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51화 (51/150)

# 51

괴물怪物 (1)

대단히 특이한 인사.

하지만 그뿐, 장소가 장소인 만큼 사담을 할 수는 없다.

“크아아압!”

추룡은 곧 다시 비무대 중심으로 몸을 돌린 후 듣는 이들의 배 속이 찌르르 울릴 정도로 쩌렁하는 기합과 함께 대장검이라 할 넉 자 반의 목검을 훙훙훙, 서너 번 휘둘러 보인 후 수만의 군웅을 향해 외쳤다.

“무림에 첫걸음 하여 명성도 무엇도 없으나 불초 흑무사! 몇 수의 칠우검七友劍으로 천하 영웅들의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칠우검!

“와아아……!”

“막 형이군!”

함성이 일어나는 속에 친구들도 비무대에 오른 게 추룡임을 알았다.

“설마 영웅전에 출전할 줄이야!”

깜짝! 한꺼번에 이해할 수 없다는 빛을 떠올렸다.

“한데 이해가 안 가! 왜지? 얼굴까지 가린 것을 보면 명성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설마 우승을 생각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대로 뜻밖의 일이었다. 사실 이상하기도 한 게 상당한 실력이 된다 쳐도 날고뛰는 천하의 고수들이 다 출전하는 영웅전인 만큼 우승을 생각하고 나왔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명예를 원했을 것 같으면 얼굴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고, 금전 역시 부족한 친구가 아니었다.

분명히 이유 없이 이런 행동을 할 추룡이 아닐 것 같은데?

하지만 의문은 둘째, 곧 다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끝내준다, 젠장! 이유야 뭐건 출전했고, 칠우검이 천하에 이름을 올린 거야! 실력도 결코 약하진 않아! 선만 보이고 내려와도 충분하잖아! 응원하자!”

“사부님! 더도 말고 한두 판만 이겨 줘!”

그대로 두 판만 이겨 주고 내려와도 멋진 것이었다. 뭐가 됐건 칠우검을 언급했고, 이것은 천하 고수들의 영웅전이 아닌가. 서전이라면 아주 강한 인물도 나오지 않으므로 하기에 따라 두어 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세 판으로 패배 없이 내려와 주면 더 바랄 나위도 없을 것 같고.

약관의 신진들에게는 꿈이나 같았다.

진행자의 외침이 다시 울려 퍼졌다.

“신분을 밝히고 싶지 않아 하시는 흑무사께서 서전에 도전하셨습니다! 금고가 스무 번 울리기까지 맞서실 분이 나오지 않으면 흑대협께서 우승자가 되십니다! 흑대협과 겨루실 영웅이 계시면 출전해 주십시오!”

“차림새가 멋지다! 그냥 싸우지 말고 우승해라, 흑무사!”

“하하하……!”

둥…… 둥……!

여기저기서 손뼉과 재미있다는 웃음이 터지는 속에 금고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뭐, 서전에 도전자가 없을 리 있겠는가.

“껄껄……! 흑 형이라 불러야 할지, 기백에 크게 감탄했소! 불초 천산天山의 유하검流河劍 냉천양冷天陽이 칠우검의 가르침을 받아 보겠소!”

금고 소리가 여섯 번도 울리기 전에 군웅 속에서 백삼을 입은 사십 대 초반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천천히 비무대 쪽으로 다가와 목검을 뽑아 들었다.

“냉천양?”

“와아아아……!”

함성이 일어나는 속에 열기가 올랐던 친구들의 표정이 싹 변했다.

“뭐야, 시작부터? 들은 이름 같은데?”

상당한 명성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임백호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저자로군. 천산파天山派의 사람이야. 꽤 유명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늘 이런 대회의 서전 같은 곳에 나와서 두어 명 이기고 들어가곤 하는 사람일세. 이번에도 거의 그러려는 것 같은데 썩 강하진 않지만 고수는 맞아.”

