁혀 낸 추룡이 순간적으로 홱, 돌아서며 그의 두 팔을 어깨에 둘러메듯 하더니 대갈과 함께 건곤일척乾坤一擲! 엄청난 엎어치기로 산만 한 거구의 유곡을 집어 던지듯 비무대 가운데 메다꽂았던 것이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광경.
“흐……!”
비무대가 무너질 듯 흔들리는 속에 눈을 치켜뜨고 지켜보던 군웅은 침묵했다. 아니, 더 정확히 침묵은 두 사람이 격돌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봐야 옳았다.
상식을 넘어섰다 할 정도로 근접 거리에서 회오리같이 돌아가며 폭우처럼 퍼부어졌던 서로를 향한 검망! 연이어 벌어졌던 난타전에 공력의 싸움에 이르기까지 이건 완전히 사람의 움직임도 아니다 싶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한 난타전이었던 것인데, 조그마한(?) 체구의 장사가 산만 한 덩치를 메다꽂기까지 했으니!
수만의 인파로 뒤덮인 신양평이었지만 바늘귀 하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유곡을 메다꽂은 추룡도 메다꽂힌 유곡도 둘 다 꼼짝하지 않았다.
뚝뚝, 추룡의 턱을 타고 비 오듯 땀방울이 발치 아래로 떨어져 내렸고, 메다꽂혀 하늘을 향해 드러누운 유곡의 귓불로도 줄줄 소나기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허허허……!”
그러나 잠시, 드러누운 유곡의 입에서 지친 듯했지만 황당하다는 듯한 웃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나도 별로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어느새 장강의 물결이 되어 흘러가는구나!”
오래잖아 웃음은 사위를 진동시키는 대소가 되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끙, 하는 소리와 함께 그는 화등같이 호안을 번쩍이며 다시 산처럼 자리에서 일어섰다.
추룡을 향해 크게 포권을 취해 보였다.
“평생에 내 감탄해 본 사람이 없네만 자네에게만큼은 감탄했네! 착각이 아니라면 한참 어린 나이일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런 실력을 쌓아 낸 것인지! 패배를 시인하겠네!”
추룡 역시 바로 포권을 취해 보였다.
“유 대협께서는 아직 패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피차 적수공권이므로 확실히 승부가 가려지려면 최소한 추룡이 사혈 정도를 짚어야 하는 것이었는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추룡을 보며 유곡은 껄껄 웃음을 머금었다.
“메다꽂혀 정신없는 사람 사혈을 누르기란 여반장이나 같은 것인데 무슨 실없는 소리인가! 내가 무리수를 두었어. 급한 성격에 서둘러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했던 게 화를 불렀던 것 같네. 설마 그런 상태에서 바로 차기를 시도해 올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거니와, 있음을 알았으니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네!”
휙, 몸을 돌려 ‘쿵쿵!’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무얼 하시오, 심판관! 승부가 났는데!”
“아……!”
심판관 역시 얼이 좀 빠져 있었다. 상상을 넘었다 싶을 정도로 격렬했던 두 사람의 경기가 혼을 빼 놓았던 것 같았다.
비무대 아래서 누군가의 외침이 또 터졌고, 비로소 추룡을 가리키는 오른 깃발을 다시 들어 올렸다.
“승부 있었습니다! 흑대협께서 연속 오 승을 거두셨습니다!”
“와아아아아아……!”
순간 침묵하던 군웅의 입에서 일제히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 오 승! 괴물이 출현했다!”
“몸무게만 해도 서른 관이 넘을 것인데! 중심을 잡고 버티는 사람을 메다꽂는다는 것은 일반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세!”
“호면도황도 사실은 괴물이라 봐야 할 인물인데!”
“으아아……!”
지는 해, 뜨는 달. 어제 이 함성을 받았던 춘추대회의 승자를 밀어내며 연속 오 회! 이제 그의 실력을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다음 도전자를 받겠습니다! 흑대협께 도전하실 분이 계시면 나와 주십시오!”
둥……! 둥……!
함성을 뚫고 다시 금고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흥분한 심판관은 또 무언가를 잊어버린 듯했다. 연속 삼 회를 이긴 사람은 언제건 휴식할 수 있고, 호면도황과 부딪치느라 추룡이 상당히 지쳐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다음 도전자는 쉽게 나서지 않았다. 자그마치 전 춘추대회의 패자를 물리친 그였기 때문이다.
한데 금고 소리가 십여 번째 울렸을 즈음, 비무대 아래서 한 남자가 여섯 자의 봉을 들고 올라오는 게 보였다.
“태안에서 온 농사꾼 맹광孟廣이라 하오. 필부가 잠시 자리를 지킬 테니 흑대협께서는 좀 쉬시구려. 그러고 나서 미흡한 사람에게도 한 수 가르침을 주셨으면 싶소이다. 이런 자리에 나설 정도의 사람이 못 되지만 흑대협만 한 분을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라온 것이올시다.”
“태안농부다!”
“와아아아아……!”
순간 군웅의 입에서 더욱 열띤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십 대 초반, 어질어 보이는 용안龍眼에 평범한 모습. 농사꾼 차림에 곡괭이를 들고 나타났던 그였다.
보는 순간 추룡은 또 막강한 힘을 느꼈다. 호면도황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그런.
추룡은 다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아직 여력이 남아 있습니다. 가르침 받겠습니다.”
휙, 내려가 병기대에서 창에 해당하는 회칠이 된 천이 한 면에 묶인 여덟 자짜리 봉을 하나 뽑아 들고 다시 올라왔다.
“와아아아……!”
끊임없이 일어나는 함성.
맹광의 눈에 언뜻 의외라는 빛이 스쳤다.
