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견습무사-50화 (50/150)

# 50

흑무사黑武士 (3)

“속하야 그렇다 치더라도 생긴 걸 보십시오. 그렇게 생겼나.”

“다들 뺀들뺀들하게 생겼구먼, 뭐.”

“하하하!”

난처한 상황이 되었으므로 친구들은 얼른 바깥으로 달아났다.

마무리는 순욱이 했다.

“염려 않아도 되실 듯합니다. 아무리 파격이라고 해도 체계가 있는데 소저께서 무리하실 리 있겠습니까. 신입 수련 때부터 지켜봐 왔지만 성품도 좋은 녀석들입니다. 신고식 때 소저께 색왕녀 소리를 했을 정도로 실수도 잘하고. 그냥 우리 어릴 때와 똑같습니다.”

같은 단주에 십호가 올라 있다 해도 선배인 인물들이었다.

실소 지으며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야긴 들었는데, 진짜 웃겼지. 잘 이끌어 봐. 우리가 보기에도 착해 보이니.”

“오히려 순 단주 자네가 더 겁나는데? 특별 부서를 맡았으니 아무래도 진급이 빠르겠지?”

“글쎄, 그게 그렇지 않다니까요? 저도 얼결에 이렇게 된 건데 자꾸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참 난처합니다. 공을 세우는 걸 제외하고는 그런 것 없습니다.”

순욱 역시 난처하긴 마찬가지였다. 악벽강에게 귀띔받은 게 있어 그 역시 일을 무마시키려고 쩔쩔매고 있었다.

“더 무리해서는 안 될 것 같네. 보주님의 눈까지 타게 된 것 같은데 이젠 자네들에게 맡겨야 할 것 같아.”

밖으로 나온 추룡은 친구들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겠네. 우리 때문에 막 형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고. 솔직히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네.”

“친구 간에 그런 말 하기 없기일세. 난 그렇다 치더라도 자네들은 악충보에 남을 사람들이니 지금 자리에서 노력하면 돼.”

친구들은 알아듣고 있었다.

이젠 일 년 반이었다. 추룡은 악충보를 떠나 대리사로 갈 것이므로 괜히 모습을 드러내어 좋을 게 없는 것이었다.

실제 악충보에 입문할 것도 아니었는데 전소를 위해 입문을 하게 되었고 자신들을 이끌어 여기까지 온 것이기도 했다.

자체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이런 그를 구설수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으니 바탕 삼아 이젠 자신들이 노력해서 앞날을 이루어 가야 하는 것이다.

친구들은 웃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악벽강과 어제 걸었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구태여 무얼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필요 없었다. 백 마디 말보다 웃음 한 번으로 더 좋은 게 우정이었으니까.

삼 일 차.

“흐아아압!”

투카캉!

“와아아아!”

결국 악충보는 결승에 올랐다. 모두가 예상했듯 상대 조에서는 위양검문이 올라왔고, 마침내 강남 최강이라는 그들과 맞붙은 것이었다.

그리고 초반에 추룡은 장렬히(?) 탈락했다.

투창 교전이 끝난 후 혼전이 시작됨과 함께 적장 하나를 탈락시키고 그럴듯하게 배후를 한 방 맞고 물러선 것이었다.

그것으로 일 대 일!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겠지만 실제 이 싸움은 그에게 의미가 없었다. 나오게 되었으니 나온 것이지만 웅주들조차 그리 생각하듯 휘젓고 다니려면 혼자서도 열이나 스물 정도는 어렵잖게 잡아낼 수 있는 시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는데 그것은 실없이 한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꼴밖에 아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 대회는 방파 간의 친선 겨룸인데 엄밀히 보면 자신은 악충보의 사람도 아니었고.

소요를 일으키기 싫었으므로 친구들에게 맡기고 물러섰던 것이다.

“철저히 서로를 지켜!”

“흐아아압!”

콰다다당!

“앗!”

히히히힝!

그러나 친구들은 사력을 다했다. 전소를 축으로 눈을 번쩍이며 철저히 조를 짜 무리 지어 혼전 속을 누비며 위양군을 휩쓸기 시작한 것이었다.