약체인 인물들이 출전할 때 나와서 이름을 알리는 등 위신을 올리고 가는 그런 인물이란 뜻 같았다.

진행자의 외침이 다시 울렸다.

“유하검 냉 대협께서 서전에 응해 주셨습니다! 큰 갈채로 맞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하오.”

함성이 일어나는 속에 추룡은 첫 상대를 맞아 포권으로 인사를 나누었고 마침내 이 장 간격의 경기선 앞에 섰다.

“준비!”

냉천양 역시 경기선 앞에서 마주 섰는데 그는 자신 있게 웃음 짓고 있었다. 체격은 좋아 보였지만 무인이라고 보기에는 차림새도 그렇고 음성을 들어 보니 나이 역시 많은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다.

추룡은 그냥 편안히 오른손으로 목검을 옆으로 내려뜨려 잡고 있었다. 꼿꼿이 허리를 편 자세. 헐렁한 옷에 이상한 복장을 한 모습은 역시 일하다 말고 나온 농부 같은 차림이었고, 눈까지 죽립에 가려져 있어 특별한 예기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시작!”

신호가 떨어졌고 냉천양은 미소와 함께 다시 추룡을 봤다. 한데 기이하게 시작 신호가 내렸는데도 역시 그대로다.

오른손에 목검을 내려뜨려 잡고 허리만 펴고 서 있는 그런 모습.

싸우려는 게 아니라 마치 싸움을 마치고 휴식이라도 취하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어차피 서전이니. 제대로 무예를 배운 것 같지도 않군.’

냉천양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인도 아닌데 서전이다 보니 즐거움 삼아 올라온 구경꾼 중 하나인 느낌. 어차피 자신도 명성이나 올려 볼까 해서 출전한 터였으니 비슷한 경우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아압!”

훙훙훙!

큰 기합과 함께 강력하게 서너 번 목검을 휘둘러 보인 후 천천히 추룡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듯 옆으로 걸음을 옮겨 보았다.

하지만 그래도 추룡은 그대로였다. 목검을 내려뜨린 채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그런 모습.

‘허허…… 이거야 원, 정말 무예를 모르는 것 같은데……!’

냉천양은 다시 실소 지었다. 빨리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아아압-!”

생각보다 동작은 더 빠른 것 같았다. 실소와 함께 ‘쉭!’ 직진, 바람같이 추룡의 측면으로 쏘아 들며 찌르기를 시도했다. 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목에 들이대기만 해도 되는 것이었다.

“하-!”

카앙!

“앗……!”

와당탕!

하지만 그는 추룡을 얕봐도 너무 얕본 것 같았다. 자신감은 좋았지만 접근했다 싶은 순간 바로 비무대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으니까.

목검이 목에 닿을 듯한 순간 잠자코 서 있던 추룡이 홱, 허리를 트는가 싶더니 들고 있던 목검을 위로 쳐올려 쏘아 오는 목검을 쳐 냄과 함께 그대로 한 발을 휘저어 그의 양 발목을 차 내어 버렸던 것이다.

두 수, 한 동작.

“흑대협 승!”

“어라?”

“뭐야, 저게?”

“아, 잠깐만……!”

심판관의 오른손 깃발이 올라감과 함께 보고 있던 군웅의 표정들이 순간 아주 괴상하게 변했다. 워낙 창졸간의 일이라 뭐가 어찌 된 일인지 영문조차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자네, 어떻게 된 일인지 봤나?”

“모르겠어. 냉천양이 달려드는 것 같았는데 넘어졌군?”

그대로 냉천양이 기합과 함께 덮쳐들고 더불어 추룡의 몸이 돌려지는 것까지는 본 것 같았다. 더 많이 본 사람은 목검을 쳐올리는 것까지도 본 것 같았고. 그런데 추룡의 발이 언제 움직였는지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냥 냉천양이 덮쳐들다가 실수로 나동그라진 것같이 보이는 것이었다.

