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향용입문鄕勇入門 (5)
“확실히 그렇군.”
추룡은 웃으며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사람의 몸은 말일세. 그 나무토막보다도 약한 걸세.”
“응?”
“……!”
친구들의 얼굴에 얼떨떨해하는 기색이 떠오름과 함께 전소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임백호의 눈빛 역시 기이하게 변했다.
“확실히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거군? 가르쳐 주게. 정말이지 괜찮아. 아마도 우리들 자존심을 생각해서 그러는 것 같은데, 친구 간에 그런 거 없어. 딱 찍어 줘.”
추룡은 난처하다는 듯 웃으며 임백호 등 모두를 봤다.
“사실 난 아직 천하의 무예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네. 하지만 아버지께서 해 주신 이야기도 그러셨고, 오늘 배우기 시작한 무왕검법이나 육합검법을 보니 너무 멋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네. 멋이 있다는 것은 움직임이 크다는 이야길세. 움직임이 크면 혹시 그만치 휘두르는 쪽에 빈 공간이 많이 생기는 거 아닐까? 즉, 상대가 파고들 틈 같은 거 말이야.”
“그건……!”
친구들은 다시 멈칫하는 기색이 되었다.
“알뜰살뜰 우리 좀 더 절약해 보는 게 어떨까? 뭐건 절약을 해야 잘살지. 힘도 덜 들고. 그냥 내 생각은 그래.”
“흠……!”
심각한 표정이 되더니 임백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막 형, 몇 수 전개해 볼 테니까 내 것도 좀 봐 줘.”
중단中段! 후웅, 또한 유연하게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천하에 명성 높은 무당의 소천성小天星, 칠성검법이었다.
북두칠성이 튀어나오고 유성이 가르는 듯한 절기라 할 검법. 전개하는 것을 보고 추룡은 곧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응, 굉장하네. 하지만 역시 너무 멋있는 것 같아. 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군부 생활을 할 당시 아버지께서 한 번도 패하신 적이 없다고 어머니께 들었는데, 무당검과도 부딪치셨다고 해. 최종적으로 퇴임할 때 신분이 대한장군이셨던 것으로 아는데, 당시 연세가 서른여덟이셨네.”
“헛!”
순간 친구들의 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섰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남평을 떠날 때도 잠깐 이야기가 나왔었지만 부친인 막여사의 지난 신분, 대한장군!
말로 하기는 쉽지만 이것은 실로 예사의 신분이 아니었다.
현 명의 조정에는 한마디로 가공可恐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권력을 지닌 단체가 하나 있었는데 이를 친군도위부親軍都尉府, 혹은 금의위라고 불렀다.
도위부는 현 중원 모든 관부의 윗자리에 있었다. 군, 관, 민을 모두 통제하는 부서로서 황제인 주원장朱元璋이 명을 일으킨 후 나라를 통제하기 위해 설립한 직속의 최고 기관이었다.
여기에 걸려들면 살아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실제로 개국공신이자 승상이었던 호유용까지 금의위에 처단되었으며, 권력이 막강한 만큼 모두가 절정이라 할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 대한장군들은 천호사千戶司의 신분으로서 삼 위권의 서열이었다. 위에는 오군도독과 대도독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신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막여사의 실력은?
“막 형 부친께서…… 설마 그럴 수가!”
모두의 입이 쩍, 벌어지는 속에 임백호가 당황하여 청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막 형의 검이 너무 궁금해! 넉 자 반이나 되는 장검을 두르고 있던데, 악묘에서 말을 걸었던 이유도 사실 그 때문이었네. 솜씨를 보여 줄 수 없겠나? 안목을 좀 넓혀 주었으면 싶네만?”
그러나 추룡은 마찬가지로 어색한 듯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은데 그게…… 정말이지 어떻게 보여 줄 만한 게 없어. 어쩌다 이런 검을 배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아무것도 없거든. 그냥 찌르고 치는 것밖에 없어서. 해 줄 수 없어서 미안하네.”
하지만 추룡은 곧 일어났다.
“아, 그래. 그럼 오늘 배운 무왕검 몇 수를 해 볼게. 대충 내가 배운 것은 이래.”
겸해진 보법에 맞춰 핏핏핏, 목검을 움직였다.
