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친구들 날다 (2)
“단체전에 신입들이 출전한 것도 처음이지만 난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커. 이번 대회는 내가 담당하는 것이니 선전 좀 해 주게.”
수련 때에도 시종일관 신 나게 두드려 맞았던 게 추룡인데 그래도 뭔가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옛, 열심히 하겠습니다.”
추룡은 이유 없이 대답했고, 이런 추룡을 한 번 더 깊숙이 바라본 후 유원헌은 다시 입맛을 다시며 이윽고 숙사 밖으로 나갔다.
곧 수군거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뜻밖이군. 설마 위양검문이 출전하다니. 자칫하면 정말 일 회전에서 탈락하는 불상사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는걸!”
뭘 모르는 터이므로 추룡은 순욱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남 무림 대회의 우승 방파인 것 같은데 강한가요?”
순욱은 주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강하다. 무당파의 무예로 완전히 무장한 곳이지. 칠성검七星劍과 태청공太淸功을 기본으로 수련하고 조공爪功인 태극십삼세太極十三勢까지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칠성검법을 창법화시켜 수련하기까지 한다고 들었다. 남 무림 대회에서 매해 우승을 휩쓸다시피 하고 있고, 실제 남 무림의 최강 방파기도 하다.”
“냉정히 악충보에 비하자면 어떻습니까?”
선발 조장인 일 외향주 문종흔文終欣이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아무래도 좀 밀릴 거야. 전통적으로 안휘 향용들이 강세고 악충보 역시 오랜 역사를 지닌 채 자리하고 있지만 최강이라 할 수는 없으니까. 당주께서 말씀하셨듯 합비의 월명보만 해도 쉬운 상대가 아니고 모두가 강적이라 봐야 한다. 우리가 우승한 것은 보주님께서 후계를 잇기 전 청년기 때 몸소 출전하셨던 한 번뿐이었지. 이후 늘 오 위권에 머물고 있다.”
강북에서 늘 오 위권.
“막강한 것 아닌가요?”
“물론 막강하지. 북 무림에 향용이 한둘이 아닌데. 하지만 위양검문에 비하면 역시 손색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수련할 때 보니 잘들 하더라만 아무래도 너희들이 바싹 신경을 써야 할 거다.”
신입에서 대거 출전한 열 명.
그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었다. 개인이면 모를까 오십 명이 호흡을 맞추는 단체전에서 열 명이란 실로 작은 전력이 아니었으니.
“열심히 하겠습니다.”
슬며시 부담감을 느끼며 친구들은 대답했고, 사물을 정리한 후 추룡은 친구들과 함께 늦을세라 비무대가 있는 밖으로 나왔다.
“와!”
나오자 바깥에는 변함없이 잔치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아아압!”
카카카캉!
“와아아아!”
비무대에는 변함없이 구경차 온 무인들이 친선 겨룸을 벌이고 있었고, 용탈, 사자탈을 쓴 중천보의 무사들이 흥을 돋우는가 하면 구름처럼 모인 군웅 사이로 오가며 각종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 천막을 치고 음식을 파는 상인들, 부어라 마셔라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도 없는 상태였다.
추룡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주 특이한 사업을 하는 곳들도 있었다.
“자, 자! 신용을 제일로 하는 정금장正金莊이올시다! 기왕 오셨으니 즐거움 삼아 내기를 하십시오! 삼십이 개 출전 방파 중 우승자를 가리는 내기입니다!”
“사기는 없습니다! 일 할 수수료만 빼고 관리해 드립니다! 신양 제일의 지국전장支局錢莊입니다!”
춘추대회를 기회로 돈놀이를 하는 신양 도처의 전당방典當房에서 사람들이 나와 즐비하게 가판소를 설치하고 우승 방파를 가리는 내기를 부추기는 것이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게 보였다.
보자마자 문대위가 제일 먼저 관심을 보였다.
“우리도 한번 해 볼까?”
“서른두 개 방파가 출전했는데 누가 우승할 줄 알고?”