“창법도 아시는가 보구려. 한데 정말 괜찮겠소이까? 호면 아우와 힘까지 겨루신 듯했는데 내력에 손상이 있을 듯싶소만.”
추룡은 거듭 포권을 취해 보였다.
“가르침 주십시오. 한계까지 해 보고 싶습니다.”
“심판관님.”
심판관은 비로소 잊은 점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필부가 자꾸만 실수를 하는 것 같습니다만 흑대협께서 계속하시겠다고 하니 진행하겠소이다.”
휙, 군웅을 향해 다시 소리쳤다.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지만 다음 상대로 태안농부 맹 대협께서 흑대협께 도전하셨소이다! 산동의 명숙입니다! 평소 무림의 일에 관여치 않으나 칠천마七天魔를 쓰러트리고 십팔만 금군 교두를 무찔러 내신 분이올시다!”
“와아아……!”
칠천마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십팔만 금군 교두라면 산동 군부의 사범을 말하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허름한 농부 차림의 그가 장군급을 격파했다는 것.
추룡은 깊숙한 눈으로 맹광을 보며 곧 경기선으로 다시 들어섰다. 상당수 지쳐 있긴 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전장戰場이라 생각하면 숨이 끊어지거나 적을 다 물리칠 때까지 싸워야 할 것이니까.
“준비!”
“하아아압!”
훙훙훙훙훙훙……!
맹광은 봉술에 조예가 있는 인물인 것 같았다. 혁상과 마찬가지로 경기선에 서자 곧 봉에 바람을 넣었는데,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 같은데도 봉이 돌아가는 기세가 실로 예사롭지 않다.
“핫!”
훙훙……!
추룡 역시 가로세로 창을 휘저어 파악, 중단 자세를 잡음과 함께 끝을 맹광에게로 뻗어 냈고, 검과 달리 이 장 간격에서 봉과 창끝은 바로 맞닿을 정도로 서로에게 겨누어졌다.
차이는, 창은 한 면에 회칠이 된 천이 묶여 있고 봉은 없다는 것이었다. 양쪽 끝을 아무렇게나 잡아도 상관없는 대신 치더라도 상대에게 치명타가 된다 싶은 곳을 점해야 승리가 되고, 창은 회칠이 된 끝을 잡지 못하지만 여기에 찔리거나 하여 회칠이 되면 그것으로 승부가 나는 것이었다.
따라서 창법과 봉법은 유사한 것 같아도 차이가 많았다. 봉도 창처럼 찌르기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휘둘러 치는 타법이 많았고, 창은 그대로 찌르기 전문인 병기인 것이었다.
“시작!”
칼날같이 번쩍이는 눈과 눈.
신호가 떨어졌지만 두 사람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창의 원칙대로 추룡은 창대를 길게 잡고 중으로 뻗친 채 몸은 비스듬히,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 채 맹광을 겨냥하고 있었고, 맹광 역시 중단 자세, 엇비슷한 상태로 몸을 비스듬히 하고 같이 봉 끝을 맞대다시피 하고 있었다.
맹광은 크게 난처한 상대라 생각했다. 검을 쓰던 추룡이 창을 들고 나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들고 있는 이상 함부로 도발할 수 없었다. 처음처럼 검을 들었을 경우는 상대적으로 길이가 길어 찌르거나 휘두르는 기술을 걸기 용이했지만 길이가 더 긴 창을 든 만큼 휘두른다는 게 실로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휘두르면 얽혀지기 십상이었고, 그럴 경우라면 열외의 기술에서 승부가 가려지기 더 쉬웠다. 권각법 등의 기술이었다. 자신 역시 기술이 없지 않았지만 유곡과의 겨룸을 지켜본바, 추룡이 권각법에 상당한 조예가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에 주의해야만 했다.
찌르기 기술 역시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창을 들었다 함은 찌르기 기술에도 능하다는 뜻이 되는데, 같이 찌르면 무조건 자신의 패배가 된다. 봉도 양쪽에 쇠를 대어 치명적인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날이 서지 않은 한 한 번에 적을 사지에 몰아넣지는 못했다.
반면 날이 있는 창은 한 번으로 대다수가 끝난다. 팔다리가 찔려도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찔리면 이유 없이 치명상이 되기 때문에 창의 승리로 인정되며 길이 역시 창이 길어 불리했다.
자세 역시 완벽해 보였다. 발을 어깨너비로 둔 기마 팔상으로 언제든지 길게 찌르고 물러설 수 있는 안정감과 철벽같은 완고함이 보였던 것이다. 제대로 창법을 배웠다는 뜻이 되는 것으로, 역시 쉽사리 공격해 가거나 하기 난처했다.
어쩔 수 없이 추룡을 중심에 두고 시계 바늘처럼 원형으로 조금씩 돌아봤다. 움직임에 맞춰 추룡도 천천히 함께 돌기 시작했다.
역시 창끝은 자신의 몸에서 비켜나지 않았다.
‘기술이 어느 정도인가가 문제인 셈이군……!’
맹광은 계속 곤혹스러운 심정이 되었다. 아무래도 느낌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검과 권각 그리고 창에 모두 조예가 있는 상대! 만나기도 드물뿐더러 역시 강적이라 봐야 하는 것이었다.
어쨌건 이대로 돌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선수先手 역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상대가 검과 권각법에 상당할 정도로 창법에도 능통하다면 선수를 당할 경우 바로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순간!
“하아아압!”
“-!”
바로 그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끝을 맞붙이다 조금씩 돌던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휘익!’ 봉을 휘저어 추룡의 창을 휘감듯이 하여 위로 추켜올리며 섬전처럼 안으로 파고든 것이었다.
더불어 봉의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번개 같은 상단 치기! 아래쪽 끝을 올려쳐 후욱, 추룡의 턱을 가격해 간 것도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