오직 한 사람, 당사자인 냉천양만이 알았는데 그의 표정도 의아해하는 군웅에 못지않을 정도로 괴상하게 변했다.

“이, 이건 실수……!”

분명히 너무 방심했던 것은 맞았다. 급급히 심판관에게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그러나 심판관은 고개를 저었다.

“번복은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한판 승부이니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흑대협의 승리입니다! 하대下臺해 주십시오.”

“하하하……! 흑무사 심봤다!”

이상한 함성이 터졌다. 어쨌건 추룡 일 승!

“다음 도전자, 올라와 주십시오! 스무 번 금고가 울릴 동안 도전자가 없으면 흑대협께서 우승하신 것으로 인정합니다!”

“와아아……!”

둥……! 둥……!

긴장감 없는 웃음과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는 속에 냉천양은 엉망인 표정이 되어 어쩔 수 없이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표정이 돌처럼 굳어져 있었다. 실수는 실수였는데 모두가 생각하듯 미끄러져 넘어진 실수가 아니라 방심했다는 점에서의 실수, 정확히 자신 역시 어떻게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저놈 고수……!’

돌아서는 것을 봤고, 목검이 쳐올려지는 사이 발목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순간을 자신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굳어진 표정으로 멀리 가지 않고 대 아래에서 추룡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냉 대협께서 운이 안 좋으셨던 것 같은데 불초 산서의 적진도敵進道 서문한西門翰이 흑대협의 가르침을 받아 보겠소이다!”

그리고 여섯 번 정도 대고 소리가 울렸을 즈음, 다시 도전자가 나섰다. 회의 경장에 마른 듯한 체격을 지닌 서른 후반의 인물이었다.

“와아아……!”

“계속 잘해라, 흑무사!”

“하하하……! 별호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무슨 ‘협俠’ 하는 것보다는 일단 이름이 마음에 든다!”

함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추룡은 또 포권을 취해 보이며 경기선 앞에 섰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세는 역시 처음 그대로.

“하압!”

새로 나온 도전자, 서문한은 기합과 함께 몸을 비스듬히 돌린 자세로 검을 어깨높이로 올려 수평으로 잡은 채 추룡을 겨누었다.

어느 정도의 실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냉천양처럼 실수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시작!”

“흐아아아-!”

역시 그러했다. 시작 신호와 함께 그는 방심하지 않고 치켜든 목검을 휘둘러 무수한 검망부터 일으킨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 직진, ‘쉭!’ 추룡을 향해 섬전처럼 꽂혀 들며 기세를 늦추지 않고 파도 같은 검망을 일으키며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난처한 상대였다. 처음부터 검을 휘둘러 검망으로 전신을 휘어 감고 쳐 오는 만큼 난타전을 벌이거나 수세에서 피할 수밖에 없을 듯한 그런.

역시 대책이 없는 듯 한자리에 서 있던 바닥을 차며 훌쩍 추룡이 삼 장가량 뒤로 몸을 물리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아압!”

당연히 서문한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선기를 잡은 만큼 물러선다 싶은 순간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빛살같이 목검을 치켜 올린 채 추룡을 따라붙었다.

순간 바닥을 밟은 추룡의 몸이 다시 슬쩍 앞으로 나가는 듯싶었다.

“하-!”

카앙-!

“앗……!”

와당탕!

“헛……!”

“저게 뭐지?”

더불어 군웅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속에 승부는 또 끝이 났다. 선기를 잡고 용감무쌍하게 추룡을 따라붙던 서문한 역시 이유를 알 수 없게 바닥에 나동그라진 것이었다.

‘맙소사……!’