“아무래도 위양검문이 제일 강세일 거야. 하지만 우린 악충보에 걸어야지! 직접 출전하니까 선전도 기원할 겸.”
“삼 년 전에도 걸었다가 망했는데.”
“그래도 해 보자!”
친구들은 곧 줄을 섰다. 출전 여부를 떠나 이런 것도 사실 한 재미인 것이었다.
줄을 선 곳은 지국전장이 관리하는 가판소였고, 친구들은 곧 정보를 물었다.
“배당에 대해 먼저 알고 싶은데요?”
안내하는 인물은 웃으며 대답했다.
“위양검문이 우선 우승 후보입니다. 그런 만큼 배당은 가장 약합니다. 현재 일 점 오 대 일 정도입니다. 다음은 신도문입니다. 이 대 일 정도 배당입니다. 이하 중천보와 월명보, 덕주부도 강세입니다. 삼사 대 일 정도가 됩니다.”
“악충보는 어떻습니까?”
“강세이긴 하지만 전적이 좀 그러해서 우승 후보로는 처지는 편입니다. 정보에 의하면 신입들이 출전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현재 십이 대 일 정도의 배당입니다.”
많이 처지는 편 같았다.
“정확히 점주님들이 보시는 후보는 어떻게 되나요?”
세상을 뚫어 본다는 전당방 상인들의 눈.
“아무래도 위양검문과 신도문, 덕주부 정도에서 우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파란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처음 출전한 강소의 궁륭방 같은 경우는 상당한 복병이 되는데 우승하면 백 대 일의 배당까지 됩니다. 재미니까 무리해서 한 곳에 거는 것보다 고르게 조금씩 걸어 보시는 것이 가장 좋습죠.”
친구들은 점주의 말에 따랐다.
“위양검문, 신도문, 덕주부에 각각 일 전씩, 악충보에 열 전 걸겠습니다.”
“예, 좋습니다! 악충보가 우승하면 수수료 떼고도 한 냥이 되겠군요. 행운을 바랍니다.”
추룡도 걸었다.
“악충보에 은자 다섯 냥!”
“헉!”
“자네 미쳤나? 거의 일 년 치 녹봉 아닌가?”
친구들의 눈이 일제히 휘둥그레졌다.
재미로 하는 것치고는 사실 너무 큰 것이었다.
그러나 뭐, 추룡은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주머니를 탁탁 털었다.
“뭘, 어차피 우승을 기원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래야 정신도 번쩍 들 거고, 난 자네들을 믿어.”
“햐!”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는 속에 임백호가 히죽이 웃으며 또한 바로 주머니를 털었다.
“아무래도 사부님께서 제대로 하실 마음이 있는가 본데 그렇다면야, 나도 악충보에 다섯 냥!”
“가진 게 두 냥뿐이니 나도 전부!”
더불어 전소도 주머니를 털었고, 이렇게 되자 친구들 역시 다시 주머니를 꺼냈다.
“다른 데 치우고 악충보에 한 냥!”
“두 냥 반!”
열 명이 건 액수가 무려 은자 스무 냥이 넘었다.
“햐……!”
점주조차 눈이 휘둥그레졌다.
“알고 보니 악충보의 분들이신가 보군요? 기백이 좋으십니다! 믿음을 가지셨으면 이 정도는 하셔야겠죠! 우승하면 대박입니다. 계속 사람들이 내기를 걸고 있으니 사흘 후면 십오 대 일이나 이십 대 일가량이 될 것입니다. 수수료 제외하고도 삼사백 냥이 되는 셈이죠. 정금장과 신한장과도 연대해 드릴까요? 우승하면 당연히 배당이 훨씬 커집니다. 그 경우 수수료만 오 리 더 받습니다.”
어차피 걸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혹시 들고튀시는 것은 아니겠죠?”
“하하! 그럴 리 있겠습니까? 호걸들을 상대로 하는데 목숨이 천 개쯤 되면 모를까. 우리 지국전장의 자산만 해도 금金 백이 넘습니다. 신용 본위니 염려 마시고, 악충보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하하!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해 보는 대도박이로군! 입문했다 해도 막 형이 아니었다면 이런 은자는 만져 볼 수도 없었을 건데. 이젠 진짜 결사적으로 싸워야겠군!”
