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가짜 연인戀人 (5)
장신은 떠올랐던 기광만큼이나 실망의 빛을 비쳤다.
“할 일이라니 무엇인가? 무인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가?”
추룡은 거듭 포권과 함께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오나 불초에게 중대하오며, 멀리 보면 또한 나라에도 도움이 되는 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해량하여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안타깝군! 허언이 아니라 정말 자네 같은 무인들이 많이 필요한데……!”
장신은 정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추룡은 한 번 더 포권을 취해 보였다.
“외람되오나 권언조차 받들지 못하는 터에 대감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소저의 일이온데, 함부로 지체 높으신 어른들의 집안일에 참견할 수 없지만 진정으로 소저께서는 아직 혼인을 생각하고 있지 않으신 듯하였습니다. 오죽했으면 불초 같은 하찮은 사람까지 대동해 오셨겠습니까만 헤아리셔서 보주님께 좋게 서찰을 써 주셨으면 싶습니다. 그리해 주시면 기회가 되는 대로 불초 신세를 갚겠습니다.”
“흠……!”
장신은 이런 추룡의 면면을 다시 살폈다.
“특이하군. 초면이지만 왠지 자네가 매우 마음에 드네. 기도도 범상치가 않고 헛되이 거짓을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람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 처제와는 어떤 사이인가?”
“내당의 견습 무사가 되어 있습니다. 소저는 직속상관이신데, 많은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홀로 남으실 보주님을 염려하는 마음이 크실 뿐 아니라 스스로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 없다 하시니 조금 더 시간을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아뢰는 말씀입니다.”
역시 솔직한 이야기.
“흠……!”
장신 역시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대화한 대로라면 악불비의 청으로 주선한 일이지만 그대로 종신대사가 본인의 마음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 당장 악벽강이 싫어서 가짜 연인까지 동반해 온 터인데, 무리하여 일을 추진해 될 것이 무엇인가?
한참 동안 염두를 굴려 본 후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함세. 내 생각건대도 이 정도 상태라면 될 일이 아니라 보니. 장인어른의 우려하심이 크신 것은 알겠지만 동기간의 우애도 생각해야겠지. 그리함세. 어차피 시국도 어수선하고, 그러는 게 좋겠다는 느낌이 드는군. 그 안에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 더욱 좋고. 좋은 쪽으로 서찰을 써 주겠네.”
승낙.
추룡은 그가 매우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크게 포권을 취해 사의를 표시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신세 잊지 않겠습니다.”
이런 추룡을 살펴보며 장신은 미소와 더불어 또 아쉬움을 보였다.
“자네가 감사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보다 정말 마음이 그렇군. 분명히 느낌이 오고 있지만 자넨 실로 예사의 무인이 아닌 듯한데……! 함께 북평으로 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은데 말일세.”
추룡은 답변할 때마다 포권을 취해 보였다.
“뜻은 대리사에 있사오나 외관직이 되면 북평으로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가게 되면 반드시 대감님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휘하에서 일할 수 있으면 큰 영광이 될 것 같습니다.”
“나도 꼭 자네와 함께 일을 해 보고 싶군. 자네 같은 사람이 휘하에 있다면 크게 마음이 든든할 것인데. 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북평으로 온다면 반드시 연락하게나. 결코 서운하게 하지 않겠네.”
단단히 추룡을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약속드리겠습니다.”
“자네를 만나게 되어 기쁘군.”
장신은 아쉬운 듯 미소 지었고, 이때 내실의 문이 열리며 악벽강이 굳은 표정으로 거실 쪽으로 다시 나왔다.
“되었으니 그만 가도록 해요, 막 대협! 언니에게 모두 이야기하였으니! 형부께서도 들어 보신 후 판단하시고요.”
크게 속이 상한 모습이었다.
이런 악벽강을 보며 장신은 난처한 듯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헛헛……! 예나 지금이나 급한 성격은 변함이 없구먼. 그렇다고 당장 가겠다고까지 해서야. 고정하시고 앉게. 모처럼 언니를 만났는데 하룻밤 정도는 회포를 푸시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못난 형부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은데, 참아 주게. 위 참의와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네.”