그러나 이번에는 정확히 본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대 아래서 눈을 치켜뜨고 보고 있던 냉천양이었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서문한의 공격에 추룡은 뒤로 물러섰고, 기선을 잡은 서문한은 따라붙었으며, 도약해 물러섰던 그가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탁, 탁!’ 하는 식으로 재차 앞으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기선을 잡았다 생각한 서문한은 물러서는 추룡을 치고자 숨 돌릴 틈 없이 따라붙으며 상단으로 치켜든 목검을 내리쳤는데, 그 순간 전진한 추룡의 목검이 순간적으로 떨어지는 그의 목검을 차단하며 또 발목 후리기가 들어갔던 것이다.

말이 쉬울 뿐이지 이건 거의 전광석화다.

어쨌건 그 외에는 심판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다시 깃발이 오르긴 올랐다.

“흑대협 이 승! 다음 도전자 나와 주십시오!”

둥……! 둥……!

웅장하게 대고 소리가 울려 퍼지는 속에 비로소 사람들은 뭔가 좀 이상하다는 낌새를 지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별 볼일 없다 하지만 그래도 영웅전에 나선 냉천양이 엉덩방아를 찧는가 했더니 두 번째로 오른 서문한 역시 또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었다.

한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연속 이런 이상한 실수를 할 수가 있을까?

서문한 역시 냉천양에 못지않을 정도의 이름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상한데? 또 넘어졌네! 심 본 게 아닌 것 같은데?”

“처음엔 그냥 웃고 말았는데 저 흑무사……! 좀 더 지켜보세.”

군웅의 표정은 다들 의문투성이, 이번에는 수군거림만 일어날 뿐 함성도 없었다.

“이해가 안 가는데…… 필부 양천의 선화검仙化劍 자운비紫雲飛 흑대협께 한 수 가르침 받아 보겠소이다.”

아홉 번째 금고 소리가 울리는 속에 세 번째 도전자가 나왔다. 청의 장삼을 입은 마흔 살가량의 인물이었다.

한데 선택한 무기가 독특했다. 뜻밖에 그가 든 것은 두 개의 목검! 드물게 이도二刀, 혹은 이검류二劍流의 기술을 지닌 인물이란 뜻이다. 크게 경계심을 가진 눈치로서 시합보다 두 사람이 엉덩방아를 찧는 것을 보고는 의혹으로 나온 느낌이 짙은 모습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추룡은 점차 상대가 강해진다는 느낌을 받으며 인사와 함께 다시 경기선에 섰다.

입증하듯 심판관의 소개가 따랐다.

“헛헛……! 앞의 냉, 서, 두 분께서도 수월찮은 분이셨지만, 대단한 호걸께서 출전해 주셨군요! 아시겠지만 자 대협께서는 산서 양천에서 일인자로 불릴 정도로 저명하신 분이올시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산서 무투회에서도 준우승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모쪼록 선전하셨으면 싶습니다!”

무언지 분명치는 않았지만 느낌대로 예사의 인물이 아닌 듯했다.

“시작!”

처음 대하는 이검류의 상대, 마침내 세 번째 겨룸이 시작되었다.

소개도 그렇고 추룡은 앞서 싸운 서문한에 비해 몇 배나 더 까다로운 상대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시 환기해 봐도 이도류나 이검류의 기술을 사용하는 인물은 무림에 드물었다. 이런 기술을 사용하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두 개의 칼을 들었으니 훨씬 위력적인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 것 같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손마다 칼을 든 만큼 공격과 방어가 오히려 더 힘들 수 있었다. 짧다 해도 검의 길이가 석 자 세 치인데, 그런 것을 하나씩 들었으니 자칫하면 싸우는 도중 본인의 검이 더 먼저 꼬이기 쉬운 것이다.

동작 역시 커지게 마련이었다. 양손에 검을 든 만큼 짧고 강하게 치는 베기법에는 아무래도 두 손으로 치는 것보다 약할 수밖에 없어 맞부딪칠 경우에는 밀리게 마련인데, 순간 다른 칼을 날린다 해도 상대 역시 감안하는 만큼 피하기가 아주 어렵지는 않은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