“몽마 사건으로 생긴 여유지만 그래도 가슴이 떨리네. 본전 찾으려면 무조건 이기는 수밖에 없어.”
단순히 하는 내기라면 과하지만 임전臨戰에 앞서 하는 만큼 결의를 다지기에는 더할 바 없이 좋은 것 같았다.
“탁탁 털었으니 사부님이 책임져!”
“난 몰라. 내가 하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최선을 다하기로 하세.”
싱글벙글 친구들은 마저 남은 푼돈을 털어 국밥까지 사 먹고 숙사로 다시 돌아갔다.
드물지 않게 고수다 싶은 무인들이 조용히 오가는 모습들도 보였다.
“허! 놀랍소이다! 이분이 정말 이소저신가요?”
“남장을 하고 계실 때는 몰랐더니만……!”
“헛헛! 워낙 선머슴 같은 여식이라 부끄럽소이다.”
그런 속에 악불비 역시 어깨를 펴고 있었다.
악벽강으로 인해서인데, 말을 타고 오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도착하자 악벽강이 다시 단장을 하고 궁장으로 갈아입은 것이었다.
당연히 기품과 미모가 드러났고, 이를 본 참석한 웅주들과 명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었다.
추룡을 사랑하게 되면서 악벽강은 선머슴, 색왕녀 따위의 불명예를 완전히 씻어 내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단정히 손을 소맷자락 속에 집어넣고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악불비의 뒤에 서 있었는데, 서릿발이 날리는 듯한 기품하며 주위의 시선들이 모조리 쏠릴 정도였다.
보자 바로 실없는 소리를 하는 웅주들까지 나서고 있었다.
“헛헛! 악 소저를 뵈니 갑자기 우리 큰놈이 걱정되는구려. 녀석도 벌써 서른둘인데 무예에만 미쳐 아직도 홀몸인 터라……!”
속이 뻔히 보이는 소리였지만 악불비는 모른 척 헛기침만 했다.
“흠흠……! 서두르셔야 되겠구려. 사실 불초도 이 녀석 때문에 꽤 고민을 하고 있소이다만, 워낙 남자들을 피하는 결벽증 같은 게 있어 설득시키기 쉽지 않구려.”
원래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결벽증까지라 하면 색왕녀라는 별명은 일단 물 건너로 가는 것이다.
“악 보주님! 대회 끝나고 우리 조용히 한잔하십시다! 소제가 거하게 모시겠소.”
“헛헛! 그리합시다. 뭐, 대단한 일이겠소이까.”
전이라면 모르되 대답을 하면서도 악불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딸의 변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어느 녀석인지 참 신통하기도 하지, 속히 대장군감이라는 사윗감의 코빼기를 봐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사흘.
둥! 둥! 둥!
“와아아아아!”
구름같이 운집해 신양평을 메운 인파. 전소의 예견은 또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도착하던 날 보았던 사람들은 이만에 미치지 못했지만 사흘 동안 계속 기하급수적으로 인파가 몰려들더니 개회식이 시작되자 사만이 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군웅이 신양평과 계공산의 곳곳을 메운 것이었다.
무림인들도 많았지만 가까이 사는 인근성의 사람들 및 온갖 상인들을 비롯해 지나가던 여행객들까지 다 몰려온 것이었다.
가장 신이 난 것은 전당방의 사람들이었는데, 온 사람들이 거의 철전 한두 개는 내기에 걸었으므로 허언이 아니라 금전이 산더미같이 쌓인 상태였다.
누가 이기든 이들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수수료가 일 할이므로 무조건 십 분의 일은 자신들의 것이었다. 악충보의 배당률은 그들의 예상조차 훌쩍 넘어 사십 대 일이 되어 있었다.
대부분이 우승 후보로 지명되는 위양검문이나 신도문, 덕주부에 건 눈치였다. 하지만 심하게 건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누가 이기고 지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냥 기분일 뿐.