한데 그것이 참 이상했다. 모든 검법이 다 그렇듯 무왕검에도 검을 휘두르는 몸놀림에 맞춰진 보법 등이 있었고, 여기에 맞춰 이를 전개하면 우아한 검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방식은 같은데 추룡이 휘두르는 목검은 거의 초식이 이어지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몸을 최대한 좁힌 채 그냥 앉았다 일어서고, 돌아서고 하며 이리저리 목검을 놀렸는데, 휘두르는 것도 두 자 반을 넘지 않을 정도로 뚝뚝 잘라서 쳤으므로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것처럼 툭툭, 끊어져 보이는 것이다.
이를 본 친구들의 표정이 적잖게 의아해졌다.
“무왕검이 맞는 것 같긴 한데 정말 엄청나게 절약형이로군? 너무 짧게 쳐서 동작이 모두 하나하나 끊어지고 있는데, 그래서야 중간 중간에 빈틈이 너무 많이 생기지 않나?”
추룡은 털썩 주저앉으며 다시 웃었다.
“응, 그게 나에게 보이는 자네들의 빈틈일세. 그냥 그래.”
덜컥! 친구들의 가슴이 일제히 주저앉았다.
무엇인가 알 듯 말 듯……! 사실이라면 이것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보기에도 추룡의 움직임은 빈틈투성이, 이야기대로라면 자신들이 오늘 배운 무왕검법으로 추룡과 싸울 경우 일이 합으로 모두가 당한다는 것이었다.
검을 쓰는 것에 비해 불필요한 동작이 많다는 것.
그러면 자신들이 지닌 화산검이나 무당검을 추룡이 전개할 경우라면? 그 또한 이렇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럴 경우라면 또한 일이 합에 바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전소가 얼른 또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나 좀 봐.”
그러고는 저만치 가서 한참 뭔가 쑥덕공론을 하더니 돌아와서 쑥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결정했네! 아무래도 막 형은 우리들이 보지 못하는 어떤 세상을 보는 것 같아! 스승으로 모실 테니 그걸 좀 가르쳐 주지 않겠나?”
좋은 친구들.
추룡 역시 이런 그들을 향해 쑥스러운 듯 웃었다.
“어, 별로 실력도 없는 주제에 실없는 소릴 해서 정말 미안하지만…… 그래도 되겠나?”
전소의 얼굴에 감격한 빛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하지 뭘 그렇게 어렵게. 어떤 인연이 이끌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우린 천하의 기연奇緣을 만난 것 같아. 정말 가르쳐 주면 고맙겠네. 성심껏 배울 테니.”
임백호 역시 쩝쩝 입맛을 다셨다.
“그런 뜻이었나? 잔뜩 실력이 없다고 하면서 말이지! 아무래도 자네와 천 초를 겨루어야겠군!”
“하, 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로 해 줘.”
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고, 추룡은 난처한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소금鹽검법 (1)
첫 휴일.
악충보에 들어온 지 열흘 만이었다.
“하하…… 오랜만에 홀가분해졌군! 자, 자! 추룡 사부님! 그럼 어서어서 가르침을!”
신입들은 계속 틀에 짜인 생활 속에 열흘 내내 무왕검만을 수련했고, 처음으로 숨을 돌리게 되었다.
어색하긴 했지만 천천히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되어 가기도 했다. 수련이 고되다는 것 하나를 제외하면 사실 그다지 어려운 무엇이 있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붉은 허리띠들은 여전히 눈을 치켜뜨고 으르대고 있었지만 지나면서 보니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뭐 이런 게 다 있나 했지만 하라는 대로 차질 없이 따르며 수련만 하면 그만이었던 것.
열흘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으레 그런가 보다 생각하게 되었고, 생각하니 슬슬 호통에도 익숙해지게 된 것이었다.
그만큼 눈치가 늘기 시작해 할 일들을 알아서 하게 되었던 것.
처음 들어와서는 숙사 밖으로 나갈 생각도 못 했지만 일과가 끝나면 식사를 마치고 슬금슬금 주위를 돌아볼 정도까지 되어 가고 있었다. 마침내 동료들과 조금씩 친분들도 생기게 되었고.
어쨌건 휴일은 기쁜 것이었다. 신입들에게도 이날은 외출이 허용되고 있었다. 다만 주의할 것은 무조건 수련이 시작되는 다음 날 묘시까지는 돌아와야 한다는 점이었다.
