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괴상한 신입들 (3)
분명히 아주 좋은 점이라 볼 수 있었다. 동기가 많다는 것만 해도 든든한 것이었는데 친구들이 모두 한 단에 소속이 되었고,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된 것이었으니까.
모두는 자신도 모르게 서로의 얼굴을 힐끗 바라봤다.
“신입 열 명이라면…… 내당에 편입된 인원이 우리들뿐인 것입니까?”
순욱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이다. 이번 신입은 정기 인원이 아니라 보충 인원을 차출한 것이었다. 늘 험한 일과 부딪치는 외당과 달리 내당은 안정적인 부서라 많은 보충 인원이 필요치 않지. 백이십 명 중 열 명만 내당에 배치된 것이다.”
대단한 행운이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된 까닭이 무엇 때문인지 알 것이다. 하지만 우쭐거려서는 안 돼! 그럴수록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서 상위로 올라가야지.”
악벽강.
필시 그녀의 힘이 작용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신입인 친구들을 하나로 묶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는 것.
‘하……!’
친구들은 적잖게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사실 이런 행운을 가진다는 것은 만에 하나도 드물다. 어쩌면 악충보가 생긴 후로 처음일 수도 있었다.
일각여 후.
“신임 삼향 내단주 순욱!”
“신입 전소!”
“동 임백호!”
“동 문대위!”
“동 허원소!”
“동 막추룡!”
“동 장청!”
“동동동…… 십일 명! 홍무 삼십 년! 내삼향에 편입을 명받았으므로 이에 당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진! 충!”
이윽고 순욱을 비롯한 친구들 등 열 명은 정충전의 내당, 악벽강의 집무실로 들어가 직속상관인 그녀에게 정상으로 신고를 했다.
면접 당시에도 잠깐 설명되었듯 오 층으로 이루어진 정충전은 일층이 보 내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대집무전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오 층은 보주인 악불비와 총관, 총무부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사 층이 내당의 집무실, 이하 이삼 층은 외당의 집무실로 쓰이고 있었다.
들어서자 악벽강은 변함없이 멋지다 싶은 모습으로 자신의 집무실 서탁 뒤에 앉아 이런저런 서류들을 뒤적이며 업무를 보고 있었고, 신고를 하자 곧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호수처럼 시원해 보이는 눈. 차례로 모두를 훑어본 후 순욱을 향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순 단주. 오랫동안 애써 일해 오셨으니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모쪼록 계속 수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순욱은 더욱 바르게 부동자세를 취했고, 더불어 악벽강은 미소와 함께 전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전소라고 했지? 내당의 사람이 된 기분이 어떤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전소는 부동자세로 최대한 간단히 대답을 했다. 위에 조장이 있고, 더 위에 단주, 더 위에 향주, 가장 윗자리에 있는 직속의 최고 상관인 사람에게 말단이 한 마디라도 실수할 일은 없는 것이었다.
전소의 옆에 서 있었으므로 다음으로 질문받은 사람은 추룡이었다.
“막 대협은?”
‘마…… 막 대협?’
순간 모두는 어리둥절한 심정이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뜬금없이 그녀가 추룡을 대협이라 부르지 않는가.
둔촌에서 만났을 때 언급했던 일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알 리가 없었다.
“매우 좋습니다! 영광입니다!”
“좋다니 다행이군.”
추룡은 그대로 부동자세로 대답했고, 악벽강은 빙그레 미소 지어 보인 후 또 옆의 임백호에게 말을 건넸다.
“임백호는?”
한데 대체 웬일인가?
여기에서 임백호가 시작부터 사상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옛! 좋습니다! 천하에 명성 높으신 색왕녀! 색……?”
“응……?”
추룡을 막 대협이라 부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였던지 뭔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늘 우스갯소리로 입에 붙여 말했던 악벽강의 별명을 습관처럼 꺼내고 말았던 것이다.
급히 정정했다.
“가 아니고 예! 무조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당연히 모두의 표정이 괴상망측하게 변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기실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악벽강의 이 별명은 여성에게 있어 거의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들으라는 듯이 버젓이 본인 앞에서 내뱉은 것이니.