“홍무 삼십 년, 사십팔 회 강북 무림의 추계 군림대회를 맞이하여 자리를 빛내 주시고자 불원천리 달려와 주신 각계의 영웅호걸과 은숙님 들, 만장해 주신 모든 분들께 미흡한 필부 사도남옥司徒藍玉이 깊이 감사드리는 바이올시다!”
개회사가 시작되었다.
중천보의 대광장에는 출전하는 삼십 개 방파의 무사들 이천여 명이 열 지어 말을 탄 채 긴장된 표정으로 대기 상태로 서 있었고, 도처에서 찾아온 명숙들이 즐비하게 선 거문 위에서 중천보주 신기일검神技一劍 사도남옥이 포권을 취하며 진력을 실어 구름처럼 운집한 인파를 향해 인사를 한 것이었다.
“아시겠지만 춘추군림대회는 몽고에 중원이 장악당해 있던 원의 중기, 어둡던 시대에 양민들과 무인들에게 작으나마 중원이 아직 건재해 있다는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고자 도처의 향용 방파들이 뜻을 맞추어 시작한 대회올시다! 이를 통해 천하의 무인들이 기량을 쌓고 기백을 떨쳐 왔던바, 마침내 우리 중천보에서도 개최하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뜻깊은 대회에 누가 승리를 하건 그런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천하 각처의 향용들과 호걸들이 선의로 기량을 선보이고 겨루는 대회인 만큼 모두에게 아낌없이 축하와 격려의 갈채를 보내 주셨으면 싶습니다. 성황을 이뤄 주신 점에 다시 깊이 감사드리며 이상으로 개회사를 마치겠습니다!”
“와아아아!”
둥, 둥, 둥!
순간 신양평과 계공산이 한꺼번에 뒤흔들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함성이 대고大鼓 소리까지 집어삼키는 속에 곧 진행자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관례에 따라 첫 시합은 단체전으로 시작됩니다! 기마전이오니 안내 선까지 중앙을 비워 주십시오! 일 차전은 삼십이 개 방파가 이 조로 나눠 승패를 가립니다! 웅주들께서 은행 알을 뽑아 상대를 찾게 되며, 사시와 유시 두 번, 결승전까지 사흘에 거쳐 겨루는 것입니다! 사시와 유시 사이에는 각파의 개인전이 치러집니다! 개인전 역시 사흘 안에 승자를 가리며, 이후 밤에는 영웅대회가 치러집니다! 질서를 지켜 주십시오!”
“출전자 출격!”
“와아아아아!”
둥! 둥! 둥!
오래잖아 벌판을 뒤덮었던 군웅은 거대한 원형으로 둘러선 채 벌판 중앙에 공간을 만들었고, 곧이어 두두두, 하는 말굽 소리와 함께 대기했던 삼십이 개 방파의 출전 무사들이 차례로 비워진 중앙으로 달려 나와 사열해 섰다.
한결같이 긴장으로 팽배한 표정들! 몸담은 방파의 명예를 걸고 부딪칠 시간이 도래한 것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전의를 갈고 있었던 그들이다.
“엇……?”
“흠흠.”
그러한 속에 거문 위에 섰던 각 파의 웅주들은 상자 속에 손을 넣어 제각기 은행 알을 뽑았다.
도합 서른두 개! 일에서 십육까지 한 쌍으로 번호가 적혀 있었고, 같은 숫자를 뽑는 방파끼리 첫 격돌을 하는 것이었다.
완벽히 승부를 가리자면 출전한 모든 방파들이 모두 한 번씩 대결을 벌여 우열을 가려야 했으나 그렇게 하자면 너무 많은 시일과 힘이 소모되므로 십육, 팔, 사, 이 형식으로 단판 승부를 벌였다.
따라서 추첨 운이 크게 따라야 하는 대회기도 했는데, 자칫 은행 알을 잘못 뽑아 첫 시합에서부터 우승 후보와 부딪치게 되는 경우는 실력이 있어도 상위에 오르지 못하고 애석하게 탈락되는 수가 있었다.