모처럼 다들 늦잠을 자는 사이, 친구들은 원래대로 묘시 초에 일어났다. 세면을 하자마자 삼단 숙사로 우르르 몰려왔고, 식사를 마치자 바로 추룡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무왕검을 수련하면서 이야기 나왔던,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우기를 원했던 것이다.
늘 그랬듯 추룡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충보의 것부터 배워야 할 것이라 당장 시작할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오후부터 하세. 난 잠깐 황산현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황산현에는 왜?”
“왔으니 살펴 두기도 해야 할 것 같고 구해야 할 물건도 좀 있어서. 점심시간까지 돌아오겠네.”
친구들은 힐끗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일상에 필요한 기본 물건들은 모두 지급받고 있어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있을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있다 하니 마찬가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세! 할 일 없이 빈둥대고 있는 것보다 나을 테니. 열흘 동안 갇혀 지내다시피 하다 보니 좀이 쑤셔.”
추룡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십 리 길이 가깝지 않은데 모처럼 휴일에 괜찮은가?”
장청이 히죽히죽, 바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황산현은 우리도 오랜만이니. 가는 김에 술도 한 병 사고.”
“가세! 가세!”
술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회가 동하는지 또 소란들을 피웠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련을 마친 후 피곤하거나 할 때는 생각날 때가 있었던 것인데, 그러나 수련 문인들에게 술을 먹게 할 방파는 없었다.
기존 문인들에게도 술은 반입이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서, 바깥출입이 가능한 비번들은 일과 후 나가서 마시는 터였다.
친구들은 사복으로 갈아입고 곧 밖으로 몰려 나갔다.
이십 리.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또한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었다. 중원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끝도 없이 넓은 땅에 늘 걸어 다니다 보니 이십 리 길이라는 것은 우습게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말이 있으면 좋겠지만 적낭자 등은 훨씬 더 떨어진 오십 리 밖의 둔촌에 있으므로 나오자마자 들입다 뛰기 시작했다.
무예를 수련해 온 체력이라 그다지 힘들지도 않을 정도. 추룡의 경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싱글거리며 뛰는 모습을 보였다.
십 리쯤 달리자 그래도 다들 조금씩 처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여전히 싱글거리며 뛰는 추룡을 본 모두는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 내공심법 수련했나? 숨도 차지 않는 것 같군?”
내공심법.
추룡은 친구들을 생각해 속도를 늦추며 삼가 대답했다.
“그냥, 뛰는 것에 조금 익숙하네. 열 살 때부터 아침저녁으로 십 리씩 오가곤 해서. 나무를 한 봉황산이 십 리 밖에 있었거든.”
“열 살 때부터 나무를 했다고?”
“아니. 뭔가를 잘 몰랐을 때인데, 집 주위에 무예를 수련할 만한 곳이 없었네. 정확히 난 개봉에서 출생했네. 이야기했듯 아버지께서는 군인이셨고, 대리사에 계실 때 어머니를 만나 거기서 혼인하셨거든. 도위부에는 차후 들어가신 것으로 알지만 아무튼 여덟 살까지는 개봉에서 살았네. 이후 퇴임하시고 고향으로 가셔서 그때부터 남평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지.”
“서른여덟에 대한장군이면 엄청난 진급이셨는데 왜 그렇게 일찍 그만두셨지? 그대로 계셨다면 도독이 될 수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
추룡은 싱글싱글 웃음 지었다.
“정난政難 때문이었다고 들었네. 대리사에 계실 때만 해도 좋았고, 도위부로 가서도 처음에는 괜찮았다고 들었어. 하지만 워낙 도처가 흉흉했나 봐. 건국 후 태조께서는 토지제도를 개편하고 세금을 내리는 등 많은 일도 했지만 정말 못할 일도 했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눈에 벗어난다 싶은 인물들을 모두 잡아 죽였다 하니까. 마시를 감시할 때 송 형도 이야기했던 것인데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휘말려 죽었다고 들었네.”
건국 후에 벌어졌던 홍무제의 권력 싸움.
분명히 그런 일이 있었다.
거론하자면 홍무제의 출생 내력부터 알아야 했는데, 원래 주원장은 이렇다 할 명문가의 출신 인물이 아니었다.
정확히 원나라 말, 칭기즈칸이 일으킨 원이 중원을 침공, 폭정이 하늘을 찌를 당시 금릉의 회하 유역에 자리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던 인물이다. 설상가상 흑사병이 돌아 부모를 잃고 어린 시절부터 유리걸식을 하는 등 행각승이 되어 천하를 떠돌았던 인물.