삼각 편대였다. 집중 공격이 퍼부어질 것을 예상해 수련 초기에 그랬듯이 방어에 집중해 투창전에서도 모두가 살아남았고, 직후 혼전이 시작되었어도 전열을 흩뜨리지 않고 사두진형의 삼각 편대를 이룬 채 똑같이 호흡을 맞춰 치달리며 부딪치는 상대에게 한꺼번에 공격을 퍼붓는 집단 공격을 감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손이 두 손을 당하기 어렵다는 것은 정해진 이치였고, 개인이 편대를 깨뜨리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었다.

배후는 임백호가 맡았고, 여기에 어제에 이어 다시 순욱 등의 전폭적인 엄호가 따랐다. 깨뜨리기도 어려운 진형이었지만 저변에서 싸우며 혹시라도 무리가 둘러쌀 듯한 눈치가 보이면 만사 제쳐 두고 치달려가 배후를 쳐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도무지 뭐가 이런……!”

당연히 위양검문으로서는 골치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전체가 진형을 이루고 싸울 것 같으면 자신들도 맞진을 치고 나설 것인데 그것도 아니고 혼전 속에서 일부가 말썽을 부리고 있으니.

상대하려면 함께 진형 공격을 해야 했는데 돌파력이 강한 사두진은 원진으로 포위해 대응하거나 꼬리를 물어 배후를 치는 것이 상수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자니 순욱 등이 또한 뒤에서 눈을 번쩍이며 덮쳐들어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들도 같이 사두진을 만들어 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계획에 없던 일이라 호흡이 맞지 않았고, 친구들이 먼저 돌파를 감행하고 있으므로 그럴 여가조차 없었다.

돌발 상황이나 같은 것이었다.

결국 친구들의 집중포화에 하나씩 탈락되고 있었고, 보고 있던 웅주들도 그냥 웃고 말았다.

“허허! 저렇게 싸우는 수도 있구려. 재미있는 진형 같소이다. 소수가 삼각 편대를 이룬 채 중앙을 휩쓸고 나머지가 바깥 저변에서 엄호하니. 한정된 공간에서 소수로는 답이 없소이다. 태극을 중심으로 팔괘가 돌아가는 것 같소. 누가 고안한 진형이오?”

분명히 악충보의 형상은 삼각 편대를 중심으로 팔괘가 엄호하는 형상이었다.

특별히 계획해 만들어 낸 진형이 아니라 친구들이 편대를 만들어 가운데서 휘젓고 단주들이 흩어져 엄호를 함으로 생겨난 현상.

어쨌건 축은 삼각 편대였다.

“전소입니다. 새로 들어온 신입이온데 지혜가 있습니다. 몽마를 잡은 계획을 세운 사람입니다.”

“허허! 어제도 걸출한 청년 하나가 판을 깨더니만.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악충보에 인재들이 대거 입문한 것만큼은 사실 같구려. 몽마를 잡는 데 결정적인 계획을 세운 청년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도 출전했나 보구려.”

“체격이 작은 청년입니다.”

“패할 게 분명하지만 덕분에 좋은 것을 배워 가는구려. 한정된 테두리 안의 저 진형, 아무리 봐도 쉽게 깨트릴 방법이 없을 듯하오. 좀 더 체계를 잡아 다지면 유용한 진법이 나올 것 같소.”

어제 추룡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자면장한.

그는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가 바로 강남 최강이라는 위양검문의 주인 증산增山 위진천威震天이라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격전장을 내려다보며 악불비도 가슴을 폈다.

분명히 악벽강은 저들이 악충보의 사람으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신경이 쓰이는 불출이가 하나 있었지만 어찌 됐든 남기만 한다면 악충보의 기둥이 될 문인들인 것이었다.

나이조차 약관! 충분히 앞날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아아압!”

카아앙!

“흡!”

“승부! 악충보 최종 승勝!”

“와아아아!”

파란은 개인전에서도 일어났다. 개인전은 신도문이 결선에 올랐는데, 이것마저 악충보가 휩쓸어 버렸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한자방은 자살조로서 활약했고, 신학철은 탐색조, 곽영, 장청에 이어 전소가 대장전에서 마무리를 지었던 것이다.