임백호의 얼굴은 자신도 모르게 터질 듯 벌겋게 달아올라 버렸고, 친구들은 물론 순욱의 얼굴까지 경악으로 가득 찼다.
“뭐야, 저 녀석들……?”
신고식 중이라 목소리는 아주 커 바깥 부서실까지 음성이 들릴 정도였고, 분위기가 삽시간에 썰렁해졌다.
당연히 가장 놀란 것은 악벽강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거니와 완전히 기가 찬다 싶은 표정이 되어 눈을 끔벅거리며 임백호를 쳐다보았다.
순욱이 당황하여 급히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신 사과를 했다.
“용서하십시오! 신입이라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하!”
순간 악벽강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뭐, 이제 신고를 하러 온 신입이 고의로 그러기야 했겠는가.
보나 마나 이 떠꺼머리 놈들은 자신의 별명을 안주 삼아 온갖 농담을 다 하고 있었다는 뜻인데, 기가 막혔지만 좋게 생각하면 이것은 또 자신에 대한 애칭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냥 관대하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다들 좋다니 나도 기쁘군. 내당 식구가 된 것을 축하한다. 열심히 하도록. 나가 봐.”
“명!”
힐끗 한 번 더 추룡을 바라본 후 어색한 표정이 되어 자리로 가서 앉았고, 엄청난 실수를 한 만큼 순욱 등 모두는 부서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정신없이 정충전에서 빠져나왔다.
당연히 나오자마자, 모두가 무사할 수는 없었다.
“임백호!”
“옛! 신입 임백호!”
“너 제정신이긴 하냐?”
“모르겠습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갑자기 바보가 되었나 봅니다!”
“바보는 죽어야만 낫는다! 모조리 머리 박아!”
“아구구구구……!”
시작부터 앞날이 창창해 보였다.
그러나 뭐, 이 일이 어쩌면 모두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었다.
“오자마자 너희들 왜 그래?”
까닭은, 아무 곳에서나 기합을 줄 수 없기에 순욱이 삼단 숙사로 돌아와 뒤편에서 엄청나게 혼을 냈는데, 이 꼴을 본 선참들이 의아해했기 때문이다.
“옛! 임백호가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실수?”
“그게……!”
친구들 및 동료들은 머뭇거렸지만 대답했다.
“옛! 신고식을 갔다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당주님을 색왕녀라고……!”
“……!”
선참들조차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임백호를 쳐다봤다.
“……문제아 하나 들어왔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은데?”
원래 신입이 들어오면 기강을 위해 협박도 좀 하고 군기도 좀 잡고 해야 했는데, 워낙 순욱에게 혼이 난 상태라 또 하기도 참 뭐하다.
기가 막힌다는 듯 모두를 쳐다본 후 그냥 좋게 타일렀다.
“알겠지만 단체 생활에서는 하나가 실수하면 전체가 혼이 나는 거다. 그건 얼빠진 정도가 지나서 완전히 자폭 행위인 것인데 조심해라. 사물 정리하고. 닷새 휴가지?”
“옛! 그렇습니다.”
“잘 쉬고 오너라. 올 때는 정신 바싹 챙기고. 작전에 나가서도 실수를 하면 정말 큰일 나는 거다. 목숨이 오가는 거야.”
“옛! 주의하겠습니다!”
대충 이 정도로 마무리된 것이었다. 하지만 친구들 역시 유감이 컸다. 잘나가다가 졸지에 시작부터 날벼락을 맞은 것인데 우선 악벽강의 눈에 벗어나게 생겼다.
일이 단에서 온 세 친구는 더욱 황당했다. 각각 허원소虛元簫, 정백하鄭白夏, 조태형趙太瑩이라고 했다.
장청이 맥이 다 빠진 모습으로 쩍쩍 입맛을 다셨다.
“임 형, 안 그런 것 같으면서도 보면 임 형은 의외로 은근히 사고를 잘 치는 뭔가가 있어. 악왕묘에서도 그랬고……. 솔직하고 박력 있는 건 좋은데 좀 조심하세.”