원의 폭정과 함께 이 시기 중원에는 오랫동안 가뭄이 끊이지 않았고, 주원장조차 그렇게 부모를 잃었듯 돌림병이 만연해 민초들의 고초가 말이 아니었는데, 이때 어려운 시기를 타고 불같이 일어난 종교가 하나 있었다.
천하를 뒤집어엎었던 백련교白蓮敎가 그것으로, 불교에서 파생되어 나온 미륵 신앙이었다. 귀의해 미륵을 섬기면 미륵불이 등장해 도탄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것이라는 교리를 가졌던 종교다.
워낙 상황이 어려웠기에 중원의 사람들은 여기에 희망을 걸어 종교 속에 깊숙이 빠져들어 갔으며, 부흥하여 일어선 것이 안휘성의 곽자흥郭子興이었다.
지방 무벌의 하나였던 그가 백련교의 사도使徒로서 세상을 바꾸겠노라 일어나 민초들의 호응을 받으며 수십만의 홍건군紅巾軍을 이루어 원에 맞서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나 곽자흥은 화서에서 원군을 맞아 싸우다가 또한 성행했던 흑사병에 걸려 목숨을 잃게 되었는데, 이때 그를 이어 홍건군을 이끌기 시작했던 게 주원장이었다. 전쟁이 시작된 후 그 역시 홍건군이 되었던 터로, 이 무렵 그는 곽자흥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그의 유언에 따라 후위를 잇게 되어 홍건군을 이끌어 원을 물리치고 명을 세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지는 매우 불안했다. 실력이 있었으니 곽자흥의 눈에 들었을 것이지만 출신 자체가 천출, 뒤늦게 홍건군이 되었던 몸에 유언에 의해 수장이 되었으므로 각처의 인물들에게 무수히 도전을 받았다.
이에 그는 권력을 잡자 곧 정적政敵들을 처단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또한 백련교의 간부들이기도 했으므로 즉시 백련교를 신봉하던 중원 전역의 사람들에게 반발을 사기 시작했다.
이에 내란이 발발할 것을 우려한 주원장은 백련교를 탄압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신봉자들을 모두 잡아 참수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죽은 양민들의 수효가 무려 팔십만 명에 달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학살당한 것으로, 이런 주원장을 보위해 숙청에 앞장섰던 것이 가공이라 표현되는 권력 기관인 친군도위부, 곧 금의위였다.
“정적들을 치는 것까지는 몰라도 백성들을 죽이기 시작하자 아버지께서는 권력에 회의를 느끼셨던가 봐. 해서 퇴임하시고 고향인 남평으로 돌아가셨던 걸세.”
모두의 얼굴에 크게 탄복한 빛이 떠올랐다.
“의기義氣가 높으신 분이군?”
추룡은 계속 싱글벙글 웃었다.
“하지만 어렸던 난 매우 당황했었네. 그때까지만 해도 개봉의 장원에서 생활했고, 갑옷을 입고 부하들을 거느린 모습을 뵈었는데, 갑자기 시골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우울했고, 그래서 더 무예를 수련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네. 한데 하려면 뭔가 대상이 있어야 하는 건데 그런 게 없었어. 뒷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있기에 처음엔 거기에 새끼줄을 감고 치고받고 했는데, 두어 달 만에 죽어 버렸지. 크게 혼이 났는데 알고 보니 그게 감나무더군.”
남평 제일의 나무꾼인 그가 했던 첫 나무.
“카카카!”
“그래서 집 밖으로 눈을 돌렸는데 마을 뒤에 그럴듯한 느티나무가 있더군. 한데 거기에 새끼줄을 감았다가 마을 어른들에게 더 크게 혼이 났네. 알고 보니 그게 또 성황나무더군.”
“하하하…… 자네 꽤 말썽이었군?”
추룡은 멋쩍게 웃었다.
“좀 그런 편이었는데 어쨌건 할 수 없어서 결국 산으로 눈을 돌렸네. 좀 멀긴 했지만 십 리 길을 오가며 소동을 부렸던 걸세. 나무를 하게 된 요인도 사실은 거기에 있었네. 하다 보면 나무가 쓰러지곤 해 꾀가 늘면서 그걸 장작으로 내다 팔기 시작했던 걸세.”