오 선, 육 척 반이나 되는 키의 대장인 마지막 인물이 워낙 강적이라 장청까지 패한 터였는데 그는 뜻밖의 공격으로 무너졌다.

작은 키를 이용한 전소의 특기인 하체 공격! 설마 앉아서 치고 들어오는 수법을 쓰리라 예상치 못했던 그는 장청까지 무너뜨린 후 방심하고 큰 키를 이용해 무차별 공격으로 작은 체구의 전소를 무너뜨리고자 했는데, 순간 앉아서 파고드는 기술로 전소가 발목을 댕강(?)한 것이었다.

마시에서도 그러했지만 알면 모르되 모르면 누구라도 당하기 쉬운 수법.

“하하하!”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속에 악벽강은 다시 웃고 말았다. 거인이라 할 육 척 반짜리가 오 척에 못 미치는 전소의 재치에 무너지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대파란이 일어난 것은 밤! 대회의 백미인 영웅전에서였다.

여기에서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둥, 둥, 둥!

“와아아아!”

웅장한 금고 소리와 함께 천둥 치듯 울리는 함성. 어둠은 없었다.

신양평의 도처에는 대낮처럼 환하게 횃불과 등촉 들이 밝혀지고 구름처럼 운집한 군웅은 어느 때보다 더 열광하고 있었다.

영웅전, 마침내 대회의 백미라 할 싸움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중원의 어두운 시기에 출범하여 방파 간의 친선과 발전을 도모하고자 열리기 시작했다는 춘추군림대회.

하나만 생각하면 그들만의 잔치였다. 방파들이 출전하여 개인과 단체의 기량을 겨루는 대회니.

그러나 이를 넘어 춘추대회에는 큰 시합 하나가 더 있었다. 방파와 관계없이 중원 남북 유수의 고수들이 자율적으로 출전하여 기량을 겨루는 영웅전이었다.

출전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출전할 수 있고, 패할 때까지 마음 내킬 때까지 계속 싸울 수도 있었다.

도전자가 없어지면 그가 최종 승자가 되는 것이다. 최종 승자가 되면 명예는 엄청나다. 워낙 넓은 중원인 만큼 무인들이 다 참석하지 못해 제일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단번에 중원 전역에 이름이 알려질 정도는 되었다.

대회의 활성화를 위해 이십금二十金의 상금을 걸었고, 승자의 징표로 검 한 자루가 주어졌다.

금자, 당연히 일반에서는 쓰이지도 않는 단위였다. 은자로 육백 냥이었다. 은자 열 냥에 논이 한 마지기이니 상금만 해도 무리하지 않는 한 평생을 편히 지낼 만하다.

방파전 때는 거문 위에서 참관했던 웅주들도 모두 나와 비무대의 한쪽에 마련한 자리에 앉았고, 낮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묵직한 기도의 인물들이 어디서 나타났는가 싶게 비무대 가까이에 자리 잡고 서는 모습들도 보였다.

사흘에 거쳐 승부를 겨뤘던 각파의 무사들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곳곳에 무리 지어 서서 이젠 대회를 즐겼다. 대회의 취지가 그렇듯 한은 없었다.

안타까움은 남을지언정 패배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오장급의 개인전도 그렇지만 단체전 역시 최상부의 고수들이 출전한 것은 아니었다. 다섯 명, 혹은 쉰 명의 무사가 전체도 아니었다.

서로의 무위와 기량을 시험하고 부족한 부분을 살피며 좋은 점을 배워 더 나은 단체를 만들기 위한 선발대라 보면 되는 것이었다.

정확히 위양검문을 예로 들 것 같으면 남 무림의 최강이라 불리는데 정면충돌하면 악충보가 이긴다고 볼 수는 없었다.

신도문 역시 전소가 재치로 강자를 제치긴 했지만 상대가 하단 공격의 특기를 알고 있었다면 또한 승부는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지만 명년을 기약해 새로운 전의를 다지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 하!”