잔뜩 굳어 있던 악벽강의 얼굴에 멈칫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없던 일로 하시겠다고요……?”
장신은 씁쓸히 고소 지으며 추룡을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막 소협과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역시 무리한 일인 것 같아. 처제가 이렇게 싫은 반응을 보이는데 어쩌겠나? 장인어른께는 송구하지만 적당히 둘러대어야지. 경사가 되어야 할 일이 비극이 되어서야 안 될 테니. 그러니까 고정하게.”
“형부!”
순간 악벽강의 표정이 놀란 듯 활짝 펴졌다.
“정말이신가요?”
“헛헛…… 정말이지 어쩌겠나? 장인어른께서는 처제를 염려하셔서 일을 서두르고자 하시지만 어지간해야 말이지. 막 소협을 연인이 맞다고 써 주면 되겠나?”
“네에!”
악벽강은 완전히 기쁜 표정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추룡의 팔까지 끌어안으며 웃으며 대답했다.
“딱 그렇게 해 주시면 되셔요. 저는 정말 아직은 혼인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만 생각은 해 보겠습니다. 좋은 사람이 생기면 가는 쪽으로!”
“……!”
순간 장신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입이 딱 벌어졌다. 하지만 놀란 것은 장신만이 아니었다. 추룡 역시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는데,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악벽강은 무의식중에 한 일이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듯하지만 분명히 그녀가 추룡의 팔을 안고 웃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수하라 해도 남자라면 질색이라는 처녀가……!
무의식이긴 하지만 이것을 완전히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황당한 표정이 되어 장신은 입을 벌린 채 악벽강을 쳐다보았고, 너무 난데없는 일이라 추룡 역시 놀란 표정이 되어 눈을 멀뚱거렸다.
하지만 무슨 기막힌 일인지 그럼에도 악벽강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추룡의 팔을 안은 채 웃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이 내색을 하면 악벽강은 굉장히 난처한 입장이 된다.
추룡이 어색한 웃음을 머금으며 얼른 큰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정말 잘된 것입니다, 소저! 생각하시는 바를 말씀 올렸더니 대감님께서 바로 이해하시더군요! 정말 자상하신 형부님을 두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팔을 뺐다.
하지만 악벽강은 그래도 모르고 있었다. 의식 못 하고 계속 웃었다.
“사실입니다. 형부님 원래 좋은 분이신데 아버님께서 심려를 하시는 통에 늘 곤란을 겪곤 하시죠. 고마워요, 형부!”
“흠흠……! 거, 뭐, 고마울 것까지야.”
황당한 표정이 된 채 헛기침을 한 장신은 얼른 시선을 돌렸다.
도무지 어찌 된 노릇인 것인지……!
아무래도 그는 추룡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가 희한하다는 기분……!
얼른 말을 돌렸다.
“그럼 위 참의와의 일은 그리 처리하기로 하고, 일단 쉴 거처부터 마련하기로 하지. 먼 길 오느라 고단할 테니 하루 정도는 쉬었다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은가, 막 소협?”
“아, 그야 당연히……!”
황당한 일이 생김으로 추룡까지 어색하게 대답했다.
정말 뜻밖의 일로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역시 악벽강 한 사람뿐인 셈이었다.
한데 이때였다.
“장 시위, 안에 있는가.”
바깥문이 열리며 또 한 번의 뜻밖인 일이 생겼다.
장신 내외와 친분이 큰 듯 기침 소리도 없이 불쑥, 실로 범상치 않은 두 인물들이 들어선 것이었다.
일승일속一僧一俗.
한 사람은 예순 후반가량의 나이에 회색 승포를 입은 승려였다. 마른 듯한 체구에 눈처럼 흰 눈썹, 곧게 선 콧날과 길게 찢겨져 올라간 응안鷹眼에서 섬뜩하다 싶을 정도로 맑고 싸늘한 눈빛이 쏘아지는. 범상치 않다고 했듯 창노하고 강단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 흡사 산을 방불케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또 한 사람은 마흔 살가량의 나이에 적당한 체격, 양 볼에 복록이 있어 보이는 금삼을 입은 중년인이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그냥 인상 좋은 이웃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지만 유심히 보면 또한 그대로 용이라 할 정도의 큰 위엄을 지녔다.