돌이켜 보면 확실히 좀 그런 뭔가가 있었다.
친구들이 만나게 된 것도 알고 보면 임백호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처음 만날 때부터 임백호는 사고를 쳤다.
악묘에서 배를 잡고 웃는 등 하여 추룡이 급히 도망쳐 나갔고, 육화탑에서까지 문제가 생겨 시진으로 서둘러 가게 됨으로써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의외로 어딘지 좀 신중하지 못한 듯한 그런?
임백호는 코가 쑥, 빠졌다.
“미안해……. 습관이 돼서 나도 모르게 그만……. 막 형을 대협이라고 하잖아. 무슨 소린가 멈칫하다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자리에서. 역사상 그런 실수를 한 사람은 임 형 하나뿐일 거야.”
“미안하다니까……!”
전소가 서둘러 수습했다.
“뭐,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잊어버려! 처음인 허 형, 정 형, 조 형에게 제일 미안하지만 이해해 주게. 임 형이 워낙 성격이 직선적이고 악의가 없어서 그러네. 알고 보면 이런 것쯤은 다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뛰어난 친굴세.”
허원소, 정백하, 조태형도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인데 어쩌겠는가.
그런 일이 더 없기만 바랄 수밖에.
정백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네. 임 형이랑 같은 신입 숙사에서 지냈거든. 실력도 최고고 늘 말도 없고 해서 어렵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뜻밖인 점이 있군?”
곽영이 눈을 끔벅거렸다.
“임 형이 말이 없다고? 없다 이거야?”
“카카카!”
친구들은 결국 한바탕 웃음으로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세! 어쨌건 휴가니! 자네들은 집이 어딘가?”
“멀어. 지방이야.”
“그럼 둔촌으로 같이 가세. 우린 전부 둔촌이니. 동기에 한 단이 되었으니 잘 지내세! 다들 멋쟁이래도?”
세 사람도 털어 버리는 것 같았다.
“부럽군? 우리도 친구와 같이 왔지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전소는 툭툭 추룡의 등을 두드렸다.
“여기 멋진 이 남자가 있어서 그래. 막 형 덕분인데 이야기하자면 길어. 가면서 이야기하세.”
임백호도 회복력 왕성하게 금방 기운을 되찾았다.
“미안한 의미로 한턱 쏘겠네! 하필 색왕녀 소리가 그때 튀어나와서는. 아무래도 색왕녀라고 부르는 습관을 고쳐야 할 것 같아. 이제부터 절대 색왕녀 소리를 하지 않겠네. 색왕녀 소리를 하면 스스로 뺨을 치겠네.”
“……!”
친구들은 또 슬그머니 불안해졌다.
그렇다 하면서도…… 아무래도 계속 사고를 치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뭐, 아는지 모르는지 임백호는 계속 추룡에게 물었다.
“그보다, 색왕녀께서 왜 막 형을 막 대협이라 불렀는가? 이해가 잘 안 가는데 이야기 좀 해 봐.”
“하하…… 나도 잘 몰라. 마시에서의 일 때문에 별명이 된 것 같네.”
추룡도 웃고 말았다.
이야기 나온 대로 악왕묘에서 만날 때부터 답이 좀 없는 것이 임백호였기 때문이다.
닷새.
“향용이 되어 지역을 지키려면 필수적으로 지형을 알아야 하는 것임에 두말할 여지도 없다! 신입들은 오늘부터 황산성 도처의 지형과 마을들, 양민들의 생활상을 하나하나 숙지해야 한다! 영역 안을 손바닥 보듯 해야 할 것이며, 산과 내의 지형까지 꿸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역민들과 가까이 하여 문제점이 없는지, 혹은 불편한 점이 없는지 물어서라도 찾아내어야 하며, 돌아보고 온 후에는 한 일들을 일지日誌에 남긴다! 출발!”
“하!”
두두두두두!