완전히 상위권의 실력이 되는 방파의 경우는 애석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방파의 경우는 또한 좋을 수도 있었다.
애석해도 완전히 서열을 가리는 게 아니므로 운이 나쁘군, 하고 히죽 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참가한 인물들의 자존심까지 고려한 방식으로서, 분명한 것은 최강자가 우승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단판 승부가 되건 뭐가 되건 실력이 있어야만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니까.
은행 알을 뽑자마자 애석해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기뻐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악충보의 은행 알은 악벽강이 뽑았는데 운이 따랐던지 팔 번, 첫 상대는 강서성의 화서보華西幇라는 방파였다.
출전 방파 중 비교적 약체인 곳.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출전 방파들은 모두가 각 성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나오는 만큼 털끝만큼이라도 마음을 놓았다가는 바로 허를 찔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추첨 운이 이래? 시작부터 위양검문이라니? 연안방도 분명히 우승 후보 중 하난데!”
“하하하! 그냥 안전한 게 무조건 최고일세! 우린 처음부터 위양검문에 모두 걸었어!”
오래잖아 상대가 발표되었고, 운집한 군웅의 얼굴에도 저마다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강자에게 내기를 건 사람들은 대부분 안도하는 표정이었지만 일확천금을 생각해 배당이 높은 방파에 상당한 액수를 건 인물들은 크게 실망하는 표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승패는 겨뤄 봐야 아는 걸세! 어차피 우승하려면 위양검문을 넘어서야 해. 연안방이 위양검문에 패한다는 보장도 없지!”
틀리지 않았다. 이래도 저래도 우승자는 하나이므로 군웅은 무조건 자신이 선호하는 방파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일에서 십육! 각자 정해진 상대의 앞으로!”
둥, 둥, 둥!
“와아아……!”
“잘해라! 덕주부! 열 푼이나 걸었다!”
“하하하……!”
웅장하게 울리는 북소리, 군웅의 웃음과 응원 속에 열여섯 개로 조를 나눈 각파의 무사들은 눈을 번뜩이며 삼십 장 간격, 마침내 눈을 번뜩이며 서로를 주시하면서 격돌 채비를 갖추었다.
“준비!”
여덟 개 조씩 두 차례에 걸쳐 승부를 겨루는 것이었다.
“시작!”
“쳐!”
“와아아아……!”
콰두두두두……!
그리고 금고 소리가 끝나는 어느 한순간, 진행하는 무사들의 깃발이 휘저어짐과 함께 급기야 일 조, 열여섯 개 방파의 무사들이 일제히 박차를 가해 서로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온갖 기마 전술이 화려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신호와 함께 사두진형蛇頭陣形으로 세모꼴을 이룬 채 바로 상대를 향해 돌진해 가는 방파가 있는가 하면 맞서 학이 날개를 펼치듯 한 학익 진형으로 화려하게 휘감아 가는 방파, 당장 부딪치기보다 꼬리를 물고 원형으로 돌면서 탐색으로 시작하는 방파, 처음부터 두셋으로 중앙 돌파를 시도해 가는 방파도 있었다.
악충보 역시 화서보와 부딪치게 되었다.
한 개 조에 주어진 격돌 공간은 횟가루로 표시한 지름 삼십 장의 원형 지역이었고 여기에서 상대와 부딪쳐 승부를 가려야 하는 것이었다.
시작은 이자二字 진형!
“꼬리를 물어 승부를 가린다! 발진!”
“하!”
두두두두두!
신호와 함께 화서보는 곧바로 진열을 길게 늘어뜨리며 좌측면에서부터 행동을 개시해 왔다. 장사진형長蛇陣形으로서 측면부터 무너뜨리면서 선기를 잡자는 뜻. 기마전에 있어 가장 안정적이자 기본적인 진열일 수도 있었다.
“맞진 발동! 우측으로 선회!”
두두두두두!
여기에 맞서 악충보의 무사들도 함께 대열을 갖추고 우측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원형으로 함께 회전하며 서로를 노리는 형상이 되었는데, 일 차에 서로의 꼬리를 물고 배후를 노리는 것이 되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