이렇다 할 무예 같은 것을 지닌 것 같지 않은데도 위엄 하나로 주위를 완전히 압도하는 그런 기도를 지닌 것이었다.
추룡조차 ‘쿵!’ 가슴이 주저앉을 정도였다. 정명 등 나한들을 보았을 때도 이렇지 않았는데, 승려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몸에 오싹하는 한기寒氣가 들 정도로 예리함을 느꼈고, 중년에게서는 마치 태산을 대하는 듯한 그런 중압감을 받았던 것이다.
소림 나한에 악불비 등, 쉬워 보이지 않는 관록을 지닌 장신까지 본 터였지만 다 합쳐도 이들만 한 기도가 못 된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 대사님, 마형.”
크게 놀라 몸이 경직될 정도였는데, 그러나 장신은 익숙한 듯 웃음과 함께 읍을 하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갑작스럽게 어쩐 일이십니까?”
“손님이 계셨던가?”
더불어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함께 선 추룡과 악벽강에게로 옮겨졌다.
동시에 좀 더 일찍 경각심을 지닌 채 그들을 바라보던 추룡의 시선과 두 사람의 눈길이 ‘퍽!’ 그대로 허공중에서 불꽃이 튀듯 부딪쳤다.
흠칫, 추룡도 두 사람의 시선에 살矢이 꽂혀 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두 사람 역시 움찔, 비수가 베고 드는 듯한 느낌을 받는 듯했다. 한 울타리 속에서 전에 보지 못한 생소한 맹수들이 부딪친 듯한 그런 어떤 강렬한 교감交感!
추룡도 두 사람도 부딪치자 서로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는데 눈치채지 못하고 장신은 웃으며 두 사람에게 악벽강을 소개했다.
“외인外人이 아닙니다. 예전에 한번 말씀 올린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휘주 악보에 거주하는 소관의 처제입니다.”
하지만 듣는 둥 마는 둥 두 사람은 계속 추룡만 주시했다. 추룡 역시 두 사람을 주시했고.
만약 이것이 교감에서 느끼듯 정말 한 울타리 속에서 만난 생소한 맹수들끼리의 부딪침이라면 어떤 현상이 생길 것인가.
당연히 맹수들은 처음으로 대하는 상대의 능력 및 성격을 파악하려 들 것이었다. 경계하며 서로를 주시하되 자신에게 해害가 될 것인지 이利가 될 것인지, 혹은 무관할 것인지를 파악하는 것으로 무형 중의 힘겨루기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해를 가려 해가 될 것 같으면 경계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가 될 것 같으면 우호를 표시할 것이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선뜻 그것을 가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누군지 알 수 없었지만 추룡은 두 사람을 봄과 동시에 처음이라 할 정도로 어떤 강렬한 기도 같은 것을 느꼈는데, 그것은 실로 쉽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두 사람 역시 추룡에게서 어떤 큰 존재감을 느낀 눈치였다.
서로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존재감은 똑같이 대단한 압박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강하게 느껴지는 만큼 피차 이 힘이 경계되고 있었던 것.
그러나 장신과 함께 자리를 하고 있고, 처제라는 처녀와 함께 있는 젊은이라면……!
승려인 인물이 기지機智를 발휘하는 것 같았다.
한발 앞서 추룡에게서 시선을 떼어 악벽강을 보았고, 다시 추룡을 보며 놀랍다는 듯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었다.
“어허! 비루먹은 승려가 천하를 떠돌다 금릉에 들렀더니만 여기에 제천선녀霽天仙女와 문창무곡성文唱武曲星이 머무는구나! 듣관데 악보에 빼어난 딸이 있어 짝을 찾지 못함에 한탄하고 있다더니 어인 헛소문이던가! 오늘 무곡성을 찾아 한자리에 섰으니 이것이 천생배필이요, 하늘이 내린 연분이로다!”
“엣……?”
그야말로 뜬금없는 소리. 이쯤 되면 천하 기재가 어쩌고 재녀가 어쩌고 하는 찬사는 들이대기조차 창피한 것이었다. 그대로 악벽강을 선녀에 비유했고, 추룡을 문과 무를 다스리는 하늘의 문창무곡성으로 발라 버린 것.