닷새 휴가를 마친 신입들은 마침내 악충보의 무사로서 견습에 나섰다. 향용의 임무는 그대로 치외법권 등 지역을 지키고 양민들을 보호하는 것이므로 향용 방파들은 늘 곳곳을 순회하며 영역 안의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요소가 없는지를 살폈다.
일을 맡고 있는 것은 외당이었고, 휘주 지역은 일 외당이 맡고 있으므로 추룡 등 친구들은 일 외당의 꼬리에 붙어 지역 시찰을 하게 되었다.
지역이 넓은 만큼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없으므로 외당에서는 단별로 대隊를 나눠 사십 인씩 정해진 지역으로 가 주위를 살피곤 했는데, 추룡 등이 처음 간 지역은 황산현의 서쪽 산맥을 등지고 있는 굉촌宏村이었다.
도처에서 황산의 절경을 보기 위한 시인 묵객 등 여행객들이 몰려오는 곳으로서 산마을이라 해도 절경으로 안휘성에서 유명한 촌락이기도 했다.
구름 같은 돌다리가 걸린 명경지수 같은 남호南湖 건너에 선녀가 하강할 듯한 월소月沼가 존재하고, 기송奇松으로 이름 높은 황산이지만 촌락 뒤에는 허벅지만 한 굵기의 청죽림靑竹林이 산자락을 뒤덮은 채 하늘을 가릴 듯 군락을 이룬 곳.
“곳곳을 둘러보며 문제점이 없는지 살펴라. 주민들을 대할 때는 늘 웃음을 머금어야 하고 모든 일에 친절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곧 신호를 하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굉촌에 도착한 악충보의 무사들은 곧 사 인 일 조로 도처로 흩어졌고, 친구들은 열 명이었으므로 넷씩 나눈 나머지 추룡과 임백호 두 사람이 일 조가 되어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 마을 정말 아름답군. 배수 시설도 아주 잘되어 있고, 마을 지형이 매우 특이한 듯한데?”
“그러게. 건물들도 아름답게 잘 지어져 있을 뿐 아니라 가옥들이 우牛 자형으로 자리를 잡았군. 꼭 무슨 진형陣形을 이루고 있는 것 같네.”
“오기 전에 잠깐 이야기 들었는데, 산을 소의 머리로 하여 재앙을 없애기 위해 건물들을 그렇게 나열해 지었다 하더군. 남송 때 자리 잡은 마을이래.”
오가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좋은 모습으로 묵례를 취해 보였고, 마을 사람들 역시 청의 경장을 보면 바로 웃음으로 화답을 하고 있었다.
더러는 말을 걸어오는 상인들이나 노인들도 있었다.
“헛헛…… 수고 많으시군요. 신입으로 오신 무사님들인가 보지요?”
그만치 악충보가 충실히 지역에 헌신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주민들도 한눈에 악충보에서의 신분을 알아보고 있었다.
허리띠 측면에 수놓은 숫자를 보고 신분을 파악하는 것이었는데, 조금 창피하지만 견습 무사인 친구들은 숫자가 일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최하의 신분인 것이다.
“오월에 새로 입문하였습니다. 불편하신 점이나 문제점 같은 게 보이는 것 없으신지요?”
주민들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좋은 상태올시다. 거르지 않고 악충보에서 살펴 주시니. 신입이라니 모쪼록 잘 좀 부탁하겠소이다.”
반짝, 반짝, 반짝. 신입이라지만 이들을 보는 처녀들의 시선은 또 남달랐다. 기존에 있던 문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있어 가정들도 이뤘지만 신입들은 이제야 시작인 것이다.
거의가 미혼인 데다 무사! 속을 들여다보면 위험한 직업이지만 일단 멋있지 않은가. 언급되었듯 수입도 일반에 비해 훨씬 높았고, 악충보는 명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타 방파에 비해 안정되어 있기까지 한 곳이었다.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처녀가 많았고, 특히 추룡이나 임백호는 허우대가 되다 보니, 은근한 눈초리로 살피다가 눈이 마주치면 얼굴을 붉히며 웃음 지어 보이는 처녀도 수두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