전소 등 친구들은 줄곧 입이 귀에 걸려 있었는데, 꿈이었던 무사의 자리도 잡았을 뿐 아니라 마침내 목장에의 미래까지 거의 현실화되고 있었다. 일생에 이런 행운이 드물 것이지만 추룡을 만남으로 처음에 말이 생겼고, 다음으로 몽마를 잡아 부지를 얻었다.

단체전에 오백 냥의 상금이 걸려 열 냥씩 돌아갔고, 개인전에 오십 냥이 걸려 또한 열 냥씩 돌아갔다.

일인당 스무 냥에, 정말 가공할 대박은 따로 있었다. 어영부영 결의를 다진다고 내기에 걸었던 은자가 사십 배씩 새끼를 쳐서 돌아온 것이었다. 각자 건 액수가 다르긴 했지만 수수료 떼고 총 팔백 냥, 완전히 극악하다.

한 냥씩만 걸었다 해도 상금 포함, 육십 냥으로 암망아지 한 마리 이상, 총액을 합치면 준마라 할 다섯 살배기 암말 열 필이 넘는 것이다. 그것으로 적낭자 포함 말이 이미 스무 필이었다. 부지까지 마련했으니 남은 것은 이제 관리와 시간뿐이었다.

행여 들치기라도 당할세라 전표가 든 주머니를 꽉 움켜쥔 채 그저 가슴만 뛰고 있었는데, 어디로 갔는지 늘 재신이라 부르는 추룡만 보이지 않았다.

술시戌時.

둥둥, 울리는 북소리 속에 이윽고 심판관인 두 사람이 비무대 위로 올랐고, 진행관이 영웅전을 선포했다.

“홍무 삼십 년, 강북 춘추대회의 마지막 영웅전의 개막을 알립니다! 방파 간의 겨룸과 달리 무예에 자신이 있으신 분은 누구나 출전이 가능하고 방식은 첫 출전자를 시작으로 도전자가 없을 때까지 계속 치러집니다! 세 분을 연속으로 이겨 낸 분께서는 자유의사로 휴식하실 수 있으며 지속 도전이 가능합니다! 승자에 대한 도전자의 유무는 스무 번 금고를 울리는 것으로 하고 있고, 금고 소리가 끝나기까지 도전자가 없으면 최종 승자로 결정됩니다! 마련된 호구를 착용해 주셔도 좋고, 아니어도 좋습니다. 기문 병기를 사용하시는 영웅들께는 안타까운 일이 되겠지만 안전을 기해 목검과 봉, 륜輪만을 사용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암기 역시 금지됩니다. 서전을 장식해 대회를 빛내 주실 첫 번째 영웅께서는 비무대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와아아아아!”

둥! 둥! 둥!

우레 같은 함성과 대고大鼓 소리 속에 드디어 고수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개인전의 오장들 역시 약하다 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히 이젠 격이 다른 것이었다.

내로라하는 천하 고수들이 비무대에 오를 시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서전緖戰에 선뜻 나서려 하는 인물은 드물었다.

뒤에 나설수록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앞서 나온 인물을 살펴 기량을 비교해 승산을 계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뒤로 갈수록 강한 도전자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서전에 나오는 인물은 거의가 패한다. 본인들도 이 점을 알아 승리하기 위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참석한 기념으로 나왔는데, 좀처럼 사람이 나오지 않아 주최한 방파에서 누군가가 올라가 서전을 장식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데…… 특이하게 이번 대회에서 유독 서전에 빨리 나선 사람이 하나 있었다.

“부족할 것이나 불초 흑무사黑武士! 천하 영웅들에게 도전합니다!”

대회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군웅은 비무대를 중심으로 직선으로 여섯 개의 통로를 길게 비워 두고 있었다. 그런데 북소리가 예닐곱 번도 울리기 전에 운집한 수만 인파의 한 자리에서 불쑥, 꽤 기묘하다 싶은 복장을 한 인물 하나가 앞으로 나선 것이었다.

흑무사! 별호인 듯 무인들이 상당히 즐기는 흑의를 입고 있었다. 한데 묘하다 했듯 그가 입은 것은 일반적으로 무인들이 입는 장삼이나 경장 등의 무복武服이 아니었다. 소매가 넓고 헐렁한 한족漢族 고유의 전통 복장이었다.