게다가 두 사람을 대뜸 연분이라 하니 그야말로 황당할 정도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느닷없는 이야기에 악벽강은 크게 당황했고, 장신 역시 적잖게 당황했다. 긴장하고 있던 추룡 역시 마찬가지로 멈칫하는 기색이 되었는데, 승려의 이 말은 필경 갑작스러운 조우로 일어난 어색한 분위기를 메움과 함께 적이 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봐야 했다.
비로소 추룡 역시 갈기가 세워지듯 쭈뼛하던 경계심 같은 것이 다수 숙여지는 느낌이었는데, 눈치챈 듯 승려가 눈을 번쩍이며 추룡을 향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열네 살에 탁발승이 되어 천하를 떠돌았으되 이같이 빼어난 기운을 지닌 젊은이를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운이 좋아 여기에서 수재秀才를 만나는구먼! 폐승은 승록사僧祿司의 걸승乞僧 도연道衍이라고 하네. 젊은 시주는 누구인가?”
승록사란 명 조정의 육부 중 예부에 속한 부서로 불문과 관련된 모든 일을 관장하는 곳이었다.
예부란 명칭 그대로 학문에서부터 제례 등 국가의 모든 의례를 맡은 곳으로서 제례를 담당하는 만큼 불문의 가람들을 관할하는 부서도 있었고, 도교를 담당하는 부서 역시 있었는데, 승록사가 불문과 관련된 업무를 살피는 곳이었고, 도록사가 도교와 관련된 업무를 관리하는 곳이었다.
권력이라 할 수는 없었지만 국록을 받는 승려로서 품직을 지닌 인물인 셈이었다.
변함없이 전해지는 큰 기도. 승려라 보기에 심할 정도로 쏘아지는 눈빛이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을 누르는 기분이었지만 일 차에 그가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므로 추룡은 곧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대답했다.
“막추룡이라 합니다. 법력 높으신 승록사의 대사님을 뵙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막씨 성……?”
그러자 기이한 승려 도연은 다시 멈칫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번쩍이는 눈으로 추룡의 아래위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
그리고 시선이 추룡의 허리에 둘러진 대장검에 머무는 순간, 멈칫! 그의 얼굴에 한 번 더 해연히 놀라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곧바로 추룡의 얼굴로 다시 시선을 가져가는가 싶더니 기이한 청을 했다.
“초면에 결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막 시주, 두르고 있는 장검을 좀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이해할 수 없는 태도, 의아했으나 어려운 일이 아닌 만큼 추룡은 선선히 장검을 풀어 도연에게 건네주었다.
혼자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뽑은 일이 없었던 장검.
창! 건네받은 도연은 곧 장검을 한 자가량 뽑아 보았다. 그러자 맑은 소리와 함께 칼집 속에서 서릿발이 일 듯한 검신劍身이 뽑아져 나왔고, 이를 본 도연은 한 번 더 해연히 놀란 기색을 지으며 바로 탁, 하고 칼을 도로 칼집 속에 꽂아 넣으며 말문을 열었다.
한데 그의 말이 실로 놀라운 것이었으니!
“틀림없는 월상月霜이로군! 자네, 개봉도위부의 대한장군이셨던 막 장군과 어떤 관계인가?”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
추룡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과 함께 실내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일제히 의혹과 함께 엄청난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 (1)
빠르게 구름 사이로 흐르는 달月.
그의 정확한 별호는 군위제일검軍威第一劍이었다. 약관에 무과에 응시하여 장원으로 개봉부 대리사의 외직무관이 된 후 퇴임하기까지 한 번도 패배가 없었던 인물.
재직하는 동안 무수한 강호의 사인邪人들과 부딪쳤으나 법에 의거하되 늘 인정을 남겼고, 마침내 금의위가 되어 정치적인 싸움에 휘말려 많은 고수들과 싸웠지만 끝까지 패배가 없었기에 얻게 된, 군부가 준 명예였다.
하지만 그는 연연치 않고 이 명예를 버렸다. 태조의 전횡 속에 팔십만의 양민들이 피를 뿌리는 대참사가 일어나자 바로 대한장군이라는 어마어마한 직책을 버리고 하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