무예를 겨룰 때 매우 불편한 복장으로서, 더 희한하다 싶은 것은 이런 불편함을 없애려 한 것인지 노끈으로 넓은 소매를 칭칭 감아 좁혔고, 발목 역시 끈을 감아 조였다.

새 옷이라면 그나마 보기라도 좋을 것인데 허름하기까지 한 것이 이건 영락없는 어느 집 일꾼의 차림새다.

설상가상 턱까지 죽립을 눌러썼는데 눈 있는 쪽만 네모꼴로 잘려 있고 병기조차 지니지 않았다. 희한한 차림새를 한 채 무조건 그냥 도전, 하고 척척 걸어 나온 것이었다.

“하하하! 굉장한 인물이 서전을 장식하는군!”

사방에서 웃음과 갈채가 터져 나왔다. 모양으로 장식하는 게 서전이라지만 재미 삼아 물건을 팔던 사람 하나가 나오는 듯한 모습으로 꽤 웃기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체격 하나는 듬직하니 썩 괜찮아 보인다.

육 척의 키, 사람들이 웃거나 말거나 턱턱 걸어 나와 길고 짧은 갖가지 목검과 봉이 준비된 병기대에서 쑥, 네 척 반짜리 목검 하나를 뽑아 들고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차림새는 좀 이상했지만 어쨌건 체격도 좋고,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게 영웅전이니 하지 말라 할 수는 없었다.

“봉이라면 몰라도 저런 목검은 부담스러울 것인데.”

피식, 웅주들도 그냥 실소를 짓고 말았다. 어차피 서전이 대단한 것도 아니고 장난삼아 나왔겠지만 뽑아 드는 병기까지 좀 그런 것이었다. 모양새를 갖추려고 모두 준비는 했지만 사실 넉 자 반의 목검이라는 것은 꽤 애매한 점이 있었다.

검이나 단봉보다는 길고 중봉보다는 다소 짧았다. 진병眞兵이라면 같은 검에서 길이, 무게 등으로 큰 장점이 있겠지만 목검일 경우는 그냥 조금 더 긴 봉을 드는 것이 나은 셈이다.

하지만 또한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거나 비무대 위로 오르자 흑의인은 곧 판결을 가리기 위해 올라 있는 두 명의 심판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묵례를 취해 보인 후 다시 주최석이 되는 웅주들이 앉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더불어 크게 포권을 취함과 함께 시선을 한쪽에 고정시키고 차분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한데 그 인사가…… 좀 이상했다.

“이런 이상한 모습으로 인사 올리게 되었음을 깊이 사죄드립니다. 하나 나쁜 의도는 전혀 없사옵고, 오게 된 것조차 드문 기우奇偶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경거망동할 자리가 아니라 믿어 모습을 감추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명명백백 밝은 날 바르게 예의를 갖추고 사죄와 함께 인사 올릴 것이오니 넓으신 마음으로 양해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흑무사!

분명히 이상한 인사였다. 이상한 차림에 얼굴을 가리고 나온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정중한 모습이었다. 아무라도 나올 수 있고, 신분을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자유로 얼굴을 가리고 정체를 숨길 수 있는 대회였는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주최하는 것이 중천보이지만 구태여 웅주들에게 인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

“……?”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러나 까닭을 눈치챈 사람이 딱 한 사람 있었다.

죽립을 쓰고 있었지만 인사를 하는 흑의인의 시선은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었고, 듣자 바로 콧날이 시큰해졌다.

“아버지…… 그이에요.”

“-!”

순간 악불비의 눈이 쭉, 찢어지게 치켜뜨여졌다.

그러했다.

추룡.

알아들은 사람은 악벽강이었고 인사를 한 사람은 추룡이었다. 천만뜻밖에도 그가 영웅전에 출전! 자리를 빌려 악불비에게 첫 인사를 한 것이었다.

불이 흐르듯 죽립 속에서 번쩍이는 눈. 영웅전에 파란이 시작되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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